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자리]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연극“무제”(부제: 생으로 부터의 침몰) 공연을 마치고

 

윤정숙 (전문가과정 졸업 / NOG 생명교육네트워크 공존 활동가)

 

어차피 썩을 몸뚱이 무슨 미련이 그리 많다고..... 어리석은 양반

1025()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에서 공연한 연극 무제에서의 나의 마지막 대사이다. 살면서 나는 미련이 많을까?

연극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일 뿐이라는 연출가님의 말씀에 끌리어 시작한 연극하는 사람들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연극은 낯선 것이 아니라 감을 잡을 수 없는 혼동이었고 정해진 공연날짜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단원이 몇 명 안 되는 인원인지라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선택에 대한 후회마저 생겼다. 그러다 조금씩 자기 역할을 잡아가는 동료를 보며 감탄과 희망이 생겼고 우리는 조금씩 적응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길을 걸으면서 중얼거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몸짓을 연구하고, 전화로 대사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뿐인 모임 시간을 보충하였다.

연극 생초보들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 무대에 세워야 했던 연출가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참 막막하셨을 텐데 혼자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우리 배우들에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시고 한 편으론 자만심을 경계시키셨다. 연출가님은 공연 2주 전의 마음가짐, 1주 전 준비, 공연 직전의 자세 등 꼭 필요할 때 정확한 지적을 해주며 이끌어 주셨다. 배우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자기만 생각하면 안 되고 전체 속에서의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틈 날 때 마다 대본을 읽어야 한다는 기본까지. 그렇게 서서히 우리는 낱낱의 하나에서 우리라는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갔다.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다. 분장조차 생소한 우리들에게 연출가님이 손수 한 명 한 명 분장시켜 주실 때의 비장함, 실수하지 않으려 계속 대사를 되새기며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때의 떨림, 동료가 잠시 대사를 멈칫한 순간의 숨 막힌 긴장, 실수 없이 다 해내었을 때의 희열 등 모두 일심동체였던 듯하다. 배우, 스탭 막론하고.

연극내용이 어떤 가정에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다. 물론 생 초보 일반인들이 했다는 데 대한 격려가 더 컸으리라. 사회자가 불러내어 무대인사로 다시 섰을 때 비로소 만감이 교차하였다. 드디어 해내었구나. 8개월 간의 불안과 고민,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기존 연극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평균나이 65세의 일반사람들이 대사 외우기부터 시작하여 전혀 생소한 일을 시작하여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시간과 삶의 패턴을 내려놓고 함께 맞추어 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기에. 또한 스탭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배우들은 오직 자기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했다.

우리 공연을 보신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표현한 이야기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생을 마무리 할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참석한 세계호스피스·완화의료의날 기념 음악회에서 남자의 자격팀의 함창을 보고 들으며 합창이나 연극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휘자의 손길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연극은 연출가의 손으로 어우러지는 구나. 각자의 개성을 죽이기도, 부각시키기도 하면서.

그 나이에 연극이라니?” “그 멀리까지 연습하러 가느냐?”는 핀잔도 이겨내었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극복하였다. 함께하는 속에서 자신을 죽이고 남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다. 긴장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경험도 소중했다. 늦은 나이라고, 어려운 일이라고 주저하는 분들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다. ‘가슴이 뛰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시도해보시라

내 인생에 이런 기회를 선택한 내가 대견스러우며 함께한 모든 분들께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연극에 참가하여 공연까지 한 것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동료들은 이런 소감을 말하였다.

삶 자체가 연극인 것 같다."

마치고 나니 안도감, 환희심이 나더라. 우리가 화합이 잘 되었고 개개인의 특성이 어우러져서 마무리를 잘 한 것에 기쁘고 감사하다. 요즘은 TV를 보면 연기를 분석하게 되고 생활에서도 연극과 연계시키게 된다."

내가 할 때는 그저 그랬는데 다른 분 하시는 것 보면 맘이 짠하고 울컥했다.”

주제를 잘 잡았다.”

각자 자기 역할을 참 잘해주었다.”극단 운영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도와주어야겠다 싶어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갈수록 일이 많아져서 내가 잘못 들어왔구나 싶었다.”

매주 모이는 자체가 즐거웠다. 연극을 본 적도 별로 없는데 가까이서 연극 만드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고 앞으론 연극 공연을 보러 다녀야겠다.”

연출가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적절한 시간에 보조 선생님 투입으로 실력이 늘었다. 대본 몇 번 바뀔 땐 이러다 되겠나 싶었는데 역시 전문가이시다. 배울 땐 전문가에게 배워야 한다.”

항상 좋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안 좋았거나 실패할 때 이겨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공존 팀은 연습량은 부족하나 집중력이 좋고 공존이란 밭이 좋다.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 서로 도와주는 모습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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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야외수업 후기불교와 명상심리 공부가 나에게 미친 영향 관찰

 

최성혜 (명상심리학과 석사과정 재학중)



별 생각 없이 살다가도 가끔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나름의 이유나 목적을 정할 때가 있다. ‘19.2월 명상심리학을 배우기로 하였을 때에도 그랬는데, 그때 나의 목표는 “쉰까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살았으니 남은 쉰은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쉰을 넘기는 무렵의 나에게는 당연하기도 했고 꽤 그럴싸하기도 했던 이 “문장” 혹은 “생각”이 지금도 무사할까? 혹시 무사하지 않다면 그 생각에는 어떤 흔들림이 있었을까?

 

이 보고서는 ‘19. 1학기를 보내면서, 당초의 목표에 관한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정리한 것으로, 작성하면서 그것이 내 안에서 납득된 생각인지 그저 남의 말을 들어 아는 것인지 더듬어 보고, 가급적 내 안에서 납득된 생각을 기록하고자 했다.


비교의 기준 : 쉰까지 주어진 상황대로 살았으니 남은 쉰은 주인으로 살고 싶다?

인식의 한계: 나는 나를 알까?

 

‘19.2월 당시 이 문장은 나에게 앞으로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다짐이나 각오를 나타내는 긍정문이자, 미래의 삶에 영향을 끼칠 未來時制文이었다.


