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이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불교 유식학(唯識學) 산책(4)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은 파도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출렁인다. 잠을 잘 때도 마음은 움직인다. 무의식은 쉼없이 작용하고 활동한다. 꿈은 무의식의 작용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쉼없는 자극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극이 주어져도 사람에 따라 반응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반응이 서로 다른 이유를 유식학에서는 오심설로 설명을 하는데 탁월한 심리학적 해석이다.

오심설은 의식(제육식)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설명하는데 순서대로 솔이심(率爾心), 심구심(尋求心), 결정심(決定心), 염정심(染淨心), 등류심(等流心) 등이다. 솔이심은 외부의 대상에 대해 처음으로 작용하는 순간의 마음이고, 심구심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고 추구하는 마음이며, 결정심은 대상이 어떤 것이라고 결정하는 마음이다. 염정심은 대상을 결정한 후에 선심(善心)이나 악심(惡心) 등을 일으키는 것이고, 등류심은 잡염심과 청정심이 찰나찰나에 상속해서 같은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솔이심은 깜깜한 밤에 어떤 짐승을 만났다고 할 때 저기에 무엇이 있구나하는 마음이며, 심구심은 저것이 무엇일까하고 알고자 하는 마음이며, 결정심은 호랑이다하고 결정하는 마음이고, 염정심은 무서운 짐승이구나하고 개인적인 경험이 개입되는 마음이며, 등류심은 호랑이에 대한 평소의 무서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지속되고 이어지는 마음이다.

 

오심설은 의식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인식의 오류가 발생하는 과정도 알 수 있다. 눈이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안식이 사물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저기에 무엇이 있구나 하는 찰나적인 마음이다.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이나, 코에 어떤 냄새가 느껴지는 것은 모두 솔이심의 작용이다. 이 상태에서 더 이상의 마음을 내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인식도 진행되지 않고 멈추게 되며 인식 오류도 발생하지 않는다.

 

심구심은 솔이심이 인식한 것을 알아보려고 하는 마음이다. 저게 무엇일까, 고양이일까, 아니면 귀신일까, 하고 대상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순간적으로 들은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알고 싶고, 코로 맡은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두 심구심이다

 

결정심은 심구심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무엇이라고 단정하고 결정하는 마음이다. 저것은 고양이다, 저것은 호랑이다, 또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일어난 그림자의 움직임이다 하고 결정하는 마음이다. 저 소리는 하모니카 소리이며, 저 냄새는 참기름 냄새이며, 이 맛은 씀바귀의 맛이다 등이 모두 결정심이다. 결정심은 작동하고 나면 곧바로 염정심이 따라 붙는다.

 

염정심은 결정한 대상에 대해 선한 마음이나 악한 마음 또는 선도 악도 아닌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과거에 나쁜 감정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이 일어나고 좋은 감정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이 일어난다. 개인적인 경험의 영향을 받는 마음이다. 고양이에게 할퀸 기억이 있는 사람은 고양이를 무섭게 인식할 것이며, 애완용으로 고양이를 길렀던 사람은 매우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염정심은 개개인의 경험의 지배를 받는 물든 마음으로 인식의 오류나 왜곡의 근원이며, 말라식이나 아뢰야식의 영향을 받는다.

 

등류심은 계속 이어지고 흘러가는 마음으로 염정심에서 인식한 것이 잡염식이든 청정심이든 상속되고 유전되는 마음을 말한다. 고양이를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고양이를 무서워 할 것이고, 고양이를 귀엽게 생각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귀엽게 보게 된다. 의식에서 인식한 것들이 말라식을 물들이고 다시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부단히 이어지는 마음이 등류심이다.

 

오심설은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을 오해하는가를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솔이심은 신체적인 이상 즉, 오감에 이상에 없으면 개인차는 크지 않다. 따라서 비슷한 정도로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심구심에서부터는 차이가 생겨난다.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물체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구나 하면서 생각을 멈출 수도 있고, 지나 간 것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정심은 대상이나 현실을 파악한 후에 무엇이라고 결정하는 마음이다. 내담자의 경험과 주관적인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내담자의 지적 능력과 경험의 세계가 동시에 반영된다. 이 단계에서는 개인차가 발생할 수 있고 주관적인 인식으로 인해 오해와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결정심에서 일어나는 왜곡은 현실적인 판단의 미숙이나 지적 능력의 부족에 기인할 수도 있다.

 

염정심은 대상을 인식하고 결정한 다음에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이 개입해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염정심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내담자의 주관적인 세계가 어떤 원인으로 인해 형성된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찾는 것이 염정심을 이해하는 것이며 무의식의 요소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염정심에 이르면 개인차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등류심은 이어지는 마음으로 변화를 일으키려면 내담자의 새로운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여야 한다. 이는 무의식의 상태가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지속되는 것과 같다. 마음공부는 염정심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주관적이고 왜곡된 감정을 통찰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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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잘못도 인정하기 나름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세상에 부족하지도 않고 결함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 있을까?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어려울 것이다. 흔히들 신은 완전하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닐까 싶다. 만약 신이 완전하다면 그것을 행위로서 인류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적이 있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천재지변과 전쟁의 공포가 그친 적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길게 이어진 전쟁이 바로 종교전쟁이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신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참수하지만 신은 한결같이 침묵하고 있다. 기껏 전해오는 소리는 너희들이 죽으면 심판해서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라는 확인할 수 없는 메시지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이니 허물을 논할 수가 없다. 개는 개로 살고 소는 소로 살고 소나무는 소나무로 살아간다. 우열이 없고 좋고 나쁨도 없다. 자연의 법칙 안에서 평등한 생존을 이어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에고와 의지로서 살아갈 뿐 아니라, 항상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관계 속에서 갈등을 잘 해소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싫어서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수행자들도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중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행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주로 혼자서 수행의 길을 간다. 무엇이 옳은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생물학적으로 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혼자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무리 속에 있으면 허물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자신의 허물이나 과오를 쉽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들을 쉽게 하는 사람도 있고 매우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신분석적인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할 수가 있다. 어린 시절에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심하게 혼이 나거나 질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버릇이 있을 수 있고, 어릴 때에 잘못된 행동을 이해받고 용서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보다 쉽게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양식들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에 심리적 증상으로 볼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파탄이 두려워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타인의 비난이나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가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행동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 건성으로 뉘우치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아강도가 약하거나 주체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잘 하지만 자신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신의 존재감이나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정상적이고 고마운 충고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끝까지 부정하거나 변명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깊이 성찰하는 능력과 태도가 부족하다. 역시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이 센 사람들이다. 자신에 대한 배려는 잘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도 배려하고 타인도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무작정 타인을 따르지도 않고 완고하게 자신에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잘못이 있을 때 잘못했다고 말하고, 잘못이 없을 때는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간에 잘못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간단한 것 같아도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동안 이미 쌓아온 습()이 있어서 그것을 금방 씻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가?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 나무란다면 깊이 성찰하지도 않고 그들의 지적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처세술로는 좋을지 몰라도 자신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것이다.


