[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손재선 선님을 만났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평일의 오후, 대학원생 손재선 선생님과 카페에 마주앉았습니다. 2년이란 시간이 흐르도록, 이렇게 마주앉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새삼 아쉬움이 되어, 오늘의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을, 참 만나고 싶었던 손재선 선생님과의 데이트에 함께 동행해 보실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그 당시 어머니가 편찮아지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어머니가 거동을 하셨고 곁에 붙어서 케어를 해야 하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15년 직장생활의 여독을 풀어보고자 여행도 다니고 그러면서 20년 가까이는 그냥 회사, 조직을 위한 일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개인을 위한 것 보다는 사회를 위한,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사실 저는 제 3세계나 그런 해외봉사 쪽으로 관심이 많았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나가서 활동을 좀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아프시기 시작하고 내가 케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노인케어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렇게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1년을 놀며 쉬며 공부하고 하던 사이 엄마가 허리골절을 2번을 당하시고 6개월을 와상상태가 되신 거예요. 제가 쉬는 상황이었으니까 엄마를 돌보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 그렇게 돌봄을 해야 하는데 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이걸 어떻게 하지? 요양보호사 공부를 할까? 온갖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제가 사진을 배웠던 선생님이 신문에 남기신 칼럼을 보게 되는데, 호스피스를 하다가 임종을 하셨다는 이야기 였어요. ‘아 호스피스란활동이 있구나.’ 그 기사를 보고 이쪽을 찾아보고 그렇게 호스피스교육 기관을 찾게 되었어요. 그렇게 2년 전 여름에 호스피스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이곳과 인연이 닿았지요.

 

 

그럼 호스피스교육을 하고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는 어떻게 입학하시게 되신 건가요?


호스피스교육 마치고 병원 영적돌봄연구실에서 봉사활동을 계속 했어요. 그렇게 능인스님께 지도 받으면서 계속 공부를 했고, 호스피스교육 후에 이어지는 교육들(임상기도, 임종의식)을 계속 받았고, CPE교육까지 쭉 연결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이쪽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불교에 관해서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죠.


엄마가 독실한 신자이기는 했지만, 저는 어릴 때 엄마 따라 절에 몇 번 갔던 기억이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반야심경은 제가 외우고 있더라구요. 불교 공부를 시작하고 반야심경 강의를 들으면서 , 불교의 진리가 이런 거구나.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 그 마음이 또 저에겐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곳에 와서 스님과 환자들과 임상에서 공부하고 계속 연결 연결되면서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고,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물었고, 환자를 돌보고 또 어차피 부모님을 돌보고 만나야 한다면 내가 나를 더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심리와 명상쪽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디로 갈까? 서울에 갈까? 경주에 갈까? 고민 중에 능인스님과 이야기했고, 결국엔 임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곳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을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입학할 때의 첫 마음, 초심이 궁금해요.


어떤 마음이었는지 특별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좀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명상, 심리 이 세가지를 다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입학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 대학원이 공부하는 양이 보통 많은 게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을 하실 때에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구나 싶어요.


이렇게까지 많을 줄 몰랐어요. (웃음)

 

벌써 5학기를 앞두고 계셔요. 지금 마음은 어떠셔요?


1~2학기 두 학기는 정말 멋도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아요. 공부를 한다고 할 수도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 바빴어요. 카페 일도 해야 했고, 수업시간에 2/3은 거의 잔 거 같아요. 그럼에도 잠결에 흘러들어온 것들이 있었던가 봐요.


사실 반야심경밖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서 유식을 듣고 있자니 이게 뭔소린가 싶고 이건 진짜 기초 공부를 해서 받아야 하는 수업인데 기초가 없는 내가 이렇게 받고 있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래도 한 가지씩은 제 마음에 남더라구요.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는데, 기말 세미나 때 발표를 한 후에 장익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보살은 아라한이 되고 부처가 되면 해탈하고 열반하고 다시는 이 세계에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다시 온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이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게 진정한 보살의 길이지, 나 혼자 해탈하고 열반하는 건 보살이 아니다. 진짜 보살은 다시 중생을 구제하러 온다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에 보살로 와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지 모른다. 관세음보살님이 다시 구제하러 오셨듯이(웃음) 그 말씀 하나가 남았어요. 1학년을 그렇게 지나다보니 2학년이 되면서 , 내가 공부를 정말 안 했구나.’ 싶어서 진짜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었고, 그러면서 2학년 2학기 들어서면서, 나름 책도 보고 하다보니 이 분야가 정말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구나.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끼기도 했고요. 힘들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그런 분야들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차차 알아가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 사람을 보는 관점이 또 넓어지고, 뉴스들도 관심있게 보게 되고, 지식이 늘지는 않아도, 제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이것이 굉장히 좋았어요.


 

사회적인 관심, 사회적인 문제, 사회적인 활동들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이 굉장히 반갑게 들려요. 이제는 정말 이 분야에서 빛을 발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건 자의 반 타의 반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다시 돌아보니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 성격상 100% 자의로 그만두지는 못했을 거예요. 12시간 이상씩 일을 하며 30대를 보냈거든요. 너무 힘들고 벗어나고 싶은데 그걸 그만두지 못하는 거예요. 존재의 불안감 때문에요. 이걸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근데 그 당시 지방에 있던 회사가 경기도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 더 이상은 안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만두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100% 자의는 아니고, 외부의 영향 때문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영향도 큰데, 어쨌든 잘 한 선택을 했구나 싶어요. 그런 요인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아직까지도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면서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메고 있었을지 몰라요.

 

 

인생의 고비가 있으셨나요?


저의 고비는 5년전 엄마가 투병을 시작하신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 현재도 그렇고요. 엄마가 파킨슨 병이세요. 처음 그 병을 진단 받았을 때는 왜 이런 병이 우리엄마에게 왔을까?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 자책감이 찾아오면서 힘들더라구요. 사실 공부는 그러면서 시작된거 같아요. 마음공부 하는 것도 그렇고 명상이나 이런 쪽에 관심을 두었던 것도, 그때 상황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데... 그런 힘듦, 내지는 슬픔 어려움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어요? 극복이라기보다 그때그때 어떻게 넘아가고 계시는지요?


엄마가 아프시고, 아버지도 원인모를 폐혈증으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살아 나오시고, 한 최근 3년 동안을 두 분이 번갈아가며 병원을 왔다 갔다 하셨는데, 그런 상황들을 이겨왔다 하기에는 거창하고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 케어를 해야 하면 언니 오빠들과 순번을 정해서 하고, 병원 봉사를 하고 불교 공부를 하면서 매일 아침 108배 기도를 시작한지 600일 정도 되는데요, 그 힘을 통해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게 아니었으면 부모님을 케어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중간에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 대학원의 공부과정들도 과제가 많고 생명교육 전문가과정으로 바뀌면서 또 새로운 분야이기도 하고, 이론교육도 많고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또 간호 공부를 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연결선상인가요? 어떻게 그 공부를 병행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심리적인 케어의 치중이 많이 되는데요, 실제적으로 물리적인 병증이나 우리 신체적 몸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장기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거예요. 근데 돌봄을 하려면 환자의 몸을 만지게 되는데요, 환자의 배를 만지거나, 어느 부위를 만질 때 이곳에 어떤 장기가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이 환자가 어떤 병증이 있는지를 알면 이곳을 만져도 되는지 안되는지 이 정도는 나도 알아야 될 거 같았어요.


그리고 향후에 이쪽에서 제가 임상의 실무적인 일들을 더 깊이 하게 된다면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가장 빠른 길이 간호공부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10년 뒤에 선생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병원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구요.

제 꿈이 있는데, 역량이 된다면, 대규모 호스피스 시설 보다는 가정형 센터를 제대로 한번 운영해보고 싶은 그런 꿈은 가지고 있어요.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들을 그려봐요. 그리고 제가 배우고 있는 여러 가지 재능들을 지인들과 환자들을 돌보고 또 일반인들도 같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 꿈을 꿔요.(웃음)

 


인생을 살면서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었을까요?


엄마 아프기 시작한거요.(웃음)


 

공감이 되네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세상에 무엇을 선물로 남기고 싶으세요?


없어요. 저는 그냥 살다 그냥 가고 싶어요.

 


선물을 받았으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이죠(웃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가 사라지는 것. 쓰레기를 남김없이 잘 사라지는 것. 그것이 곧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선생님이 생각한 마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요?

 

글쎄요. 마음이란 답이 없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웃음)

 


새로 들어 올 후배들도 있을 것이고, 지금 함께 공부를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수업시간에 설사 자더라도, 어떠한 한 마디는 귀에 남는다(웃음) 그러니 자더라도 학교에 와서 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웃음)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함께하고 싶었지만, 따뜻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손재선 선님과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늘 진중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오늘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깊고도 넓은 손재선 선님의 마음자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왠지 그 마음이 어떻게 자리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마음과학과 SATI수행

 

박용구 (명상심리학 석사과정 1학기 재학생)

 

 

결혼 후 4년차에 와이프의 급작스런 암 선고와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1년여의 병원생활과 2년여의 요양생활을 지나오면서 장밋빛 청춘의 계획들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늘 건강에 대한염려와 경제적인 회복의 압박 속에서 일궈놓은 것 없는 인생 반 바퀴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 내 인생에 무엇이 남았을까? 숱한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같은 성공의 기회들은 왜 내 삶을 비켜갔을까? 행복한 삶은 무엇이며, 잘 산다는 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마음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사회에서의 생업들을 뒤로하고 절집 일을 보면서, 공부와 기도로 어떤 답을 찾고자 했다.

