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마음과학과 SATI수행

 

박용구 (명상심리학 석사과정 1학기 재학생)

 

 

결혼 후 4년차에 와이프의 급작스런 암 선고와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1년여의 병원생활과 2년여의 요양생활을 지나오면서 장밋빛 청춘의 계획들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늘 건강에 대한염려와 경제적인 회복의 압박 속에서 일궈놓은 것 없는 인생 반 바퀴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 내 인생에 무엇이 남았을까? 숱한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같은 성공의 기회들은 왜 내 삶을 비켜갔을까? 행복한 삶은 무엇이며, 잘 산다는 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마음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사회에서의 생업들을 뒤로하고 절집 일을 보면서, 공부와 기도로 어떤 답을 찾고자 했다.

결혼과 취업 등 새로운 삶의 출발은 기대와 희망이었다. 하지만 부부로서의 생활과 가정의 이룸이 어떤 행복과 만족을 영원히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비단 내 삶에서만이 아닌 , 우리 인생의 선배들도, 주변의 많은 불행한 경우들도 그랬다. 그렇게 평온한 삶을 이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인가보다.

암 투병에서 살았다고 기뻐해야하나?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면 또 어땠을까? 여러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들 속에서 불법에 해결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처님은 삶의 희노애락을 어찌 받아들이고, 또 그 고통을 어찌했을까? 아님 극복하는 무슨 방법이 있었을까? 부처님 당시의 실제 수행법과 마음 다스리는 공부가 늘 궁금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일만 시간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다못해 다이어트나 몸짱이 되려 해도 꾸준한 습관적 몸 운동과 관리가 필수다. 완성된 인생도, 성공적인 삶 또한 숱한 시행착오와 오랜 기간 동안의 수련으로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이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마음은 누구의 것이며, 왜 이다지도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억겁의 또는 전생의 습 때문인지? 전생의 과보, 업보 때문인지? 몸의 근육을 키우듯이 마음의 근육도 꾸준히, 습관처럼, 또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키우다 보면 천방지축 날뛰는 마음을 붙들어 내 뜻대로 통제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정신세계를 맑히고 마음을 평온히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의지가 부족한 탓인지 쉽지가 않다.

스트레스와 불안,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삶!

그래서 나는 경전의 공부보다는, 특히 알 수 없는 공안과 화두, 신격화 된 한국불교(대승불교)보다는 부처님 당시의 수행과 설법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적인 수행법인 호흡법과 위빠사나의 알아차림 수행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끈기와 궁구하는 노력 부족이었겠지만 앉아서 버티는 좌선은 쉽지도 않았고 마음의 움직임이 없었다. 책으로만 접하기엔 더욱 용이하지 않았고, 생업과 일상생활 속에서의 수행 실행도 쉽지 않았다.

 

그런 중 이번 여름 대학원의 여름방학특강 <마음과학과 SATI 수행>에 참여하였고, 마음의 근원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제 7감 존재-사티 에 대한 붓다팔라스님의 설명이 깊이 와 닿았다. 부처님의 수행법이자 깨달음의 방법인 알아차림 수행을 쉽고도 명확하게 체계화, 이론화 한 것 같았고, 마음의 나쁜 찌꺼기들의 발생을 어떻게 대응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알아차림 수행의 사용가치,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접목방법, 부처님의 알아차림 수행과 우리 삶의 고통해소, 우리들 삶에서의 가치 있는 역할 등의 제시와 방안이 색다르게, 의미 있게 들리기도 했다.