맹자의 가르침에 이런 것이 있다. 타인이 자신을 욕하거나 비난하면 우선은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신의 잘못을 찾을 수가 없다면 욕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다시 들어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타인의 문제를 붙잡고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내가 안달할 필요는 없다. 그냥 두면 된다. 참 좋은 가르침이다.

 


 허물과 과오가 없는 사람들은 없다. 부족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사바세계의 삶이다. 누군가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면 고쳐야 한다. 그래야 발전과 성장이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건성으로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잘못이 있을 때 잘못했다 하고, 없을 때는 없다고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운명적인 한계는 도사리고 있다. 자신을 살핀다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기 때문에 항상 왜곡과 착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에고를 극복하지 못하면 항상 자기 입장에서 자기를 살피기 때문에 합리화라는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즉 자신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속성을 지닌 것이 바로 중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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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권기현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새벽부터 촉촉한 봄비가 잔잔히 내리던 날 오전,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행정업무를 지원해 주고 계신 권기현 교수님을 만나러 위덕대학교 대학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두고 임시휴일로 지정된 날이어서인지 아무도 없는 대학원 교정은 모처럼 고요하고 아늑한 침묵이 안개처럼 스며 있었습니다.


권기현 교수님 방에 들어서자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책장 칸칸마다 하나 가득 진열되어 있는 수백 개의 소형불상들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그 동안 외국을 다니면서 그 불상들을 하나하나 모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바리스타를 자처하시면서 손수 커피를 뽑아주셨는데 신맛이 강하고 향이 부드러워서 우리가 준비해간 마카롱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교수님은 마카롱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의 일가견이 있으셨습니다. , 이제 권기현 교수님과의 데이트에 동행해 보실까요?






교수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평소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는 늘 같은 시간이 반복되기 때문에 불편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 대학원과 위덕대학교 불교대학원 협약에 따른 행정업무를 지원해주고 계시는데요. 그림자와 같은 조력자로 늘 함께 해주시는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교수님과 우리 대학원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인연에 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웃음)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의 관계는, 일단 원장이신 능행 스님하고 장익 총장님이 원래 옛날부터 아시는 분들이었고, 그때 불교대학원 원장이 장익 현 총장님이시고 제가 불교대학원 주임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던 거죠. 여러 가지 수업들은 장익 총장님이 주로 해오셨고, 우리 불교대학원 수업으로는 김경일 교수님이나 그 외의 다른 여러 교수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저 같은 경우에는 행정적인 업무로 뒤에서 지원하는 그런 입장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행사 때마다 어쩌다가 참석은 했지만 실제 학생들하고 강의실에서 만나서 뚜렷하게 서로 대화하고 홍보하고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뭐랄까 그림자 같은 사람(?) 그림자는 아닌데... 조력자이기도 하고, 실제는 그것도 아닌데... 뭐 조력자라고 해야겠습니다. (웃음) 처음부터 제가 주임교수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으니까요.

 

교수님,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석사 수업 받을 때 교수님께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도를 해주셨잖아요. 그렇죠? 여기서 기말 세미나 발표도 하고 그랬었죠?


. 그렇지만 논문 발표라든지 세미나라든지 할 때 이렇게 보았지 직접적인 수업은 한번도 한 적이 없어서 실제 뭐랄까 얼굴만 알지 인간적이거나 아니면 학문적인 거나 하는 경우는 사실 적었죠. 몇 번은 행정적인 지도교수를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수업을 같이 하면서 학생들하고 만나고 해야 하는데, 교수와 학생들의 매개체라고 하는 것은 수업인데 수업이 같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수업을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생겨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좀더 저도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고 학생들도 저뿐만 아니라 위덕대학교에 대해서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 교수님 기대합니다. 누구나 살면서 산과 같은 고비를 만나게 되는데요. 교수님께서도 여러 고비가 있으셨겠죠? 교수님께서 삶 속에서 가장 큰 고비, 이런 것들이 있으셨나요?


큰 고비라고 하면 좀 그렇고, 작은 고비들은 좀 있었죠. 어려움. 고비들이라 하면 어려움들인데,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좀 그렇지만, 사실 교수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다 교수 되기 전에 상당히 많은 어려움들을 겪는 부분들이 많죠. 저도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에 오자마자 상당히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었죠. 뭐 저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도 저와 같이 유학을 갔다 오고 대학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그 때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교수가 되기 전에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좀 많았죠. 교수를 포기하려던 생각까지도 했었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었죠. 그 다음에는 강사 시절인데, 대부분 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외에 인간적인 상황들도 없잖아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큰 어려움들은 없었습니다.

 

교수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실 수 있었나요?


크게는 없었죠. 운이라고나 해야 될까요. 사실상 어떻게 보면 내적으로는 그때 포기를 했었습니다. 다른 쪽에다가 간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때 마침 저쪽에서 제 자리를 만들고 있었죠. 제게 불교 일을 하는 것은 일정한 것이었고 그곳도 불교일을 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시점에서 학교에 자리가 나서 제가 위덕대학교에 머무르게 되었죠. 크게 힘이라고 할 것은 없었고, 저의 큰 것은 불교 일을 계속적으로 하는 거고 다른 것을 했어도 비슷했을 거예요. 또 인문학 하는 사람들은 좀 뭐랄까, 대학 다닐 때부터 교수가 꿈이라고 할까 희망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마음속에 있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사실 저는 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 안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연구원 정도만 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고 그때는 결혼도 하지 않아서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적으로. 이제 공부하는 거 괜찮다 했는데,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출가하는 걸 보니까 다들 괜찮게 사시더라고. 그래서 , 나도 저렇게 출가도 언제든지 가능하구나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랬는데 또 우연히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고 나면 또 출가를 할 수 없으니까 이제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죠. 생활인으로서 살게 되면 현실적인 경제적인 거나 사회적인 거나 삶에서 필요성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힘들었죠. 그건 저뿐만 아니라 교수 된 사람들의 거의 70프로 이상이 아마 그런 과정들을 거의 다 겪고 있는 것으로 저는 압니다. (웃음) 제 주위에 있는 교수님들 거의 다가 그렇죠. 한 두서너 분 빼고는 제가 못 봤습니다. (웃음)

 

그 때 교수님이 안 되셨으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법사 하려고 했어요. 교수 하려고 했는데 교수 되기가 어려우니까 법사라도 하려고.. 불교를 버릴 수는 없으니까 불교계의 법사가 되려고 했죠.




교수님의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무엇인가요?


제 딸들이죠. 제가 받은 선물을 말씀하시는 것 맞죠? () 딸이 둘입니다. 와이프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선물이라고. 요즘에는 와이프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지만 실제 마음은 딸들인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잘한 일도 오히려 딸 두 명 키운 일인 것 같아요우리 불교는 무소유고 세간의 삶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어쨌든 결혼을 했고 자식을 얻고 했어요. 단순한 자식과 부모의 관계보다도 제가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딸들이기 때문에, 제가 또 자식을 키우면서 제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식을 통해서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느꼈던 그런 것들이 선물로 생각되죠. 만약에 제가 출가를 했다거나 결혼을 안 했으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의 부모님이 저를 키워주신 것에 대해서도 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자식을 통해서 세상을 많이 알게 된 그것이 세상의 선물 중 하나겠죠. 그리고 불교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크게 됐고요.