하지만 ’19년 상반기를 경과하면서, 나는 이 문장에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몇 가지 판단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① 나름 열심히 살았으나 애쓴 것보다 성과가 적다. ② 나는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다. ③ 현재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라는 類의 것들로, 요컨대 나는 과거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억울해하거나 화가 나 있었던 것이고, 이런 느낌은 나의 내면에 누적되어 나도 모르게 내가 쓴 문장에서 스멀스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얼마든지 내포될 수 있다’는 경험은 내가 해석해 받아들인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도 실제와 무관할 수 있다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개체 간 소통’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변적인 상황에서 부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상대방의 말 한마디, 눈짓, 몸짓 하나에 수없이 상처받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타인에게 섭섭해 하고 성내는 것은 그저 소통수단(話者의 언어, 몸짓, 눈짓⇆ 聽者의 감각기능)의 성능에 대한 기대치가 실제보다 높은데서 비롯된 해프닝은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그 시점에서의 인식은 시간과 더불어 계속 재구성되면서 굳어진 것일 뿐, 애당초 실제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내 속에 묵혀 있는 생각이든, 새로이 떠오르는 생각이든 그것들의 무게가 그다지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이 가볍다.

 

 

탐.진.치: 내 삶은 억울했을까?

 

이전에 나는 확실히 내 삶이 무엇인가 불공정하고, 나의 선의와 노력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경험분석에 몇몇 타인의 공감이 버무려져 내게는 명확한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살면서 감내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가 굉장히 제한적임을 납득하고, 막연히 알던 인과법칙을 꼼꼼히 배우면서 (마음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인과율(因果律)에 벗어나서 나에게만 예외적으로 내 몫이 아닌 억울함이 왔으리라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럼 오랫동안 내게 머물고 있는 억울함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살펴보면, 딱히 구체적 사례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살면서 그저 내게 왔으니 내 것이라고 여겼던 행운이나, 남 뒷말을 하면서 내 뒷말은 듣기 싫어하는 등 나와 남에게 다르게 적용한 기준들이 적지 않았다. 행운은 잊어버리고 억울함은 오래오래 들고 있었으니 어리석었고, 덜 주고 더 받으려 했으니 어리석었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화를 내었고, 순리는 모르고 행운만 바라며 욕심을 내었다. 모두 도리에 맞지 않다. 탐진치였다.

 

부끄러운 깨침이지만, 자책할 것은 없다. 탐・진・치가 나 개인의 부족함이나 과오가 아니라, 감각을 가진 인간이 구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가르침에서 안도와 위안마저 느낀다. 삶은 외부와의 투쟁도, 가까스로 견디어내는 것도 아닌 그저 겸허히 받아들일 무언가로 여겨지며, 순간 마음이 겸손해진다.

 

남은 과제는 탐진치를 벗어나지 못할 굴레라며 짊어지고 갈 것인지, 무모하다 하더라도 벗어나고자 시도할 것인지 정할 일이다.

 


알아차림/받아들임: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입학 당시 내가 생각한 ’주인으로서의 삶‘은 대략 ‘주체적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거나 만들어 가는 것’ 정도의 개념이었다. 내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꿈이 컸다.

 

하지만, 이제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온갖 괴로움을 지어내는 탐・진・치를 벗어나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한 학기의 수업은 도전의 방법으로 수행을 제시했다. 주인으로는 살고 싶고, 도전할 용기는 없다.

 

타협 또는 간보기. 나와 세상에 무지한 채 습관대로 사는 것은 호랑이굴에서 살아남기와 같으니 정신을 곧추세워 차려 일렁이는 흐름 속에서 가급적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미 생긴 일들은 그저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앎을 넓혀가고, 잘못된 프레임들을 거둬가다 보면 조금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살면서 불쑥불쑥 불편한 감정을 만나면, 무턱대로 화내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만난 냥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고 보살피겠다고 마음을 내면, 설령 알아내지 못해도 시도로서 재미있고, 알면 알게 되어서 좋은 삶이 되지 않을까? 비록 그 앎이 항상적이고 불변하는 앎이 아니더라도.

 


놀이: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한 시도

 

* 명상(17회, 밴드기록): 집중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느낌, 이상한 증상이 생겨도 불안하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면 된다는 가르침에 감사

* 경계일지 쓰기(15건, 밴드기록): 경계에 부딪힐 때 생기는 반응을 보고, 관점을 바꾸어 반응을 조절하고, 기록하는 것은 재미있으나, 게을러 자주 하지는 못함

* 진언(30분):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었으나, 명상에 더 집중하겠다는 변명으로 생략

* 운동밴드 활동(3개월): 3월부터 운동밴드 활동에 꾸준히 하면서 몸운동이 마음근육을 키운다는 걸 새삼 느꼈으나 이또한 끈기부족으로 4개월 차에 중단

* 안하던 일 하기(어린 시절 상처를 엄마께 말하기, 母子 사이에서 벗어나기, 불편하다고 여겼던 사람들과 술 마시기, 다르게 반응해보기, 경험과 느낌 말하기):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재미있는 시도, 상대의 반응에서 의외로 내가 자유로웠음

* 기상할 때 기분 살피기: 기억 나는 꿈을 세 번 꾸었고, 꿈의 의미를 살펴보았는데 내면의 욕구와 연결고리를 찾은 꿈은 지금도 기억하나, 현실에서 달라진 건 모르겠음

* 공익요원 테스트: 주문의 효과 체험

 


효용과 한계

 

확실히 ‘19년 2월의 나에게는 어떤 모티브가 필요했다. 대학원에서의 배움과 학우님들 교수님들은 충분히 긍정적인 모티브가 되어주셨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나를 더 유연하게 해주었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속 근기도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더 살피게 되었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면서 기대를 낮추는 방법도 어렴풋이 이해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보인다.


이런 변화는 몸무게를 늘게 했고, 습관적으로 시달리던 체증을 완화시켰다. 목표 지향적으로 내달리던 일하기 방식을 조금은 벗어났고,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원망을 잊어버리고 지나는 시간이 늘었다. 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 먼저 전화하고, 나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입학 때 가졌던 하나의 기원문은 수없는 의문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 그 기원문보다, 배우고 부딪히면서 생긴 의문문이 오히려 삶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공부는 나의 삶에 슬그머니 변화의 씨앗을 심었으나, “막무가내의 게으름”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배움을 삶과 접목시키는데 필요한 성실과 끈기는 어떻게 불러내어야 할까?

 

 

*이 글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열린 2019학년도 1학기 기말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발표자 최성혜님의 허락을 받아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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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 순간

 

김정희 ┃SATI수행 <행복,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참여

 

나는 작년 말, 정토마을 인도 보드가야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의료봉사 장소였던 SATI Arama 수행도량에서 잠시나마 수행자들의 삶을 보며 수행을 조금 더 경험하고 싶었던 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SATI수행 공개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행복,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주제가 내 마음에 콕 들어왔다.

부처님께서 창안하셨다는 SATI수행은 내 몸에 집중하여 숨 쉬며 행동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림 할 때 모든 망상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마음 운동이다. 수행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늘 깨어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아름다워지고,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하신다.