상담심리학에서 상담자는 전문가이어야 하고, 인생을 잘 살아온 선험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상담자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 또한 알아차림 수행의 전문가가 된다면, 내 개인의 삶의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상담자로서,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철학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밝고 맑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 일상 속에서의 알아차림이 생활화된다면 삶에서의 부정적인 요소, 정신적인 문제들을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그 강도를 줄여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제부터 아침과 저녁 30분씩, 바쁜 일상을 좀 쉬면서, 잠시 외부세계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을, 매일 꾸준히 수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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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콤플렉스, 외면당한 또 하나의 나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콤플렉스는 불편한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평온하게 유지되다가도 콤플렉스가 자극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감정이 요동을 쳐서 당황하거나 허둥되면서 평상심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콤플렉스는 자신 안에 고요히 숨어서 지내는 감정의 덩어리다. 죽은 듯이 있다가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일어나서 반응을 보이는 존재이다. 마치 아직 내가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소.” 하고 소리치는 존재이다. 콤플렉스는 내 안에 살지만 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이단아, 반항아 같은 존재이다.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엾은 존재이기도 하다. ‘외면당한 또 하나의 나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는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진 감정이기도 하고, 억울하고 무시당해서 생긴 풀리지 않는 불편한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남에게 자랑스럽게 내 놓을 수 없어서 숨기고 싶은 열등감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존재한다. 다만 힘(에너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강력한 것을 지닌 사람도 있고 소소한 것을 지닌 사람도 있다. 에너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콤플렉스는 위험한 것이다. 마치 신체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강의를 하는 중에 어떤 중년의 부인이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불쑥 내가 바보여서 그렇습니다.”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제 자리에 가서 앉는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금방 하던 강의 내용을 잠시 돌이켜보니 남편의 외도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부인은 배우자의 외도에 관한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이 아닌가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콤플렉스는 의식의 흐름을 멈추게도 한다. 의식을 회복하게 되면 대개 깊은 후회를 하게 된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이처럼 콤플렉스는 불편한 존재이다.

불교상담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보살님 한 분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잠시 울먹인다. 함께한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약간 놀라는 시선을 보낸다. 잠시 뒤에 정신을 차리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는다. 5살 무렵에 본인이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단다. 어머니의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근 고을에 한의사가 있긴 한데 집에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5일장을 따라다니며 장바닥에서 침도 놓고 뜸도 뜨고 약 처방도 해주는 그런 의사였다. 어머니는 그 한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그가 가는 5일장을 모조리 따라다녔다고 한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소달구지에 딸아이를 태워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어머니는 소아마비에 좋다는 밤을 사다가는 삶아서 한 그릇씩 딸아이에게 먹이기도 했다. 5살짜리 어린소녀는 소달구지에 실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과 지극한 정성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누가 어머니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어린 시절, 그 감정이 봇물처럼 밀려올라와 주체하지를 못한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이고 그것이 콤플렉스의 일종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슴에 응어리져서 풀리지 않는 것으로 삶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이다. 자유로워지려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고마운 마음만 가슴에 남기고 지난 날의 감정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콤플렉스의 극복이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머도 뛰어나고 술도 잘 마시고 대인관계도 원만한데 유독 가창에 대해서는 강력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 2차로 노래방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같이 간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남들은노래를 잘 못하면 어때, 하는 대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사자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까닭이 있는 것이다. 노래를 잘못 불러 심하게 창피를 당했다거나, 어릴 때 아주 불쾌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콤플렉스는 타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깐 일로 뭘 그래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체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어떤 부인은 초등학교 시절에 팔에 골절상을 입고는 수술을 했는데 전문의가 없는 시골에서 한 탓에 완치가 되어서도 팔이 약간 안쪽으로 휘어버렸다. 친구들에게 더러 놀림을 당하고는 팔을 내 놓고 다니지를 못했다. 한 여름에도 항상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다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해서는 긴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6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부인은 항상 긴팔의 옷만 입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외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춘기의 학생들은 더욱 심하기도 하다. 그래서 대학입시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성형외과 수술 예약은 넘쳐난다. 쌍꺼풀 수술은 기본이고 코를 높이고 턱을 다듬기도 하고 얼굴 곳곳을 성형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가장 좋긴하지만 그것이 힘들면 오히려 성형을 해서라도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콤플렉스가 누적되고 심해지면 심리적 증상은 다른 곳으로 옮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인기피증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잘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극복해서 보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평생 콤플렉스에 짓눌려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콤플렉스의 극복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해진다. 억울했던 감정도 피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감정도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그때 그랬지, 참 힘들었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래를 못하는 것도 피하지 말고, ‘나는 원래 노래를 못해 못하면 못하는 대로 부르지 뭐. 그것 때문에 욕을 하겠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두려움도 줄어들게 된다. 콤플렉스는 받아들이면 성장의 발판이 되고 숨기면 심리적 장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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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필요한 가면, 페르조나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길어진 수명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매우 절박하고도 현실적인 문제이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되면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기도 하고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귀농을 적극적으로 권하며 지원방안들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고 귀농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매우 필요한 노력들이다.