 


교수님께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불교학자로서는 그렇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 딸들이 불교 공부는 안하지만 불교적인 삶을 살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불교의 근본은 욕심을 덜 내는 거니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욕심을 자제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에 흔들리지 않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교수님이 그리는 앞으로의 모습은요?


제가 위덕대학교 교수로 있는 이상은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학생들을 위해서나 학교를 위해서나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사실 인도에서도 브라만 4주기라고 있는데 그 마지막은 세간을 떠나서, 산야시(Sanyasi)라고 해서 떠돌아다니는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돼 있어요. 지금 우리 불교 입장에서 보니까 브라만 4주기를 타종교의 삶의 방식처럼 생각하는데 실제 불교도 그런 삶에 근거돼 있어요, 마지막에는


사실상 방금 딸 이야기나 생활 이야기도 했지만, 그게 또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한다는 그런 거. 가족들을 위해서 절제 아닌 절제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계속 길을 떠나는 것처럼 출가 아닌 출가의 그런 삶, 그렇게 해서 제가 세상이 좀 궁금한 것들에 관해서 방랑? 만행? 등의 삶을 살고 싶고요. 좀 더 넓은 세상, 바깥에서 제가 뭘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거죠. 제가 또 이때까지 학교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학교를 벗어나면 잘 못살 것 같아요. 그래서 외국에 가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고요. 그건 또 건강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좀 이렇게 제가 아직도 모르는 불교, 늘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제가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던 그런 분야에 관해서 혼자 어쨌든 해야 되는 길이므로 그런 것들을 좀 더 추구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죠.


 


마지막으로 우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도 경험하고 있지만 불교를 흔히 종교적인 의미로서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의 수행적인 부분도 있고, 다른 여타한 부분들이 많은데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자신이 변화해야 하는 거죠. 부처님과 동격인 사람은 변할 게 없을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은 그 가르침을 받들어서 스스로 변화하고 그 변화를 남들에게 삶으로서 전달해 주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죠


특히 우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상담이라거나 남들에게 그런 삶을 전이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더 내 삶의 변화, 지식적인 차원보다도 삶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공부를 통해서도 가능하고, 수행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또 대담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처럼


다만, 본인이 먼저 어느 정도는 성숙되어야 하죠. 완전한 성숙이 아니더라도 내가 거기서 감동받고 변화를 느끼고 나서 남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하면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순수 학문적인 부분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더 그런 부분들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교수님, 우리 웹진 마음의 공식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우리 불교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행동인 것 같아요. 마음을 마음으로 알기가 어려우니까 행동을 통해서 그 마음을 유추하는 거죠. 그 행동이 바르고 옳다고 하면 그 마음이 옳은 거고 행동이 옳지 못하면 그 마음이 잘못된 마음이 아닌가, 전도된 마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되네요.

 

교수님, 긴 시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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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 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 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대학원생들의 통도사 우중순례


2018512일 오후,

김경일 주임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함께

천년고찰인 영축총림 통도사로

우중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과 꼭 닮았다는 양산의 영축산 자락 아래

물안개가 드리워진 통도사 경내는

깊은 묵향처럼 경건하고 고즈넉하였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통도사 경내를 거닐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무언의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손가락 굵기만한 바위굴에 살고 계신다는

금와보살(금개구리)을 친견하러 자장암에도 올랐습니다.

금와보살은 신심이 깊어야만 보인다는데

과연 누구 눈에 금와보살이 보였을까요?


묵언의 순례자들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을 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입으로 말을 내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아는 것이지요.


내려오는 길에는 스님께서 그윽한 차와 떡을 대접해 주셔서

비에 젖은 몸도 녹이고 마음도 맑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있었던 우중순례의 아름다운 일정은

모두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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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지금 여기, 이 순간

 

송 형 준 2018 봄 시민무료특강 <치유와 성장의 힐링극장> 참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3번째 봄시민 특강에 출석하기 위해 부산 온천장 전철역에서 동료들을 만나 함께 언양으로 출발하였다. 이번 특강은 치유와 성장의 힐링극장4강 중 3번째 영화 <소중한 사람, 2002 일본>이다.



<소중한 사람>은 가족영화이다. 가족 중 할머니는 치매 환자이다. 할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는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고 가족 간에도 마찰이 일어나는 일들이 자주 발생되곤 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비록 할머니(남편의 어머니)가 간병하기 힘이 드는 치매환자이지만 함께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의 안정을 위해 부득이 치매 요양원으로 모시고 가는 도중 이 영화는 새로운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며느리가 가지고 있던 시어머니를 향한 원망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 동안 자식에게도 하지 않았던 당신의 과거 일들을 덤덤히 말씀하신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성장해서도 지워지지 않았고, 일찍 결혼하여 자식 셋을 두었는데 갑자기 남편을 잃고 젊은 나이에 홀몸으로 자녀 셋을 어렵게 키워야 했던 이야기 등. 시어머니는 처음으로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둔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꺼내 보인다


며느리는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가 애처롭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연약한 여자로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을 잘 키워 모두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게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했던 시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며느리는 그 동안 비록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면서도 왜 사는가에 대한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치매노인을 돌보며 사는 것이 그녀로서는 의미없는 삶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시어머니에 대한 측은하고 애처로운 삶에 대한 동정심도 들었지만 그 감정보다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삶의 의미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한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이제는 이전의 며느리가 아닌 새로운 며느리로 변화가 되니 생활이 바뀌고 남편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에게 새로운 행복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이젠 가족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가족 모두는 그러한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예전과 다름없이 가족의 일원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비록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할머니지만 언제나 며느리에게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영화 <소중한 사람>은 가족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영화로서 삶의 의미를 알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인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그 의미가 주는 삶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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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불일치, 정신장애의 원인

 

김경일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일치시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또 바라는 이익에 따라 사람들은 적당하게 말을 꾸미며 살아간다. 그것을 처세술이라 한다면 크게 문제 삼을 수도 없는 일이다. 불일치한 행동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행태이기도 하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표리부동이란 말도 있다. 같은 의미이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하는 시조 역시 행동이 불일치한 사람들을 나무라는 내용이다.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선비정신이란 것이 있어서 언행일치가 사람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간신들이 우글거리는 정치판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훌륭한 선비들이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되곤 했다.

