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자리]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영일만의 여름방학 특강
김두환 (생명교육전문가과정 재학중)
1.
1285년 가을 인각사.
금당 앞 넓은 뜰을 노 스님이 천천히 걷고 있다.
“벌써 나뭇잎들이 많이 붉어 졌구나.”
“스님, 바깥 날씨가 찹니다.”
무극(無極)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자료는 대충 정리가 되었나?”
“네, 큰 스님, 수이전(殊異傳)과 여러 고기(古記)에 있는 내용을 망라해서 모아 두었습니다.”일연은 하늘을 쳐다본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다.
“연오, 세오라. 연오 양오, 세오 쇠오, 모두 태양속의 삼족오.”
일연(一然)은 작년 인각사에 온 이후, 유사 쓰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무극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여든의 노구이지만 이 일은 기필코 이루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루도 유사에서 마음이 떠난 적이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라는 가제를 두고 여러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일연은 연오의 이야기를 꼭 유사 속에 넣고 싶었다. 조선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에 이르는 수 천 년 동안 태양을 받드는 믿음은 우리 민족의 깊은 정신세계가 아니었던가.
“무극, 오늘 연오랑 세오녀를 마무리 해야겠다.”
“네, 스님”
2.
2019년 8월 24일.
포항에 있는 연오랑 세오녀 테마 공원.
여름의 끝머리였지만, 아직도 태양은 이글거렸다.
여름방학 불교 특강을 위덕대학 캠퍼스에서 마친 김경일 교수와 대학원 학생들이 이곳 테마공원을 일부러 찾았다. 김경일 교수의 연오랑 세오녀에 관한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태양을 숭배하는 집단에 관한 설화이므로 이름에 들어 있는 烏라는 글자는 당연히 태양 숭배 신앙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三足烏의 오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일중삼족오의 신화를 따르는 집단이며, 그것을 이름으로 쓸 만큼 삼족오를 숭배한 추종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바이칼을 거쳐 이곳 영일만까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던 인류의 이동, 아니 우리 민족의 이동을 먼저 설명한 김경일 교수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태양을 숭배한 집단의 후예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태양을 숭배한 집단이 영일만까지 이동해 온 것은 태양이 뜨는 곳에 좀 더 가까이 가 보려는 열망의 결과였다고 봅니다.”
테마 공원 내 신라마을의 초가로 된 정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은, 저 일출의 성지에 보다 더 접근해 보려는 연오랑 부부를 따라 바위에 두둥실 몸을 싣고 동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연오랑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태양을 쫒아 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찾아서 이동해 온 조상들처럼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을 찾아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간 것입니다.”
김경일 교수의 목소리는 점점 확신에 차 가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국호가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고, 국호의 변경 이유를 태양이 뜨는 곳이 가깝기 때문이라고 일본 스스로 밝힌 것은, 한 반도에서 일본으로 흘러간 태양 숭배 신화의 자연스런 귀착이라고 봅니다.”
마하보디 명상 심리 대학원의 여름 특강도 이제 서서히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설화의 내용이나 역사적 기록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일현 지역의 전설이나 제례 전통 그리고 지명의 의미 등을 종합해 보면, 설화속의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태양 숭배 집단의 제사장이거나 제례를 주관했던 인물로 짐작이 됩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푸른 파도가 뜨거운 태양아래 영일만에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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