귀농이나 귀촌에는 물질적인 여건도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성찰과 노력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흔히들 시골 사람들의 텃세가 만만하지 않다는 말들을 하기도 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베풀어야 이웃과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시골 생활이 행복하려면 보다 근원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핵심은 시골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회지에서 쓰던 가면은 벗어던지고 시골생활에 맞는 가면을 써야 시골의 삶에 적응할 수가 있다.

 

카를 융은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심리학자요 정신과 의사이다. 서양의 심리학자이면서도 동양 사상에 깊이 심취하였고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깊어서 티벳 불교의 구도자 파드마 삼바바가 저술한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학자들 중에 카를 융을 따를만한 사람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불교심리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식학과 닮은 점이 많아서 유식학과 분석심리학을 비교한 논문도 여러 편이 있다.


융 심리학의 중요한 개념 중에는 페르조나라는 것이 있다. 하회탈처럼 가면이란 뜻이다. 하회탈에는 양반탈, 각시탈, 백정탈, 초랭이탈 등이 있다. 양반탈을 쓰면 비록 하인이라 할지라도 양반처럼 여유가 있고 늠름하게 행동해야 하며, 각시탈을 쓰면 수줍어하고 차분하게 행동해야 하고, 초랭이탈을 쓰면 경망스럽고 방정맞게 행동해야 한다. 가면()의 성격(정체성)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얼른 생각하면 위선처럼 보이기도 해서 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사람은 누구나 지위와 환경에 맞는 탈을 쓰고 산다. 그것이 타인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융의 주장이다. 페르조나는 타인을 속이기 위한 나쁜 의미의 가면이 아니라 신분과 체면을 지키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가면이다.


우리는 많은 가면들을 수시로 바꿔 쓰면서 살아간다. 하나의 가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 회사원, 사장, 자식, 남편, 학교동창, 종교인, 향우회원, 군대친구, 술친구, 욕친구 등등이 있다. 자식들 앞에서는 아버지의 가면을 쓰고 사랑과 권위를 지키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자식의 가면을 쓰고 나이도 잊고 어리광을 부리거나 애교를 부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회사에 가면 사장으로서 위엄과 엄격 그리고 가혹한 모습도 보여야 한다. ‘욕 친구를 만나면 모든 가면을 또 벗어던지고 소시적 욕하던 친구의 가면을 얼른 뒤집어 써야한다. 만약에 욕 친구 앞에서도 사장의 페르조나를 쓰고 거들먹거리거나 폼을 잡는다면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초등학교 시절의 순진하고 철없던 페르조나를 쓴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가면을 너무 오랫동안 쓴다면 벗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것이 권위적인 가면이라면 더욱 그렇다. 법조인이나 경찰, 높은 지위의 군인으로 오래 생활했거나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가면을 벗어던지기가 힘들 수 있다. 흔히들 경찰 티가 난다. 군인 티가 난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현직을 떠나서도 군인이나 경찰의 페르조나를 쓰고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교인들의 가면도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쓰고 생활하는 가면이 근원적인 자신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요에 따라 쓰긴 쓰고 살지만 그것이 자신의 참 모습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르조나와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면 자신의 내적 세계와의 관계는 끊어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자기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페르조나를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된다. 직업상 썼던 페르조나를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고 마침내는 심리적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진정한 자기,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자 불교인들의 수행이기도 하다.