결혼과 취업 등 새로운 삶의 출발은 기대와 희망이었다. 하지만 부부로서의 생활과 가정의 이룸이 어떤 행복과 만족을 영원히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비단 내 삶에서만이 아닌 , 우리 인생의 선배들도, 주변의 많은 불행한 경우들도 그랬다. 그렇게 평온한 삶을 이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인가보다.

암 투병에서 살았다고 기뻐해야하나?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면 또 어땠을까? 여러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들 속에서 불법에 해결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처님은 삶의 희노애락을 어찌 받아들이고, 또 그 고통을 어찌했을까? 아님 극복하는 무슨 방법이 있었을까? 부처님 당시의 실제 수행법과 마음 다스리는 공부가 늘 궁금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일만 시간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다못해 다이어트나 몸짱이 되려 해도 꾸준한 습관적 몸 운동과 관리가 필수다. 완성된 인생도, 성공적인 삶 또한 숱한 시행착오와 오랜 기간 동안의 수련으로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이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마음은 누구의 것이며, 왜 이다지도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억겁의 또는 전생의 습 때문인지? 전생의 과보, 업보 때문인지? 몸의 근육을 키우듯이 마음의 근육도 꾸준히, 습관처럼, 또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키우다 보면 천방지축 날뛰는 마음을 붙들어 내 뜻대로 통제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정신세계를 맑히고 마음을 평온히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의지가 부족한 탓인지 쉽지가 않다.

스트레스와 불안,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삶!

그래서 나는 경전의 공부보다는, 특히 알 수 없는 공안과 화두, 신격화 된 한국불교(대승불교)보다는 부처님 당시의 수행과 설법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적인 수행법인 호흡법과 위빠사나의 알아차림 수행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끈기와 궁구하는 노력 부족이었겠지만 앉아서 버티는 좌선은 쉽지도 않았고 마음의 움직임이 없었다. 책으로만 접하기엔 더욱 용이하지 않았고, 생업과 일상생활 속에서의 수행 실행도 쉽지 않았다.

 

그런 중 이번 여름 대학원의 여름방학특강 <마음과학과 SATI 수행>에 참여하였고, 마음의 근원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제 7감 존재-사티 에 대한 붓다팔라스님의 설명이 깊이 와 닿았다. 부처님의 수행법이자 깨달음의 방법인 알아차림 수행을 쉽고도 명확하게 체계화, 이론화 한 것 같았고, 마음의 나쁜 찌꺼기들의 발생을 어떻게 대응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알아차림 수행의 사용가치,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접목방법, 부처님의 알아차림 수행과 우리 삶의 고통해소, 우리들 삶에서의 가치 있는 역할 등의 제시와 방안이 색다르게, 의미 있게 들리기도 했다.

상담심리학에서 상담자는 전문가이어야 하고, 인생을 잘 살아온 선험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상담자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 또한 알아차림 수행의 전문가가 된다면, 내 개인의 삶의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상담자로서,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철학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밝고 맑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 일상 속에서의 알아차림이 생활화된다면 삶에서의 부정적인 요소, 정신적인 문제들을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그 강도를 줄여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제부터 아침과 저녁 30분씩, 바쁜 일상을 좀 쉬면서, 잠시 외부세계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을, 매일 꾸준히 수행해야겠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보슬보슬 여름비 시원히 내리던 광복절 연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오신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수필 선생님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 함께 동행하실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2015년도 여름 41기 교육을 받았고, 그 후에 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께서 대학원을 추천해 주셨고요.


사실 저는 대학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거든요. 굳이 대학원 공부까지 해야 하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능인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어떤 계기가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렇게 도전하게 되었던 거죠.


 

계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계기가 마련이 되신 경우네요, 입학하셨을때의 첫 마음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전에도 불교관련 공부를 했었는데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제가 모르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리고 보통 대학원은 금요일 수업이면 끝나는데 토요일에 와서 또 플러스된 교육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 량이 다른 대학원에 비해 많은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금요일에 집에 안가고 여기서 자고 토요일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호스피스교육 스탭, 병원봉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43기부터 스텝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스탭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45기 생사의장 교육 때에는 학생 곁에 선생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교육에 학생지원을 선생님이 맡으셨나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건교사이다 보니까 의약품관련해서는 담당을 하게 되었구요. 특별히 학생지원 소임을 살지는 않았어요. 누가 아프다고 약을 요구하시면 후에 지금은 상태가 어떠신지, 살피고 한번 물어봐도 주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렇게 보여지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이번 교육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건강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사실 우리 행정실은 교육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교육생들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교육을 마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그런 부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러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챙겨주신 선생님이 계셨으니까 안전하게 교육이 진행될 수 있었구나 싶어서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웃음)


 

그런 스탭으로서의 일이 선생님께 어떤 도움으로 다가오시는 거죠?


교육생의 마음을 살피는 것?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구요. 봉사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봉사는 세심함이 필요하잖아요. 환자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하는지, 손짓 몸짓 표정 그런 것들이 세심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자비심 보리심 그 마음들이 생겨나는 건가요?


그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으면 좋죠. 근데 저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자비심 자애심 이런 것이 제 마음속에는 별로 존재하지를 않아요. 근데 봉사를 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들이 반드시 필요하죠. 모든 중생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봉사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에 이미 자비심이 자리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웃음)

 

 

병원봉사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2층에 계신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로 시작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 환자를 만날 때의 마음가짐, 대화법, 그런 것들을 관찰일기로 쓰라고 하셔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환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렇게 관찰일기를 쓰면 능인스님(영적돌봄연구실장)께서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시거든요. 이런 때에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죠. 그리고 나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의 느낌이 잘못 들어가면 환자가 거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을 교육 받으니까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작년부터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한두번 정도 들어가고 있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생사의 장 교육을 마치신 분들도 계시고, 대학원생 분들 중에서도 아직 봉사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하나에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우선은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 다음이 시간이겠죠? 시간이 안 된다면 사실상 봉사를 하기가 어려워요. 안되는 시간을 억지로 내게 되면 봉사가 잘 될 수가 없거든요. 내가 편안한 상태로 환자를 만나야지만 환자도 편안해하는데, 내가 불편하고 힘든 기운으로 들어가게 되면 환자에게 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거든요. 시간이 되고 마음을 낼 수 있을 때 천천히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서두르지 말고요.


그 조건이 되어야 꾸준한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능인스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셔요. 굳이 많이 자주 오려고 하지 말아라. 지치게 하지 말고,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이라도 꾸준히 오면 된다. 그 말이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3학기를 마치고 4학기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들은 없으셨나요?


관심을 가진 분야의 수업은 쉽게 다가오는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아무래도 지루한감이 있어요. 그래도 배운다는 입장에서 참여는 하는데, 사실 저에겐 생명교육 분야가 좀 흥미에서 떨어지는 부분이예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자체가 보건교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생명윤리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고 좀 신선하지가 않은 부분이 있죠.(웃음) 그래도 1학기에서 이론을 마쳤으니까 2학기는 그런 점들이 좀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싶고, 바램이 있다면 남에게 쓰임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살다보니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산다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라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봉사하면서 나름대로 깨어있는 삶을 살다보면 제 삶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내 것인 것 같은데 결코 내 것이 아닌 것이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것을 찾아야하겠죠. 이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함께 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도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반들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 들어오시는 후배들을 통해서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람관계에서 배워지는 것이 실은 수업을 통한 배움만큼 많거든요.

다른 사람의 질문들, 내가 생각하지 못 했던 사고방식들, 그런 것들이 참 좋아요.

그리고 어떤 공부일지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꾸준히 공부합시다.^^

 

나에겐 자비심이 없다는 김수필 선생님께 모르고 행하는 자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르고 행하는 선한의 공식 : 마음=Real 자비심=김수필 선생님의 마음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콤플렉스, 외면당한 또 하나의 나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콤플렉스는 불편한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평온하게 유지되다가도 콤플렉스가 자극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감정이 요동을 쳐서 당황하거나 허둥되면서 평상심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콤플렉스는 자신 안에 고요히 숨어서 지내는 감정의 덩어리다. 죽은 듯이 있다가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일어나서 반응을 보이는 존재이다. 마치 아직 내가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소.” 하고 소리치는 존재이다. 콤플렉스는 내 안에 살지만 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이단아, 반항아 같은 존재이다.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엾은 존재이기도 하다. ‘외면당한 또 하나의 나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는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진 감정이기도 하고, 억울하고 무시당해서 생긴 풀리지 않는 불편한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남에게 자랑스럽게 내 놓을 수 없어서 숨기고 싶은 열등감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존재한다. 다만 힘(에너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강력한 것을 지닌 사람도 있고 소소한 것을 지닌 사람도 있다. 에너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콤플렉스는 위험한 것이다. 마치 신체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강의를 하는 중에 어떤 중년의 부인이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불쑥 내가 바보여서 그렇습니다.”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제 자리에 가서 앉는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금방 하던 강의 내용을 잠시 돌이켜보니 남편의 외도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부인은 배우자의 외도에 관한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이 아닌가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콤플렉스는 의식의 흐름을 멈추게도 한다. 의식을 회복하게 되면 대개 깊은 후회를 하게 된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이처럼 콤플렉스는 불편한 존재이다.

