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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27 [가능한 선택]대학원 2017학년도 신입생모집, 44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2. 2016.10.27 [시선이 머문 자리]제7회 호스피스 세미나
  3. 2016.10.27 [마음이 머문 자리]홀가분함이 또 다른 시작에게 하는 말
  4. 2016.10.27 김정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5. 2016.10.27 [천천히 읽는 명상] 재약산 그림자
  6. 2016.08.12 [가능한 선택]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신입생 추가모집,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연수교육, 제7회 호스피스 세미나
  7. 2016.08.12 [시선이 머문 자리]열 한 명의 선생님과 함께 한 아름다운 여정
  8. 2016.08.12 [마음이 머문 자리]함께 행복해지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9. 2016.08.12 승혜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10. 2016.08.12 [천천히 읽는 명상]"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1
  11. 2016.06.13 [가능한 선택]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신입생모집, 43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제2회 교사 소진예방 연수교육,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연수교육 3
  12. 2016.06.13 [시선이 머문 자리]내면을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며...
  13. 2016.06.13 [마음이 머문 자리]제2회 꽃 보다 10대, 청소년 울산 팝.댄스 콘테스트 참가 소감
  14. 2016.06.13 능행스님을 만났습니다.
  15. 2016.06.13 [천천히 읽는 명상]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16. 2016.04.21 불교상담 프로그램 강사2급, 꽃보다 10대 안내드립니다~!
  17. 2016.04.21 2016년도 파랑지역아동센터 명상수업 첫번째 시간
  18. 2016.04.21 2016학년도 석사과정을 졸업하며...
  19. 2016.04.21 현진 스님을 만났습니다.
  20. 2016.04.21 내 중심의 삶 - 고통의 근원

[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7학년도(전기) 신입생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2017학년도(전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가능한 선택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택 둘 :) 44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길 없는 길, 나 데리고 살기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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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1014,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호스피스 팀원을 위한 소진예방>이라는 주제로 제7회 호스피스 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의사로서 느끼는 소진보바스기념병원 박진노 원장,

간호사 관점에서의 소진예방충남대학교병원 호스피스 전문간호사 최영심 간호사,

호스피스 기관 사회복지사의 직무 표준 및 소진감 예방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한수연 교수,

호스피스봉사자의 소진예방에 대한 단상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영적돌봄 임상수행팀 김수필 팀원,

영적돌봄가가 느끼는 소진과 예방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돌봄팀장 능인스님,

 

호스피스 활동가들이 느끼는 소진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대책마련을 위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는 매년 10, 호스피스의 날에 즈음하여 호스피스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번 <7회 호스피스세미나>에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졸업생이며, 현 인턴과정 강사이신 능인스님께서 협회의 영적돌봄 팀장으로서 영적돌봄가가 느끼는 소진과 예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셨으며, 석사 재학생 김수필 선생님께서 봉사자의 관점에서 호스피스봉사자의 소진예방에 대한 단상이란 주제로 이번 세미나에 함께 하였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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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홀가분함이 또 다른 시작에게 하는 말

 

능 인 (임상상담전문가 인턴과정 강사)

참으로 긴 여정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이란 시간 동안 늦은 공부를 시작하는 내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 석사는 꿈도 못 꾸고 학사라도 마치자라는 심정으로 시작한 공부다. 나는 공부에 갈증이 많은 사람이다. 워낙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공부가 무섭기도 했다. 공부를 참 못하는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나는 정말 공부 못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문득 공부가 하고 싶었다. 논리적으로 말도 하고 싶었고 출가자로서 당당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은사스님의 지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가 참 재밌었다.

혼자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참 재밌었던 것 같다. 그때서야 나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전문가 과정을 2년 동안 학부와 병행하면서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학부를 마친 후 곧바로 대학원 등록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세종시에서 언양까지 가는 거리와 공양주를 살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매우 힘든 석사과정을 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매번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많았고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알았는지 모를 정도로 2년이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5학기 즈음에 정신 차리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게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논문을 마무리 하고 호스피스 교육 프로그램 기획과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내 연구실 소임을 맡게 되면서 나에게 또 다른 역할이 주워졌다. “임상전문가 실습 강의를 하는 강사 소임을 맡게 되면서 또 다른 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첫 강의 때 마음이 참 이상했다.

설레이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마음이 찾아왔다. 그러나 늘 홀가분해지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 있었기에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강의에 임했다.

6년이란 긴 시간이 내게 인간다움을 가르쳐 줬다. 홀가분해지려고 하는 마음은 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역사이자 시작이다.

지금 무엇인가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미 당신은 지금 홀가분해졌다라고!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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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졸업생 김정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오후, 졸업생 김정옥 선님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선님은 왠지 더 따뜻했고 왠지 더 힘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어떤 변화들이 있으셨는지, 함께 귀기울여 볼까요?


 

작년 3월에 졸업을 하시고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집에서 좀 쉬었어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근 10년 동안 집을 등한시 한 것 같고, 가족들에게도 좀 미안했어요. 그리고 어쨌거나 이루고자 한 것을 성취한 후였기 때문에 좀 쉬고 싶었고요.


또 졸업하고 한 1년을 저 나름으로는 많은 아픔이 있었어요. 작년 여름부터 이번 봄까지? 너무너무 힘이 들었어요. 엄마가 편찮으시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이었고, 너무나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서 상처를 받으면서 좌절도 많이 했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숨어버렸어요. 완전 방콕했죠.

 


그런 아픔이 있으셨네요∙∙∙ 그 고비를 좀 넘기셨어요?


, 이제는 극복이 되었어요. 사실 이 인터뷰 한다는 것도 많이 주저되었지만 그 힘듦에 파묻혀서 언제까지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더 용기를 주었어요. 용기를 내려고요. 다시 당당히 마주서고 싶어요.


 

대학원에서 배움을 가지시면서 좋았던 점도 있으셨을 것이고, 또 힘들었던 부분들도 있으셨을 텐데요, 어떤 부분들이 있으셨나요?


좋았던 점이 많았지요. 우연찮게 호스피스교육을 받게 되면서 인연이 되었고, CPE공부를 하면서 대학원이 생겼고, 그렇게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었죠.


제게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쉽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참 즐거웠어요.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잘하든 못하든 신이 났던 것 같아요. 동료들과 얘기도 나누고 다른 사람 공부하는 모습도 보면서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고 집에서도 더 당당하게 지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집의 식구들도 또 많은 지지를 해 주었고요, 편안하게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호스피스 교육을 몇 년도에 받으셨죠?


10년 된 것 같아요. 25기였어요.

 


그때부터 온전히 이곳에서 학업을 하셨다는 거네요? 보통 우리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CPE도 상담이고, 10년의 시간동안 공부를 하신 건데, 님이 바로 전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준비단계를 아주 단단히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어요?


힘들었던 점은 주부로만 살다보니까 컴퓨터 작업이 늘 어려웠고, 발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했던 생각이 나요. 어려웠지만,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쯤 그 어려움을 극복해서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아 있어요. 제가 회피를 많이 했거든요. 제가 잘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숨어버리는 성향이 있어요. 많이 죄송하기도 하고, 제게는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이번에 졸업하고 혜진원 직무연수 소진예방프로그램에 보조 강사로 함께 해 주셨는데요, 그때의 소감이 궁금했어요. 듣고 싶습니다.