우리는 수없이 어떤() 대상에 이끌려 진정 자신을 알지 못하고, 탐욕번뇌집착분노 등 온갖 망상에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SATI수행을 통해 일어나는 마음을 자각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여 마음 근육을 키운다면 중심이 튼튼해 흔들리는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여여한 삶이 될 것 같았다. 이처럼 머리로는 알겠는데, 남에게 전달도 하겠는데, 행동으로 옮겨 내 것이 되게 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낀다. 수행하는 중에도 내 마음은 망상으로 왔다 갔다 하고, 아니면 잠이 와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최상의 자유와 행복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 하는데, 나의 번뇌는 커져만 간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멀기만 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익힌 앉아서, 걸으며, 밥 먹으며, 잠들기까지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림 하는 마음 운동을 내 삶에서 잊지 않고 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 이 순간 그 어떤 수행으로도 나는 늘 깨어있고 싶다. 그래서 어디에도 걸림 없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12일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이를 통해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선물해 주신 지도법사 붓다팔라스님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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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임 주 은 │ 청춘연사(명상심리학 석사과정 2학기 재학생)



 

 

어린 날,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다소 모호한 주제가 번뜩 떠올라 갖가지 상상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지속하며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발표준비를 하면서 어릴 적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올랐는데 꼭 어릴 적 소중히 가지고 놀았던 인형과 장난감들이 들어있는 함을 오랜만에 꺼내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여운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을 맴돈다.

 

6살 처음으로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때 그날의 기억부터 호스피스병동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지금까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 과정에서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막연한 느낌들만 고스란히 담아두었던 것 같다. 두서없이 담아두었던 느낌과 감정들을 이번 연사를 준비하면서 하나하나 꺼내어 보았다.

 

처음 사별경험에서부터 지금의 경험에서 공통되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주제로 끌어내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시작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지점으로 가버린 고인으로 인해 묵묵히 담아두었던 죄책감에 대한 감정을 끄집어내면서 내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떠올리지 못한 원인을 이해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면서 죽음을 두려워했던 20대 초반의 나와 가까운 이의 임종을 경험하며 나에게 죽음이 오기 전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해 고민했던 20대 중반의 나도 만나게 되었다. 고교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때부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며 이와 같은 모토로 돈이 목적이 아닌 나의 보람이 우선인 직업을 갖고자했던 나의 바람이 당면할 죽음에 대한 대비였음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다. 이렇듯 어린 날 문득 들었던 죽음에 대한 호기심어린 생각이 지금까지 미미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혼자만 조심스럽게 꺼내어보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얽혀있던 감정들을 대중들에게 드러내 이야기를 하면서 복잡하고 심오하기만 했던 주제가 좀 더 명쾌하고 정리되어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여정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살아감에 대해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법을 알기 위해 죽음을 더욱 자유롭게 사유해나가며... 죽음 앞에 좀 더 자유롭고 여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제8회 호스피스세미나 죽음, 청춘이 묻다 생명을 경외 시 하는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래세대인 청춘들에게 죽음에 대한 물음을 던져, 그들이 생각하는 죽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되었으며,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석사 2학기 재학생 임주은님께서 청춘연사로 강연하였고, 석사 4학기 재학생 손재선님께서 사진촬영 재능기부를 해주셨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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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보슬보슬 여름비 시원히 내리던 광복절 연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오신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수필 선생님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 함께 동행하실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2015년도 여름 41기 교육을 받았고, 그 후에 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께서 대학원을 추천해 주셨고요.


사실 저는 대학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거든요. 굳이 대학원 공부까지 해야 하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능인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어떤 계기가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렇게 도전하게 되었던 거죠.


 

계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계기가 마련이 되신 경우네요, 입학하셨을때의 첫 마음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전에도 불교관련 공부를 했었는데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제가 모르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리고 보통 대학원은 금요일 수업이면 끝나는데 토요일에 와서 또 플러스된 교육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 량이 다른 대학원에 비해 많은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금요일에 집에 안가고 여기서 자고 토요일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호스피스교육 스탭, 병원봉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43기부터 스텝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스탭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45기 생사의장 교육 때에는 학생 곁에 선생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교육에 학생지원을 선생님이 맡으셨나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건교사이다 보니까 의약품관련해서는 담당을 하게 되었구요. 특별히 학생지원 소임을 살지는 않았어요. 누가 아프다고 약을 요구하시면 후에 지금은 상태가 어떠신지, 살피고 한번 물어봐도 주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렇게 보여지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이번 교육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건강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사실 우리 행정실은 교육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교육생들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교육을 마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그런 부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러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챙겨주신 선생님이 계셨으니까 안전하게 교육이 진행될 수 있었구나 싶어서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웃음)


 

그런 스탭으로서의 일이 선생님께 어떤 도움으로 다가오시는 거죠?


교육생의 마음을 살피는 것?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구요. 봉사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봉사는 세심함이 필요하잖아요. 환자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하는지, 손짓 몸짓 표정 그런 것들이 세심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자비심 보리심 그 마음들이 생겨나는 건가요?


그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으면 좋죠. 근데 저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자비심 자애심 이런 것이 제 마음속에는 별로 존재하지를 않아요. 근데 봉사를 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들이 반드시 필요하죠. 모든 중생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봉사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에 이미 자비심이 자리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웃음)

 

 

병원봉사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2층에 계신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로 시작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 환자를 만날 때의 마음가짐, 대화법, 그런 것들을 관찰일기로 쓰라고 하셔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환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렇게 관찰일기를 쓰면 능인스님(영적돌봄연구실장)께서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시거든요. 이런 때에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죠. 그리고 나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의 느낌이 잘못 들어가면 환자가 거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을 교육 받으니까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작년부터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한두번 정도 들어가고 있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생사의 장 교육을 마치신 분들도 계시고, 대학원생 분들 중에서도 아직 봉사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하나에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우선은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 다음이 시간이겠죠? 시간이 안 된다면 사실상 봉사를 하기가 어려워요. 안되는 시간을 억지로 내게 되면 봉사가 잘 될 수가 없거든요. 내가 편안한 상태로 환자를 만나야지만 환자도 편안해하는데, 내가 불편하고 힘든 기운으로 들어가게 되면 환자에게 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거든요. 시간이 되고 마음을 낼 수 있을 때 천천히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서두르지 말고요.


그 조건이 되어야 꾸준한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능인스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셔요. 굳이 많이 자주 오려고 하지 말아라. 지치게 하지 말고,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이라도 꾸준히 오면 된다. 그 말이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3학기를 마치고 4학기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들은 없으셨나요?


