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상처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이른 새벽에 농부가 밭일을 나간다. 저 멀리 방죽위에 희미한 물체가 하나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하얀 산토끼 같기도 한데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갓난아기이다. 흰 천의 강보에 포근하게 쌓여있는데 눈은 감은 채 손만 밖으로 내밀고는 꼼지락거린다. 봄날의 새싹처럼 가녀린 몸짓이다. 늦봄이기는 하지만 조석으로 냉기가 느껴지는 날씨인데 이른 새벽에 누군가가 어린 생명을 여기에 두고는 가버린 것이다. 농부는 밭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아기를 안고는 집으로 돌아 왔다.

시골 마을이라 아기의 사연은 쉽게 밝혀졌다. 도회지에 일하러 나갔던 착한 처녀가 임신을 해서는 친정집으로 돌아왔는데 결혼을 할 처지도 못되고 남자에게 의탁할 입장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친정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었지만 처녀가 임신을 해 왔으니 부모님도 반길 까닭이 없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떠나기를 재촉할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도 눈이지만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한 형편에 식구가 불어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처녀는 출산한지 3일 만에 핏덩이 아기를 안고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부모님도 모르게 눈을 피해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둘 다가 죽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방죽위에다가 아기를 내려놓고는 혼자 안개 자욱한 길을 따라 총총히 마을을 벗어나고 말았다. 천지신명님께 자식의 목숨만은 지켜달라고 간절하게 빌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때는 일본의 식민통치시대였다. 숟가락도 전쟁물자로 모두 공출을 당하던 시절이라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참혹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봄이면 보릿고개라 하여 마을마다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그나마 견디는 사람들도 몰골은 흉측했다. 먹거리가 없어서 독초나 복어를 잘못 먹고는 식중독에 걸리는 사람들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입 하나 덜기 위해 열 살 남짓 되는 딸아이를 남의 집에 식모로 보내는 일도 흔히 있었고, 심지어는 겉보리 한 두 가마니를 대가로 받고는 딸자식을 시집보내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아기는 다행히 마을에 살고 있는 아기의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가 나서서 거두기로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어머니의 얼굴도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어린 시절을 그 마을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할머니는 자식이 살고 있는 서울로 떠나게 되었는데 아이를 맡 길 곳이 없으니 서울 아들집으로 데리고 갔다. 때는 해방 직후였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중앙부처의 국장이어서 대단히 잘 살았다. 가정부가 셋이나 있었고 명절이면 넘쳐나는 선물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집에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 친구처럼 서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못했다. 신분의 차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은 본격적인 설움과 고통의 시작이었다. 음식이 남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있어도 가정부들은 맛있는 음식은 이 아이에게는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애써 아이를 지켜주려 했지만 아들 식구들과 가정부까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갈등은 점점 커져갔고 나중에는 할머니도 어쩔 수가 없으니 아이를 붙잡고 그만 죽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아이는 슬픔과 외로움을 안으로 삼키며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며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 집을 나와 버렸다. 다행히 그는 빗나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 그는 참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다. 오랜 시간 수행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했다. 자신을 모질게 구박했던 사람들도 하나씩 용서하고 자기 안에서 화해했고, 생모의 별세 소식을 듣고는 그의 수행처에서 정성을 다해 49제를 모셨다. 그는 지금 자비심으로 오로지 중생을 보살피고 제도하는 일을 하신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난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생명의 존엄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달마대사는 자신을 치유하고 도에 이르는 네 가지 실천적인 방법을 가르치신다. 그것은 보원행(報怨行), 수연행(隨緣行), 무소구행(無所求行), 칭법행(稱法行)이다. 보원행은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것을 되갚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수많은 생을 이어오면서 자신도 타인에게 억울함을 주었을 수 있다.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 당하는 억울함도 모두 갚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수연행은 자신에게 닥친 인연을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다. 억지로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인연에 의해 온 것은 또 인연에 의해 사라져 감을 알고 그대로 수순하며 살도록 가르친다. 중생들이 따르기에는 힘든 가르침이지만 옳은 가르침이다. 무소구행은 무엇을 구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통은 커지게 마련이다. 탐심은 만병의 근원이다. 중생의 삶은 탐심을 근본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친다. 칭법행은 불법에 따라 살라는 가르침이다. 집착하지 말고 착각하지 말고 지나친 욕심은 내려놓고 보시하고 베풀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상처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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