사실 그 제안은 저에게 슬럼프에서 나오기 위한 첫 번째 큰 용기가 되었어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뭐든지 거절은 하지 말자! 무조건 오케이다.’ 하고 마음을 먹은 찰나에 대학원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거침없이 오케이 했는데 그 후에 고민은 많이 했지. ‘내가 또 왜 이랬노하면서∙∙∙(웃음)


혜진원에 갈 때 까지는 그냥 원장스님 뒤에서 보조만 맞추면 되겠지? 손이 필요할 때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다행인 건 원래 일정이 있던 날 태풍 때문에 연기가 되어서 원장스님과 먼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얼마 전 부터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 안에서 계속 용기를 만들었어요. ‘무조건 긍정마인드로 가자!’ 아픈 마음에서 나와야 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 저에게 혜진원 직무연수는 첫 스타트였던 거죠. 참 보람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원장 스님께서 보조강사들은 앉아 있고,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선택해서 가라고 했잖아요? 그때 진짜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걱정스럽고(웃음) 안 오면 어떡하지? 하고요(웃음) 근데 인원이 다 차는 순간에 그런 걱정은 다 없어지고 그냥 편안히 그 순간에 머물 수 있었어요.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뭘 그렇게 잘 하려고 애쓰고 고민했나싶은 마음도 올라오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죠. 자신감이 생겼죠불안,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그 순간을 계기로 해서.


 

다음번에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함께 하겠노라 하셨잖아요? 그때는 이번처럼의 용기는 안 내도 되시겠네요?


그때는 이번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험인 것 같아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혜진원 선생님들이 참 젊으신 선생님들이셨잖아요? 선배님께는 어쩌면 딸과 같은?


그랬어요. 혜진원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딸아이의 마음을 알게 된 부분들도 있었어요. ‘이 또래는 이런 고민들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참 세상공부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남으셨나요?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이 젊은 선생님들이 그곳에서 24시간 엄마노릇 선생노릇 다 해야 하는데 너무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힘들면 안하고, 피하고 보는데 혜진원 선생님들을 보면서 참 뭐랄까. 겸손해 지더라고요. 저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안 보려 하고 배제시키고 피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 저의 모습을 많이 반성한 시간이었어요.


또 우리 딸이 목표, 보람된 일들을 찾고 싶어 하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게 뭔지, 많이 헤매더라고요. 근데 혜진원의 선생님들도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막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 눈물을 보면서 그 나이에는 충분히 그런 생각, 고민들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도 내 이야기와 딸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공감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의 아픔과 또 저의 힘듦을 함께 나누었고 함께 공감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을 먼저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실 수 있었어요?


저는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어렵지 않아요. 편안하게 잘하는 것 같아요.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쉽고, 그렇게 사람들과 만날 때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다가설 수 있는 것 같아요.

 


님께서 그렇게 편안히 자신을 드러내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더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선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 주는 힘이 있으시잖아요? 훌륭한 상담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뚜렷한 목표는 안 세웠지만,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어떻게든 사회에 환원할 계획입니다. 대학원 졸업할 때에도 공부했던 것을 나보다 아픈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동료들과 이야기했었고요.


그런데 제가 말을 잘 못하는 부분에 늘 주눅이 들어 있었거든요. 1년 반을 집에서 지내면서 고민을 하면서 누군가의 옆에 있음으로 편안한 마음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아픈 분들, 나보다 못한 분들과 늘 함께하려고 원을 세웠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출렁이는 바닷물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기쁘다가도 슬퍼지고, 좋기도 슬프기도 하고 하잖아요. 출렁이는 바다, 출렁이는 바닷물처럼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선님의 뒤를 이어 졸업을 하게 될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뭘 이야기하노. (웃음)


저는 그랬어요. 뭔가 제대로 갖추어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이 참 컸어요. 그래서 늘 갖추어 있지 않았기에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런 것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대로, 있는 그대로인 지금에서 최선을 다 하면 배우는 이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참 충만해 진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사실이 또 충만해졌고요. 후배님들께서도 그냥 있는 그대로에서 아낌없이 함께 나누는 삶을 산다면 참 보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들어서 배움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누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왔지 싶거든요.

 

 

김정옥 선님을 만나며 마음가득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진심어린 이야기로 함께 해주신 김정옥 선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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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제약산 그림자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겨울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 차례 눈이 내렸지만 대부분 녹아서 사라지고 산등성이 위로만 희끗희끗 보일 정도였다. 잠시 다녀왔지만 워낙 인상이 깊은 곳이어서 다시 찾아가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물론 스님께 내약도 받아둔 상태였다.

 

스님 내일 갈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

스님은 특유의 투박한 목소리로 오라고 하신다.

무얼 준비해 갈까요?”

그곳은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일용품을 등에 지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냥오라고 하신다.

곡차를 준비해 갈까요?”

거듭 물었더니 스님은 곡차는 두고 쌀을 조금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약간 걱정이 앞선다. ‘쌀이라?’ 가파른 산길을 2시간 정도 걸어야하는데 쌀을 지고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졸라가며 물었나? 후회스런 마음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좋은 도량이라는 사연을 듣고 처음 그곳을 찾아갔을 때, 마음에 드는 장뇌삼을 한 뿌리 가지고 갔다. 암자는 텅 비어 있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장뇌삼을 부처님께 올리고 참배를 하고 나오니 암자 뒤편 산위에 작업복을 입은 노인이 한 분 계셨다. 화목을 준비하시다가 사람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내려오시는 중이었다. 스님이었다. 인사를 드리니 먼 길을 오셨다면서 공양부터 하라고 하신다. 공양을 하면서 법당에 장뇌삼을 올려두었으니 마르기 전에 드시라고 했더니 스님께서는 귀한 건데 한 번에 먹느니 술을 담겠다고 하셨다. 산속 암자라 공양주는 없었지만 거처하시는 곳은 정갈하고 고즈넉했다. 그것이 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스님께 드릴 공양물을 준비하는 일은 즐거웠다. 쌀은 8킬로만 넣고 과일도 조금 넣고 간식으로 드실 과자도 넣고 김도 넣고 된장 끓일 때 넣는 멸치도 조금 넣었다. 배낭은 이미 빈틈이 없다. 약간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산 아래 내원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공양주 보살님을 찾아서 암자에 가는데 며칠 주차해 두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노스님 뵌 지 한 달은 넘었다면서 건강과 끼니를 걱정하신다. 그리고는 큰 봉지에 김장김치를 넣고 또 다른 밑반찬도 몇 가지 주시면서 갖다 드리라고 하신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지만 양손에 들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고 생각을 하니 좀 난감했다. 그러나 노스님이 은연중에 시키시는 좋은 수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경사는 심해지고 비탈길에는 눈까지 달라붙어 있으니 고행하듯이 걸어야했다. 암자는 제약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해발 1000m는 좋을 듯했다.

 

노스님은 군불을 넉넉히 지피고는 기다리고 계셨다. 계곡을 따라 들어오다가 마지막에 수직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겨울바람은 차갑고 세찼다. 암자 마당에 걸린 빨래가 응원하는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눈 쌓인 암자이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편했다. 저녁공양을 하면서 뜬금없이 물었다.