관심을 가진 분야의 수업은 쉽게 다가오는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아무래도 지루한감이 있어요. 그래도 배운다는 입장에서 참여는 하는데, 사실 저에겐 생명교육 분야가 좀 흥미에서 떨어지는 부분이예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자체가 보건교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생명윤리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고 좀 신선하지가 않은 부분이 있죠.(웃음) 그래도 1학기에서 이론을 마쳤으니까 2학기는 그런 점들이 좀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싶고, 바램이 있다면 남에게 쓰임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살다보니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산다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라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봉사하면서 나름대로 깨어있는 삶을 살다보면 제 삶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내 것인 것 같은데 결코 내 것이 아닌 것이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것을 찾아야하겠죠. 이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함께 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도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반들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 들어오시는 후배들을 통해서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람관계에서 배워지는 것이 실은 수업을 통한 배움만큼 많거든요.

다른 사람의 질문들, 내가 생각하지 못 했던 사고방식들, 그런 것들이 참 좋아요.

그리고 어떤 공부일지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꾸준히 공부합시다.^^

 

나에겐 자비심이 없다는 김수필 선생님께 모르고 행하는 자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르고 행하는 선한의 공식 : 마음=Real 자비심=김수필 선생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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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 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2017학년도 1학기 기말세미나.

한학기의 배움을 정리하고, 나누고, 또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시간.

학생들의 빛나는 모습에 시선을 머물러 봅니다.

그 빛나는 미소에서 내일의 대학원을 봅니다.

 

2017.06.24. 기말세미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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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설레는 봄날, 새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임 주 은 (석사과정 1학기 재학생)

 

 

 

마른 나뭇가지에 새잎이 돋아나는 3, 봄바람이 살며시 기웃거리던 화창한 날...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 볼펜 한 자루를 샀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내가 정토마을로 발걸음을 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학부시절부터 사회복지학 전공과목 중 특히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주변인과 내 자신을 이해해야할 일들이 많았던 것일까. 유독 사람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 했었고 특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 학문 속에 담겨있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학부에서 배웠던 상담학문은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과 역사, 기법들이 중심이었다. 그때 동양에서 특히 불교에서 다루는 상담심리학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문제 속에 있는 내담자를 만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더해진 것 같다. 그래서 빠듯한 형편에 일과 공부를 함께 병행해보리라는 다소 대책 없는 포부를 가지고 있던 찰나 마하보디교육원의 채용정보를 확인하고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교육원 문을 두드렸었다. 그 때로부터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대학원을 들어가기 전 내가 거쳐야할 단계들이 필요했던 걸까. 인연이 닿은 곳은 교육원이 아닌 정토마을 법인사무국이었다. 15년도 1월에 입사하여 작년 9월엔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이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되며 호스피스병동의 전담사회복지사라는 또 다른 역할과 마주하였다. 바쁜 일을 핑계로 문턱이 발가락 끝에 닿아 있어도 넘으려 하지 않았던 나는 호스피스병동에서 일을 해나가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했던 것 같다.

 

암과의 투병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와 보호자들을 내가 잘 돌볼 수 있을까.’

 

좀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통해 나의 영성과 전문성을 성장시켜서 그들의 눈가에 습습히 고여있는 슬픔을 잘 닦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인연을 맺고도 미뤄두었던 대학원의 문을 용기 내어 두드렸다.

 

사실 병동에서의 일만 해도 몸과 마음이 참 고되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내일도, 몇 시간 후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하며 찰나같이 지나가는 그 순간들을 절실히, 그리고 전문성 있게 돌보기 위해서는 나를 계속해서 성장하게끔 이끌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 토요일 주간에 이루어지는 대학원 수업시간은 시간 없다 탓하기가 무색할 만큼 내가 틈을 내어 듣기에 충분했다.

 

입학한 후 첫 수업은 충격적이었다. 불교학과니 만큼 불교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하는데 지금껏 종교가 불교라고 했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교리를 몰랐던 나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용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작정 들리는 대로 써내려갔던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덜컥 겁도 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필기하는 속도가 처음보다 늦춰졌다. 궁금한 것을 메모해두는 여유 또한 생겼다. 그리고 나름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4월에 들어서며 만개했던 벚꽃이 옅은 빗방울과 바람에 떨어지며 풀잎자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새로운 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었는데 이제는 수업을 들을 때 마다 곁가지처럼 늘어나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수업을 집중케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요즘은 늘어나는 과제들을 치러내느라 분주한데 이 모습이 꼭 지금의 계절을 닮았다. 생동감 넘치는 봄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나와 도반들의 모습 같다.

 

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나의 직업이 의 영성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되어 이 곳을 찾았다. 그리고 이 곳을 졸업하는 시점의 내 모습을 좀 더 그려보며 미소 지어본다.

 

앞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으로 또는 자신의 내적, 영적 성장을 목표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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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오후,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카페에 앉아 논문을 쓰며 하루를 보내셨다는 도우스님, 졸업을 앞두고 계신 도우스님의 역사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마음가득 기대와 설렘이 차오릅니다.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 얘기 하려면 진짜 긴데? (웃음)


출가하기 전에 저는 9살 때부터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찾았어요. 처음엔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갔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해 봤는데 찾지를 못했어요. 다 아닌 거예요. 그런 시도를 계속 하다가 자포자기를 하게 돼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이었나보다.’ 그렇게 되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근데 “너처럼 밝은 애가 왠 우울증? 니가 왜? 뭐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면서 나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잘 살면 되잖아. 열심히 살면 되지” 그러는데 저는 “무엇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게 중요했던 거거든요. 그렇게 우울감에 방황하던 시기에 출가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알게 된 거죠. ‘아! 이거구나’하고요.


출가를 해도 스님들이 나가는 방향(진로)이 각각 다르잖아요? 저는 공동체를 하고 싶었어요. 공동체 운영 계획이 있었어요. 강원을 졸업하고 한 일 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알아보고 하면서 공동체를 준비하려고 했었죠. 근데 뭔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예요. 


그런 복잡함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잠시 여기 정토마을에 봉사를 왔었죠. 제가 강원 4학년때 호스피스교육을 받았었거든요. 그때 이게 내가 찾던 길이 아닌가? 했어요. 그 인연으로 봉사까지 오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저것 일을 하게 되고 원주소임까지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CPE를 하게 되었는데, ‘아, 이건 정말 내가 찾던 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었어요. 해결책을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CPE를 하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해결방안도 제시할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도 입학하게 된 거죠. 정말 잘 시작 한 것 같아요. 또 특별히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도 인연이 참 잘 닿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시너지 효과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도 허물이 없어서 참 좋아요. 지금 생각나는데 첫 강의 들어갔을 때 ‘수업을 이렇게 해도 되나’ 했어요.(웃음) 너무 편안한 거예요. 숨통을 틔우게 하는 수업이었어요.