불일치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정신이 통합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자신이 아는 정신인 의식이 있고 자신이 모르는 마음인 무의식이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식으로 아무리 다짐을 하고 각오를 해도 자신이 모르는 무의식이 움직이면 의식의 결정은 힘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박을 안 하겠다고 각오하는 것은 의식의 작용이지만 그것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무의식의 작용이다. 우리의 마음을 지구에 비유하면 의식은 땅의 껍데기이고 무의식은 땅속을 의미한다. 땅 밑이 움직이면 땅 표면은 맥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프로이드는 불일치를 좀 더 학문적으로 풀이했다. 인간의 성격은 무의식적 욕구가 중심을 이루는 이드(ID)와 개인의 이기성이 중심이 되는 에고(ego)와 도덕적 행위 또는 이타행이 중심이 되는 슈퍼에고(super ego)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살고 있는 셈인데 이들이 추구하는 욕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만약에 자식이 효자 소리도 듣고 싶고 재산 상속에서도 손해 보기가 싫다고 하면 갈등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두 가지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고자 하니 불일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 그것의 핵심은 자신에 대한 무의식성을 통찰하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신을 알아차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불일치한 삶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면 정신장애가 일어날 수도 있다.

다중 성격장애(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것은 한 사람 안에 서로 다른 정체감(특성)을 지닌 인격이 존재함을 말한다. 이런 경우는 하나의 통일된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 성격의 이중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질환을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자기 삶의 불일치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알고 행동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비난은 받을지언정 정신장애는 아니지만 모르고 행동하는 것은 정신장애에 해당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일치한 행동을 하면서도 정신장애에 걸리지 않는 것은 자신의 겉과 속이 다름을 스스로 알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다중성격장애로 진단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불교 수행의 기본이 되는 위빠사나 수행 또는 사티 수행 역시 알아차림이 근본이다. 내 안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그것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언행의 불일치를 알아차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불교대학에 열심히 다니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인색한 편이긴 하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서는 돈을 펑펑 쓰기도 한다. 물론 인정욕구와 이기성에 바탕을 둔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외관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 사람은 남들이 돈도 좀 쓰고 선행도 하라.’고 하면 나는 장사꾼입니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정직한 표현이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사업하는 사람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다. 그것을 가지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또 다른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돈 벌어서 뭐하느냐, 좋은 일 하라고 버는 거지.’ 라는 말을 곧장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는 장사꾼입니다.’ 하는 사람보다 훨씬 훌륭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속은 알 수는 없다.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들은 내면에 불편함이 적고 잠도 잘 잔다. 특별히 잔꾀를 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묘수들을 찾아야 하므로 사는 것이 좀 피곤할 수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깊이 잠들지 못하고 또 새벽에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계산이 복잡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면 불일치로 인한 갈등은 줄어든다. ‘사람 좋다라는 말도 듣고 싶고 이익도 챙기고자 한다면 머리를 많이 써야한다. 그러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도 불일치 현상이다. 하나로 통합해서 살아야 편하다. 이래야 좋은 건지 저래야 좋은 건지를 두고 밤잠을 설치며 생각을 이어간다면 힘 들 수밖에 없다.

하나의 자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는 편안하고 남들에게는 믿음을 준다. 하나의 자기를 온전하게 이룰 수는 없지만 그렇게 노력해 가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이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은 자신에 대한 무의식성, 즉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것을 정신장애라고 했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즉 내면의 자기를 통찰한다고 해도 되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신의 업을 알아차리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나는 누구인가? 결국은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 목적이 될 것이다. 즉 하나 된 자기, 일치된 자기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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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보슬보슬 여름비 시원히 내리던 광복절 연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오신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수필 선생님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 함께 동행하실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2015년도 여름 41기 교육을 받았고, 그 후에 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께서 대학원을 추천해 주셨고요.


사실 저는 대학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거든요. 굳이 대학원 공부까지 해야 하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능인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어떤 계기가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렇게 도전하게 되었던 거죠.


 

계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계기가 마련이 되신 경우네요, 입학하셨을때의 첫 마음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전에도 불교관련 공부를 했었는데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제가 모르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리고 보통 대학원은 금요일 수업이면 끝나는데 토요일에 와서 또 플러스된 교육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 량이 다른 대학원에 비해 많은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금요일에 집에 안가고 여기서 자고 토요일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호스피스교육 스탭, 병원봉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43기부터 스텝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스탭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45기 생사의장 교육 때에는 학생 곁에 선생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교육에 학생지원을 선생님이 맡으셨나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건교사이다 보니까 의약품관련해서는 담당을 하게 되었구요. 특별히 학생지원 소임을 살지는 않았어요. 누가 아프다고 약을 요구하시면 후에 지금은 상태가 어떠신지, 살피고 한번 물어봐도 주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렇게 보여지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이번 교육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건강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사실 우리 행정실은 교육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교육생들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교육을 마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그런 부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러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챙겨주신 선생님이 계셨으니까 안전하게 교육이 진행될 수 있었구나 싶어서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웃음)


 

그런 스탭으로서의 일이 선생님께 어떤 도움으로 다가오시는 거죠?


교육생의 마음을 살피는 것?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구요. 봉사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봉사는 세심함이 필요하잖아요. 환자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하는지, 손짓 몸짓 표정 그런 것들이 세심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자비심 보리심 그 마음들이 생겨나는 건가요?


그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으면 좋죠. 근데 저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자비심 자애심 이런 것이 제 마음속에는 별로 존재하지를 않아요. 근데 봉사를 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들이 반드시 필요하죠. 모든 중생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봉사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에 이미 자비심이 자리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웃음)

 

 

병원봉사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2층에 계신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로 시작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 환자를 만날 때의 마음가짐, 대화법, 그런 것들을 관찰일기로 쓰라고 하셔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환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렇게 관찰일기를 쓰면 능인스님(영적돌봄연구실장)께서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시거든요. 이런 때에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죠. 그리고 나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의 느낌이 잘못 들어가면 환자가 거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을 교육 받으니까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작년부터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한두번 정도 들어가고 있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생사의 장 교육을 마치신 분들도 계시고, 대학원생 분들 중에서도 아직 봉사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하나에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우선은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 다음이 시간이겠죠? 시간이 안 된다면 사실상 봉사를 하기가 어려워요. 안되는 시간을 억지로 내게 되면 봉사가 잘 될 수가 없거든요. 내가 편안한 상태로 환자를 만나야지만 환자도 편안해하는데, 내가 불편하고 힘든 기운으로 들어가게 되면 환자에게 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거든요. 시간이 되고 마음을 낼 수 있을 때 천천히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서두르지 말고요.


그 조건이 되어야 꾸준한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능인스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셔요. 굳이 많이 자주 오려고 하지 말아라. 지치게 하지 말고,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이라도 꾸준히 오면 된다. 그 말이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3학기를 마치고 4학기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들은 없으셨나요?


관심을 가진 분야의 수업은 쉽게 다가오는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아무래도 지루한감이 있어요. 그래도 배운다는 입장에서 참여는 하는데, 사실 저에겐 생명교육 분야가 좀 흥미에서 떨어지는 부분이예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자체가 보건교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생명윤리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고 좀 신선하지가 않은 부분이 있죠.(웃음) 그래도 1학기에서 이론을 마쳤으니까 2학기는 그런 점들이 좀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싶고, 바램이 있다면 남에게 쓰임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살다보니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산다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라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봉사하면서 나름대로 깨어있는 삶을 살다보면 제 삶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내 것인 것 같은데 결코 내 것이 아닌 것이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것을 찾아야하겠죠. 이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함께 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도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반들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 들어오시는 후배들을 통해서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람관계에서 배워지는 것이 실은 수업을 통한 배움만큼 많거든요.

