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이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의 증득, 진정한 힐링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반야심경은 관음보살이 사리자에게 법을 설하는 독특한 형식의 경이다. 글자수는 비록 260자의 짧은 경이지만 반야부의 핵심경전이요 불교사상의 요체라고 볼 수 있다. 관음보살이 사리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은 공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하며 색은 물질을 뜻하고 수상행식은 정신의 작용을 망라해서 나타낸 말이다. 거기다 현장스님은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을 보태서 일체가 공임을 증득한 자에게는 그 어떤 고액도 없다는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야심경은 아마도 동아시아 불자들에게는 가장 많이 암송되는 경이고 불교의식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독송되는 경이다. 과거에는 한자로만 독송되다가 요즘은 불자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된 경을 암송하고 있다. 오온이 공함을 관하고 모든 고통의 바다를 건넜다는 가르침은 수승한 진리요 궁극적인 도피안이다.


오온이 공임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암송하지만 실제 그 진리를 통해서 일체의 고액을 건너가고 있는지 아니면 진리는 진리로 존재할 뿐 실제적인 삶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지는 알 수가 없다. 개개인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공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증득(證得)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현실의 생활 속에서 공을 구현하면서 살아야 공을 증득했다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오온의 공함을 설명하고 오온의 무상함을 파헤친다고 공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모르고 반야심경을 몰라도 공에 가깝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근세의 대 도인이신 수월스님(1855-1928, 경허선사의 상좌)은 머슴살이를 하다가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관음을 찬탄하는 다라니경을 통해서 득도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가장 크고 유명했던 선방은 금강산 마하연의 동국제일선원이었는데 그곳은 이 땅에서 으뜸가는 참선도량이었다. 수월은 서른여덟의 나이에 마하연의 최고 어른인 조실스님으로 추대된 분이지만 평생 법상에 올라간 적이 없다고 하며, 설법이라는 형태의 가르침을 펼친 적도 없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오로지 삶 속에서 공을 보여주신 분이다.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었고,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묵묵히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 분이다. 당시 마하연에는 눈 밝은 수행자들이 많아서 스님의 진상을 알아보고 세속으로 치면 한 참 나이가 어린 수월을 조실로 받들어 모셨던 것이다.


중국 후한 시대에 승조라는 스님이 계셨다. 지혜가 출중하고 눈 밝은 것이 널리 알려져서 왕의 호감을 샀다. 왕은 그를 곁에 두고 국사를 논하면서 지혜를 빌리고 싶었다. 그래서 큰 벼슬을 내리고는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승조는 일찍이 대승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있었으므로 권력의 무상과 부질없음을 간파하고 있었으니 그 부름에 응할 수가 없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죽음 말고는 달리 받을 것이 없는 시대 상황이어서 승조스님은 서른한 살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세속에서 보면 꽃다운 나이였지만 공의 세계에서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나이였다. 그가 남긴 임종게는 공의 실체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四大元無主) 오온은 원래 공이다(本來空)

칼날이 내 머리를 내리치겠지만(將頭臨白刃) 흡사 봄바람을 베는 것 같다.(恰似斬春風)

 

승조스님은 공의 세계로 공답게 사라져갔다. 공을 증득함에 있어서 마지막 관문은 역시 생사의 문제, 즉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오온이 공함을 말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삶이 보다 공에 가까워지기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는 진리를 아는 사람과 그 진리를 모르는 사람의 삶은 달라야 한다. 만상이 공임을 체득한 사람의 삶은 허무와 허망이라는 염세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보살의 길을 가게 된다.

 

불교의 진리는 모두가 마음을 정화하는 가르침이다. 참선을 오래하고 불교교학을 깊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은 그 힘으로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공사상은 불교의 핵심사상이요 힐링에 이르는 근원적인 가르침이지만 오온이 공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언행의 불일치로 인해 마음의 병을 키울 수가 있다.


우리들을 휘감고 있는 부질없는 욕심부터 살펴야 한다. 물질적 욕심과 정신적 욕심이 모두가 공하다고 했으니 우선 정신적인 욕심부터 살피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괴물은 물질에 대한 욕심보다 심리적 욕심이 훨씬 더 다양하고 강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분노, 질투, 무시당했다는 생각, 그리고 과거의 억울했던 일들을 잊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면 우선 그것부터 비우는 것이 좋다. 그것이 공으로 나아가는 실천적인 행동이 된다. 오온이 공함을 학문적으로 심오하게 이해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무엇인가를 비우고 내려놓을 때 우리는 부처님의 세계, 공의 세계로 한 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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