페르조나는 필요한 가면이다. 상황에 맞게 잘 쓰는 사람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잘 맺는 원만한 사람이다. 시골에 가면 농부의 페르조나를 써야한다. 그런데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것이라면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다.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는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힘든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투박한 언어도 배우고 은유적인 그들의 행동도 배우는 것이 좋다. 전통적인 시골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요즘 사람들과는 차이가 난다. 명절이라 선물을 들고 가도 별로 반기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나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왜 가져 와요.’ 하면서 선물을 보지도 않고 밀쳐두는 할머니들도 있다. 선물 주는 것을 호들갑떨며 반기면 다음에 또 가지고 오라는 의미로 전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감사의 표시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귀농과 귀촌을 꿈꾼다면 물질적인 준비도 있어야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썼던 가면들도 벗어야 한다.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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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혼족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 삶의 큰 변화이다. 인간은 무리지어 사는 것이 그 속성이다.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혼자 살기 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더 편리하고 더 낫다는 뜻이다. 혼자 살면 결혼도 하지 않고 2세가 생길 까닭도 없다. 경제적인 측면만을 생각하면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익인지는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결혼이란 것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혹자는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을 자신의 권리이자 자연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관계를 맺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부부를 동반자(同伴者), 반려자(伴侶者)라고 하는데, ()이란 한자는 서로 짝을 짓는다는 뜻이다. 짝을 지음으로서 비로소 온전한 기능을 하게 된다. ‘버선 짝이 맞다, 신발짝이 맞다.’라고 할 때의 그 짝이다. 낱낱으로 존재할 때는 쓰임새가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함께 짝을 이루면 편리한 관계가 된다. 결혼은 신발짝처럼 하나로 합치면 편하고 온전할 것이라고 믿기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살다보면 어긋나는 경우도 생기고, 똑같은 행동을 두고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 사람씩 각각으로 존재할 때는 문제될 수 없는 것들도 함께 생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둘 만 있어도 질서가 필요하고 배려가 필요하다. 배우자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결혼 전에 몰랐던 것들을 결혼 후에 알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깊은 마음이나 성격, 능력, 생활방식을 결혼 전에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귀를 닫게 한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상대방의 부족한 면은 볼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약점이나 콤플렉스까지도 매력으로 보인다. 상대방의 부족한 것들은 살아가면서 서서히 나타난다. 그 때 가서 사람들은 후회하거나 속았다고 한다.

잘난 점이 있으면 못난 점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마음이 좋은 사람은 실속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거나 이기적일 수도 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활발하지만 치밀하지 못할 수가 있고, 내향적인 사람은 치밀하지만 활동성이 모자라기도 한다. 좋은 점이 반이면, 부족한 점도 반이라고 생각하면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 상대방의 좋은 점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또한 언젠가는 부족한 점도 드러날 것이라고 짐작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랑에 취했을 때는 좋은 점만 보이지만 사랑이 식어지면 그 반대가 된다.

결혼(結婚)이란 말에서 혼()이란 글자 속에는 혼()의 의미가 들어 있다. 어둡고, 고단하고, 힘들다는 뜻이 포함된다.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재미있고, 즐겁고, 편하고,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 결혼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늘어나고, 손아래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와 예절도 생겨난다. 결혼을 함으로써 혼자 살 때보다 할 일들이 더 늘어난다. 배우자에 대한 예의와 배려도 세심하게 해야 한다. 그러한 일들은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결혼이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오랜 숙세(宿世)의 지중한 인연이 작용한 필연적인 만남이다. 부부만큼 상대방을 속속들이 아는 사이는 없다. 상대방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너무나 잘 알아서, 마치 서로를 진솔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된다.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은 고마운 존재이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얼굴도 살피고 차림새도 다듬는다. 못생기고 지저분한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고 거울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때로는 거북하고 불편한 존재가 될 수는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이나 단점을 지적하고 충고해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마움보다 원망과 분노를 느끼기가 쉽다. 남들에게 충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직장상사나 권력자들에게는 바른 말을 하기 보다는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는 말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부부는 비위나 맞추고 아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러다가는 둘이 함께 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를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도 한다. 가정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므로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할 수는 없다. 부부는 상대의 못난 점도 그대로 비춰줌으로써 서로에게 불편한 거울이 되기도 한다.

거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거울에 때가 많이 끼면 상대방을 제대로 비추어내지 못한다. 평소에 부지런히 거울을 닦고 때를 지워내야 한다. 그것이 수행이다. 부부라는 거울이 완벽할 수는 없다. 거울이 잘못된 것인지,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를 탓하게 되고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불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음의 때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때를 발견하듯이 부부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부부는 반려자, 동반자를 넘어 삶의 바른 길을 인도해 주는 스승이자, 진정한 도반(道伴)이 된다. 칭찬하는 스승보다 꾸짖는 스승이 수행에 더 많은 도움이 되듯이 편함보다 불편함을 주는 부부가 더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혼밥, 혼술, 혼족이 때로는 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도 할 줄 알고 미워도 할 줄 아는 짝을 찾아서 서로의 거울도 되고 또 자식도 낳아 기르는 것이 자연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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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7학년도 신입생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2017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석사과정(문학석사,명상심리학 전공)은 추가모집으로 원서접수 마감일 2017120일 이며, 모집인원 5명입니다.

생명교육전문가과정은 정시 모집이며, 원서접수는 201719()부터 23()까지입니다.