다른 사람의 질문들, 내가 생각하지 못 했던 사고방식들, 그런 것들이 참 좋아요.

그리고 어떤 공부일지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꾸준히 공부합시다.^^

 

나에겐 자비심이 없다는 김수필 선생님께 모르고 행하는 자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르고 행하는 선한의 공식 : 마음=Real 자비심=김수필 선생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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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설레는 봄날, 새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임 주 은 (석사과정 1학기 재학생)

 

 

 

마른 나뭇가지에 새잎이 돋아나는 3, 봄바람이 살며시 기웃거리던 화창한 날...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 볼펜 한 자루를 샀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내가 정토마을로 발걸음을 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학부시절부터 사회복지학 전공과목 중 특히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주변인과 내 자신을 이해해야할 일들이 많았던 것일까. 유독 사람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 했었고 특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 학문 속에 담겨있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학부에서 배웠던 상담학문은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과 역사, 기법들이 중심이었다. 그때 동양에서 특히 불교에서 다루는 상담심리학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문제 속에 있는 내담자를 만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더해진 것 같다. 그래서 빠듯한 형편에 일과 공부를 함께 병행해보리라는 다소 대책 없는 포부를 가지고 있던 찰나 마하보디교육원의 채용정보를 확인하고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교육원 문을 두드렸었다. 그 때로부터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대학원을 들어가기 전 내가 거쳐야할 단계들이 필요했던 걸까. 인연이 닿은 곳은 교육원이 아닌 정토마을 법인사무국이었다. 15년도 1월에 입사하여 작년 9월엔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이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되며 호스피스병동의 전담사회복지사라는 또 다른 역할과 마주하였다. 바쁜 일을 핑계로 문턱이 발가락 끝에 닿아 있어도 넘으려 하지 않았던 나는 호스피스병동에서 일을 해나가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했던 것 같다.

 

암과의 투병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와 보호자들을 내가 잘 돌볼 수 있을까.’

 

좀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통해 나의 영성과 전문성을 성장시켜서 그들의 눈가에 습습히 고여있는 슬픔을 잘 닦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인연을 맺고도 미뤄두었던 대학원의 문을 용기 내어 두드렸다.

 

사실 병동에서의 일만 해도 몸과 마음이 참 고되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내일도, 몇 시간 후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하며 찰나같이 지나가는 그 순간들을 절실히, 그리고 전문성 있게 돌보기 위해서는 나를 계속해서 성장하게끔 이끌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 토요일 주간에 이루어지는 대학원 수업시간은 시간 없다 탓하기가 무색할 만큼 내가 틈을 내어 듣기에 충분했다.

 

입학한 후 첫 수업은 충격적이었다. 불교학과니 만큼 불교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하는데 지금껏 종교가 불교라고 했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교리를 몰랐던 나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용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작정 들리는 대로 써내려갔던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덜컥 겁도 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필기하는 속도가 처음보다 늦춰졌다. 궁금한 것을 메모해두는 여유 또한 생겼다. 그리고 나름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4월에 들어서며 만개했던 벚꽃이 옅은 빗방울과 바람에 떨어지며 풀잎자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새로운 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었는데 이제는 수업을 들을 때 마다 곁가지처럼 늘어나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수업을 집중케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요즘은 늘어나는 과제들을 치러내느라 분주한데 이 모습이 꼭 지금의 계절을 닮았다. 생동감 넘치는 봄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나와 도반들의 모습 같다.

 

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나의 직업이 의 영성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되어 이 곳을 찾았다. 그리고 이 곳을 졸업하는 시점의 내 모습을 좀 더 그려보며 미소 지어본다.

 

앞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으로 또는 자신의 내적, 영적 성장을 목표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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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법휘스님을 만났습니다.

 

봄비 내려 촉촉한 월요일 오후, 마음 편집진들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딱 오늘 같은 봄날에 만나고 싶은 사람. 대학원 졸업생 법휘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법휘스님의 마음을 만나러 가는 길, 함께 동행 해 보실까요?

 

 

올해 3월에 졸업하시고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지금 이 생활을 결정하기까지 많이 고민했고, 저에겐 많은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정말 많이 고민했고 두려웠지만 요즘에는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지금 경험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망설이고 두려워하겠구나 싶거든요.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나의 느낌? 생각? 그런 내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고, 그것을 따라가는 시간이예요.

지금의 생활이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이고, 익숙하지 않은 패턴이다 보니 많이 힘들었던 거거든요. 지금은 마음의 안정이 많이 되었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 많이 갈등하고, 방황하고, 많이 두려웠어요. 내가 지금 잘하는 건가? 이렇게 해서 어떡하지?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 생활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고,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그 마음이 저를 멈추어 세우더라고요차라리 무언가 하고 있을 때에는 불안은 없거든요. 뭔지 모르지만, 가면 되니까.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걱정되지 않고, 두렵지 않고, 처음 어떤 곳을 갈 때에도 위축되지 않고 긴장되지 않게 되는 나의 모습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요저는 늘 안전하고 확실한 것만을 찾아왔었고 결정해왔었거든요. 그것들은 안전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고민이 필요치 않았어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되니까.

 

 

지금의 결정이 스님께 굉장히 치열한 결정이셨구나 싶어요.


저만 아는, 아무도 모르는 치열함이죠.(웃음)

저는 나 자신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정말 1%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날 저에게서 엄청난 의존성을 본거예요. 그 의존성을 보는 순간 저의 모든 것이다 무너지는 거예요. 나의 모든 선택은 누군가의 손잡음이었던 거예요.


그 손을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잡고 가려고 하는지 그걸 보니까 내 삶이 너무 두려운 거예요. 늘 잡아주는 사람이 있고 끌어주는 길이 보였기 때문에 그게 없을 때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할 수 있을지를 몰랐는데 딱 놓고 보니까 너무 무섭고 막막한거예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혼자 내 길을 가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난 영원히 이 손을 놓지 못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근데 이게 정말 힘들더라구요. 미치도록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은 거예요나의 소리, 나와 친해지는 거, 내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 너무 힘든거예요.

 


지금은 그 소리가 들리세요?


이제 주위의 소리에 집착하지는 않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뒤쳐진다는 느낌,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비교라든지 그런 부분에서는 많은 부분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참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만나는 환자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이 제게 하는 공통된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요. 그러면 저는 이야기하잖아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 그것만으로 이미 가치가 있는 거라고, 그러면서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체를 과연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죠.


열심히 하되 자기 안에 충만 되어있는 존재의 의미는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의 여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 여정을 딱 한마디로 말한다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도반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있던 나의 큰 문제들을 풀어 낼 수 있는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했고, 그 과정은 어떤 결과물을 얻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내 앞으로의 삶을 위한 자양분? 토대를 닦는 시간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라 하면 어떤 관계를 말씀하시는지요?


