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제약산 그림자”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겨울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 차례 눈이 내렸지만 대부분 녹아서 사라지고 산등성이 위로만 희끗희끗 보일 정도였다. 잠시 다녀왔지만 워낙 인상이 깊은 곳이어서 다시 찾아가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물론 스님께 내약도 받아둔 상태였다.
“스님 내일 갈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
스님은 특유의 투박한 목소리로 오라고 하신다.
“무얼 준비해 갈까요?”
그곳은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일용품을 등에 지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냥오라고 하신다.
“곡차를 준비해 갈까요?”
거듭 물었더니 스님은 곡차는 두고 쌀을 조금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약간 걱정이 앞선다. ‘쌀이라?’ 가파른 산길을 2시간 정도 걸어야하는데 쌀을 지고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졸라가며 물었나? 후회스런 마음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좋은 도량이라는 사연을 듣고 처음 그곳을 찾아갔을 때, 마음에 드는 장뇌삼을 한 뿌리 가지고 갔다. 암자는 텅 비어 있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장뇌삼을 부처님께 올리고 참배를 하고 나오니 암자 뒤편 산위에 작업복을 입은 노인이 한 분 계셨다. 화목을 준비하시다가 사람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내려오시는 중이었다. 스님이었다. 인사를 드리니 먼 길을 오셨다면서 공양부터 하라고 하신다. 공양을 하면서 법당에 장뇌삼을 올려두었으니 마르기 전에 드시라고 했더니 스님께서는 귀한 건데 한 번에 먹느니 술을 담겠다고 하셨다. 산속 암자라 공양주는 없었지만 거처하시는 곳은 정갈하고 고즈넉했다. 그것이 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스님께 드릴 공양물을 준비하는 일은 즐거웠다. 쌀은 8킬로만 넣고 과일도 조금 넣고 간식으로 드실 과자도 넣고 김도 넣고 된장 끓일 때 넣는 멸치도 조금 넣었다. 배낭은 이미 빈틈이 없다. 약간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산 아래 내원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공양주 보살님을 찾아서 암자에 가는데 며칠 주차해 두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노스님 뵌 지 한 달은 넘었다면서 건강과 끼니를 걱정하신다. 그리고는 큰 봉지에 김장김치를 넣고 또 다른 밑반찬도 몇 가지 주시면서 갖다 드리라고 하신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지만 양손에 들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고 생각을 하니 좀 난감했다. 그러나 노스님이 은연중에 시키시는 좋은 수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경사는 심해지고 비탈길에는 눈까지 달라붙어 있으니 고행하듯이 걸어야했다. 암자는 제약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해발 1000m는 좋을 듯했다.
노스님은 군불을 넉넉히 지피고는 기다리고 계셨다. 계곡을 따라 들어오다가 마지막에 수직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겨울바람은 차갑고 세찼다. 암자 마당에 걸린 빨래가 응원하는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눈 쌓인 암자이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편했다. 저녁공양을 하면서 뜬금없이 물었다.
“혼자 계시면 외롭지는 않습니까?”
“외로울 때가 있지요.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채전을 손보거나 산에 올라 나무를 하지요. 그러고 나면 그런 마음은 사라집니다.”
순수한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노스님이 손수 만드신 음식은 참 맛있었다. 특히 된장찌개는 진미였다.
“내가 공양주를 오래했어요. 경전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해산 큰 스님을 뫼시고 공양주도 몇 년을 했지요.”
해산스님!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연이 닿았던 분들은 스님을 진정한 도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공양주를 했다면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셨을 터이다. 해산스님의 행적이 궁금했다.
“그 분은 상(相)이 없었지요.”
노스님의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상이 없는 분’ 그것으로 해산스님의 평가는 충분했다. 아상(我相)이 없다면 자신을 비운 분이다. 나를 비움이 무아(無我)이다. 공양주를 하면서 해산스님의 진상(眞相)을 보신 것이다. ‘상이 없었다.’ 는 그 말씀은 해산스님의 모든 삶을 담고도 남았다. 거기에 말을 더 보태면 사족이요 췌사일 뿐이다.
노스님은 처소에 드시고 나는 살을 에는 듯한 밤바람을 맞으며 몇 폭 남짓한 암자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간간이 풍경소리가 물결처럼 곱게 퍼져나가고 동천(冬天)의 별들은 처연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도량석 소리에 눈을 떴다. 지장전 앞에서 스님은 천수경을 하셨다. 투박한 독경소리는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번뇌가 사라진 노스님의 독경은 삼라만상 두두물물 속으로 감로수처럼 스며들었다. 얼른 세수를 하고 법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지장전인데 노스님은 예불을 마치시고는 관음정근을 하셨다. 1시간 남짓 정근을 하시고 스님은 처소로 가시고 나는 혼자 법당에 앉았다.
우리네 삶은 온통 상을 만들고 키우고 지키고자 한다. 세월이 흘러 이미 지나간 자신의 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여잡고 버둥거리기도 한다. 해산 큰 스님을 모셨던 노스님께도 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손수 공양을 준비하고 빨래하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리면 그저 공양이나 하고 가라고 하시며 제약산의 산 그림자로 살고 계셨다.
하산 길의 눈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으나 마음은 훈훈했다. 진불암 노스님의 ‘상이 없었지요.’ 라는 말씀은 긴 여운을 남기며 귓전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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