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 번째]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불교대학을 다니는 보살님이 있었다.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고 항상 꼿꼿하게 앉아서 열심히 듣고 기록하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이다. 어느 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다음 생에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얼굴은 맑고 순진하게 보였지만 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다.

. 태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되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사는 것이 고달파서요. 신랑을 다시 만나기도 싫고, 그냥 안 태어나고 싶어요.” 괴롭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깊이 다짐을 하고 또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될까요?” 했다. 보살님이 겪어 온 삶을 알 수는 없지만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느낄 수가 있었다. 태어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노력만으로는 아마도 윤회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보면 하나의 씨앗이요, 나누어 보면 하나의 씨앗 속에 무수한 요인들 즉 작은 씨앗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범부의 안목으로는 씨앗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유식학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무의식의 설명과 일치한다. 무의식이라는 것도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묘하고 광대하게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 역시 무의식의 개념과 일치한다. 씨앗의 존재와 작용 그리고 성질은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근본 마음이며 찰나찰나 자신을 지배하는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씨앗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한다고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끊겠다는 보살님의 바램은 옳다고 해도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씨앗은 스스로 움직이는 힘, 즉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 안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은 씨앗은 죽지 않는다. 워낙 미세하고 고요하게 작용함으로 마치 없는 듯이, 죽은 듯이 보일 뿐이다.

해외 토픽에 실린 내용이다. 3천 년이 지난 무덤을 발굴하다가 무덤 안에서 그릇에 담긴 연꽃 씨앗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의 호기심은 끝간 데를 모른다. 씨앗을 정성껏 다루어 심었더니 싹이 낫다고 한다. 3천 년이 흘렀지만 씨앗은 죽지 않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더니 살아난 것이다. 업보나 인연은 그렇게 움직인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나면 스스로 살아나게 된다. 노 보살님이 간절하게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이 트고 생명은 이어지게 된다.

보살님! 봄에 살아있는 씨앗을 땅에 묻었다고 합시다. 씨앗이 스스로 싹이 나길 원한다고 싹이 나고 원하지 않는다고 싹이 나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비가 오고 따뜻하면 무조건 싹이 나지요.”하고 대답했다. 윤회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씨앗은 그 자신의 조건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윤회는 본인이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씨앗이 소멸되어야만 멈추게 된다.

마음의 씨앗을 소멸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에 걸리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대혜종고 선사께서 서장에서 밝히신 애응지물(礙膺之物)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라 해도 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해도 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이다. 미해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일이다.

태어나지 않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또 다른 원을 만들고 강력한 정동적(情動的) 집착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이 생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연들을 조용히 내려놓겠다는 태도가 윤회를 벗어나는 바른 길이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으면 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며 걸림이 없으면 마음의 움직임도 멈추게 된다. 그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다. 불교의 궁극은 그렇게도 설명된다.

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노 보살님의 기도는 방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준 여러 인연들을 자비로서 용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흔적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자 중도이며 또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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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듯이 마음의 병도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 어릴 때의 왜곡된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주로 정신분석적 견해이고,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배워서 즉 학습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행동주의적 견해이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은 주로 인지치료적 입장인데 모든 이론이 일정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 장애의 전반적인 면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어려우면 즉 부정적 사건이 자신에게 닥치면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사는 것이 한가롭고 여유가 생겨서 정신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살아 온 부부가 있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부부 다툼이 있었다. 금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폭행을 주고받아 진단서를 끊고 경찰서를 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삼키거나 참으면서 가정은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고 빚만 가득 지게 되더니 드디어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손으로 살던 곳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낯선 곳으로 가서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부부는 돈을 모으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왔다.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자녀들이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싶으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고 볼 일이었다.

부모의 힘든 생활을 함께 겪으며 자란 탓에 아이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첫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다가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여 또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부가 시작한 사업은 때맞춰 점점 번창해 나갔다. 드디어 빚도 모두 청산하였고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오뚝이 같이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인간승리의 사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숨죽이고 움츠려 있던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서럽고 한스러운 감정들이 꼼지락꼼지락 살아나고 있었다. 눌러 놓은 것이 많았던 부인에게서 먼저 감정이 요동쳤다. 혼자 있을 때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도 하더니, 드디어는 집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보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붙이면 악에 받친 사람처럼 달려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남편도 아내의 분노를 받아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편 역시 참고 억누르며 살아온 터여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해묵은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자녀들이 중재를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만큼 묵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자녀들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할 시기도 이미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한 번 뱉기 시작하면 점점 상대의 허물과 약점을 건드리게 된다. 아문 듯 했던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이성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인 이혼이었다. 애증을 나눈 지난 시간들 가운데 증오심만 눈앞을 가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증오심이 빠져나가게 되면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노력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양가감정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쌓이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미운정 고운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모순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감정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다. 간이라도 내 줄듯하다가 금방 원수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두 양가감정 탓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양가감정은 극복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엔 없다. 어느 한쪽이 모든 짐을 지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도인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은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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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내 중심의 삶 - 고통의 근원