불교상담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보살님 한 분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잠시 울먹인다. 함께한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약간 놀라는 시선을 보낸다. 잠시 뒤에 정신을 차리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는다. 5살 무렵에 본인이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단다. 어머니의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근 고을에 한의사가 있긴 한데 집에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5일장을 따라다니며 장바닥에서 침도 놓고 뜸도 뜨고 약 처방도 해주는 그런 의사였다. 어머니는 그 한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그가 가는 5일장을 모조리 따라다녔다고 한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소달구지에 딸아이를 태워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어머니는 소아마비에 좋다는 밤을 사다가는 삶아서 한 그릇씩 딸아이에게 먹이기도 했다. 5살짜리 어린소녀는 소달구지에 실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과 지극한 정성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누가 어머니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어린 시절, 그 감정이 봇물처럼 밀려올라와 주체하지를 못한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이고 그것이 콤플렉스의 일종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슴에 응어리져서 풀리지 않는 것으로 삶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이다. 자유로워지려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고마운 마음만 가슴에 남기고 지난 날의 감정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콤플렉스의 극복이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머도 뛰어나고 술도 잘 마시고 대인관계도 원만한데 유독 가창에 대해서는 강력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 2차로 노래방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같이 간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남들은노래를 잘 못하면 어때, 하는 대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사자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까닭이 있는 것이다. 노래를 잘못 불러 심하게 창피를 당했다거나, 어릴 때 아주 불쾌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콤플렉스는 타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깐 일로 뭘 그래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체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어떤 부인은 초등학교 시절에 팔에 골절상을 입고는 수술을 했는데 전문의가 없는 시골에서 한 탓에 완치가 되어서도 팔이 약간 안쪽으로 휘어버렸다. 친구들에게 더러 놀림을 당하고는 팔을 내 놓고 다니지를 못했다. 한 여름에도 항상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다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해서는 긴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6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부인은 항상 긴팔의 옷만 입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외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춘기의 학생들은 더욱 심하기도 하다. 그래서 대학입시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성형외과 수술 예약은 넘쳐난다. 쌍꺼풀 수술은 기본이고 코를 높이고 턱을 다듬기도 하고 얼굴 곳곳을 성형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가장 좋긴하지만 그것이 힘들면 오히려 성형을 해서라도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콤플렉스가 누적되고 심해지면 심리적 증상은 다른 곳으로 옮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인기피증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잘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극복해서 보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평생 콤플렉스에 짓눌려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콤플렉스의 극복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해진다. 억울했던 감정도 피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감정도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그때 그랬지, 참 힘들었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래를 못하는 것도 피하지 말고, ‘나는 원래 노래를 못해 못하면 못하는 대로 부르지 뭐. 그것 때문에 욕을 하겠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두려움도 줄어들게 된다. 콤플렉스는 받아들이면 성장의 발판이 되고 숨기면 심리적 장애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7학년도(후기) 생명교육 전문가 신입생 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우리 사는 세상의 문제를 직시하여 나아갈 수 있는 인재들을 발굴, 육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작하는 이 순간의 선택과 노력이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밝은 빛이 되어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택 둘 :) 여름방학 공개 워크숍 <마음과학과 SATI수행>

 

여름방학 공개워크숍 <마음과학 SATI수행>은 일상에 지친 마음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치유 및 회복 능력을 계발하여 보다 활기차고 긍정적인 삶으로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선착순 40명 접수합니다. 가능한 선택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선택 셋 :) 45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45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생사의 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생사를 인생이라는 한 선에 놓고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성찰과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게 하는 영성프로그램입니다.

 

 

 

선택 넷 :) 2회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 <자기계발과 정신건강을 위한 자각명상>

 

교사 소진예방 연수교육은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교육기부 협약에 따라 진행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사회공헌 사업입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장익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이 따끈한 오늘, 웹진 마음은 장익 교수님을 뵈러 경주 위덕대학교로 향합니다. 장익교수님의 마음을 만나러 가는 길, 함께 동행하실까요?

 

 

교수님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운명처럼 능행스님을 만난거지. 그게 아마 80년대 후반쯤 될까?


스님은 굉장히 학술적이고 공부에 진지한 분이셨어요. 그때 제가 조계사 불교대학하고 대원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그 두 군데를 다 와서 공부를 하셨어요. 그래서 인상 깊게 스님을 보고 있었고요. 결정적인 만남은 그 후 10년쯤 뒤였어요.


뭐랄까... 괴로운 일이 운명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때 저희 아버님이 진찰을 받았는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저는 그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부터 공부를 했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케어라든가, 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라든가 하는 그런 개념이 전무했고 일본에 서적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일본에 니시라는 교수가 있는데 니시요법이라고 야채즙, 녹즙, 붕어체조, 인삼요법, 버섯요법, 그 당시 내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강원도까지 가서 약초 캐고 하면서 효자 노릇 좀 했죠. 어쨌든 아버지께서 한 2년간을 무사히 건강히 계시다가 가셨죠그 기간에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부끄럽게도 내가 불교학자이면서도 아버지 죽음을 정신적으로 뛰어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런 기회에 말기 암환자에 대한 케어 실습을 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공부하는 데에도 전환점이 된 거 같아요. 학술적 공부가 내 임무라 생각했는데, ‘아 이 세상에 필요한 공부가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버지 49재를 마치고는 바로 인도 행 비행기를 탔어요. 무작정 갠지스에 가서 죽음을 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각오가 필요했죠.


그렇게 돌아왔는데 능행스님이 청주에서 정토마을을 시작하셨더라고요그때 내가 갔을 때 비닐천막치고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고 있었어요. 겨울에 눈은 오고 추운데 40~50명이 비닐천막에 빽빽이 모여 있었죠. 그 열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그곳에서 강의했던 기억이 나요. 인연의 시작은 뭐 그런 정도10년 전 불교대학에서의 인연이 스님은 호스피스 쪽 길을 걸었고, 나는 그런 쪽에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다시 연결되었던 거죠.

 


활동과 학문이 딱 결합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의 만남이요.


상당히 감동적이었어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인데, 모두의 정열은 정말 대단했거든.

 

 

그 인연이 대학원까지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제가 97년도에 이곳 경주 위덕대학교를 오게 되었어요. 그때 스님이 언양에 건물하고 땅을 구입하신다고 한번 왔으면 좋겠다하셔서 간 적이 있어요. 가서 보니까 공장폐허에 불모지인데 위치가 참 좋았어요아 스님이 이제 가까이 오시는구나.’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스님이 공부와 학업, 교육 쪽에 워낙 관심이 많으시니까 어느날 그 곳에서 마하보디상담대학을 시작하셨던 거예요. 그 대학을 하시면서 내게 연락이 왔는데, 이게 학위과정도 아니고, 전문가과정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학술적으로도 진척이 없고 학생들도 발심이 덜 하다고, 학위과정으로 어떻게 할 수 없겠나 하는 문의를 주셨죠.


당시 내 생각에는 학생들이 이론수업만 들어서는 안되고 적어도 하루쯤은 임상이라든가 실습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겸해서 그야말로 우수한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일을 추진해보려 하니까 조건이 안되는 거예요. 근데 스님과 연락을 하다보니까 스님 쪽에서는 그게 가능했던 거죠. 스님은 임상이 가능하고, 우리 대학원은 이론이 가능하니까, 그러면 합쳐보자 한 거예요. 그렇게만 한다면 이 분야의 최고의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다. 그렇게 스님도 나도 오케이 하고 2007년도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으로 승격을 하고 위덕대학교 불교대학원하고 MOU를 맺고 학위도 취득하고 임상과 실습도 겸하게 되었죠.


내가 볼 때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장이예요.

 


그렇게 저희 대학원에서 여러 학생들이 논문을 썼는데요, 그 중에 성과적인 논문이 있었나요?


불교 쪽에서는 참 쉽지 않은 논문을 많이 냈어요. 혁신적이라고 봐야지.


불교학에서 보면 불교학, 불교사, 지역불교 이렇게 연구하다가 응용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쪽이 있었는데 말이 응용이지 전문적이지 못했거든요. 대중적인 연구 정도밖에는 안되었는데 우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같은 경우에는 응용의 분야를 명상심리라고 하는 쪽에 한정을 시켰지만, 그쪽 분야에서는 정말 최초의 논문들이었죠. 임상까지 거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걸 다시 적용해서 임상적 효과를 입증하는 단계까지 간 논문이 그 당시에는 없었어요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이 아주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지요.


 

졸업생 분들도, 재학생 분들도, 또 입학을 고민하는 분들도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의 학문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쎄, 학문이라는 것은 원래 축적이 되어야 하고, 네트워크 형성으로 활용도가 펼쳐져 나가는 거예요지금까지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네트워크 연결망이 부족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졸업생들은 개인적인 공부에 그치고는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열렸다고 봐요. 우리가 임상을 통해 논문도 쓸 수 있고, 현장에서 바로 케어에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런 계기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할 거예요.


능행스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성공한다면 전국 어디에 가도 성공할 수 있다고요. 적어도 이런 자재요양병원 쌍둥이가 50개는 되어야 한다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전국을 누비면서 활동을 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해요. 분명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그냥 이렇게 사느라고 나 자신을 잘 못 돌아봤네. 이제부터 좀 돌아보려 해요. 조만간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 쪽으로 이 분야의 구체적 선진사례들과 학술적인 연구들을 살펴보고 싶고, 특히 그런 것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직접 다녀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 걸음을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한번 더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은 발목 잡힌 곳이 많아가지고 쉽게 움직여지질 않네요. (웃음)

 


교수님께서도 인생의 고비가 있으셨나요?