그 상태에 저는 소임살고 하면서 굉장히 팍팍했거든요? 대학원 수업이 저에겐 오히려 휴식처 같고 좋았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학생들을 만나 보니까, 정토마을 공동체 스님들의 대부분이 대학원 수업을 휴식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웃음)


그게 소임만 살다 보면 내가 여기 뭐 하러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면 나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내가 이걸 하려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거지?’ 하고요.

근데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자꾸 까먹어요.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아, 그래 이거지!’ 하고 균형감을 맞출 수가 있는 거죠.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에는 때가 늦었기 때문에 심리공부는 할 수 없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이 있었어요. 정말 원하던 것을 하게 되니까. 단기간으로 뭔가 배우는 것보다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심리공부를 정말 정식으로 배우는구나 하는 안도감, 편안함, 성취감, 기쁨 이런 것들이 있었죠.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는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좀 놀라웠어요. 거의 포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이 부분이 저의 꿈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 온 것은 저에게 호흡과 같은 의미가 있어요.

 


졸업을 앞두신 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배운게 참 많다.(웃음)


어제 미술치료를 하는 바람에 사기가 꺽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중한 경험들을 한 것 같아요. 소중한 얻음을 얻은 거죠. 알아차림을요. 어제 미술치료를 하면서 마지막에 몰랐던 나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게 오늘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본전을 챙기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어요. 알찬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실습이 바로바로 이루어 지잖아요. 그런 기회들도 너무 감사하고 그런게 되니까 학교공부도 튼실하게 잘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이 명상이나, 환우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부끄러운 거예요. 이런 단어들은 쓰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꾸 쓰고 있고,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가 있고 끝나고 나면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안타까움 부끄러움 그런게 많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알차다고 느껴요.

 

 

 

배우고 익히고 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스님 앞에 펼쳐져 있었네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요. 내가 복이 많은 거 같아요. 소임 살면서는 내가 뭐 하는거야. 땜방 하는 느낌만 들고 티도 안 나고 지금 끝나고 나서 보니까 아귀가 딱딱 맞으면서 아 내가 진짜 복이 있었구나 싶어요. 나름의 피흘림이 있었어요.(웃음)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좋았던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소임 살면서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원주 살 때에는 앞치마 벗어놓고 뛰어올라가고 그랬거든요. 진짜 시간이 부족해서 숙제도 잘 못 해가고 그러면 교수님께도 죄송하고 동기들에게도 미안하고 그랬죠. 


제일 힘든 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거지 ‘난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난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는,
그래도 교수님들께서 이런 것들을 따뜻하게 이해해주시고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시는 모습에서 소임에 대한 귀함? ‘내가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했어요.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힘들었죠? 잘했어요. 어땠어요.” 하면서 피드백을 해 주니까 다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많이 감사해요.


저 학생은 맨날 빠지고 왜저래? 하는 시선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명상수업 지도법사로서 파랑지역 아동센터 아이들과 만나셨는데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예쁜 모습, 귀여운 모습만 좋아했던 것 같아요. 투정부리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일 때는 귀찮아하고 안 보고 마는 제가 있었던 거예요.


 근데 명상수업을 하고 보니까 뭔가 책임감? 아이들의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이런 거 겠구나?’ 하는 느낌? 


아이들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근데 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다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분리심 같은 것들을 좀 알게 된 거 같고요. 아이들이 처음보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열려있다는 것에 안도감, 기쁨 같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반면에는 아이들이 열어준 마음만큼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함께 생기는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가 돼요. 그리고 스님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서 아이들이 발표하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스님께서 따뜻하게 기다려 주시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좀 멍하고, 계면쩍을 수 있는 순간인데, 그 시간에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하면서 느껴진 게 아이들이 대답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할 말 없으면 패스해” 하고 정말 빠르게 진행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아이가 “할 얘기가 없으면 넘길까?”하고 제가 말하는 순간에 우물쭈물 얘기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해버리니까 “없어요.” 하고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다려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명상수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음... 아이들과 ‘쉼 명상’ 했던 거요. 사진에도 있는데 누워서 신체적 접촉을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장난치고 안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너무너무 잘 하는 거예요. 서로 등에 손을 얹어주거나 할 때 참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들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참 따뜻했어요.

 

 

이제 졸업도 하시고... 많은 것들이 마무리가 되어 가시는데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CPE슈퍼바이저가 되어서 영적돌봄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영적돌봄이 필요했던 건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을 돌봄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슈퍼바이저가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하고 싶어요. 이번에 논문을 쓰다보니까 제가 불교 쪽 이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보강 해야겠다 생각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창이예요.나의 영성과 신체, 물질과 영혼을 이어주고 바라보게 해 주는 문인 것 같아요. 

닫혀 있을 때는 분리되어서 알 수 없는 세계이지만, 창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마음 같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자괴감에 빠질 때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 한 순간도 아무것도 아닌 건 없는 것 같아요. 다 그만큼의 자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에 대해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평가를 해야지 자기의 심리상태가 바닥인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옳은 결론이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하며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된 것 같다고 하시는 도우스님, 소중한 이야기로 함께 해 주신 도우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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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홀가분함이 또 다른 시작에게 하는 말

 

능 인 (임상상담전문가 인턴과정 강사)

참으로 긴 여정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이란 시간 동안 늦은 공부를 시작하는 내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 석사는 꿈도 못 꾸고 학사라도 마치자라는 심정으로 시작한 공부다. 나는 공부에 갈증이 많은 사람이다. 워낙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공부가 무섭기도 했다. 공부를 참 못하는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나는 정말 공부 못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문득 공부가 하고 싶었다. 논리적으로 말도 하고 싶었고 출가자로서 당당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은사스님의 지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가 참 재밌었다.

혼자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참 재밌었던 것 같다. 그때서야 나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전문가 과정을 2년 동안 학부와 병행하면서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학부를 마친 후 곧바로 대학원 등록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세종시에서 언양까지 가는 거리와 공양주를 살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매우 힘든 석사과정을 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매번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많았고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알았는지 모를 정도로 2년이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5학기 즈음에 정신 차리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게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논문을 마무리 하고 호스피스 교육 프로그램 기획과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내 연구실 소임을 맡게 되면서 나에게 또 다른 역할이 주워졌다. “임상전문가 실습 강의를 하는 강사 소임을 맡게 되면서 또 다른 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첫 강의 때 마음이 참 이상했다.

설레이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마음이 찾아왔다. 그러나 늘 홀가분해지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 있었기에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강의에 임했다.