 

가능한 선택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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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나를 만나는 시간
(수치심의 치유 특강을 듣고...)

 

 

재 선 (석사과정 2학기 재학생)


 
  우리는 흔히 기쁨 즐거움 행복함 등은 좋은 감정이라 하고, 분노 질투 고통 부끄러움 같은 감정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개봉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사람의 감정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람의 모든 감정은 소중하고 하나하나의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일 때 그들은 언제든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이번 ‘수치심에 대한 이해와 치유’특강에서도 그랬다. 사람의 모든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비록 건강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 그런 감정들이 잘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들과도 잘 어울려 놀 수 있을 때 사람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준 기회였다.
  수치감이란 평범한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인간의 감정 중 하나로 건전하게 잘 느껴야지만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되고 공동체 사회 규범에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I did a mistake. 나 실수했어!

 

반면, 이런 수치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규범에 어긋나 다수에게 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여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에게 수치감이란 감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만 이런 감정이 자신의 과거 경험까지 헤집고 들어가 “난 능력이 부족해!” 라며 자학하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치감이 내면화된 상태, 즉 수치심이 깊어지게 된 상태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I am a mistake. 내 존재는 실패 그 자체야!


나에게 수치심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부자연스러운 느낌과 함께 죄책감,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함께 떠오르게 한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마음 안쪽 저 바닥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스멀스멀 그러다 훅하고 머리끝까지 올라와 내 몸 전체를 옭아매고 생각지도 못한 잔혹 동화를 내면에 써나가며 피를 철철 흘린다. 왜 그렇게 피를 흘리는지 그 생채기를 보듬으려고 하기 보다는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벌벌 떨고, 끝까지 피해자를 자처하며 모든 원인이 상대방과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 때문이라고 자기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왜 이런 끝도 나지 않을 나와의 전쟁을 계속하며 사는 걸까.
왜 이런 감정들이 자라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일까.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면의 피흘림을 완전히 멈추게 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조금쯤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치심은 어린 시절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감정의 억압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양육자가 그 실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않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때 아이의 수치감은 깊어지게 된다.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양육자로부터의 배척당하는 경험이 혼자뿐이라는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면화된 수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다.
나부터도 그러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상대가 조금만 화를 내어도,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도,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하는 번뇌망상(생각)을 시작으로  그것이 꼬리를 물고 전도몽상의 바다에 빠져 슬퍼하고(감정), 어릴 적 혼이 나던 작은 아이처럼 위축되어 심지어 숨도 제대로 쉬지 않게 되는 상황(행동)으로까지 나를 끌고 가고 심한 경우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먼저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으로 이어진 후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일어나는 한 생각은 오랜 습의 반복적인 패턴이며 이것을 바꾸는 일은 죽을 때 쯤에야 바꿀 수 있다고 할 만큼 어렵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표현하는 감정에 휘둘려 따라가지 않고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알아차림), 나의 존재의 한계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원래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기_그러나 완전해 질 수 있는 씨앗은 가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괜찮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이어나가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44년, 어린시절부터 억압된 감정들로 무겁게 끌어안고 있던 그 해로운 수치심 때문에 정작 보듬어야 할 내 모습은 보지 않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신경 쓰느라 살아온 시간을 만회하기엔 아직 늦지 않지만 그리 길지도 않다.
 늘 하는 말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누가 나를 사랑해 줄 것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비록 수치심 덩어리일지라도 나로부터 그 사랑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묵은 습을 단기간에 고치겠다는 것부터 욕심 같다. 하루 하루 내게 인연되어 오는, 혹은 초대하는 모든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고 실수하고 깨치는 과정에서 그저 천천히 들숨 날숨을 자연스럽게 쉬는 연습의 반복 과정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간 지어놓은 복이 조금 있었던지 명화숙 교수님의 수치감 특강을 세번째 듣게 되었다. 들을 때 마다 당신의 온전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 담긴 눈길과 표현은 존재 그 자체란 참 아름답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해주시는 매력이 있는 분임을 느끼게 한다.
 화를 내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존재 그 자체의 존귀함에 집중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연습, 내면의 아이를 찾아가는 연습에서 교수님의 따뜻한 리드와 그룹원들간 형성된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자신만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보며 미처 보지 못했거나 만나지 않으려고 하던 나의 모습을 만나는 귀중한 경험들.
이번 특강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한 가지는, 나 자신 혹은 상대로부터 불편함이 찾아올 때,
“당신이(또는 나 자신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제게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라는 말을 떠올리며 들숨 날숨을 잘 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이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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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오후,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카페에 앉아 논문을 쓰며 하루를 보내셨다는 도우스님, 졸업을 앞두고 계신 도우스님의 역사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마음가득 기대와 설렘이 차오릅니다.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 얘기 하려면 진짜 긴데? (웃음)