혼자 계시면 외롭지는 않습니까?”

외로울 때가 있지요.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채전을 손보거나 산에 올라 나무를 하지요. 그러고 나면 그런 마음은 사라집니다.”

순수한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노스님이 손수 만드신 음식은 참 맛있었다. 특히 된장찌개는 진미였다.

내가 공양주를 오래했어요. 경전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해산 큰 스님을 뫼시고 공양주도 몇 년을 했지요.”

 

해산스님!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연이 닿았던 분들은 스님을 진정한 도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공양주를 했다면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셨을 터이다. 해산스님의 행적이 궁금했다.

그 분은 상()이 없었지요.”

노스님의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상이 없는 분그것으로 해산스님의 평가는 충분했다. 아상(我相)이 없다면 자신을 비운 분이다. 나를 비움이 무아(無我)이다. 공양주를 하면서 해산스님의 진상(眞相)을 보신 것이다. ‘상이 없었다.’ 는 그 말씀은 해산스님의 모든 삶을 담고도 남았다. 거기에 말을 더 보태면 사족이요 췌사일 뿐이다.

 

노스님은 처소에 드시고 나는 살을 에는 듯한 밤바람을 맞으며 몇 폭 남짓한 암자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간간이 풍경소리가 물결처럼 곱게 퍼져나가고 동천(冬天)의 별들은 처연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도량석 소리에 눈을 떴다. 지장전 앞에서 스님은 천수경을 하셨다. 투박한 독경소리는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번뇌가 사라진 노스님의 독경은 삼라만상 두두물물 속으로 감로수처럼 스며들었다. 얼른 세수를 하고 법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지장전인데 노스님은 예불을 마치시고는 관음정근을 하셨다. 1시간 남짓 정근을 하시고 스님은 처소로 가시고 나는 혼자 법당에 앉았다.

 

우리네 삶은 온통 상을 만들고 키우고 지키고자 한다. 세월이 흘러 이미 지나간 자신의 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여잡고 버둥거리기도 한다. 해산 큰 스님을 모셨던 노스님께도 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손수 공양을 준비하고 빨래하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리면 그저 공양이나 하고 가라고 하시며 제약산의 산 그림자로 살고 계셨다.

 

하산 길의 눈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으나 마음은 훈훈했다. 진불암 노스님의 상이 없었지요.’ 라는 말씀은 긴 여운을 남기며 귓전을 맴돌았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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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2016학년도(후기)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신입생 추가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6학년도(후기)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신입생을 추가로 모집합니다.

가을학기 개강일은 93일입니다.

수행과 돌봄이 하나 된 실천학문의 메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가능한 선택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택 둘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기본과정 7

선택 셋 :) 7회 호스피스 세미나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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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2016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 <자기개발정신건강 자각명상>

 

열한명의 선생님과 함께 한 여정,

 

함께하여 기쁘고,

함께하여 웃고,

함께하여 행복했습니다.

 

마음의 시선이 머문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자기개발과 정신건강을 위한 자각명상> 2016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울산광역시교육청의 교육기부 협약에 따라 진행된 대학원의 사회공헌사업으로, 726,272일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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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함께 행복해지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석사과정 김수필(1학기)

 

 

생사의 장 43기 불교호스피스교육 조화로운 삶, 그리고 시작(調作)’67일 동안 스텝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작년 8월에 생사의 장 41기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위드(임상수행)팀으로 활동한지 1년도 안된 나에게 스텝의 자리는 선배님들과의 귀중한 만남과 의식이 성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교육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배려와 마음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려야하는 섬세함도 요구되었기에 긴장과 여유로움을 병행하는 순발력도 필요하였습니다.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저녁마다 진행된 회의와 임시회의는 분석과 토론으로 청량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의견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양 때마다 제공되는 시각, 미각, 후각의 즐거움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이었습니다. 그 날 그 날의 프로그램에 맞는 곡 선정으로 청각의 감성을 자극하는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삶의 괴로움을 지배했던 분노, 슬픔, 우울, 화의 감정을 표현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가며 기쁨에 찬 교육생들을 보며 저 또한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웰다잉은 생과 사가 다르지 않으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나침판의 역할임을 되새겼습니다.

41기 때 듣지 못했던 강의를 듣는 배움의 즐거움과 당시에는 감흥 없던 프로그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체험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육기간동안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교육생들을 감동시키는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생사의 장 호스피스교육이 22년 동안 이어져 온 원동력 또한 선배님과 봉사자들의 조언과 격려, 열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육만이 가진 절대적인 매력임이 분명합니다.

나에겐 온전히 주어진 이번 일주일은 긴장감, 책임감, 설레임 속에서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웃었고, 많이 안아주고, 교육생들을 위해 잘 쓰이는 내가 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스텝으로 활동할 기회를 주신 원장스님과 능인스님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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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승혜신 선님을 만났습니다.

 

누굴 만나면 좋을까? 이번에 떠오른 얼굴은 대학원생 승혜신 선님이었습니다. 4학기를 마치고 이제 5학기 인턴이 되시는 선, 4학기를 등록하면서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셨던 선님께 오늘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장스님께서 권유를 해 주셨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 보라고요. 명상심리대학원이 있다는 건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불교와 명상까지는 관심이 가는데, ‘심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서 선뜻 선택이 되질 않았어요.


제가 이곳에 와서 불교를 처음 만났거든요. 스님들과 가깝게 생활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러면서 불교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권유를 해 주셔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불교와 명상에 대해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살아가면서 영성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 스님이나, 틱낫한 스님을 보면서 뭔가 온전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모습들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죠.


심리에 대해서는 제가 거부감이 좀 커요.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좀 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기쁨, 희망, 설렘 그런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과 맥락이 비슷한데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과정 자체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잖아요. 제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업이다 보니까 공부가 그런 부분들에 접목이 되면서 제 자신을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의 설렘? 그런 것들이 다 같이 있었어요.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동안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어느덧 임상상담전문가과정 5학기 인턴과정을 앞두고 계신데요. 인턴과정을 앞둔 선배님의 지금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웃음)성실하다고요?


사실 일을 하면서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이번 4학기 같은 경우에는 많이 힘들었고요. 처음 입학할 때에는 몰랐는데, 2~3학기 지나면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주말이면 산에도 다니고 하면서 나름 몸 관리 한다고 노력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그것도 잘 되어 지지가 않았어요.

이런 몸으로 4학기를 하게 되면 건강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휴학을 고민했던 거예요. 공부가 하기 싫거나, 기대가 안 채워지거나 했던 게 결코 아니었어요.


4학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충실한 학생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명상수업 시간에 뻔뻔하게 코골며 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요.(웃음) 너무 엉터리로 4학기를 하지 않았나, 했다기보다 버텨왔다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4학기 한 한기를 너무 엉망으로 해서 교수님들께도, 후배들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서 성실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에 웃으셨구나. 저희는 결석을 한 번도 안 하시기에(웃음)


다니기로 한 이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오긴 와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힘드니까 한편으론 수업시간에라도 휴식을 가져가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도 함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마음으로 4학기 수업을 했어요.(웃음)

 

 

5학기 인턴 수업은 주무실 수가 없는 수업일 텐데, 못 주무셔서 못 오시는 건 아니시겠죠?(웃음)


∙∙∙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욕심이 나는 학기예요. 이번 인턴과정에 함께 할 선배님들과도 좋은 도반이었거든요. 꼭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 과정 동안 과연 나 자신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제가 뭘 하면 대충하는 성격이 못 돼요.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는 성격인데, 이렇게 대충 흘러가는 시간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아깝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그래요.