6년이란 긴 시간이 내게 인간다움을 가르쳐 줬다. 홀가분해지려고 하는 마음은 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역사이자 시작이다.

지금 무엇인가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미 당신은 지금 홀가분해졌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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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2016학년도(후기)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신입생 추가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6학년도(후기)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신입생을 추가로 모집합니다.

가을학기 개강일은 93일입니다.

수행과 돌봄이 하나 된 실천학문의 메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가능한 선택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택 둘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기본과정 7

선택 셋 :) 7회 호스피스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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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2016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 <자기개발정신건강 자각명상>

 

열한명의 선생님과 함께 한 여정,

 

함께하여 기쁘고,

함께하여 웃고,

함께하여 행복했습니다.

 

마음의 시선이 머문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자기개발과 정신건강을 위한 자각명상> 2016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울산광역시교육청의 교육기부 협약에 따라 진행된 대학원의 사회공헌사업으로, 726,272일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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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함께 행복해지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석사과정 김수필(1학기)

 

 

생사의 장 43기 불교호스피스교육 조화로운 삶, 그리고 시작(調作)’67일 동안 스텝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작년 8월에 생사의 장 41기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위드(임상수행)팀으로 활동한지 1년도 안된 나에게 스텝의 자리는 선배님들과의 귀중한 만남과 의식이 성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교육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배려와 마음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려야하는 섬세함도 요구되었기에 긴장과 여유로움을 병행하는 순발력도 필요하였습니다.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저녁마다 진행된 회의와 임시회의는 분석과 토론으로 청량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의견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양 때마다 제공되는 시각, 미각, 후각의 즐거움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이었습니다. 그 날 그 날의 프로그램에 맞는 곡 선정으로 청각의 감성을 자극하는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삶의 괴로움을 지배했던 분노, 슬픔, 우울, 화의 감정을 표현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가며 기쁨에 찬 교육생들을 보며 저 또한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웰다잉은 생과 사가 다르지 않으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나침판의 역할임을 되새겼습니다.

41기 때 듣지 못했던 강의를 듣는 배움의 즐거움과 당시에는 감흥 없던 프로그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체험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육기간동안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교육생들을 감동시키는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생사의 장 호스피스교육이 22년 동안 이어져 온 원동력 또한 선배님과 봉사자들의 조언과 격려, 열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육만이 가진 절대적인 매력임이 분명합니다.

나에겐 온전히 주어진 이번 일주일은 긴장감, 책임감, 설레임 속에서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웃었고, 많이 안아주고, 교육생들을 위해 잘 쓰이는 내가 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스텝으로 활동할 기회를 주신 원장스님과 능인스님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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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승혜신 선님을 만났습니다.

 

누굴 만나면 좋을까? 이번에 떠오른 얼굴은 대학원생 승혜신 선님이었습니다. 4학기를 마치고 이제 5학기 인턴이 되시는 선, 4학기를 등록하면서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셨던 선님께 오늘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장스님께서 권유를 해 주셨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 보라고요. 명상심리대학원이 있다는 건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불교와 명상까지는 관심이 가는데, ‘심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서 선뜻 선택이 되질 않았어요.


제가 이곳에 와서 불교를 처음 만났거든요. 스님들과 가깝게 생활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러면서 불교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권유를 해 주셔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불교와 명상에 대해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살아가면서 영성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 스님이나, 틱낫한 스님을 보면서 뭔가 온전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모습들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죠.


심리에 대해서는 제가 거부감이 좀 커요.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좀 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기쁨, 희망, 설렘 그런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과 맥락이 비슷한데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과정 자체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잖아요. 제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업이다 보니까 공부가 그런 부분들에 접목이 되면서 제 자신을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의 설렘? 그런 것들이 다 같이 있었어요.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동안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어느덧 임상상담전문가과정 5학기 인턴과정을 앞두고 계신데요. 인턴과정을 앞둔 선배님의 지금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웃음)성실하다고요?


사실 일을 하면서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이번 4학기 같은 경우에는 많이 힘들었고요. 처음 입학할 때에는 몰랐는데, 2~3학기 지나면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주말이면 산에도 다니고 하면서 나름 몸 관리 한다고 노력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그것도 잘 되어 지지가 않았어요.

이런 몸으로 4학기를 하게 되면 건강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휴학을 고민했던 거예요. 공부가 하기 싫거나, 기대가 안 채워지거나 했던 게 결코 아니었어요.


4학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충실한 학생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명상수업 시간에 뻔뻔하게 코골며 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요.(웃음) 너무 엉터리로 4학기를 하지 않았나, 했다기보다 버텨왔다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4학기 한 한기를 너무 엉망으로 해서 교수님들께도, 후배들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서 성실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에 웃으셨구나. 저희는 결석을 한 번도 안 하시기에(웃음)


다니기로 한 이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오긴 와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힘드니까 한편으론 수업시간에라도 휴식을 가져가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도 함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마음으로 4학기 수업을 했어요.(웃음)

 

 

5학기 인턴 수업은 주무실 수가 없는 수업일 텐데, 못 주무셔서 못 오시는 건 아니시겠죠?(웃음)


∙∙∙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욕심이 나는 학기예요. 이번 인턴과정에 함께 할 선배님들과도 좋은 도반이었거든요. 꼭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 과정 동안 과연 나 자신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제가 뭘 하면 대충하는 성격이 못 돼요.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는 성격인데, 이렇게 대충 흘러가는 시간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아깝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그래요.


 

학업을 하시면서 이번 4학기가 선배님께 가장 큰 고비였던 건가요?


그렇죠.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가 되더라고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못 가지고 계속 피로가 누적되니까∙∙∙.


 

그럼 그 고비가 아직 극복이 안 되신 건가요?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학기가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일과 생활 모든 것에서 소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도 몸 관리를 잘해서 마무리까지 잘해봐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5학기 과정을 마치고 쉬어야 극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그런 고비들 속에서도 대학원과 함께 4학기를 보내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기말 세미나 끝나고 재학생들끼리 같이 식사하고 차 한 잔 하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이 되잖아요? 그때 누구는 어떻게 변했고 누구는 이렇게 변했고 누구는 처음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는 그런 서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선후배 간의 교감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동기가 없잖아요. 처음 입학해서 후배로 있을 때에는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 저 선생님은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진짜 이렇게 변화하셨구나.’ 하는 느낌들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거구나. 마음공부들을 하니까 변화들이 생겨나는구나. 하면서 서로 신기해하고, 우리가 이렇게 자랐구나 하면서 확인해 주고, 그런 자리가 굉장히 좋았는데, 지금은 함께 공부했던 선배님들은 안 계시고, 후배들과는 함께 한 시간이 짧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되지 않고∙∙∙. 동기가 없는 저에게는 저의 변화를 발견해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쉬움으로 남아요.