... 글쎄요. 저에게는 불교학을 만난 것이죠. 아마 이 길이 아니었으면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는데.(웃음)

어린 나이에 좀 더 쉬운 길도 있었는데 왜 힘든 이 길을 선택했을까? 그게 항상 고민이었어요. 이게 내 운명임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죠. 지금은 오히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그 고비를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신 계기가 있으세요?


불교학 속에서 내 스스로가 이해되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수용이 되고, 내 삶에 대한 문제가 풀어지니까요. 불교학 쪽에서 나를 송두리째 재발견하는 계기를 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글쎄, 나는 두 갈림길 중에 가고 싶은 길을 가지는 못 했지만, 그 길보다 훨씬 더 잘 온 것 같아요. 지나온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교수님의 인생에 있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불교학을 만난 것이죠. 그게 내 인생에서 제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죠.

 


앞으로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별로 남길만한 그런 걸 갖고 있지 못한데...

 


교수님께서는 선물로 불교학을 받으셨는데, 선물을 안 주고 가신다구요?(웃음)


그런 선물이라면 뭐 좀 더 많은 사람이 불교학을 만나서 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화두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다듬고 가꾸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거죠. 마음은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요이 마음을 잘 성찰하고 가꾸어 가야하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이 2년 반 과정이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 안에 좀 더 올인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너무 빨리 보려고 하지 말고, 이 길에 한번 매진해서 몰두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미래에는 분명히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명교육전문가과정도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각자 깊이 있는 자기성찰, 그리고 학술과 실천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적극성을 가지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은 불교가 아직 개척해 놓지 않은 길을 처음 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길 없는 길을 가다보니 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좀 흔들리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해요.


보물은 역시 숨어있는 거니까요. 보물은 찾는 대상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을 보면 보물 만나기 직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죠.(웃음)


조금만 다른 안목으로 바라보면 길도 보이고 세상도 열리는데, 자꾸 자기의 좁은 안목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니까 눈앞에 보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아까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 자세도 중요하지만 자기 내면적인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예요그래서 스스로가 불교 생명과 윤리, 과연 이것이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해요그렇다면 분명 길도 보이고 적극성도 가지게 될 것이고, 멀지 않은 때 훌륭한 인물로 전문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학생들 각자가 자기만의 학문적 화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생명교육과정의 학생들에게도 부탁을 한다면, 불교 윤리는 상당히 다양해요. 그래서 어떤 가시적인 종교윤리가 아니고, 세속적 윤리도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지고지순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사회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안도 굉장히 넓다고 생각해요. 근데 현재까지 불교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 지나친 계율주의나 원칙주의에 빠져있어서 현대적인 해석을 못하고 있고, 그런 것이 오히려 본질적인 생명윤리에 접근을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볼 때는 불교라는 것은 진정한 인간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생명윤리에 있어서도 불교가 해야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곧 그것은 불법에 대한 긍지인데, 그 긍지가 자기에 체득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한 명상심리와 생명윤리는 한 뿌리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돌아보는 명상이나 심리나 이것 또한 생명윤리와 접점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불교라고 하는 엄청난 세계가 있고요. 이걸 뿌리로 해서 다양한 전공도 앞으로 가능하고,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아요.


학생들 스스로 불교적 철학 안에 내가 어떤 철학으로 생명윤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얻어야 해요. 그러면 흔들리지 않죠.


불교생명윤리라고 하는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학적인 부분에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사회적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한데, 이것이 주인의식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교수님께서는 불교 생명윤리에 대하여, 학생들에 관하여, 학교에 관하여, 애정이 담긴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교수님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웹진을 발행하는 오늘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애정어린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준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나를 만나는 시간
(수치심의 치유 특강을 듣고...)

 

 

재 선 (석사과정 2학기 재학생)


 
  우리는 흔히 기쁨 즐거움 행복함 등은 좋은 감정이라 하고, 분노 질투 고통 부끄러움 같은 감정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개봉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사람의 감정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람의 모든 감정은 소중하고 하나하나의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일 때 그들은 언제든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이번 ‘수치심에 대한 이해와 치유’특강에서도 그랬다. 사람의 모든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비록 건강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 그런 감정들이 잘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들과도 잘 어울려 놀 수 있을 때 사람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준 기회였다.
  수치감이란 평범한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인간의 감정 중 하나로 건전하게 잘 느껴야지만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되고 공동체 사회 규범에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I did a mistake. 나 실수했어!

 

반면, 이런 수치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규범에 어긋나 다수에게 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여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에게 수치감이란 감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만 이런 감정이 자신의 과거 경험까지 헤집고 들어가 “난 능력이 부족해!” 라며 자학하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치감이 내면화된 상태, 즉 수치심이 깊어지게 된 상태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I am a mistake. 내 존재는 실패 그 자체야!


나에게 수치심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부자연스러운 느낌과 함께 죄책감,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함께 떠오르게 한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마음 안쪽 저 바닥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스멀스멀 그러다 훅하고 머리끝까지 올라와 내 몸 전체를 옭아매고 생각지도 못한 잔혹 동화를 내면에 써나가며 피를 철철 흘린다. 왜 그렇게 피를 흘리는지 그 생채기를 보듬으려고 하기 보다는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벌벌 떨고, 끝까지 피해자를 자처하며 모든 원인이 상대방과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 때문이라고 자기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왜 이런 끝도 나지 않을 나와의 전쟁을 계속하며 사는 걸까.
왜 이런 감정들이 자라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일까.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면의 피흘림을 완전히 멈추게 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조금쯤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치심은 어린 시절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감정의 억압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양육자가 그 실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않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때 아이의 수치감은 깊어지게 된다.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양육자로부터의 배척당하는 경험이 혼자뿐이라는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면화된 수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다.
나부터도 그러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상대가 조금만 화를 내어도,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도,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하는 번뇌망상(생각)을 시작으로  그것이 꼬리를 물고 전도몽상의 바다에 빠져 슬퍼하고(감정), 어릴 적 혼이 나던 작은 아이처럼 위축되어 심지어 숨도 제대로 쉬지 않게 되는 상황(행동)으로까지 나를 끌고 가고 심한 경우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먼저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으로 이어진 후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일어나는 한 생각은 오랜 습의 반복적인 패턴이며 이것을 바꾸는 일은 죽을 때 쯤에야 바꿀 수 있다고 할 만큼 어렵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표현하는 감정에 휘둘려 따라가지 않고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알아차림), 나의 존재의 한계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원래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기_그러나 완전해 질 수 있는 씨앗은 가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괜찮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이어나가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44년, 어린시절부터 억압된 감정들로 무겁게 끌어안고 있던 그 해로운 수치심 때문에 정작 보듬어야 할 내 모습은 보지 않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신경 쓰느라 살아온 시간을 만회하기엔 아직 늦지 않지만 그리 길지도 않다.
 늘 하는 말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누가 나를 사랑해 줄 것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비록 수치심 덩어리일지라도 나로부터 그 사랑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묵은 습을 단기간에 고치겠다는 것부터 욕심 같다. 하루 하루 내게 인연되어 오는, 혹은 초대하는 모든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고 실수하고 깨치는 과정에서 그저 천천히 들숨 날숨을 자연스럽게 쉬는 연습의 반복 과정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간 지어놓은 복이 조금 있었던지 명화숙 교수님의 수치감 특강을 세번째 듣게 되었다. 들을 때 마다 당신의 온전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 담긴 눈길과 표현은 존재 그 자체란 참 아름답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해주시는 매력이 있는 분임을 느끼게 한다.
 화를 내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존재 그 자체의 존귀함에 집중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연습, 내면의 아이를 찾아가는 연습에서 교수님의 따뜻한 리드와 그룹원들간 형성된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자신만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보며 미처 보지 못했거나 만나지 않으려고 하던 나의 모습을 만나는 귀중한 경험들.
이번 특강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한 가지는, 나 자신 혹은 상대로부터 불편함이 찾아올 때,
“당신이(또는 나 자신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제게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라는 말을 떠올리며 들숨 날숨을 잘 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오후,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카페에 앉아 논문을 쓰며 하루를 보내셨다는 도우스님, 졸업을 앞두고 계신 도우스님의 역사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마음가득 기대와 설렘이 차오릅니다.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 얘기 하려면 진짜 긴데? (웃음)


출가하기 전에 저는 9살 때부터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찾았어요. 처음엔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갔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해 봤는데 찾지를 못했어요. 다 아닌 거예요. 그런 시도를 계속 하다가 자포자기를 하게 돼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이었나보다.’ 그렇게 되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근데 “너처럼 밝은 애가 왠 우울증? 니가 왜? 뭐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면서 나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잘 살면 되잖아. 열심히 살면 되지” 그러는데 저는 “무엇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게 중요했던 거거든요. 그렇게 우울감에 방황하던 시기에 출가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알게 된 거죠. ‘아! 이거구나’하고요.


출가를 해도 스님들이 나가는 방향(진로)이 각각 다르잖아요? 저는 공동체를 하고 싶었어요. 공동체 운영 계획이 있었어요. 강원을 졸업하고 한 일 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알아보고 하면서 공동체를 준비하려고 했었죠. 근데 뭔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예요. 