 

학업을 하시면서 이번 4학기가 선배님께 가장 큰 고비였던 건가요?


그렇죠.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가 되더라고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못 가지고 계속 피로가 누적되니까∙∙∙.


 

그럼 그 고비가 아직 극복이 안 되신 건가요?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학기가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일과 생활 모든 것에서 소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도 몸 관리를 잘해서 마무리까지 잘해봐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5학기 과정을 마치고 쉬어야 극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그런 고비들 속에서도 대학원과 함께 4학기를 보내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기말 세미나 끝나고 재학생들끼리 같이 식사하고 차 한 잔 하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이 되잖아요? 그때 누구는 어떻게 변했고 누구는 이렇게 변했고 누구는 처음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는 그런 서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선후배 간의 교감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동기가 없잖아요. 처음 입학해서 후배로 있을 때에는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 저 선생님은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진짜 이렇게 변화하셨구나.’ 하는 느낌들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거구나. 마음공부들을 하니까 변화들이 생겨나는구나. 하면서 서로 신기해하고, 우리가 이렇게 자랐구나 하면서 확인해 주고, 그런 자리가 굉장히 좋았는데, 지금은 함께 공부했던 선배님들은 안 계시고, 후배들과는 함께 한 시간이 짧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되지 않고∙∙∙. 동기가 없는 저에게는 저의 변화를 발견해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쉬움으로 남아요.

 


이번 인턴과정에 선배님들과 함께 하시면서 본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헤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거니까 굉장히 새로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했던 선배님들이니까∙∙∙. 기대가 돼요.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인데∙∙∙. 저에게 10년 후는 없습니다.(웃음)

오늘 하루를 그저 살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섬진~ 제 첫 손주 섬진이가 최고의 선물이예요. 섬진아 기뻐해 줘라~^^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하늘이요. 늘 변화무쌍하고, 수시로 바뀌는 하늘.

마음도 항상 변화하고 흘러가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학업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적 성장에 있어서 공부를 통한 배움보다도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워가는 게 굉장히 많거든요. 그 속에서 자기 성장도 되고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운 선배예요. 제 위에 선배님들은 수업 분위기도 잘 이끌어 주시고 힘이 많이 되어주었는데 저는 달랑 혼자인 선배가 그런 역할을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이 있어요. 영향력 없는 선배라서.

 

자신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배움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후배들을 향한 승혜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진들도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인터뷰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질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신 승혜신 선, 진솔한 이야기로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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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 번째]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불교대학을 다니는 보살님이 있었다.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고 항상 꼿꼿하게 앉아서 열심히 듣고 기록하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이다. 어느 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다음 생에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얼굴은 맑고 순진하게 보였지만 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다.

. 태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되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사는 것이 고달파서요. 신랑을 다시 만나기도 싫고, 그냥 안 태어나고 싶어요.” 괴롭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깊이 다짐을 하고 또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될까요?” 했다. 보살님이 겪어 온 삶을 알 수는 없지만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느낄 수가 있었다. 태어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노력만으로는 아마도 윤회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보면 하나의 씨앗이요, 나누어 보면 하나의 씨앗 속에 무수한 요인들 즉 작은 씨앗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범부의 안목으로는 씨앗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유식학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무의식의 설명과 일치한다. 무의식이라는 것도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묘하고 광대하게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 역시 무의식의 개념과 일치한다. 씨앗의 존재와 작용 그리고 성질은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근본 마음이며 찰나찰나 자신을 지배하는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씨앗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한다고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끊겠다는 보살님의 바램은 옳다고 해도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씨앗은 스스로 움직이는 힘, 즉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 안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은 씨앗은 죽지 않는다. 워낙 미세하고 고요하게 작용함으로 마치 없는 듯이, 죽은 듯이 보일 뿐이다.

해외 토픽에 실린 내용이다. 3천 년이 지난 무덤을 발굴하다가 무덤 안에서 그릇에 담긴 연꽃 씨앗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의 호기심은 끝간 데를 모른다. 씨앗을 정성껏 다루어 심었더니 싹이 낫다고 한다. 3천 년이 흘렀지만 씨앗은 죽지 않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더니 살아난 것이다. 업보나 인연은 그렇게 움직인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나면 스스로 살아나게 된다. 노 보살님이 간절하게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이 트고 생명은 이어지게 된다.

보살님! 봄에 살아있는 씨앗을 땅에 묻었다고 합시다. 씨앗이 스스로 싹이 나길 원한다고 싹이 나고 원하지 않는다고 싹이 나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비가 오고 따뜻하면 무조건 싹이 나지요.”하고 대답했다. 윤회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씨앗은 그 자신의 조건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윤회는 본인이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소멸되어야만 멈추게 된다.

마음의 씨앗을 소멸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에 걸리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대혜종고 선사께서 서장에서 밝히신 애응지물(礙膺之物)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라 해도 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해도 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이다. 미해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일이다.

태어나지 않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또 다른 원을 만들고 강력한 정동적(情動的) 집착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이 생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연들을 조용히 내려놓겠다는 태도가 윤회를 벗어나는 바른 길이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으면 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며 걸림이 없으면 마음의 움직임도 멈추게 된다. 그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다. 불교의 궁극은 그렇게도 설명된다.

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노 보살님의 기도는 방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준 여러 인연들을 자비로서 용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흔적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자 중도이며 또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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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1)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6학년도(후기) 신입생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6학년도(후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수행과 돌봄이 하나 된 실천학문의 메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가능한 선택을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해주세요.^^

 

                 2) 43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화로운 삶, 그리고 시(調作)”

 

                 43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조화로운 삶, 그리고 시작(調作)" 교육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만나는 오롯한 선물 같은 시간이 되실 거예요. 기꺼이 경험해 보시기를, 기꺼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똑똑, 마음을 두드려 전합니다.

                 어서오세요.^^

                (45명 선착순 마감입니다. 접수를 서둘러주세요~**)

 

  

                  3) 제2회 교사 소진예방 연수교육 -자기개발과 정신건강을 위한 자각명상-

               본 교사 소진예방 연수교육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교육기부 협약에 따라

               사회공헌사업으로 진행됩니다.

 

                4)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기본과정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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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611일과 12,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공개특강

불교상담프로그램 강사2급 자격과정 1차 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박찬욱 교수님과 13명의 재학생, 외부청강생이 함께 합니다.

 

,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불교집단상담 프로그램을 마음으로 몸으로 체득하여 갑니다.