누구나 자신이 아는 자신의 모습이 있잖아요. 그리고 관계 속에서 함께 하면서의 또 다른 내 모습이 있구요.

우리는 많은 부분 그런 모습들을 잘 통합할 수 있고, 관계도 잘하면서 자신의 삶을 잘 이루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나 혼자일 때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데 남들이 아는 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나는 늘 너무 힘겹고, 어려움이 컸어요.


관계라고 하면 가깝게는 우리 은사스님일 수도 있고, 또 내 주변에 도반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일 수 있는데 그런 속에서 나의 온전하지 못한 부분들을 만나게 되니까요. 누구나 그 정도는 그렇잖아? 그럴 수 있잖아?” 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살아갈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부분들이 계속 궁금했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좀 더 괜찮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찾고 있었거든요. 그런 마음들이 아마도 나를 정토마을로 오게 한 것 같아요.

 


그 기간이 3년이었어요. 3년이란 기간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데, 스님께서 짧게 말씀해 주신 그 여정이 굉장히 길게 느껴져요. 그 시간 안에서 스님의 그런 어려움들이 해결이 되셨나요?


... 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다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 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늘 나를 과거 속에 가두는 내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 이상 어떤 새로운 것,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내 스스로 선을 긋고 과거 속에만 머물렀던 것이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찾은 해결 방법이라고 한다면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고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는 것,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대학원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사람들의 변화됨을 마주할 때인 것 같아요.

솔직히 자신의 변화는 잘 못 느끼잖아요. 그런데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그런 모습들을 마주할 때 그때가 가장 기억되는 순간들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공부를 해 오신 그 시간 안에서도 어려운 고비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일과, 공부와, 공동체의 여러 가지 생활을 함께 했던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었거든요. 힘드니까 공부에 더 집중하지 못 한 부분도 있고, 그것이 계속 반복 되니까 내 스스로에게서 밀려오는 정체되어 있는 느낌들? 그런 것들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어요.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느 것도 완벽히 할 수 없는... 우리 공동체 스님들의 힘듦이네요.


그런 힘듦 속에서도 좋은 점이 분명히 있어요. 생활 속에서 공부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찾게 되니까요. 기도가 되었든 행사나 활동이 되었든 그런 곳에서 함께하며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펼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자기 균형이 없다면 아무래도 소홀해지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게 반복된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어지는 거죠.

 


공동체로 본다면 스님이 가신 자리에 또 누군가가 와서 그 일을 하게 될 텐데요. 누구일지 모르지만, 그 분들게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주위의 어떤 인정이나 기대보다는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좀 더 오래 소진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스님께서는 영적돌봄가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그 여정이 궁금합니다.


이 영적돌봄의 일은 정말 정토마을이 저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이 일은 정토마을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에게 인연지어질 수 없던 일이고, 그곳에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뭔가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때에 시작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비록 정토마을과 떨어져서 나 혼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참 많은 공부가 되고, 앞으로도 이 길에서 얻게 될 삶의 배움? 인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가치에서 오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준 일이죠.


아마 영적돌봄가로서의 활동이 있었기에 내 모습을 잘 성찰하고 용기 내어 지금의 어려움, 힘듦들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스님은 영적돌봄가 법휘스님이라는 이름을 평생 가져가실 건가요?


여력이 닿는다면 늘 그 이름과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은 영적돌봄가 스님들께서 각자 자기만의 몫을 하고 계신데 계속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스님이 지금 경험하는 것들을 나누어 주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이 일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함께 배워질 때 이 활동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적돌봄가 각자의 힘듦은 개인의 문제로 끝이 아니라 그걸 서로 나눌 때만이 같이 성장할 수 있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저는 경험했거든요. 함께해야 하고, 함께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으신가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그 누구를 만나도, 관계 속에서 늘 편안하고 자유로운 그런 모습? 저는 제가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저에게 있어 마음은 [완성된 빈 도화지]이다. 그것 자체만으로, 어떤 식으로 그려지든, 어떤 모습이든 그것 자체로 온전하다.

그래서 저는 마음은 완성된 빈 도화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대학원에 오신 분들은 자신의 여정을 떠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여정에는 분명 좋은 일만 있지 않고 그것이 주는 아픔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일과 함께 힘든 일들도 올 텐데 그때 그 경험을 소중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경험이든 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올 때 피하지 말고 함께 머물기를.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인터뷰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는 스님, 오늘 스님의 말씀 중에서 함께 해야 할 수 있다는 말씀이 굉장히 소중하게 들렸습니다.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힘든 여정을 지내오신 스님이지만, 지금의 스님은 어쩌면 더 커다란 공동체를 그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분주하게 움직이던 공부와, 활동들에 잠시 쉼표를 찍고 청소하고 밥하고 기도하는 살림을 살고 계신 스님의 오늘에서 정성스러움이 느껴져 저절로 듣는 마음 또한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어린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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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불안과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거나 수행을 하거나 마음공부를 하기도 한다. 보다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판단하고 생각한 일들을 하게 된다. 곳간을 많이 채워야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물질을 탐하고 모을 것이며, 명예가 있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투를 잡으려 할 것이고, 날씬해져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몸매를 가꿀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각자의 성품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초기 수행공동체였던 그노시스(신지주의)학파에서는 인간의 수준을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수준의 사람들은 주로 물질과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고, 정신적 수준의 사람들은 정신적인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영적 수준의 사람들은 종교적,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했다.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영적 수준의 사람들이며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영적인 단계에 이르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주여! 주여! 하고 신을 찬탄하고 믿는다고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 유식학에도 인간의 수준(씨앗)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보살종성, 연각종성, 성문종성, 무성종성, 부정종성이 그것이다. 이런 수준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개개인의 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각자의 수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고 추구하는 행복의 수준도 다를 것이다. 아래 단계의 중생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행이고 자기 성장이지만 통찰이 깊지 않다면 자신의 수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성립된 심리학의 영역 중에 긍정심리학이란 것이 있다. 2009년에 국제학회가 창설되었으니 10년이 되지 못한 짧은 역사를 지닌 학문분야이지만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설립된 학회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긍정심리학은 현존하는 심리학이 인간의 심리적 문제를 파헤치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데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느냐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과학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했으며 문학은 인간의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었고 경제학은 인간의 욕구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심리학은 인간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
 현재의 심리학이 인간의 심리적 장애나 병리적인 측면 그리고 취약한 부분에 대해 주로 연구해 왔다면,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 즉 강점이나 훌륭한 덕성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는 심리학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무엇이건 목표를 설정해두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59세의 어느 유명여자 가수는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려고 매일 하루 3시간씩 연습을 하여 실제로 대회에 출전했다. 폐지를 줍는 경우에도 하루 또는 한 달의 목표량을 정한다든지 또는 일정 금액을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질 때, 일하는 의욕이 더 생기고 행복감도 더 느끼게 된다.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넘어야 할 산을 스스로 만들며 살아간다. 그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고 그들의 삶은 항상 의미가 따르게 된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세월에 떠밀려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월을 헤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떤 목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스스로에게 한 번 쯤은 물어봄직하다.
 둘째가 불필요한 비교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기보다 앞서거나 잘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비교하는 삶에 익숙하다. 오랜 경쟁으로 인해 그런 습성이 강화된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살피고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는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것은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현재의 달성 정도를 비교한다. 즉, 타인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셋째는 행복한 사람들은 시련과 역경이 닥쳐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측면을 찾고 거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옛말에 ‘눈알이 빠져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지혜이다. 
 불교에서는 행복에 이르는 근본적인 길을 ‘탐,진,치’ 삼독을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욕망(탐심)은 고통의 근원이지만 욕망을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들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남을 미워하는 욕망, 부질없고 허황된 것을 바라는 욕망, 도를 넘는 지나친 욕망들도 대단히 많다. 그런 것들을 찾아서 극복하는 것이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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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듯이 마음의 병도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 어릴 때의 왜곡된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주로 정신분석적 견해이고,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배워서 즉 학습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행동주의적 견해이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은 주로 인지치료적 입장인데 모든 이론이 일정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 장애의 전반적인 면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어려우면 즉 부정적 사건이 자신에게 닥치면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사는 것이 한가롭고 여유가 생겨서 정신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살아 온 부부가 있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부부 다툼이 있었다. 금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폭행을 주고받아 진단서를 끊고 경찰서를 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삼키거나 참으면서 가정은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고 빚만 가득 지게 되더니 드디어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손으로 살던 곳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낯선 곳으로 가서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부부는 돈을 모으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왔다.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자녀들이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싶으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고 볼 일이었다.