그런 복잡함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잠시 여기 정토마을에 봉사를 왔었죠. 제가 강원 4학년때 호스피스교육을 받았었거든요. 그때 이게 내가 찾던 길이 아닌가? 했어요. 그 인연으로 봉사까지 오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저것 일을 하게 되고 원주소임까지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CPE를 하게 되었는데, ‘아, 이건 정말 내가 찾던 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었어요. 해결책을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CPE를 하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해결방안도 제시할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도 입학하게 된 거죠. 정말 잘 시작 한 것 같아요. 또 특별히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도 인연이 참 잘 닿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시너지 효과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도 허물이 없어서 참 좋아요. 지금 생각나는데 첫 강의 들어갔을 때 ‘수업을 이렇게 해도 되나’ 했어요.(웃음) 너무 편안한 거예요. 숨통을 틔우게 하는 수업이었어요.

그 상태에 저는 소임살고 하면서 굉장히 팍팍했거든요? 대학원 수업이 저에겐 오히려 휴식처 같고 좋았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학생들을 만나 보니까, 정토마을 공동체 스님들의 대부분이 대학원 수업을 휴식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웃음)


그게 소임만 살다 보면 내가 여기 뭐 하러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면 나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내가 이걸 하려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거지?’ 하고요.

근데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자꾸 까먹어요.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아, 그래 이거지!’ 하고 균형감을 맞출 수가 있는 거죠.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에는 때가 늦었기 때문에 심리공부는 할 수 없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이 있었어요. 정말 원하던 것을 하게 되니까. 단기간으로 뭔가 배우는 것보다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심리공부를 정말 정식으로 배우는구나 하는 안도감, 편안함, 성취감, 기쁨 이런 것들이 있었죠.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는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좀 놀라웠어요. 거의 포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이 부분이 저의 꿈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 온 것은 저에게 호흡과 같은 의미가 있어요.

 


졸업을 앞두신 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배운게 참 많다.(웃음)


어제 미술치료를 하는 바람에 사기가 꺽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중한 경험들을 한 것 같아요. 소중한 얻음을 얻은 거죠. 알아차림을요. 어제 미술치료를 하면서 마지막에 몰랐던 나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게 오늘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본전을 챙기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어요. 알찬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실습이 바로바로 이루어 지잖아요. 그런 기회들도 너무 감사하고 그런게 되니까 학교공부도 튼실하게 잘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이 명상이나, 환우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부끄러운 거예요. 이런 단어들은 쓰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꾸 쓰고 있고,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가 있고 끝나고 나면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안타까움 부끄러움 그런게 많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알차다고 느껴요.

 

 

 

배우고 익히고 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스님 앞에 펼쳐져 있었네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요. 내가 복이 많은 거 같아요. 소임 살면서는 내가 뭐 하는거야. 땜방 하는 느낌만 들고 티도 안 나고 지금 끝나고 나서 보니까 아귀가 딱딱 맞으면서 아 내가 진짜 복이 있었구나 싶어요. 나름의 피흘림이 있었어요.(웃음)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좋았던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소임 살면서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원주 살 때에는 앞치마 벗어놓고 뛰어올라가고 그랬거든요. 진짜 시간이 부족해서 숙제도 잘 못 해가고 그러면 교수님께도 죄송하고 동기들에게도 미안하고 그랬죠. 


제일 힘든 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거지 ‘난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난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는,
그래도 교수님들께서 이런 것들을 따뜻하게 이해해주시고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시는 모습에서 소임에 대한 귀함? ‘내가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했어요.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힘들었죠? 잘했어요. 어땠어요.” 하면서 피드백을 해 주니까 다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많이 감사해요.


저 학생은 맨날 빠지고 왜저래? 하는 시선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명상수업 지도법사로서 파랑지역 아동센터 아이들과 만나셨는데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예쁜 모습, 귀여운 모습만 좋아했던 것 같아요. 투정부리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일 때는 귀찮아하고 안 보고 마는 제가 있었던 거예요.


 근데 명상수업을 하고 보니까 뭔가 책임감? 아이들의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이런 거 겠구나?’ 하는 느낌? 


아이들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근데 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다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분리심 같은 것들을 좀 알게 된 거 같고요. 아이들이 처음보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열려있다는 것에 안도감, 기쁨 같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반면에는 아이들이 열어준 마음만큼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함께 생기는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가 돼요. 그리고 스님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서 아이들이 발표하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스님께서 따뜻하게 기다려 주시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좀 멍하고, 계면쩍을 수 있는 순간인데, 그 시간에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하면서 느껴진 게 아이들이 대답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할 말 없으면 패스해” 하고 정말 빠르게 진행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아이가 “할 얘기가 없으면 넘길까?”하고 제가 말하는 순간에 우물쭈물 얘기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해버리니까 “없어요.” 하고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다려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명상수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음... 아이들과 ‘쉼 명상’ 했던 거요. 사진에도 있는데 누워서 신체적 접촉을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장난치고 안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너무너무 잘 하는 거예요. 서로 등에 손을 얹어주거나 할 때 참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들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참 따뜻했어요.

 

 

이제 졸업도 하시고... 많은 것들이 마무리가 되어 가시는데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CPE슈퍼바이저가 되어서 영적돌봄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영적돌봄이 필요했던 건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을 돌봄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슈퍼바이저가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하고 싶어요. 이번에 논문을 쓰다보니까 제가 불교 쪽 이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보강 해야겠다 생각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창이예요.나의 영성과 신체, 물질과 영혼을 이어주고 바라보게 해 주는 문인 것 같아요. 

닫혀 있을 때는 분리되어서 알 수 없는 세계이지만, 창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마음 같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자괴감에 빠질 때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 한 순간도 아무것도 아닌 건 없는 것 같아요. 다 그만큼의 자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에 대해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평가를 해야지 자기의 심리상태가 바닥인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옳은 결론이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하며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된 것 같다고 하시는 도우스님, 소중한 이야기로 함께 해 주신 도우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7학년도(전기) 신입생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2017학년도(전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가능한 선택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택 둘 :) 44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길 없는 길, 나 데리고 살기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1014,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호스피스 팀원을 위한 소진예방>이라는 주제로 제7회 호스피스 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의사로서 느끼는 소진보바스기념병원 박진노 원장,

간호사 관점에서의 소진예방충남대학교병원 호스피스 전문간호사 최영심 간호사,

호스피스 기관 사회복지사의 직무 표준 및 소진감 예방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한수연 교수,

호스피스봉사자의 소진예방에 대한 단상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영적돌봄 임상수행팀 김수필 팀원,

영적돌봄가가 느끼는 소진과 예방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돌봄팀장 능인스님,

 

호스피스 활동가들이 느끼는 소진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대책마련을 위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는 매년 10, 호스피스의 날에 즈음하여 호스피스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번 <7회 호스피스세미나>에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졸업생이며, 현 인턴과정 강사이신 능인스님께서 협회의 영적돌봄 팀장으로서 영적돌봄가가 느끼는 소진과 예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셨으며, 석사 재학생 김수필 선생님께서 봉사자의 관점에서 호스피스봉사자의 소진예방에 대한 단상이란 주제로 이번 세미나에 함께 하였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함께 행복해지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석사과정 김수필(1학기)

 

 

생사의 장 43기 불교호스피스교육 조화로운 삶, 그리고 시작(調作)’67일 동안 스텝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작년 8월에 생사의 장 41기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위드(임상수행)팀으로 활동한지 1년도 안된 나에게 스텝의 자리는 선배님들과의 귀중한 만남과 의식이 성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교육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배려와 마음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려야하는 섬세함도 요구되었기에 긴장과 여유로움을 병행하는 순발력도 필요하였습니다.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저녁마다 진행된 회의와 임시회의는 분석과 토론으로 청량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의견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양 때마다 제공되는 시각, 미각, 후각의 즐거움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이었습니다. 그 날 그 날의 프로그램에 맞는 곡 선정으로 청각의 감성을 자극하는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삶의 괴로움을 지배했던 분노, 슬픔, 우울, 화의 감정을 표현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가며 기쁨에 찬 교육생들을 보며 저 또한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웰다잉은 생과 사가 다르지 않으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나침판의 역할임을 되새겼습니다.

41기 때 듣지 못했던 강의를 듣는 배움의 즐거움과 당시에는 감흥 없던 프로그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체험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육기간동안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교육생들을 감동시키는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생사의 장 호스피스교육이 22년 동안 이어져 온 원동력 또한 선배님과 봉사자들의 조언과 격려, 열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육만이 가진 절대적인 매력임이 분명합니다.

나에겐 온전히 주어진 이번 일주일은 긴장감, 책임감, 설레임 속에서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웃었고, 많이 안아주고, 교육생들을 위해 잘 쓰이는 내가 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스텝으로 활동할 기회를 주신 원장스님과 능인스님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승혜신 선님을 만났습니다.

 

누굴 만나면 좋을까? 이번에 떠오른 얼굴은 대학원생 승혜신 선님이었습니다. 4학기를 마치고 이제 5학기 인턴이 되시는 선, 4학기를 등록하면서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셨던 선님께 오늘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장스님께서 권유를 해 주셨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 보라고요. 명상심리대학원이 있다는 건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불교와 명상까지는 관심이 가는데, ‘심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서 선뜻 선택이 되질 않았어요.


제가 이곳에 와서 불교를 처음 만났거든요. 스님들과 가깝게 생활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러면서 불교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권유를 해 주셔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불교와 명상에 대해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살아가면서 영성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 스님이나, 틱낫한 스님을 보면서 뭔가 온전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모습들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죠.