다가오는 2차 교육이 기다려집니다.^^

 

 

**<불교상담프로그램 강사2급 자격과정 공개특강>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2년에 한번 박찬욱교수님(밝은사람들연구소장,한국불교상담학회 부회장 겸 슈퍼바이저)을 모시고 진행되고 있으며 30시간 교육을 모두 이수한 학생들은 시험을 치룬 후 한국불교상담학회에서 발급되는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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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2회 꽃 보다 10, 청소년 울산 팝.댄스 콘테스트 참가 소감

 

 

최우수팀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 댄스동아리 M.Y.B

2학년 이석화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댄스동아리 M.Y.B. 으로 이번 2회 꽃 보다 10, 청소년 울산 팝 댄스 콘테스트에 참가하며 느낀 점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우선 우리 동아리는 현재 18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을 자랑하는 여상의 자랑거리이자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 2015년 신입생으로 오리엔테이션 때 동아리 홍보를 위해 무대 위로 올라온 언니들을 보고 우와 멋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여자 댄스동아리 팀과 다르게 힘이 넘치고 파워가 있고 절제된 춤이 너무나도 새로운 느낌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느덧 3학년 언니들은 졸업을 준비했고, 수빈이와 나는 앞으로 새로 들어 올 1학년을 가르치기 위한 안무를 연습했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2~3학년이 된 우리는 신입생 모집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출 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당일 날 생각보다 신입생들의 반응이 너무너무 좋았다. 오디션 신청 종이만 약 40여장이 나갔다. 오디션 당일은 절반만 왔지만 모두 다 실력이 좋았다. 그렇게 오디션의 결과가 발표되고, 1년 전에 내가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나와 수빈이는 신입생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1학년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했던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체육대회 때 한곡을 선보이고 그 곡으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개최하는 2회 꽃 보다 10, 청소년 울산 팝 댄스 콘테스트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건 어디서 하는 대회지? 마하보디가 어디지? 상북까지 가야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1시간여 리무진버스를 타고 ktx역에 도착했을 때 역까지 배웅하러 나오신 분들을 접하고는 참 친절하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느낌은 대회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스님들을 비롯하여 스리랑카 분들, 그리고 진행자분들의 표정이 너무 밝으시고, 친절함과 자상함이 몸에 배여 있으신 걸 보며 ... 대회에 참가하길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간식도 챙겨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려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다.

사실 예선을 통과한 10팀의 본선진출자들이긴 했지만, 워낙 많은 대회에서 입상한 우리팀 인지라 다른 팀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당연히 상위권 입상을 예상하던 중, 한 팀 한 팀 경연이 진행될 때마다 정말 입이 쩍쩍 벌어질 정도로 모든 팀의 실력이 뛰어났고, 경연을 마칠 즈음 우리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부처님 오신 날에 이렇게 즐겁고 신나는 잔치 마당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다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콘테스트의 마지막 순서인 카이크루의 축하 공연을 신나게 즐겼다.

드디어 팀 순위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비젼상의 명단이 호명될 때마다 힘차게 박수를 치며 한편으론 간을 졸였다. 그리고 최종 3위권 내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들은 너무 기뻐서 열광했다. 그렇게 최우수상이 발표되었다. 교육감께서 직접 시상해주셔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1학년은 1학년대로, 2~3학년은 2~3학년대로 그동안의 어려움과 고생들, 온갖 생각들이 밀려와 우리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다.

박기숙 선생님도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다음날은 스승의 날, 지도교사이신 박기숙 선생님께서 너무 좋아하셔서 좋은 선물이 된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대회 장소를 떠날 때까지 간식을 챙겨주시고, 축하의 말씀을 건네주신 마하보디 명상심리대학원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이번 대회를 발판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해서 울산 최고, 아니 더 나아가 전국 최고의 여고 댄스동아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감상문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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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웹진 마음 열 번째 인터뷰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설립자이자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이신 능행스님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능행스님을 만났습니다.

 

 

 

여름의 더위가 짙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웹진 10호를 특집호로 준비하며 우리 마음 편집진들은 능행스님을 초대했습니다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런 거룩한 초대가 뭔가 부담스럽고 나를 긴장되게 하네∙∙∙하시며 웃으시는 스님께 마음이 묻습니다.

 


스님, 19883월 봉사활동으로 시작해서 2000년 독립형 호스피스시설 정토마을을 개원하고 운영하시다가 2004년 공식적으로 재단이 설립되어 현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설립 계기는 스님의 에세이와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08년 설립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스님께서 대학원을 설립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환자들을 계속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 걸릴까. 왜 이 불치의 병은 우리로 하여금 이 많은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게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을 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 마음이 병드니까 몸에 병이 드는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몸이 병이 들어서 마음이 병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마음이 병들어서 몸에 병이 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걸 알고 고민했어. ‘마음과 몸이 함께 아픈 이 사람들을 어떻게 케어 해 주어야 할까? 몸도 마음도 덜 고통스럽게 머물다 가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때 생각한 것이 병원을 먼저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간절했지. 그런 전문 인력 없이는 병원을 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마음에는 계속 , 교육사업을 먼저 시작해야해.’ 그런 생각을 했지.


그래서 처음 법인을 설립할 당시에도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하겠다고 명시해 놓았던 거야. 언양에 병원 지을 땅을 사고 내려왔을 때도 의료사업보다 교육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대학원 대학교를 지어야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지.


근데 땅을 산 2005년도 그 해에, <섭섭하게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책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2007년까지 책이 엄청난 수로 팔려나갔고, 그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걸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래 이 돈으로 교육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대학교를 짓기 이전에 교육원을 통해 충분히 임상경험을 해 보고 경험이 축적 되었을 때에 학교를 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추진을 시작했지.


그때 반대가 엄청 많았어요. 그 돈들이 병원 짓는 곳에 다 사용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교육원을 짓는다 하니까∙∙∙.

엄청나게 반대도 많았고 장애도 많았지만, 책 판매 된 돈으로 밀어 붙였고, 그렇게 2007년도에 교육원을 개원하고, 2008년에는 대학원 대학교를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계를 한번 잡아보자 하고 지금의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문을 열었지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특성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의 실천적 성격일 텐데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정체성 안에서 보면 참선도 있고, 행선도 있고, 좌선도 있고, 명상도 있고, 염불선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은 활선이야. 활선, 활동을 통해서 수행을 하는 거지.


사회의 역할로 본다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교육원을 통해서 배출된 여러 학생들이 질병과 죽음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하나의 빛, 등불이 되는 거예요. 어둡고 아픈 곳에서 치유의 등불이 될 것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되어야 해요.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가꾸어 가요. 아픈 곳에는 치유의 빛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는 밝은 햇빛으로, 돌봄의 빛으로, 회복의 빛으로, 용서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이렇게 다양한 빛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대학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까지처럼 위덕대학교와 협력해서 전문성을 높여가고, 때가 되면 학교로서의 구색을 갖추어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지금 우리나라에 대학원 대학이 굉장히 많다는데, 일반적인 대학원 대학교를 만드는 거라면 우리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세상의 고통에 접근해서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들어주고, 그 아픔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훈련하는 학교로서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스님 욕심인데, 우리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막판에 가면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믿어요.

