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자리]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연극“무제”(부제: 생으로 부터의 침몰) 공연을 마치고
윤정숙 (전문가과정 졸업 / NOG 생명교육네트워크 공존 활동가)
“어차피 썩을 몸뚱이 무슨 미련이 그리 많다고..... 어리석은 양반”
10월 25일 (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에서 공연한 연극 ‘무제’에서의 나의 마지막 대사이다. 살면서 나는 미련이 많을까?
연극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일 뿐이라는 연출가님의 말씀에 끌리어 시작한 ‘연극하는 사람들’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연극은 낯선 것이 아니라 감을 잡을 수 없는 혼동이었고 정해진 공연날짜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단원이 몇 명 안 되는 인원인지라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선택에 대한 후회마저 생겼다. 그러다 조금씩 자기 역할을 잡아가는 동료를 보며 감탄과 희망이 생겼고 우리는 조금씩 적응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길을 걸으면서 중얼거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몸짓을 연구하고, 전화로 대사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뿐인 모임 시간을 보충하였다.
연극 생초보들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 무대에 세워야 했던 연출가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참 막막하셨을 텐데 혼자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우리 배우들에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시고 한 편으론 자만심을 경계시키셨다. 연출가님은 공연 2주 전의 마음가짐, 1주 전 준비, 공연 직전의 자세 등 꼭 필요할 때 정확한 지적을 해주며 이끌어 주셨다. 배우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자기만 생각하면 안 되고 전체 속에서의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틈 날 때 마다 대본을 읽어야 한다는 기본까지. 그렇게 서서히 우리는 낱낱의 하나에서 우리라는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갔다.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다. 분장조차 생소한 우리들에게 연출가님이 손수 한 명 한 명 분장시켜 주실 때의 비장함, 실수하지 않으려 계속 대사를 되새기며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때의 떨림, 동료가 잠시 대사를 멈칫한 순간의 숨 막힌 긴장, 실수 없이 다 해내었을 때의 희열 등 모두 일심동체였던 듯하다. 배우, 스탭 막론하고.
연극내용이 어떤 가정에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다. 물론 생 초보 일반인들이 했다는 데 대한 격려가 더 컸으리라. 사회자가 불러내어 무대인사로 다시 섰을 때 비로소 만감이 교차하였다. 드디어 해내었구나. 8개월 간의 불안과 고민,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기존 연극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평균나이 65세의 일반사람들이 대사 외우기부터 시작하여 전혀 생소한 일을 시작하여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시간과 삶의 패턴을 내려놓고 함께 맞추어 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기에. 또한 스탭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배우들은 오직 자기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했다.
우리 공연을 보신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표현한 이야기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생을 마무리 할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참석한 세계호스피스·완화의료의날 기념 음악회에서 ‘남자의 자격’ 팀의 함창을 보고 들으며 합창이나 연극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휘자의 손길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연극은 연출가의 손으로 어우러지는 구나. 각자의 개성을 죽이기도, 부각시키기도 하면서.
“그 나이에 연극이라니?” “그 멀리까지 연습하러 가느냐?”는 핀잔도 이겨내었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극복하였다. 함께하는 속에서 자신을 죽이고 남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다. 긴장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경험도 소중했다. 늦은 나이라고, 어려운 일이라고 주저하는 분들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다. ‘가슴이 뛰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시도해보시라’고
내 인생에 이런 기회를 선택한 내가 대견스러우며 함께한 모든 분들께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연극에 참가하여 공연까지 한 것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동료들은 이런 소감을 말하였다.
“삶 자체가 연극인 것 같다."
“마치고 나니 안도감, 환희심이 나더라. 우리가 화합이 잘 되었고 개개인의 특성이 어우러져서 마무리를 잘 한 것에 기쁘고 감사하다. 요즘은 TV를 보면 연기를 분석하게 되고 생활에서도 연극과 연계시키게 된다."
“내가 할 때는 그저 그랬는데 다른 분 하시는 것 보면 맘이 짠하고 울컥했다.”
“주제를 잘 잡았다.”
“각자 자기 역할을 참 잘해주었다.”“극단 운영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도와주어야겠다 싶어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갈수록 일이 많아져서 내가 잘못 들어왔구나 싶었다.”
“매주 모이는 자체가 즐거웠다. 연극을 본 적도 별로 없는데 가까이서 연극 만드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고 앞으론 연극 공연을 보러 다녀야겠다.”
“연출가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적절한 시간에 보조 선생님 투입으로 실력이 늘었다. 대본 몇 번 바뀔 땐 이러다 되겠나 싶었는데 역시 전문가이시다. 배울 땐 전문가에게 배워야 한다.”
“항상 좋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안 좋았거나 실패할 때 이겨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공존 팀은 연습량은 부족하나 집중력이 좋고 공존이란 밭이 좋다.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 서로 도와주는 모습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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