심리에 대해서는 제가 거부감이 좀 커요.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좀 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기쁨, 희망, 설렘 그런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과 맥락이 비슷한데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과정 자체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잖아요. 제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업이다 보니까 공부가 그런 부분들에 접목이 되면서 제 자신을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의 설렘? 그런 것들이 다 같이 있었어요.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동안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어느덧 임상상담전문가과정 5학기 인턴과정을 앞두고 계신데요. 인턴과정을 앞둔 선배님의 지금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웃음)성실하다고요?


사실 일을 하면서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이번 4학기 같은 경우에는 많이 힘들었고요. 처음 입학할 때에는 몰랐는데, 2~3학기 지나면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주말이면 산에도 다니고 하면서 나름 몸 관리 한다고 노력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그것도 잘 되어 지지가 않았어요.

이런 몸으로 4학기를 하게 되면 건강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휴학을 고민했던 거예요. 공부가 하기 싫거나, 기대가 안 채워지거나 했던 게 결코 아니었어요.


4학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충실한 학생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명상수업 시간에 뻔뻔하게 코골며 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요.(웃음) 너무 엉터리로 4학기를 하지 않았나, 했다기보다 버텨왔다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4학기 한 한기를 너무 엉망으로 해서 교수님들께도, 후배들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서 성실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에 웃으셨구나. 저희는 결석을 한 번도 안 하시기에(웃음)


다니기로 한 이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오긴 와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힘드니까 한편으론 수업시간에라도 휴식을 가져가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도 함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마음으로 4학기 수업을 했어요.(웃음)

 

 

5학기 인턴 수업은 주무실 수가 없는 수업일 텐데, 못 주무셔서 못 오시는 건 아니시겠죠?(웃음)


∙∙∙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욕심이 나는 학기예요. 이번 인턴과정에 함께 할 선배님들과도 좋은 도반이었거든요. 꼭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 과정 동안 과연 나 자신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제가 뭘 하면 대충하는 성격이 못 돼요.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는 성격인데, 이렇게 대충 흘러가는 시간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아깝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그래요.


 

학업을 하시면서 이번 4학기가 선배님께 가장 큰 고비였던 건가요?


그렇죠.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가 되더라고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못 가지고 계속 피로가 누적되니까∙∙∙.


 

그럼 그 고비가 아직 극복이 안 되신 건가요?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학기가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일과 생활 모든 것에서 소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도 몸 관리를 잘해서 마무리까지 잘해봐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5학기 과정을 마치고 쉬어야 극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그런 고비들 속에서도 대학원과 함께 4학기를 보내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기말 세미나 끝나고 재학생들끼리 같이 식사하고 차 한 잔 하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이 되잖아요? 그때 누구는 어떻게 변했고 누구는 이렇게 변했고 누구는 처음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는 그런 서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선후배 간의 교감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동기가 없잖아요. 처음 입학해서 후배로 있을 때에는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 저 선생님은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진짜 이렇게 변화하셨구나.’ 하는 느낌들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거구나. 마음공부들을 하니까 변화들이 생겨나는구나. 하면서 서로 신기해하고, 우리가 이렇게 자랐구나 하면서 확인해 주고, 그런 자리가 굉장히 좋았는데, 지금은 함께 공부했던 선배님들은 안 계시고, 후배들과는 함께 한 시간이 짧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되지 않고∙∙∙. 동기가 없는 저에게는 저의 변화를 발견해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쉬움으로 남아요.

 


이번 인턴과정에 선배님들과 함께 하시면서 본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헤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거니까 굉장히 새로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했던 선배님들이니까∙∙∙. 기대가 돼요.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인데∙∙∙. 저에게 10년 후는 없습니다.(웃음)

오늘 하루를 그저 살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섬진~ 제 첫 손주 섬진이가 최고의 선물이예요. 섬진아 기뻐해 줘라~^^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하늘이요. 늘 변화무쌍하고, 수시로 바뀌는 하늘.

마음도 항상 변화하고 흘러가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학업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적 성장에 있어서 공부를 통한 배움보다도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워가는 게 굉장히 많거든요. 그 속에서 자기 성장도 되고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운 선배예요. 제 위에 선배님들은 수업 분위기도 잘 이끌어 주시고 힘이 많이 되어주었는데 저는 달랑 혼자인 선배가 그런 역할을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이 있어요. 영향력 없는 선배라서.

 

자신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배움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후배들을 향한 승혜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진들도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인터뷰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질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신 승혜신 선, 진솔한 이야기로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 번째]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불교대학을 다니는 보살님이 있었다.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고 항상 꼿꼿하게 앉아서 열심히 듣고 기록하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이다. 어느 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다음 생에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얼굴은 맑고 순진하게 보였지만 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다.

. 태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되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사는 것이 고달파서요. 신랑을 다시 만나기도 싫고, 그냥 안 태어나고 싶어요.” 괴롭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깊이 다짐을 하고 또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될까요?” 했다. 보살님이 겪어 온 삶을 알 수는 없지만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느낄 수가 있었다. 태어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노력만으로는 아마도 윤회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보면 하나의 씨앗이요, 나누어 보면 하나의 씨앗 속에 무수한 요인들 즉 작은 씨앗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범부의 안목으로는 씨앗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유식학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무의식의 설명과 일치한다. 무의식이라는 것도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묘하고 광대하게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 역시 무의식의 개념과 일치한다. 씨앗의 존재와 작용 그리고 성질은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근본 마음이며 찰나찰나 자신을 지배하는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씨앗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한다고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끊겠다는 보살님의 바램은 옳다고 해도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씨앗은 스스로 움직이는 힘, 즉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 안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은 씨앗은 죽지 않는다. 워낙 미세하고 고요하게 작용함으로 마치 없는 듯이, 죽은 듯이 보일 뿐이다.

해외 토픽에 실린 내용이다. 3천 년이 지난 무덤을 발굴하다가 무덤 안에서 그릇에 담긴 연꽃 씨앗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의 호기심은 끝간 데를 모른다. 씨앗을 정성껏 다루어 심었더니 싹이 낫다고 한다. 3천 년이 흘렀지만 씨앗은 죽지 않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더니 살아난 것이다. 업보나 인연은 그렇게 움직인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나면 스스로 살아나게 된다. 노 보살님이 간절하게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이 트고 생명은 이어지게 된다.

보살님! 봄에 살아있는 씨앗을 땅에 묻었다고 합시다. 씨앗이 스스로 싹이 나길 원한다고 싹이 나고 원하지 않는다고 싹이 나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비가 오고 따뜻하면 무조건 싹이 나지요.”하고 대답했다. 윤회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씨앗은 그 자신의 조건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윤회는 본인이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소멸되어야만 멈추게 된다.

마음의 씨앗을 소멸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에 걸리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대혜종고 선사께서 서장에서 밝히신 애응지물(礙膺之物)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라 해도 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해도 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이다. 미해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일이다.

태어나지 않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또 다른 원을 만들고 강력한 정동적(情動的) 집착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이 생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연들을 조용히 내려놓겠다는 태도가 윤회를 벗어나는 바른 길이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으면 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며 걸림이 없으면 마음의 움직임도 멈추게 된다. 그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다. 불교의 궁극은 그렇게도 설명된다.

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노 보살님의 기도는 방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준 여러 인연들을 자비로서 용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흔적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자 중도이며 또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웹진 마음 열 번째 인터뷰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설립자이자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이신 능행스님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능행스님을 만났습니다.

 

 

 

여름의 더위가 짙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웹진 10호를 특집호로 준비하며 우리 마음 편집진들은 능행스님을 초대했습니다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런 거룩한 초대가 뭔가 부담스럽고 나를 긴장되게 하네∙∙∙하시며 웃으시는 스님께 마음이 묻습니다.

 


스님, 19883월 봉사활동으로 시작해서 2000년 독립형 호스피스시설 정토마을을 개원하고 운영하시다가 2004년 공식적으로 재단이 설립되어 현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설립 계기는 스님의 에세이와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08년 설립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스님께서 대학원을 설립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환자들을 계속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 걸릴까. 왜 이 불치의 병은 우리로 하여금 이 많은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게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을 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 마음이 병드니까 몸에 병이 드는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몸이 병이 들어서 마음이 병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마음이 병들어서 몸에 병이 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걸 알고 고민했어. ‘마음과 몸이 함께 아픈 이 사람들을 어떻게 케어 해 주어야 할까? 몸도 마음도 덜 고통스럽게 머물다 가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때 생각한 것이 병원을 먼저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간절했지. 그런 전문 인력 없이는 병원을 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마음에는 계속 , 교육사업을 먼저 시작해야해.’ 그런 생각을 했지.


그래서 처음 법인을 설립할 당시에도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하겠다고 명시해 놓았던 거야. 언양에 병원 지을 땅을 사고 내려왔을 때도 의료사업보다 교육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대학원 대학교를 지어야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지.


근데 땅을 산 2005년도 그 해에, <섭섭하게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책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2007년까지 책이 엄청난 수로 팔려나갔고, 그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걸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래 이 돈으로 교육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대학교를 짓기 이전에 교육원을 통해 충분히 임상경험을 해 보고 경험이 축적 되었을 때에 학교를 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추진을 시작했지.


그때 반대가 엄청 많았어요. 그 돈들이 병원 짓는 곳에 다 사용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교육원을 짓는다 하니까∙∙∙.