 

 

스님, 모금을 위해 지구를 열 바퀴 돌고, 28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고비의 순간도 많으셨을 텐데요. 스님께서 정말 힘드셨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힘든 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순간이냐고 물으면 선별을 하기가 어려워(웃음) 종류를 얘기를 해야 해.(웃음)


 

인간적인 힘듦∙∙∙? 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모금만 할 때에도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한 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병원을 짓기 시작할 때 두려움이 무척 컸어요. 경험이 없는 가운데서도 병원을 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부담감, 이게 참 많이 스님에게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을 의논하거나 함께 고민할 멘토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 오직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 나가야 했던 그 5년의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차들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리고 그 가운데에 스님이 서 있는 듯 했어요. 인간들의 관계라든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겠지. 관계, 그 속에서의 갈등, 또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들과 시행착오들. 길이 있기는 한데 보이지 않는, 걸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 없던 그 5년 동안이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 두려우셨어요?

 

두렵기도 하고, 책임감 때문에 압박감도 엄청 심하고∙∙∙. 완성을 해야 하는데 이걸 완성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제일 큰 것은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이 서지 않는 거였어요. 길을 만들어서 찾아가야 하는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지. 길은 분명 있는데, 어느 길로 가야 출입구가 나올지 모르는 거야. 출입구를 빨리 만나기 위해서 아주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지. 많이 힘들었어.


돈을 많이 가지고 병원을 지은 것도 아니었고... 18억 가지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다 짓고 나니 들어간 돈이 120억이었으니까.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어.(웃음)


건축 현장이란 곳은 다른 현장하고 또 많이 달라. 특별함이 있어. 아주 대단한 전쟁터와 같았어. 내가 전쟁이라도 경험을 해 봤으면 잘 헤쳐 나갔을 텐데 한 번도 경험이 없어가지고.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것이 나에게는 계속 이슈였고, 두려움이었어.


우리가 터널에 갇히면 어떻게 될까? 차들은 라이트도 켜지 않고 무작위로 질주를 하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서 차에 치여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가야 하는데 길은 안 보이고 이럴 때.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이 되어 있었네. 병원을 짓는 5년 동안.


그런 중에도 바깥에 다른 일들은 다 헤쳐 나가야 했다는 거야. 관계, , ,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 5년이 최고였어. 고통의 절정의 최고. 그런 시간이 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 참 길긴 하지.

 

 

극복이 되셨어요? 그 두려움이?

 

(웃음) 극복이 되었다가 다시 재발이 돼서 작년에 홍역을 앓았지.

올해 2월부터는 다시 떨쳐내고 그런 고통으로부터의 에너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고, 지금은 조금 색다른 에너지로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병원을 짓는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극복이 스님 스스로 된 것인지, 아니면 극복의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방법이 있었어.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방법이 무어냐 하면 내가 나를 돌아보는 거였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어떤 불안을 가지고 이 일을 했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나와 함께 부대끼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했지. 수용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어.


또 더 높은 차원에서는 이것이 이생이나 저생이나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내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받는 과보라고 생각했지. 과보. ‘마땅히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했구나.’ 하고 나의 경험들을 수용했어요. 그렇게 수용하고 나니까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예요. 누가 잘 하고 못하고 그런 건 다 없어지고 , 내가 경험할 것을 경험했구나. 문을 잘 찾아 나왔으니까 잘 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들이니 내가 다 품어 안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용하고 품어 안고 극복했지.

 


스님,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 뭐였을까?

최고의 선물은 나와 함께 호흡하고 발을 맞춘 동료들이 최고의 선물 같아. 그 이상의 선물은 없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남기고 싶은 선물? 모두가 협력하고 협동해서 이 지구의 모든 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런 중심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동력을 만들어 두고 가고 싶어.

 


스님, 우리 웹진 마음의 공통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에는 생각들이 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대학원의 졸업한 동문들, 재학생, 예비 신입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빛이 되어라. 이 세상에 빛이 되어라.(^^)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던 능행스님과의 인터뷰 시간이 저희 편집진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의 초대에 응해주신 능행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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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듯이 마음의 병도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 어릴 때의 왜곡된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주로 정신분석적 견해이고,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배워서 즉 학습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행동주의적 견해이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은 주로 인지치료적 입장인데 모든 이론이 일정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 장애의 전반적인 면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어려우면 즉 부정적 사건이 자신에게 닥치면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사는 것이 한가롭고 여유가 생겨서 정신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살아 온 부부가 있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부부 다툼이 있었다. 금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폭행을 주고받아 진단서를 끊고 경찰서를 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삼키거나 참으면서 가정은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고 빚만 가득 지게 되더니 드디어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손으로 살던 곳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낯선 곳으로 가서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부부는 돈을 모으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왔다.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자녀들이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싶으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고 볼 일이었다.

부모의 힘든 생활을 함께 겪으며 자란 탓에 아이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첫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다가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여 또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부가 시작한 사업은 때맞춰 점점 번창해 나갔다. 드디어 빚도 모두 청산하였고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오뚝이 같이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인간승리의 사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숨죽이고 움츠려 있던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서럽고 한스러운 감정들이 꼼지락꼼지락 살아나고 있었다. 눌러 놓은 것이 많았던 부인에게서 먼저 감정이 요동쳤다. 혼자 있을 때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도 하더니, 드디어는 집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보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붙이면 악에 받친 사람처럼 달려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남편도 아내의 분노를 받아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편 역시 참고 억누르며 살아온 터여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해묵은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자녀들이 중재를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만큼 묵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자녀들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할 시기도 이미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한 번 뱉기 시작하면 점점 상대의 허물과 약점을 건드리게 된다. 아문 듯 했던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이성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인 이혼이었다. 애증을 나눈 지난 시간들 가운데 증오심만 눈앞을 가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증오심이 빠져나가게 되면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노력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양가감정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쌓이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미운정 고운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모순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감정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다. 간이라도 내 줄듯하다가 금방 원수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두 양가감정 탓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양가감정은 극복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엔 없다. 어느 한쪽이 모든 짐을 지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도인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은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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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2016학년도 불교상담 프로그램 강사2급 과정 안내

 

 

 

 불교상담 프로그램 강사2급 과정 안내드립니다.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구조화된 불교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체험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전 과정 30시간 중 80% 이상 이수시에는 수료증이 발급되고,

전 과정 30시간 이수 후 자격시험에 응시, 이에 합격할 시에는 자격증이 발급됩니다.^^

 

 

 2회 청소년 울산 팝댄스 콘테스트 꽃보다 10

 

 

 

 매년 부처님오신날에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지지하고자 울산지역 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울산 팝댄스 콘테스트 꽃보다 10를 개최합니다. 소통열림치유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역사회와 함께 청소년과 기성세대와의 소통, 공감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꽃보다 10행사에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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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2016년도 310,

도우스님의 지도 아래 파랑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의

첫 명상수업이 있었습니다.

 

명상수업시간에 불리게 될 이름을 정하고,

차를 마시며 알아차림 명상도 하고,

마무리로 자애명상을 하며 1시간의 수업은 끝이 났습니다.

 

설렜던 오늘의 만남이

앞으로의 명상수업을 통해

도우스님과 파랑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의

행복한 배움의 시간들이 되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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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정미자(임상상담전문가과정 졸업생)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3년 봄.

청바지에 배낭하나 메고 기차에 오르며 처음 느껴본 벅찬 설레임이..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누구의 딸,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수많은 수식어 속에서 잃어버렸던 정미자가 홀로 그렇게 길을 떠났습니다.

