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무더위가 시작되던 7월 하순이었다. 금년에는 가뭄도 유난히 심해서 나뭇잎을 만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으스러질 듯 했다. 친구랑 화장장 앞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하얀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상주의 손에 들려져 나왔다. 올 때는 요란해도 갈 때는 조용했다. 영구차가 앞서고 친구랑 둘이서 그 뒤를 따랐다. 저승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배웅이다.
영구차는 고인이 자주 오르내렸던 동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더니 산촌 마을에 자리한 작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앞은 오십천의 지류이고 뒤는 팔각산 자락이 유순하게 펼쳐져 있다. 고인이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아서 아동들을 가르친 곳이다. 20대 초반, 푸른 꿈을 안고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던 초임학교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비록 한 줌 재로 남았지만 고인의 뜻에 따라 영구차는 이곳에 들린 것이다.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이다. 고향은 서로가 시골이었지만 그는 멋쟁이였다. 헤어스타일도 남달랐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겨울이면 바바리코트를 즐겨 입었고 목도리도 항상 길게 늘어뜨려 멋을 부리곤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춤도 격식에 맞게 잘 추었고 축구 실력도 뛰어났다. 축구시합에서 공을 몰고 나가면 상대 선수 대여섯은 예사로 채치고 상대방 골대 앞에 이르곤 했다.
우리는 유난히 술을 좋아했는데 막걸리를 마시면 주머니 사정도 잊은 채 마셔대곤 했다. 한 번은 절친 셋이서 술을 마셨는데 주머니를 모두 털어도 술값이 모자랐다. 고인은 잽싸게 집에 달려가더니 탁상시계를 허리춤에 차고 나타났다. 그것을 잡혀둘 심산이었지만 주인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입은 옷을 벗어 맡기고는 술집을 나올 수가 있었다. 친구들이 어려움에 쳐하면 그는 항상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절친 셋이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무전여행에 가까웠다. 세 사람은 포항과 영덕 그리고 의성에 살고 있었으므로 모이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만 합의를 했는데 중간지점인 안동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과 대관령 그리고 오대산 등산이었다. 안동역에서 만나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영주를 거쳐 다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경포대에 도착해서 야영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칫솔은 모두 가지고 왔는데 치약은 아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서로를 믿은 탓이라고나 할까. 하는 수 없이 여관에 투숙객처럼 슬며시 들어가서는 여관에 비치된 치약을 시용했고 해수욕장에서는 돈을 아끼느라 탈의실을 이용하지 않고 인파 속에서 적당히 둘러서서 수영복을 갈아입기도 했다. 대관령을 오르는 버스 안에서는 여자차장에게 애교(?)를 부려서 공짜로 버스를 타기도 했다. 그런 일은 고인이 된 친구가 항상 앞장서서 처리하곤 했다.
월정사 계곡에서 야영을 할 때는 치약이 없어서 비누로 양치를 했는데 며칠 동안 입안에서 비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가지고 온 약간의 돈은 모아서 저녁마다 막걸리를 마시는 일에 쓰곤 했다. 비를 맞으며 오대산 정상에 올랐던 날은 가지고 온 돈을 모두 털어서 막걸리를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가지고 온 반찬도, 차비할 돈도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오대산을 걸어 나오면서 민가에 들러서는 반찬을 얻고, 학교에 들러서는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차비를 구하기도 했는데 역시 고인이 된 친구가 나서서 해결했다. 남의 눈치보지 않고 용감하게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력이 돋보였던 친구였다.
졸업여행을 갔을 때이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술판이 벌어지고 가무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평소에도 주먹을 쓰는 한 학생과 과대표 사이에 시비가 붙어서 싸움판으로 이어졌다. 둘은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잠그고 싸웠다. 싸움이라기보다는 과대표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상황이었는데 과대표의 비명 소리가 크게 흘러나왔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주먹을 쓰는 친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때 고인이 된 친구가 맨주먹으로 이중 합판의 방문을 부수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싸움도 멈추게 되었다. 주먹을 쓰는 학생도 한풀이 꺾이고 말았다. 그는 의협심이 강했으며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교육에 대한 열정도 강해서 남 먼저 교감으로 교장으로 승진을 하기도 했다. 육십 줄에 들어서 검도를 배우더니 단증을 획득하고 장구도 배우고 플루트도 배우고 바이올린에 오카리나까지 연주했다. 나이를 잊은 채 배우려고 했고 인생을 알차고 멋있게 꾸려가던 친구였다. 노후를 대비해서는 도심 근교 한적한 곳에 땅을 구해서 친구들과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오두막도 짓고 아름다운 꿈을 가꾸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는 정년퇴임을 달포 정도 앞둔 어느 날, 그를 그만 데려 가고 말았다. 아까운 친구였다.
영구차는 고인의 고향 마을을 지나쳐서 선산으로 접어들었다. 선친의 묘소 옆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날은 무더워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조그마한 구덩이 속으로 오동나무 상자 하나가 내려앉는다. 보드라운 흙이 덮이고 그 위로 작은 상석이 하나 놓인다. 흙으로 돌아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평소에 고인이 즐겨 마시던 막걸리를 잔 가득히 붓고는 두 번 절을 올렸다. “나고 죽음이 모두 헛것이라 하여도 슬프기는 매 한 가지이다” 라던 춘원 이광수 선생의 산중일기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갔다. 허망하고 슬펐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무심하게 남은 이들을 비추고 있었다.
'천천히 읽는 명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못도 인정하기 나름 (0) | 2018.06.01 |
---|---|
심리치유, 무의식과 종자론 (0) | 2018.03.29 |
[천천히 읽는 명상]불일치, 정신장애의 원인 (0) | 2017.10.31 |
[천천히 읽는 명상]콤플렉스, 외면당한 또 하나의 나 (0) | 2017.08.18 |
[천천히 읽는 명상]필요한 가면, 페르조나 (1) | 2017.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