엄청나게 반대도 많았고 장애도 많았지만, 책 판매 된 돈으로 밀어 붙였고, 그렇게 2007년도에 교육원을 개원하고, 2008년에는 대학원 대학교를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계를 한번 잡아보자 하고 지금의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문을 열었지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특성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의 실천적 성격일 텐데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정체성 안에서 보면 참선도 있고, 행선도 있고, 좌선도 있고, 명상도 있고, 염불선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은 활선이야. 활선, 활동을 통해서 수행을 하는 거지.


사회의 역할로 본다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교육원을 통해서 배출된 여러 학생들이 질병과 죽음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하나의 빛, 등불이 되는 거예요. 어둡고 아픈 곳에서 치유의 등불이 될 것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되어야 해요.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가꾸어 가요. 아픈 곳에는 치유의 빛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는 밝은 햇빛으로, 돌봄의 빛으로, 회복의 빛으로, 용서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이렇게 다양한 빛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대학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까지처럼 위덕대학교와 협력해서 전문성을 높여가고, 때가 되면 학교로서의 구색을 갖추어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지금 우리나라에 대학원 대학이 굉장히 많다는데, 일반적인 대학원 대학교를 만드는 거라면 우리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세상의 고통에 접근해서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들어주고, 그 아픔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훈련하는 학교로서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스님 욕심인데, 우리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막판에 가면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믿어요.

 

 

스님, 모금을 위해 지구를 열 바퀴 돌고, 28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고비의 순간도 많으셨을 텐데요. 스님께서 정말 힘드셨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힘든 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순간이냐고 물으면 선별을 하기가 어려워(웃음) 종류를 얘기를 해야 해.(웃음)


 

인간적인 힘듦∙∙∙? 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모금만 할 때에도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한 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병원을 짓기 시작할 때 두려움이 무척 컸어요. 경험이 없는 가운데서도 병원을 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부담감, 이게 참 많이 스님에게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을 의논하거나 함께 고민할 멘토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 오직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 나가야 했던 그 5년의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차들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리고 그 가운데에 스님이 서 있는 듯 했어요. 인간들의 관계라든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겠지. 관계, 그 속에서의 갈등, 또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들과 시행착오들. 길이 있기는 한데 보이지 않는, 걸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 없던 그 5년 동안이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 두려우셨어요?

 

두렵기도 하고, 책임감 때문에 압박감도 엄청 심하고∙∙∙. 완성을 해야 하는데 이걸 완성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제일 큰 것은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이 서지 않는 거였어요. 길을 만들어서 찾아가야 하는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지. 길은 분명 있는데, 어느 길로 가야 출입구가 나올지 모르는 거야. 출입구를 빨리 만나기 위해서 아주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지. 많이 힘들었어.


돈을 많이 가지고 병원을 지은 것도 아니었고... 18억 가지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다 짓고 나니 들어간 돈이 120억이었으니까.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어.(웃음)


건축 현장이란 곳은 다른 현장하고 또 많이 달라. 특별함이 있어. 아주 대단한 전쟁터와 같았어. 내가 전쟁이라도 경험을 해 봤으면 잘 헤쳐 나갔을 텐데 한 번도 경험이 없어가지고.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것이 나에게는 계속 이슈였고, 두려움이었어.


우리가 터널에 갇히면 어떻게 될까? 차들은 라이트도 켜지 않고 무작위로 질주를 하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서 차에 치여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가야 하는데 길은 안 보이고 이럴 때.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이 되어 있었네. 병원을 짓는 5년 동안.


그런 중에도 바깥에 다른 일들은 다 헤쳐 나가야 했다는 거야. 관계, , ,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 5년이 최고였어. 고통의 절정의 최고. 그런 시간이 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 참 길긴 하지.

 

 

극복이 되셨어요? 그 두려움이?

 

(웃음) 극복이 되었다가 다시 재발이 돼서 작년에 홍역을 앓았지.

올해 2월부터는 다시 떨쳐내고 그런 고통으로부터의 에너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고, 지금은 조금 색다른 에너지로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병원을 짓는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극복이 스님 스스로 된 것인지, 아니면 극복의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방법이 있었어.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방법이 무어냐 하면 내가 나를 돌아보는 거였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어떤 불안을 가지고 이 일을 했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나와 함께 부대끼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했지. 수용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어.


또 더 높은 차원에서는 이것이 이생이나 저생이나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내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받는 과보라고 생각했지. 과보. ‘마땅히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했구나.’ 하고 나의 경험들을 수용했어요. 그렇게 수용하고 나니까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예요. 누가 잘 하고 못하고 그런 건 다 없어지고 , 내가 경험할 것을 경험했구나. 문을 잘 찾아 나왔으니까 잘 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들이니 내가 다 품어 안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용하고 품어 안고 극복했지.

 


스님,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 뭐였을까?

최고의 선물은 나와 함께 호흡하고 발을 맞춘 동료들이 최고의 선물 같아. 그 이상의 선물은 없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남기고 싶은 선물? 모두가 협력하고 협동해서 이 지구의 모든 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런 중심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동력을 만들어 두고 가고 싶어.

 


스님, 우리 웹진 마음의 공통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에는 생각들이 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대학원의 졸업한 동문들, 재학생, 예비 신입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빛이 되어라. 이 세상에 빛이 되어라.(^^)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던 능행스님과의 인터뷰 시간이 저희 편집진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의 초대에 응해주신 능행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1031일 토요일,

임상상담전문가과정 학생들은 환자들과 습니다.

CPE수업 실습날이 던 그날은,

대학의 선배님이기도 하신 토마을 재요양병원 임상연구실의 능인스님께서 수업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손잡아 드리고, 을 깍아드리고, 이 되어드리며,

우리는 돌봄을 통한, 스스로의 돌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날, 우리의 맑고 밝은 따뜻함을 기억합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6회 호스피스세미나 후기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며...

 

석사과정  법 휘(4학기)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에 열렸던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제6회 호스피스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나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기에 용감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2013, 모르기에 용감하게 들어설 수 있었던 정토마을과의 인연, 그때가 떠오릅니다. 이곳은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 떠나 처음 만나게 된 정말 정토(淨土)의 마을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또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이곳에서 저는 2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마지막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던 그 시간들을 이번에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세미나에 담으면서 그 시간들과 함께한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행복했으며 아프고 또 힘들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치열하게 삶을 피어내고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고통처럼 나 또한 내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활짝 피어난 나만의 연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픈 이들의 가슴속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어주는 그런 연꽃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비로소 나만의 연꽃을 그들과 함께 사랑으로 피워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알아차리고 성찰하는 수행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분들과 동행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이 순간을 선물로 드리며, 6회 호스피스세미나에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법휘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영적돌봄가로 활동하시며, 지난 1016일 충북대학교병원에서 열린 제 6회 호스피스세미나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에서 통합예술치료를 통한 영적돌봄을 주제로 활동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현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에 재학 중이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환자들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7년이란 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작년 12월 불교호스피스 교육프로그램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논문을 마치시고 3, 모두의 축하 속에 졸업을 하신 능인스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스님의 지나온 걸음에 살며시 동행하여 봅니다.^^

 

 

 

석사 졸업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잖아요. 대학원과 함께 해온 소감? 여정에 대해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내가 대학원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승려로서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말들을 맘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정말 7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이제야 뒤돌아보니 아픈 만큼 기뻤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고... 살아있구나. 싶은 느낌?

가장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이정도로 할 줄은 몰랐는데, 하다 보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힘들지만 함께하고 싶은, 그런 여정이었어요.(웃음)

 

슬럼프라는게 있잖아요. 7년 동안 공부를 하셨으면 그 안에서 어느 때인가 어려운 고비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6년째 되던 해. 작년 이예요. 제 감정 중에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가장 힘이 들었어요. 승려생활을 하면서도 분노조율이 잘 안됐었고 그게 해결되지 않다보니까 내가 공부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좌절감이 들었고요. 정말 책상에 있는 책을 몽땅 내던져서 태워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임상(충남대학교병원 영적돌봄 활동)을 하게 되고 환자들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공부를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거기에서 나를 이해하게 되고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만나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너무 빨리 공부의 결실을 꺼내어 쓰려 했었나 봐요.

교학과 실천이 합일이 되는 순간 정말 큰 힘이 났던 것 같아요. 배움으로써의 갈증을 느끼고 답답하고 그러다가 임상을 통해서 환자들과 함께 숨 쉬면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그랬거든요. 그런 여정을 하다 보니까 고맙지 않은 일, 감사하지 않은 것들이 없더라구요. 그러면서 공부를 하던 여정에서 고통스럽던 순간들도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님께는 영적돌봄가로서의 활동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네요.

 

-엄청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충대(충남대학교병원)에 다니면서 내가 처음으로 내 화에 대해서 이해해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화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충대(충남대학교병원)에 있으면서 나의 화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화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받아주지 않아하는 마음으로 만났는데 그 에너지가 나에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에게도 이런 따뜻함이 있구나... 그게 너무 너무 좋았어요.