추운 새벽에 일어나 뚝방길을 30분 달려 지하철로 대전역에 40분이 걸려 도착하고, 가락국수로 아침을 먹고, 다시 울산역까지 그리고 승용차로 정토마을로 이어진 여정을 매주 2년 반을 쉼 없이 오고 간 지난 일들이 지금 생각하면 불가사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스스로를 끌어당긴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마치 예정된 일처럼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임상상담교육과 실습병동이 함께 갖추어진 환경, 그것도 불법을 실현하는 수행의 장으로 뜻을 펼치시는 능행스님과 그 일을 함께 나누며 공동체가 되어 나아가는 교육원 별이 부장님과 식구들이 탄탄하게 지지해주고 있었지요.

제가 평소 궁금하고 배우고 싶었던 모든 과목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은 특혜를 가졌습니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으며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강의실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했던 교수님들, 도반 스님들과 선배님들, 동료 후배들의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멋진 선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론으로만 알았던 부처님 가르침을 지금 여기 이 시점에 가장 고통 받고 아파하는 임상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도록 풀어내는 모든 제 방편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온 것이 자신의 성찰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과정에서 불법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삶과 역사에 대한 철저한 직면을 통해 내면이 성장할 때 다른 이들에 대해 가슴이 열린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실천행이 없이는 수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그래도 매주 토요일을 아내의 빈자리를 묵묵히 넘기면서 물심으로 응원해준 남편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자주 못가 봬도 이해하시고 염려와 응원을 보내준 친정엄마, 시부모님께도 따듯한 마음을 전합니다.

 

 향후 조금은 더디고 느려도 마하보디 명상심리대학원이 명실상부한 심신통합치유 전인교육의 산실이 되어 대내외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까운 곳에서부터 배운 것을 실천하며 그 뜻에 동참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바른 회향이라 여겨집니다.

 

모든 선연들의 건강과 편안을 기원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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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졸업생 현진 스님을 만났습니다.

 

올봄 석사 과정을 졸업하신 현진 스님을 만났습니다서둘러서 나선 길이었지만 현진 스님이 계신 대구까지는 2시간 남짓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3년이라는 시간동안 배움을 위해 쉽지 않은 이 길을 걸어오신 현진 스님의 마음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 첫 마음은 어떠셨나요?


진짜 오래됐는데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능행스님 책인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를 현대불교신문 광고를 보고 제가 구매를 했었어요. 그걸 읽는 순간에 , 이런 일을 하시는 분도 계셨나?’ 하고 너무 놀라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포교나 자비를 베풀고 싶다, 봉사를 하고 싶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던 찰나에 그러한 행을 하고 계신 분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이것이 실체일까?’, ‘책을 만들기 위해서 포장된 것은 아닐까?’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도 나고 그게 공감도 되면서 나도 이걸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걸 배워서 내가 우리 불자님들 또는 우리 신도들에게 베풀어줘도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위덕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호스피스교육을 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거기에 마하보디라고 적힌 걸 보게 됐어요. 이거 저번에 책에서 봤던 거기네 하고 있는데 담당 교수님이신 장익 교수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스님께서 하시는데 프로그램도 상당히 좋고 교수님도 한 번씩 강의를 가신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호스피스 32기로 등록을 해서 그 때 교육을 받았어요. 정말로 속된 표현으로 한 방 맞았죠. 이런 체험이 있구나 하고요. 프로그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체로 가다보니깐 고스란히 저한테로 온 거죠. 그 뒤로 봉사도 가고 꽃동네에도 가서 몸으로 체험을 했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을 할 시점이 왔고 위덕대에 대학원 신청을 했어요. 어느 날 능행스님께서 학교로 오셨는데 학교 성적 등을 보시더니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으로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지금에 와서 늦게 불교 공부만 해가지고 내가 교수가 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가고 베풀 수 있는 그런 쪽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님께서 권해줄 때 이것이 인연이 아닌가 싶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일선에서 쓸 수 있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결정을 하고는 마하보디와 인연이 맺게 된 거예요.


 

스님과의 인연이 32기 호스피스교육을 통해서인지 알았는데 신문광고를 통해서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스님께서 입학하셨을 때 활동과 접목하기 위해서 사실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대학원을 선택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깐 내가 가서 실존적인 것을 많이 배우겠구나 이런 기대가 많이 있었죠. 두려움, 막연함도 있었지만 성향이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새로운 분들을 알아간다는 기대감도 있었어요. 공부에 대해서도 학문적인 불교공부를 하면서 불교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부분을 마하보디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낯선 분야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환자들을 만날 때 어색함이라든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 대한 저의 마음자세가 벌써 내 마음속에서 이미 그분들을 판단하고 있는 마음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낯섦과 두려움에 주저주저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들이 많이 있구나를 느꼈죠.


그리고 모든 스케줄을 수업일정에 맞춰서 조율을 했는데 갑자기 하루나 이틀 전에 학과 일정이 변경된다거나 같은 과목의 수업이 연이어 있지 않고 격주제로 진행되면서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는 거예요. 외국인쉼터일도 해야 하고 운흥사 주지 소임도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간간히 공연을 가거나 다른 절에 행사를 가거나 스리랑카 국제 행사를 가거나 하다보니깐 사실은 마음은 공부에 대한 열망이 많이 있었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해소가 안 되는 거예요. 공부라는 것이 되씹고 곱씹어야 내 것이 되는데 학교에서 열심히 하다가 막상 운전대를 잡고 2시간이 걸려 절에 돌아가면 현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지금도 있어요. 뭘 배웠지,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주지 소임이라는 것을 다 벗어 놓고 앉아서 알아차림만 하고 공부만 하고 싶은데 왜 현실이 주지도 해야 하고,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주변에 이것저것도 신경 써야 하고, 왜 이런 데에 매달려서 살아야 할까 정말 공부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운적도 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이겨내는 것 또한 내 공부가 아니었나 싶어요.


 

마하보디 명상심리대학원에 오시는 스님들의 성향은 공부에 대한 기대감과 공부 양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 또한 학생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인데 스님의 주변에 벌어지는 환경들로 인해 기대했던 것만큼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업을 계속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이 있을까요?


1학기 때 한 방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1박을 했을 때인데 능인스님, 상진스님과 한 방에서 학교 기숙사같이 도란도란 수다도 떨다가 몰래 나가서 야식도 먹고 한 것이 여고시절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초반에 그런 재미가 쏠쏠하게 있었어요. 공부 외적인 것으로는 체계가 1박을 하면서 머물렀던 것이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거기서 정도 쌓이고 돈독해지면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고요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하다보면 공부에도 집중되지 않는데 그런 부분이 충족되다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학교라는 틀에 모여 있으니 내가 출가를 늦게 했든지 그 분이 빨리 했든지 이런 거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사실 그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호스피스 교육이 있었어요. 교육 때 이미 만났었고 그러한 끈이 연결되어 있어 편안할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저도 낯설어서 되게 어색했죠.