 


이번 인턴과정에 선배님들과 함께 하시면서 본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헤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거니까 굉장히 새로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했던 선배님들이니까∙∙∙. 기대가 돼요.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인데∙∙∙. 저에게 10년 후는 없습니다.(웃음)

오늘 하루를 그저 살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섬진~ 제 첫 손주 섬진이가 최고의 선물이예요. 섬진아 기뻐해 줘라~^^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하늘이요. 늘 변화무쌍하고, 수시로 바뀌는 하늘.

마음도 항상 변화하고 흘러가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학업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적 성장에 있어서 공부를 통한 배움보다도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워가는 게 굉장히 많거든요. 그 속에서 자기 성장도 되고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운 선배예요. 제 위에 선배님들은 수업 분위기도 잘 이끌어 주시고 힘이 많이 되어주었는데 저는 달랑 혼자인 선배가 그런 역할을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이 있어요. 영향력 없는 선배라서.

 

자신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배움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후배들을 향한 승혜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진들도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인터뷰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질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신 승혜신 선, 진솔한 이야기로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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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 번째]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불교대학을 다니는 보살님이 있었다.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고 항상 꼿꼿하게 앉아서 열심히 듣고 기록하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이다. 어느 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다음 생에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얼굴은 맑고 순진하게 보였지만 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다.

. 태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되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사는 것이 고달파서요. 신랑을 다시 만나기도 싫고, 그냥 안 태어나고 싶어요.” 괴롭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깊이 다짐을 하고 또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될까요?” 했다. 보살님이 겪어 온 삶을 알 수는 없지만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느낄 수가 있었다. 태어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노력만으로는 아마도 윤회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보면 하나의 씨앗이요, 나누어 보면 하나의 씨앗 속에 무수한 요인들 즉 작은 씨앗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범부의 안목으로는 씨앗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유식학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무의식의 설명과 일치한다. 무의식이라는 것도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묘하고 광대하게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 역시 무의식의 개념과 일치한다. 씨앗의 존재와 작용 그리고 성질은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근본 마음이며 찰나찰나 자신을 지배하는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씨앗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한다고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끊겠다는 보살님의 바램은 옳다고 해도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씨앗은 스스로 움직이는 힘, 즉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 안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은 씨앗은 죽지 않는다. 워낙 미세하고 고요하게 작용함으로 마치 없는 듯이, 죽은 듯이 보일 뿐이다.

해외 토픽에 실린 내용이다. 3천 년이 지난 무덤을 발굴하다가 무덤 안에서 그릇에 담긴 연꽃 씨앗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의 호기심은 끝간 데를 모른다. 씨앗을 정성껏 다루어 심었더니 싹이 낫다고 한다. 3천 년이 흘렀지만 씨앗은 죽지 않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더니 살아난 것이다. 업보나 인연은 그렇게 움직인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나면 스스로 살아나게 된다. 노 보살님이 간절하게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이 트고 생명은 이어지게 된다.

보살님! 봄에 살아있는 씨앗을 땅에 묻었다고 합시다. 씨앗이 스스로 싹이 나길 원한다고 싹이 나고 원하지 않는다고 싹이 나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비가 오고 따뜻하면 무조건 싹이 나지요.”하고 대답했다. 윤회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씨앗은 그 자신의 조건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윤회는 본인이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소멸되어야만 멈추게 된다.

마음의 씨앗을 소멸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에 걸리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대혜종고 선사께서 서장에서 밝히신 애응지물(礙膺之物)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라 해도 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해도 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이다. 미해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일이다.

태어나지 않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또 다른 원을 만들고 강력한 정동적(情動的) 집착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이 생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연들을 조용히 내려놓겠다는 태도가 윤회를 벗어나는 바른 길이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으면 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며 걸림이 없으면 마음의 움직임도 멈추게 된다. 그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다. 불교의 궁극은 그렇게도 설명된다.

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노 보살님의 기도는 방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준 여러 인연들을 자비로서 용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흔적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자 중도이며 또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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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웹진 마음 열 번째 인터뷰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설립자이자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이신 능행스님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능행스님을 만났습니다.

 

 

 

여름의 더위가 짙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웹진 10호를 특집호로 준비하며 우리 마음 편집진들은 능행스님을 초대했습니다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런 거룩한 초대가 뭔가 부담스럽고 나를 긴장되게 하네∙∙∙하시며 웃으시는 스님께 마음이 묻습니다.

 


스님, 19883월 봉사활동으로 시작해서 2000년 독립형 호스피스시설 정토마을을 개원하고 운영하시다가 2004년 공식적으로 재단이 설립되어 현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설립 계기는 스님의 에세이와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08년 설립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스님께서 대학원을 설립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환자들을 계속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 걸릴까. 왜 이 불치의 병은 우리로 하여금 이 많은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게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을 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 마음이 병드니까 몸에 병이 드는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몸이 병이 들어서 마음이 병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마음이 병들어서 몸에 병이 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걸 알고 고민했어. ‘마음과 몸이 함께 아픈 이 사람들을 어떻게 케어 해 주어야 할까? 몸도 마음도 덜 고통스럽게 머물다 가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때 생각한 것이 병원을 먼저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간절했지. 그런 전문 인력 없이는 병원을 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마음에는 계속 , 교육사업을 먼저 시작해야해.’ 그런 생각을 했지.


그래서 처음 법인을 설립할 당시에도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하겠다고 명시해 놓았던 거야. 언양에 병원 지을 땅을 사고 내려왔을 때도 의료사업보다 교육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대학원 대학교를 지어야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지.


근데 땅을 산 2005년도 그 해에, <섭섭하게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책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2007년까지 책이 엄청난 수로 팔려나갔고, 그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걸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래 이 돈으로 교육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대학교를 짓기 이전에 교육원을 통해 충분히 임상경험을 해 보고 경험이 축적 되었을 때에 학교를 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추진을 시작했지.


그때 반대가 엄청 많았어요. 그 돈들이 병원 짓는 곳에 다 사용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교육원을 짓는다 하니까∙∙∙.

엄청나게 반대도 많았고 장애도 많았지만, 책 판매 된 돈으로 밀어 붙였고, 그렇게 2007년도에 교육원을 개원하고, 2008년에는 대학원 대학교를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계를 한번 잡아보자 하고 지금의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문을 열었지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특성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의 실천적 성격일 텐데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정체성 안에서 보면 참선도 있고, 행선도 있고, 좌선도 있고, 명상도 있고, 염불선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은 활선이야. 활선, 활동을 통해서 수행을 하는 거지.