부모의 힘든 생활을 함께 겪으며 자란 탓에 아이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첫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다가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여 또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부가 시작한 사업은 때맞춰 점점 번창해 나갔다. 드디어 빚도 모두 청산하였고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오뚝이 같이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인간승리의 사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숨죽이고 움츠려 있던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서럽고 한스러운 감정들이 꼼지락꼼지락 살아나고 있었다. 눌러 놓은 것이 많았던 부인에게서 먼저 감정이 요동쳤다. 혼자 있을 때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도 하더니, 드디어는 집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보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붙이면 악에 받친 사람처럼 달려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남편도 아내의 분노를 받아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편 역시 참고 억누르며 살아온 터여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해묵은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자녀들이 중재를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만큼 묵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자녀들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할 시기도 이미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한 번 뱉기 시작하면 점점 상대의 허물과 약점을 건드리게 된다. 아문 듯 했던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이성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인 이혼이었다. 애증을 나눈 지난 시간들 가운데 증오심만 눈앞을 가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증오심이 빠져나가게 되면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노력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양가감정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쌓이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미운정 고운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모순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감정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다. 간이라도 내 줄듯하다가 금방 원수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두 양가감정 탓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양가감정은 극복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엔 없다. 어느 한쪽이 모든 짐을 지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도인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은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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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6회 호스피스세미나 후기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며...

 

석사과정  법 휘(4학기)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에 열렸던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제6회 호스피스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나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기에 용감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2013, 모르기에 용감하게 들어설 수 있었던 정토마을과의 인연, 그때가 떠오릅니다. 이곳은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 떠나 처음 만나게 된 정말 정토(淨土)의 마을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또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이곳에서 저는 2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마지막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던 그 시간들을 이번에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세미나에 담으면서 그 시간들과 함께한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행복했으며 아프고 또 힘들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치열하게 삶을 피어내고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고통처럼 나 또한 내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활짝 피어난 나만의 연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픈 이들의 가슴속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어주는 그런 연꽃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비로소 나만의 연꽃을 그들과 함께 사랑으로 피워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알아차리고 성찰하는 수행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분들과 동행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이 순간을 선물로 드리며, 6회 호스피스세미나에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법휘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영적돌봄가로 활동하시며, 지난 1016일 충북대학교병원에서 열린 제 6회 호스피스세미나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에서 통합예술치료를 통한 영적돌봄을 주제로 활동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현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에 재학 중이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환자들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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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경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56,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갈 무렵, 김경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학교 안에서 매일 딱딱하게만 만나다가 이렇게 만나니 좋다하시며 소탈하게 웃으시는 교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교수님과의 깜짝 데이트, 그 날의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교수님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만났던 것은... 남산 밑에 우룡스님 계신 함월사 있죠. 그게 2007년인가 8년인가 그럴 거예요. 그때 제가 동대(동국대학교)에 강의를 할 때인데요, 수업을 듣던 스님 중에 한 분이 그 절에 계셨어요. 그 스님께서 절에 중학생 여자아이가 있는데 비행도 하고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스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절에 있는 아이이기도 하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떤 스님이 오셔서 내 옆에서 뭔가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절에 스님이 나를 소개 했고, 그러니까 그 스님이 아!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셨어요. 그게 능행스님과의 첫 만남 이예요. 그래서 저도 기회 되면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랬죠.

그리고 그 뒤에 만나게 된 것이 해를 넘기고 나서 학교를 만드신다 하시고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학교를 다른 사람하고 추진을 해 나가신 것으로 알아요. 그때 처음으로 교육과정도 짜고 강사, 교수들 섭외하고... 그러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거죠.

그렇게 함월사에서 학생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지만, 본격적인 만남이 된 것은 스님이 심리상담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고, 학교를 추진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 우리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계속 필요할 거예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그런 의도에서 출발되었고, 그런 의도에서 서로가 우연이지만, 그렇게 만난거지요.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잖아요? 교수님께 오월, 그리고 가족이란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가족, 가정이라는 것은 제일 중요하게는 우리 영혼의 안식처,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이고, 가장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잖아요. 가족을 떠나서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지요. 이야기에 한계가 있지요. 그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것은 소중한 인적 자원, 내지는 집단이죠.

가장 소중하니까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하고, 가장 배려해야 하고, 가장 아껴야 하는 것이 가족이지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도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오래된 제도이기도 해요.

가족이 안정됨으로 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 자기 성장 이런 것들이 가능한데, 만약 가족이 흔들리면 어쩌면 그 한 사람의 삶 전부가 흔들린다고 볼 수가 있죠. 가정에 불운이 있다든지, 걱정거리가 있다든지 하면 사람이 밖에 나와서도 표정이 밝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은 그렇게 소중하다. 결국 가족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가족 구성원이 지금 현대에서는 조금 달라져 가잖아요. 혈연으로 엮어진 예전에 가족하고 지금 현대에서 저희가 이루고 사는 가족구성원의 의미하고 같은 깊이 일까요?

 

-기본 틀은 같다고 봐야하는데요, 다만 과거의 가족은 대가족이고, 현대로 갈수록 핵가족이 되어 가잖아요. 또 요즘은 이혼, 재혼 가족들이 늘어가고요. 그런 가정이 과거에는 아주 소수였지만, 지금은 굉장히 늘어나고 있죠? 사회적인 지원과 사회가 배려해야 하는 그런 가족의 범위도 훨씬 넓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으로는 가부장제 중심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엄마 중심이 될 수도 있고 가족 모두가 중심이 되어가는 모습도 하나의 변화로 봐야죠.