출가하기 전에 저는 9살 때부터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찾았어요. 처음엔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갔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해 봤는데 찾지를 못했어요. 다 아닌 거예요. 그런 시도를 계속 하다가 자포자기를 하게 돼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이었나보다.’ 그렇게 되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근데 “너처럼 밝은 애가 왠 우울증? 니가 왜? 뭐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면서 나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잘 살면 되잖아. 열심히 살면 되지” 그러는데 저는 “무엇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게 중요했던 거거든요. 그렇게 우울감에 방황하던 시기에 출가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알게 된 거죠. ‘아! 이거구나’하고요.


출가를 해도 스님들이 나가는 방향(진로)이 각각 다르잖아요? 저는 공동체를 하고 싶었어요. 공동체 운영 계획이 있었어요. 강원을 졸업하고 한 일 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알아보고 하면서 공동체를 준비하려고 했었죠. 근데 뭔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예요. 


그런 복잡함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잠시 여기 정토마을에 봉사를 왔었죠. 제가 강원 4학년때 호스피스교육을 받았었거든요. 그때 이게 내가 찾던 길이 아닌가? 했어요. 그 인연으로 봉사까지 오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저것 일을 하게 되고 원주소임까지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CPE를 하게 되었는데, ‘아, 이건 정말 내가 찾던 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었어요. 해결책을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CPE를 하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해결방안도 제시할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도 입학하게 된 거죠. 정말 잘 시작 한 것 같아요. 또 특별히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도 인연이 참 잘 닿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시너지 효과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도 허물이 없어서 참 좋아요. 지금 생각나는데 첫 강의 들어갔을 때 ‘수업을 이렇게 해도 되나’ 했어요.(웃음) 너무 편안한 거예요. 숨통을 틔우게 하는 수업이었어요.

그 상태에 저는 소임살고 하면서 굉장히 팍팍했거든요? 대학원 수업이 저에겐 오히려 휴식처 같고 좋았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학생들을 만나 보니까, 정토마을 공동체 스님들의 대부분이 대학원 수업을 휴식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웃음)


그게 소임만 살다 보면 내가 여기 뭐 하러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면 나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내가 이걸 하려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거지?’ 하고요.

근데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자꾸 까먹어요.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아, 그래 이거지!’ 하고 균형감을 맞출 수가 있는 거죠.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에는 때가 늦었기 때문에 심리공부는 할 수 없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이 있었어요. 정말 원하던 것을 하게 되니까. 단기간으로 뭔가 배우는 것보다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심리공부를 정말 정식으로 배우는구나 하는 안도감, 편안함, 성취감, 기쁨 이런 것들이 있었죠.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는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좀 놀라웠어요. 거의 포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이 부분이 저의 꿈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 온 것은 저에게 호흡과 같은 의미가 있어요.

 


졸업을 앞두신 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배운게 참 많다.(웃음)


어제 미술치료를 하는 바람에 사기가 꺽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중한 경험들을 한 것 같아요. 소중한 얻음을 얻은 거죠. 알아차림을요. 어제 미술치료를 하면서 마지막에 몰랐던 나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게 오늘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본전을 챙기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어요. 알찬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실습이 바로바로 이루어 지잖아요. 그런 기회들도 너무 감사하고 그런게 되니까 학교공부도 튼실하게 잘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이 명상이나, 환우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부끄러운 거예요. 이런 단어들은 쓰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꾸 쓰고 있고,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가 있고 끝나고 나면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안타까움 부끄러움 그런게 많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알차다고 느껴요.