사회의 역할로 본다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교육원을 통해서 배출된 여러 학생들이 질병과 죽음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하나의 빛, 등불이 되는 거예요. 어둡고 아픈 곳에서 치유의 등불이 될 것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되어야 해요.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가꾸어 가요. 아픈 곳에는 치유의 빛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는 밝은 햇빛으로, 돌봄의 빛으로, 회복의 빛으로, 용서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이렇게 다양한 빛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대학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까지처럼 위덕대학교와 협력해서 전문성을 높여가고, 때가 되면 학교로서의 구색을 갖추어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지금 우리나라에 대학원 대학이 굉장히 많다는데, 일반적인 대학원 대학교를 만드는 거라면 우리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세상의 고통에 접근해서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들어주고, 그 아픔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훈련하는 학교로서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스님 욕심인데, 우리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막판에 가면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믿어요.

 

 

스님, 모금을 위해 지구를 열 바퀴 돌고, 28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고비의 순간도 많으셨을 텐데요. 스님께서 정말 힘드셨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힘든 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순간이냐고 물으면 선별을 하기가 어려워(웃음) 종류를 얘기를 해야 해.(웃음)


 

인간적인 힘듦∙∙∙? 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모금만 할 때에도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한 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병원을 짓기 시작할 때 두려움이 무척 컸어요. 경험이 없는 가운데서도 병원을 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부담감, 이게 참 많이 스님에게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을 의논하거나 함께 고민할 멘토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 오직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 나가야 했던 그 5년의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차들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리고 그 가운데에 스님이 서 있는 듯 했어요. 인간들의 관계라든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겠지. 관계, 그 속에서의 갈등, 또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들과 시행착오들. 길이 있기는 한데 보이지 않는, 걸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 없던 그 5년 동안이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 두려우셨어요?

 

두렵기도 하고, 책임감 때문에 압박감도 엄청 심하고∙∙∙. 완성을 해야 하는데 이걸 완성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제일 큰 것은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이 서지 않는 거였어요. 길을 만들어서 찾아가야 하는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지. 길은 분명 있는데, 어느 길로 가야 출입구가 나올지 모르는 거야. 출입구를 빨리 만나기 위해서 아주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지. 많이 힘들었어.


돈을 많이 가지고 병원을 지은 것도 아니었고... 18억 가지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다 짓고 나니 들어간 돈이 120억이었으니까.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어.(웃음)


건축 현장이란 곳은 다른 현장하고 또 많이 달라. 특별함이 있어. 아주 대단한 전쟁터와 같았어. 내가 전쟁이라도 경험을 해 봤으면 잘 헤쳐 나갔을 텐데 한 번도 경험이 없어가지고.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것이 나에게는 계속 이슈였고, 두려움이었어.


우리가 터널에 갇히면 어떻게 될까? 차들은 라이트도 켜지 않고 무작위로 질주를 하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서 차에 치여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가야 하는데 길은 안 보이고 이럴 때.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이 되어 있었네. 병원을 짓는 5년 동안.


그런 중에도 바깥에 다른 일들은 다 헤쳐 나가야 했다는 거야. 관계, , ,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 5년이 최고였어. 고통의 절정의 최고. 그런 시간이 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 참 길긴 하지.

 

 

극복이 되셨어요? 그 두려움이?

 

(웃음) 극복이 되었다가 다시 재발이 돼서 작년에 홍역을 앓았지.

올해 2월부터는 다시 떨쳐내고 그런 고통으로부터의 에너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고, 지금은 조금 색다른 에너지로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병원을 짓는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극복이 스님 스스로 된 것인지, 아니면 극복의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방법이 있었어.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방법이 무어냐 하면 내가 나를 돌아보는 거였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어떤 불안을 가지고 이 일을 했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나와 함께 부대끼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했지. 수용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어.


또 더 높은 차원에서는 이것이 이생이나 저생이나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내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받는 과보라고 생각했지. 과보. ‘마땅히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했구나.’ 하고 나의 경험들을 수용했어요. 그렇게 수용하고 나니까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예요. 누가 잘 하고 못하고 그런 건 다 없어지고 , 내가 경험할 것을 경험했구나. 문을 잘 찾아 나왔으니까 잘 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들이니 내가 다 품어 안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용하고 품어 안고 극복했지.

 


스님,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 뭐였을까?

최고의 선물은 나와 함께 호흡하고 발을 맞춘 동료들이 최고의 선물 같아. 그 이상의 선물은 없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남기고 싶은 선물? 모두가 협력하고 협동해서 이 지구의 모든 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런 중심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동력을 만들어 두고 가고 싶어.

 


스님, 우리 웹진 마음의 공통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에는 생각들이 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대학원의 졸업한 동문들, 재학생, 예비 신입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빛이 되어라. 이 세상에 빛이 되어라.(^^)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던 능행스님과의 인터뷰 시간이 저희 편집진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의 초대에 응해주신 능행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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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1031일 토요일,

임상상담전문가과정 학생들은 환자들과 습니다.

CPE수업 실습날이 던 그날은,

대학의 선배님이기도 하신 토마을 재요양병원 임상연구실의 능인스님께서 수업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손잡아 드리고, 을 깍아드리고, 이 되어드리며,

우리는 돌봄을 통한, 스스로의 돌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날, 우리의 맑고 밝은 따뜻함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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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6회 호스피스세미나 후기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며...

 

석사과정  법 휘(4학기)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에 열렸던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제6회 호스피스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나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기에 용감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2013, 모르기에 용감하게 들어설 수 있었던 정토마을과의 인연, 그때가 떠오릅니다. 이곳은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 떠나 처음 만나게 된 정말 정토(淨土)의 마을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또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이곳에서 저는 2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마지막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던 그 시간들을 이번에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세미나에 담으면서 그 시간들과 함께한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행복했으며 아프고 또 힘들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치열하게 삶을 피어내고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고통처럼 나 또한 내 마음 안에 작은 연꽃을 피워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활짝 피어난 나만의 연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픈 이들의 가슴속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어주는 그런 연꽃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비로소 나만의 연꽃을 그들과 함께 사랑으로 피워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알아차리고 성찰하는 수행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분들과 동행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이 순간을 선물로 드리며, 6회 호스피스세미나에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법휘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영적돌봄가로 활동하시며, 지난 1016일 충북대학교병원에서 열린 제 6회 호스피스세미나 호스피스의 불교적 영적돌봄에서 통합예술치료를 통한 영적돌봄을 주제로 활동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현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에 재학 중이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서 환자들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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