왜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 말하기 어려운 아주 좋은 에너지들이 있잖아요. 그 에너지들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또 다시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자애로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졌을 때, 그 순간에는 정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얼마 전이지만, 스님께서는 논문을 써야하는 시기였잖아요. 모든 것들이 결집되어 있는 힘든 시기셨을 텐데요. 그런 때에 그런 활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떤 힘이었을까? 궁금해져요. 어떤 것이 스님께 그런 힘을 주었던 걸까요?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죽어가는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항상 후회스러운 일이 각자 여러분야로 많은데 환자들에게는 그 순간에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굉장히 많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당장 몇 시간 후에 죽는 다면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좀 많았어요. 논문은 나의 공부의 결정체다 생각을 하며 열심히 했었고, 논문을 쓰면서 힘겨움도 많았지만, 환자를 보면서 오늘이 항상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을 생각했던 순간이 나에겐 있었으니까. 그때 그때 순간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졸업장 받았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 완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쫙 빠지면서.. (웃음) 기운 없는 힘이 빠진 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애썼던 힘이 빠지면서 이제는 정말 나의 모습으로 꽃 필 시간이 왔구나. 그랬어요.

예전에는 열등감, 불편한 마음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진짜 내가 원하는, 내가 나를 그리는 모습? 어디에도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가장 자연스러움으로 내 기량을 펼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스님에게 7년 동안 대학원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개인적으로 내 안에서 기억나는 것은 집에서 제사 있는 날은 새벽부터 나물하고 제사 준비하고 겨울이면 눈쓸고 하면서 되게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기차타고 열심히 학교에 와요. 와서는 하루 종일 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는 거에 굉장히 힘들어 하면서도 그래도 가고는 있구나. 하는 마음? 그게 기억에 제일 남아요. 졸았지만 다 듣고 있었다는 거(웃음)

그리고 과목에서의 여정은 싸이코 드라마 했던거요. 싸이코 드라마는 내가 가장 아팠던 부분을 현실적으로 잘 드러내고 객관화 시켜서 보는 작용을 했었고, 미술치료, 춤테라피 같은 역동적인 수업 들이 기억이 나네요. 내 마음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었던? 그런 기억들이 나요.

 

스님께서 앞으로의 꿈?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나는 명상심리학을 전공을 했고 현대적으로 보면 상담가의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하잖아요?그런데 상담이라는 것이 직업적인 일로써의 상담이 아니라 수행면에 있어서의 상담을 하고 싶어요. 수행하는 사람들, 스님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수행을 하잖아요. 그 수행하는 자들의 고민들을 진정성 있게 잘 듣고 함께 나누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영화를 보면 교수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는 항상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내가 움직이는 한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로써 소통하지 못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에너지 자체로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막연하게 죽음은 이런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명료하게 깨어있으면서 정말 죽음의 느낌, 슬픔이 있다면 슬픔을 오롯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임상 상담가로서의 저를 꿈꾸어 봐요.

 

스님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요? 한 단어로, 마음을 표현 해 주세요.

 

-나에게 마음은 돌이예요. 늘 저는 항상 마음을 다질 때 꾸준히 천천히 끊임없이이 말을 참 좋아하거든요. 돌은요. 돌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있잖아요?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지는데 돌은 가만히 있는 듯 하지만 영향을 받잖아요. 거기에서 돌이 나는 딱딱해서 니가 아무리 떨어져도 나는 패이지 않아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도 포용하면서, 돌의 역할도 하면서... 깍여야 하는 부분은 바람에 또 깍이고 떨어져 나갈 것은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 또 붙어야 하는 것은 또 곁에 와서 붙고...

왜 연약한 나무들도 돌에 붙어서 살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어떤 것들이 와도 마음에 따라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돌이요.

 

후배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천히 꾸-준히 그러나 끊임없이. 단박에 끝내가지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겠다 하는 분명한 목표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다보면 목표지점에 닿아 있어요. 상담은 그래요. 영업이나 사업 같은 것들은 목표지점이 있어야 하지만, 상담은 목표지점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지금이 중요해요. 지금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과 대화도 많이 하고. 천천히 끊임없이 간다면 어느 순간에 자연스럽게 목표지점에 닿는 때가 있을 거예요.

 

 

 

요즘 환자를 만나고 돌아 온 스님을 뵐 때면 정말 밝은 빛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능인스님은 아침을 맞이하는 일 자체에서도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여정에 있는 환자를 만나면서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고요.

스님을 만나며 오늘 하루라는 선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이야기 나누어주신 스님께 다시 한번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5128, 온 세상 하얗게 눈 이불 덮어 포근했던 날. 눈 그치고 그 여느때보다 맑은 밤하늘에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웹진 마음을 만드는 사람들의 데이트가 있는 날입니다. 

마음을 말하고,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쓰고 싶은 그들. 세명의 마음에디터들은 마음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 무슨말을 하고 싶으세요?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 그렇지, 의도가 있지. 교육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항상 보여 지는 것은 포스터 안에 내용뿐이잖아. 그 속에 담을 수 없는 교육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 결국 홍보가 의도?

- 진짜 홍보가 뭘까? 겉만 번지르르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보면 그 안에...

-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 그렇지, 그렇지, 그게 핵심이지.

- 진정성을 이야기하니 생각나는 말이 있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밖에 없다는 그 말이 너무 와 닿아. 교육을 말하면 누구나 필요하다고 말하지. 필요로 하는데, 정작 그 교육이 무엇에 필요하냐고 할 때, 뭔가 정말 진심을 담은 교육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교육은 흔치 않아. ‘마음을 통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 교육원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 자체를 공개를 안 하잖아요. 내용에 관한 문의가 많이 오는데 그럴 때 그 것들에 대한 어떤 내용들이 웹진에 실려 있다면, 그 것을 한번 보세요. 할 수 있는 활용도를 생각해 봤어요. 공개가 안 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쯤은 해소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 그 교육 내용이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지는 경우에도 좀 더 가깝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도 줄 수 있을 것 같아.

- 교육을 소개할 때 실무자들에게는 이런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조현기자가 있는데 자신이 다녀오지 않은 곳의 기사는 쓰지 않고 직접 다녀온 곳의 기사만 쓰기로 유명해. 왜 그러냐 하니까. 본인이 그렇게 해야지만 기사에 진정성이 있다는 거야. 우리도 많은 실무자들이 다녀왔던 아주 소소한 교육이라도 다녀온 느낌을 적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다녀온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교육을 갔을때, 그 웹진에 실린 내용들, 그 느낌 그대로더라 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

 

 

-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원고, 분량에 집착하지 말고 질에 의존해서 하나씩 하나씩 질 좋은 정보들이 쌓이다 보면 좋은 웹진이 되고 자료가 축적되지 않을까 싶어. 웹진이지만 월 몇주차에 발행한다는 어떤 규칙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 느낌들이 왔을 때 보낼 수 있는 홍보성이 아닌, 실무자들이 교육의 진정한 마음들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웹진이고 싶어. 대상자도 많으면 좋겠지만, “웹진 보내주세요.” 하는 한 사람만 생긴데도 엄청 감동이 있을 것 같아. 소박하게 시작하는 거야.

- 사실은 홍보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웹진을 이야기 하게 되었지만, 처음 의도한 홍보시기를 지나치면서 어찌 보면 오히려 방향성이 뚜렸해 진 것 같아. 실무자들이 지치지 않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코너들을 넣어서 진정성 있게 그 이야기를 가져갔으면 하지.

- 항상 교육을 알리고 홍보를 하다보면 프로그램들을 개방할 수도 없으면서 그 교육내용으로만 알려야 하는데 그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이 웹진을 통해서는 내용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담아낼 수 있겠다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되요.

- 그 교육들에서 한 사람씩의 이야기라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게 사람의 이야기들로 기록이 되고 남겨지고, 결국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겠구나 싶어요.

- 그것을 정말 소중하게, 진정성 있게 남겨주고 싶어.

- 교육을 20년을 했는데 교육생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남겨두지 못했어. 보디사트바 소식지에 싣기도 했는데 보디사트바에 어느 한 면을 찾아봐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정성스럽게 담아서 나누고 싶어.

- 대학원을 보면 교수님들이 몇 번의 짧은 강의를 하고는 떠나잖아요. 교수님들께 글을 하나 부탁을 한다거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강의가 끝나면 교수님도, 학생들도 아쉬워 하잖아요. 그 아쉬움이거나, 교육을 정리한다거나 하는, 곁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다른 연결고리 소통거리가 생긴다는 것에 좀 들뜨기도 해요.

- 마음이란 웹진은 우리의 마음만 열려있으면 가능한 것이 정말 많을 것 같아. 예를 들어 학기말에 롤링페이퍼를 돌린다고 보면, 그 것을 하나 찍어서 올리는 거야. 마음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세심한, 예민함, 촉각이 필요하겠지. 모든 것에 소홀하지 않는... 마음이란 웹진이 없었다면 그 예민함을 굳이 생각하지 않았겠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뭘까? 마음이 머무는 자리, 시선이 머무는 자리, 그런 이야기들을 채운다 생각하니 마음을 쓰게 되는 거지.

- 마음을 잘 쓰다보면 마음을 잘 다루게도 되고 마음이 더 좋아지기도 하고 마음을 받는 사람도 좋지만 마음을 주는 사람도 더 좋잖아?

 

- 기대된다. 마음

 

 

마음은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마음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 마음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마음은 그대의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

 [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불교호스피스교육은  자신의 내적치유와 자기돌봄을 우선으로 건강하고 평온한 심신의 상태에서 타인을 돌보고 도울 수 있음을 자각하고 성찰하는 교육입니다.

 불교호스피스교육은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인 이타행을 사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생성되었고 대승의 수행이라는 것은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를 하나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0기 교육지원서.hwp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