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듯이 마음의 병도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 어릴 때의 왜곡된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주로 정신분석적 견해이고,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배워서 즉 학습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행동주의적 견해이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은 주로 인지치료적 입장인데 모든 이론이 일정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 장애의 전반적인 면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어려우면 즉 부정적 사건이 자신에게 닥치면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사는 것이 한가롭고 여유가 생겨서 정신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살아 온 부부가 있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부부 다툼이 있었다. 금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폭행을 주고받아 진단서를 끊고 경찰서를 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삼키거나 참으면서 가정은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고 빚만 가득 지게 되더니 드디어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손으로 살던 곳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낯선 곳으로 가서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부부는 돈을 모으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왔다.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자녀들이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싶으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고 볼 일이었다.

부모의 힘든 생활을 함께 겪으며 자란 탓에 아이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첫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다가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여 또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부가 시작한 사업은 때맞춰 점점 번창해 나갔다. 드디어 빚도 모두 청산하였고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오뚝이 같이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인간승리의 사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숨죽이고 움츠려 있던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서럽고 한스러운 감정들이 꼼지락꼼지락 살아나고 있었다. 눌러 놓은 것이 많았던 부인에게서 먼저 감정이 요동쳤다. 혼자 있을 때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도 하더니, 드디어는 집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보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붙이면 악에 받친 사람처럼 달려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남편도 아내의 분노를 받아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편 역시 참고 억누르며 살아온 터여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해묵은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자녀들이 중재를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만큼 묵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자녀들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할 시기도 이미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한 번 뱉기 시작하면 점점 상대의 허물과 약점을 건드리게 된다. 아문 듯 했던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이성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인 이혼이었다. 애증을 나눈 지난 시간들 가운데 증오심만 눈앞을 가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증오심이 빠져나가게 되면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노력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양가감정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쌓이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미운정 고운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모순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감정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다. 간이라도 내 줄듯하다가 금방 원수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두 양가감정 탓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양가감정은 극복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엔 없다. 어느 한쪽이 모든 짐을 지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도인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은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