공부에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도 중요해요. 탄호 스님 같은 경우에도 스님이 하면 나도 할게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해보자 그렇게 했던 부분들이 그 분도 나를 잘 의지했고 나도 그 분을 의지했고 서로 부둥켜 안아보기도 하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마하보디에서 만들어 준 거 같아요, 다른 데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마음대로 남을 안아볼 수 있는 것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 이예요. 호스피스, 임상, MBSR, 미술치료를 거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들도 정말 좋았어요. 박동길 선생님도 처음에는 너무 딱딱하고 경찰 같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 순간에 미소가 번지면서 허물없이 스님 참 예쁘십니다.” 라고 농담도 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을 흘렸던 탄호 스님도 지금은 웃으면서 농담도 하고 얼굴빛 자체가 달라졌어요. 이게 교육의 힘이고 우리 멤버의 힘이라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관계를 말씀하세요.

공부 전에 관계다. 관계가 좋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행정실에서 그 안에 투입되어 보지 못하는 내부적인 무언가 동기간에 끈끈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는 MT도 갔었고 졸업여행으로 스리랑카 10박이라는 기간의 추억도 있어요.

수업을 통해 나눔을 많이 가졌었는데 일대일로 서로의 아픔을 애기하면서 마음을 꺼내다 보니 아주 밀접한 관계가 되었어요.


처음 시작도 나이고 지금도 나인데 바라보는 마음이 변해 있었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변해있고, 그러다 보니깐 지금은 왠지 모르게 자매 같고 오래전부터 알았던 친구 같아요.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솔직히 저는 출가를 할 때는 정말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 같은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내가 다 건지리라, 나라는 존재 자체는 없다, 오로지 부처님 말씀에 따라서 삼구보리 하화중생하리라 하는 거창한 마음을 갖고 시작을 했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은 늘 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병행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퇴색되어 가는 게 안타깝고, 자꾸만 현실에 맞추려고 하는 내 마음이 있더라고요. 나도 적당히 살면 안 될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보니 제가 센터를 열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안일하게 사는 거예요. 절이 있다 보니깐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게 충족이 되는 거예요. 어느 정도 유지가 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 나태해 지는 거예요. 나태해지는 게 뭐냐 하면요, 공부라든지 특별히 무엇을 안 쫓아도 뭔가 삶이 해결이 되는 거예요. 나의 복일 수도 있지만 뭔가 목이 타면서 내가 이러려고 출가를 했나하고 머리를 만지게 되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데 갈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십년은 복전이라든지 보시행이라든지 자비행을 해야겠다, 내가 복덕을 짓지 않으면 내가 다음에 정말 수행을 해서 한 단계 높게 올라가려고 해도 절대 올라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전 다 모아서 외국인 쉼터(뿐다리까)를 만들었어요. 편안한 삶은 두고 지금은 매달 달세걱정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에서 마음에 충만감이 오니깐 만족을 했는데 어느 날 그 부분도 내가 베풀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릇은 요만한데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내가 목표한 기간 동안 어떤 여파가 올 수도 있고 또 다른 일이 생길수도 있지만 내가 원을 세운 만큼은 해야 되겠구나 그러고 모든 걸 놓고 수행만을 하면서 말년은 그렇게 보내리라 이런 마음은 가지고 있어요. 계획했던 10년 중 3년이 흘렀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공부도 하고 임상도 배우면서 내가 쓰일 수 있는 부분에서 쓰이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채우면서 살다가 알아차림을 제대로 하면서 지금의 수행자의 길과는 또 다른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 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저는 마음을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아차림이 됐을 때는 마음도 다스림이 되지만 알아차려지지 못했을 때는 성난 파도와 같이 요동을 치게 됩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알아차리고 있을 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아차려지지 않았을 때는 마음이 아니라 습()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해요.

 


대학원 후배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물론 잘 하고 계시겠지만 공부라는 것이 항상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기회가 왔을 때 공부에 한번 빠져봤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보니 공부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저에게는 남아 있어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공부에 도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학업 분위기와도 연결돼요. 도반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면 지나고 봤을 때 그 시간들이 충만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에 응해 주신 현진 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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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내 중심의 삶 - 고통의 근원

김 경 일(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아시 탄다. 아우 탄다. 아수 탄다.’는 말이 있다. 맏이 아이가 태어나고 연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부득이 어린 동생을 더 보살피게 된다. 그러면 형은 지금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아오던 사랑을 동생에게 뺏긴 것으로 생각하여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어머니도 싫어하면서 몸이 점점 여위어가는 것을 옛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정확한 관찰이고 좋은 표현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고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 것이다. 만약에 부인이 있는데도 아무런 동의도 없이 둘째 부인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을 때 첫째 부인이 받는 충격은 엄청날 것이지만, 아우 타는 경우의 충격은 그 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

맏이에게 어머니는 자기만의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맏이가 받는 충격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고 설득을 해도 아이 수준에서는 그것이 통할 리가 없다. “동생도 너와 똑 같은 자식이다. 어머니는 차별하지 않고 둘을 보살필 것이니 걱정하지마라.” 이렇게 설득하고 타이른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은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면 안다. 이 시기의 어머니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잘못하면 형제간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그 상처가 평생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의 삶이 겪게 되는 최초의 충격이고 고통이 바로 아우 탄다는 것이다. 만약에 형이 어머니에게는 형제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기중심의 삶은 어느 정도 극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원초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생명을 지닌 인간의 운명이며 또한 고통의 근원이다. 삶의 고통이 얼마나 크면 그것을 고해(苦海)라고 했을까?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게 되면 고통은 줄어든다. 마치 맏이가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면 고통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는 유식학은 자기중심의 삶을 말라식으로 설명한다. 말라식은 마음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것이 근본속성이다.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 나타나면 그것을 살피고 계산하고 그리고 나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져보는 기능을 담당한다. 항상 나를 중심으로 작용하는 마음이다. 머리가 좋다는 말 속에는 말라식의 작용이 빠르다는 것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 즉 계산이 빠르다는 뜻이다. 그것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말라식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량분별하기 때문에 항상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잘나고 못남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아름답고 추함을 따지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삼는 한계를 지닌다. 달리 표현하면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착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차별성이 생기고 분별심이 일어나고 시시비비의 다툼이 발생한다. 당파싸움이니 계파간의 갈등이니 하는 것도 모두가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적 불편이나 장애 역시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분별심이나 차별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것이 극복된 경지를 평등성지(平等聖智)라고 한다. 분별과 차별이 극복된 경지이니 당연히 평등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기중심의 삶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 얼른 생각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타인의 입장이란 것도 아직은 자타를 구분하는 차별성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삶의 태도는 대인관계의 갈등을 현저히 줄일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는 있다.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는 궁극적인 길은 무아(無我)를 증득하는 것이다. 무아란 무엇이며 그것의 증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중심의 삶을 유아론적 삶이라고 하면 자기중심을 극복한 삶은 무아론적 삶이 된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증득하여 자신의 삶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타인을 보기는 쉬워도 자기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경전에도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다.” 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중심의 삶은 남의 허물은 잘 보지만 자신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설혹 타인이 그것을 보고 자신에게 일러주어도 고맙다고 여기기는커녕 관계가 나빠지기 십상이다. 무아론적 삶의 길은 닦을 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선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고집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당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그것을 조금씩 줄여나가면 무아론적 삶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되고 삶의 고통도 동시에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꺼번에 무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다가서는 길 밖에는 없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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