 

 

 

배우고 익히고 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스님 앞에 펼쳐져 있었네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요. 내가 복이 많은 거 같아요. 소임 살면서는 내가 뭐 하는거야. 땜방 하는 느낌만 들고 티도 안 나고 지금 끝나고 나서 보니까 아귀가 딱딱 맞으면서 아 내가 진짜 복이 있었구나 싶어요. 나름의 피흘림이 있었어요.(웃음)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좋았던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소임 살면서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원주 살 때에는 앞치마 벗어놓고 뛰어올라가고 그랬거든요. 진짜 시간이 부족해서 숙제도 잘 못 해가고 그러면 교수님께도 죄송하고 동기들에게도 미안하고 그랬죠. 


제일 힘든 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거지 ‘난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난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는,
그래도 교수님들께서 이런 것들을 따뜻하게 이해해주시고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시는 모습에서 소임에 대한 귀함? ‘내가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했어요.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힘들었죠? 잘했어요. 어땠어요.” 하면서 피드백을 해 주니까 다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많이 감사해요.


저 학생은 맨날 빠지고 왜저래? 하는 시선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명상수업 지도법사로서 파랑지역 아동센터 아이들과 만나셨는데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예쁜 모습, 귀여운 모습만 좋아했던 것 같아요. 투정부리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일 때는 귀찮아하고 안 보고 마는 제가 있었던 거예요.


 근데 명상수업을 하고 보니까 뭔가 책임감? 아이들의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이런 거 겠구나?’ 하는 느낌? 


아이들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근데 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다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분리심 같은 것들을 좀 알게 된 거 같고요. 아이들이 처음보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열려있다는 것에 안도감, 기쁨 같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반면에는 아이들이 열어준 마음만큼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함께 생기는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가 돼요. 그리고 스님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서 아이들이 발표하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스님께서 따뜻하게 기다려 주시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좀 멍하고, 계면쩍을 수 있는 순간인데, 그 시간에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하면서 느껴진 게 아이들이 대답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할 말 없으면 패스해” 하고 정말 빠르게 진행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아이가 “할 얘기가 없으면 넘길까?”하고 제가 말하는 순간에 우물쭈물 얘기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해버리니까 “없어요.” 하고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다려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명상수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음... 아이들과 ‘쉼 명상’ 했던 거요. 사진에도 있는데 누워서 신체적 접촉을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장난치고 안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너무너무 잘 하는 거예요. 서로 등에 손을 얹어주거나 할 때 참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들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참 따뜻했어요.

 

 

이제 졸업도 하시고... 많은 것들이 마무리가 되어 가시는데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CPE슈퍼바이저가 되어서 영적돌봄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영적돌봄이 필요했던 건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을 돌봄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슈퍼바이저가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하고 싶어요. 이번에 논문을 쓰다보니까 제가 불교 쪽 이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보강 해야겠다 생각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창이예요.나의 영성과 신체, 물질과 영혼을 이어주고 바라보게 해 주는 문인 것 같아요. 

닫혀 있을 때는 분리되어서 알 수 없는 세계이지만, 창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마음 같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자괴감에 빠질 때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 한 순간도 아무것도 아닌 건 없는 것 같아요. 다 그만큼의 자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에 대해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평가를 해야지 자기의 심리상태가 바닥인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옳은 결론이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하며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된 것 같다고 하시는 도우스님, 소중한 이야기로 함께 해 주신 도우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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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1. 2016학년도(전기) 석사임상상담전문가 신입생 모집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6학년도(전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수행과 돌봄이 하나 된 실천학문의 메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가능한 선택을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해주세요.^^

 

 

 

2. 42th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

 

 

42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 교육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생사의 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생사를 인생이라는 한 선에 놓고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성찰과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나를 만나는 오롯한 선물 같은 시간이 되실 거예요. 기꺼이 경험해 보시기를, 기꺼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똑똑, 마음을 두드려 전합니다.

어서오세요.^^

 

 

대학원 공개특강 영화, 심리학과 만나다.

 

 

 

20161,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 공개특강 <영화, 심리학과 만나다>가 진행됩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가능한 선택을 많은 분들과 공유해주세요.

30명 선착순 마감(재학생,수료.졸업생 우선)이므로,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서둘러 교학처 행정실로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학처행정실(052-255-8521/8523)로 문의, 접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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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문자리]

그런 날이 있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풍경에 새삼스레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게 되는 날. '시선이 머문자리'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입니다.

선배님들의 , 그리고 신입생 이기도 했습니다.

보다 의 모습에서 우리는 을 봅니다.

선배님들의 앞선 을 따라 후배들은 을 키워갑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03.07 선배님의 졸업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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