그러나 근본은 과거나 지금이나 혈연중심의 가족이라는 것이고, 다만 시대환경에 따라서 조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거기에 또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겠죠. 근본은 같지만, 부분적으로 가족의 개념에 변화가 와있다고는 봅니다.

 

5월하면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란 이름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데요, 뉴스에 오르내리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접하다 보면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참 오월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다 싶기도 하고요... 가족상담을 하고 계신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전통적으로 가족이라는 것의 중요성과 소중함은 있는데 시대 상황에 변화가 오면서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가족 해체도 적은데 지금은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약화되어 있고, 또 우리 사회 전체도 자녀가 부모를 부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안 되고, 의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단 말이 예요.

돈이 없는 부모들은 대부분 혼자 살게 되고, 자식들이 잘 찾아오지도 않고. 이런 가족 해체 현상들이 점점 심화되어가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삶의 방식자체의 변화에 나이가 들어도 자식에게 경제를 의탁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러한 문제들이 심화되면 결국은 돈 문제로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생기고... 뉴스에서 처럼 돈 때문에 생기는 가족 간의 이야기는 사실 인간이 격을 수 있는 가장 최악에 비극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문제들을 막아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과제이지요. 그런 점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결속력 있는 가족이 될지... 그것은 참 대안이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앞으로도 거기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겠지요.

예전에는 부모가 건강이 안 좋으면 자식들이 집에서 모시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요양원, 요양병원으로 다 가잖아요. 이런 것들도 결국은 가족 해체의 한 모형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자꾸 이렇게 서로가 떨어진다고요. 집에 있으면 어쨌든 늘 얼굴을 보게 되지만 요양원 같은 곳으로 가게 되면 볼 시간이 없고, 멀어지게 된단 말이죠.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전체가 이렇게 가고 있어요.

여기서 또 개인차가 발생하는 부분은 노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과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이죠. 오늘 중앙일보를 보니까. 지금 50대 이상 사람들 중 90%가 연금이 25만원이라고 올라와 있거든요. 나머지 10%200만원이 넘어가고요. 이것은 빈부격차가 노후에 관해서는 굉장히 심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도 가족해체에 부채질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해체현상이 일어나다 보니까 패륜적인 문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는 없죠. 딱히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남에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슬프고, 대안조차 모색 되지 않는 다는 것이 더더군다나 서글프고...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이 오월이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늘이 있지요. 오히려 가정의 달이 더 쓸쓸한 사람들이 있지요. 어린이날이 가장 상처가 되는 어린이들도 있거든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는 날이 어린이날이라, 그 서러움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날인데요. 차라리 그런 경우라면 어린이날이 없는 게 더 좋을 수가 있죠.

가정의 달도 마찬가지죠.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버림받고 찾아오지도 않고 이런 부모, 자식들이 꾀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가정의 달 가정의 달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는 것 밖에는 안 되겠죠.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가 봤을 때 우리 마음은 자기 마음이면서도, 또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이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지만,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마음이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 현상이지만 자신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요. 이 마음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를 일으켜 내고 있어요.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문제원인이 거기에 있지요. 정신적 논리적 문제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고 봐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요.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기반도 되어야 하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행복 하고 싶다. 행복해 지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은 있지만 그렇게 안 된단 말이지요.

결국 이 마음이란 것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못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은 내가 아는 마음보다 모르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훨씬 크고 내가 모르는 그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이라는 것이죠. 평생을 살아도 내 마음 나도 몰라요.(웃음)

 

마지막으로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하는 자세는 겸손해야 한달까. 배우는 자세, 학문하는 태도란 받아드리고 수용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예요. 그리고 의문을 갖고 무엇을 더 알아보고자 하는 태도는 좋지만 너무 빨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이론으로 공부를 받아드리려 하면 받아드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공부할 때에는 늘 마음을 비우고 비워서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겠다는 자세, 배우겠다는 그 자세로 공부를 하면, 그 뒤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과 서로 상충되고 틀리더라도 조절해 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이 자기의 주관을 너무 강하게 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좋은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자꾸 걸리게 돼요. 특히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공부과정은 더더욱 그렇죠.

속을 텅 비우고 선입견 없이 공부를 해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만남을 허락해 주신 김경일 교수님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 인사드립니다.

 

 

 

 

 

 

 

 

PS. 인터뷰 뒷이야기

 

 

 

교수님은 요즘 주말이면 늘 농장으로 일하러 가십니다. 흙과 가까이 하는 그 시간들이 교수님에게는 삶의 활력이 되신다며 이런 말씀도 남겨주셨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거든. 정원생활 같은, 자연 같은 것들이요. 사람의 그런 욕구들을 채워줄 수 있으면 참 좋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째로 빠져 들어가 버리면 그건 또 안 돼요. 이 쪽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적당한 균형 감각이 중요해요.”

 

청년시절부터 시골에 청소년 수련원이나, 선방 같은 것을 하고 싶으셨다는 교수님은 조직을 만들게 되면 그곳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 한 삶을 살 것 같아서 대신 혼자만의 농장과 인연을 만드셨습니다.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으려 노력하신 교수님에게도 딱 하나 발목을 붙드는 것이 있습니다.

 

강아지가 나를 묶고 있지(웃음) 하나는 진돗개, 하나는 발발이가 있는데, 얘들이 나의 발을 굉장히 묶어두죠. 어디를 가려해도 일주일 이상은 갈 수가 없어요. 외국을 가도, 여행을 가도 일주일 내로 잡아야 해요. 지금 하고 있는 농사일은 쫒기지 않아요. 바쁘면 그냥 안 하면 되요. 적게 먹으면 되니까. 근데 강아지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미룰 수가 없잖아요.”

 

교수님의 농장에는 어떤 작물들이 자라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커집니다.

 

호두나무300그루, 도라지 400, 더덕도 한 300평 되지, 초석장도 있고.. 이제 고추 모종 사다가 심어야죠. 작년에는 한 300포기 심었더니 일이 좀 많았어요. 따는 것도 힘들지만, 나누어 주는 것도 힘들어요. 한번은 수박을 생각 없이 많이 심었더니 수박이 너무 많이 열어서 그거 따서 나눈다고 고생했지... 전 농장주인이 보니까 땅을 아주 잘 가꾸어 놨어요. 나는 그냥 들어가서 심는데도 워낙 잘 돼서 그거 나누어 준다고 골병들었지.. 따서 내어주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배추농사 지어도 누구 가져다 주는게 힘들어. 그러니까 몇 년씩 둬도 되는 더덕, 도라지 그런 걸 심게 되는 거죠. 도라지는 한 89년 되었고, 더덕도 이제 5년 되어서 캐야 되고...”

 

늘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히 학생들을 지적해 주시고 챙겨주시며 지도해 주시던 강의실에서 뵙던 부드럽지만, 조금은 어려운 교수님에게서 우리는 오늘 따뜻한 흙내음을 느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농부 김경일 교수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날의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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