김 경 일(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아시 탄다. 아우 탄다. 아수 탄다.’는 말이 있다. 맏이 아이가 태어나고 연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부득이 어린 동생을 더 보살피게 된다. 그러면 형은 지금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아오던 사랑을 동생에게 뺏긴 것으로 생각하여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어머니도 싫어하면서 몸이 점점 여위어가는 것을 옛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정확한 관찰이고 좋은 표현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고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 것이다. 만약에 부인이 있는데도 아무런 동의도 없이 둘째 부인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을 때 첫째 부인이 받는 충격은 엄청날 것이지만, 아우 타는 경우의 충격은 그 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

맏이에게 어머니는 자기만의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맏이가 받는 충격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고 설득을 해도 아이 수준에서는 그것이 통할 리가 없다. “동생도 너와 똑 같은 자식이다. 어머니는 차별하지 않고 둘을 보살필 것이니 걱정하지마라.” 이렇게 설득하고 타이른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은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면 안다. 이 시기의 어머니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잘못하면 형제간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그 상처가 평생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의 삶이 겪게 되는 최초의 충격이고 고통이 바로 아우 탄다는 것이다. 만약에 형이 어머니에게는 형제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기중심의 삶은 어느 정도 극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원초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생명을 지닌 인간의 운명이며 또한 고통의 근원이다. 삶의 고통이 얼마나 크면 그것을 고해(苦海)라고 했을까?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게 되면 고통은 줄어든다. 마치 맏이가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면 고통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는 유식학은 자기중심의 삶을 말라식으로 설명한다. 말라식은 마음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것이 근본속성이다.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 나타나면 그것을 살피고 계산하고 그리고 나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져보는 기능을 담당한다. 항상 나를 중심으로 작용하는 마음이다. 머리가 좋다는 말 속에는 말라식의 작용이 빠르다는 것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 즉 계산이 빠르다는 뜻이다. 그것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말라식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량분별하기 때문에 항상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잘나고 못남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아름답고 추함을 따지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삼는 한계를 지닌다. 달리 표현하면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착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차별성이 생기고 분별심이 일어나고 시시비비의 다툼이 발생한다. 당파싸움이니 계파간의 갈등이니 하는 것도 모두가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적 불편이나 장애 역시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분별심이나 차별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것이 극복된 경지를 평등성지(平等聖智)라고 한다. 분별과 차별이 극복된 경지이니 당연히 평등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기중심의 삶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 얼른 생각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타인의 입장이란 것도 아직은 자타를 구분하는 차별성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삶의 태도는 대인관계의 갈등을 현저히 줄일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는 있다.

 

 자기중심의 삶을 극복하는 궁극적인 길은 무아(無我)를 증득하는 것이다. 무아란 무엇이며 그것의 증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중심의 삶을 유아론적 삶이라고 하면 자기중심을 극복한 삶은 무아론적 삶이 된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증득하여 자신의 삶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타인을 보기는 쉬워도 자기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경전에도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다.” 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중심의 삶은 남의 허물은 잘 보지만 자신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설혹 타인이 그것을 보고 자신에게 일러주어도 고맙다고 여기기는커녕 관계가 나빠지기 십상이다. 무아론적 삶의 길은 닦을 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선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고집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당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그것을 조금씩 줄여나가면 무아론적 삶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되고 삶의 고통도 동시에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꺼번에 무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다가서는 길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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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미워하지 말자

 

김경일 교학처장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미워하며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농사철이 되어도 시어머니는 며느리 일을 별로 도와주지 않았고 그러니 며느리 역시 보리밥일망정 넉넉하게 챙겨드리지 않았다. 이웃의 잔치 집을 다녀올 때도 절편 한쪽도 따로 챙겨오지 않았고, 삼시 세끼 보리밥에 된장, 김치가 전부였다. 그러니 시어머니도 며느리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서로가 반목하고 증오하면서 힘들게 살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노인 삽니다, 노인 삽니다.” 하는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지만 사립문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초립을 쓴 한 남정이 천천히 걸어가며 그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양식만 축내는 시어머니를 팔아 버리고 싶었다. 남정은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시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섬돌로 내려서고 있었다. 먹는 것이 부실했으니 몰골도 흉측하고 기력이 없어 문고리를 잡으며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초립의 남정은 며느리를 잡아끌더니 귓속말을 했다. “저렇게 허약하고 기력이 없으면 사갈 수가 없습니다. 살도 좀 찌고 원기가 회복되면 사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총총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팔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잘 먹여야 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보리밥이지만 여느 때보다 꾹꾹 눌러서 더 많이 담았고, 멀건 된장국이지만 건더기를 더 넣어 드렸다. 잔치 집을 다녀 올 때면 하나만 주는 돼지고기 편육을 자신이 먹지 않고 가지고 와서는 시어머니께 드렸다. 동짓달 긴긴밤에는 동치미도 가져다 드리고 아껴먹던 고구마도 구워 드렸다. 시어머니는 화색이 돌고 기력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지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너무 고맙고 착하게 보였다. 하늘아래 이런 며느리가 있는가 싶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일을 돕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소여물도 끓이고 마당도 쓸었다. 며느리가 밭일을 나가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시간이 남으면 우물가에서 빨래도 했다. 며느리가 밭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늦으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저녁거리도 준비하곤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웠다. 하늘아래 이런 시어머니가 있는가 싶었다.

 어느 날 문득 담장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노인 삽니다, 노인 삽니다.” 초립을 쓴 남정이 사립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마당에 있던 며느리가 그를 보고는 까마득히 잊은 기억을 떠 올렸다. 살도 찌고 원기를 회복하면 사가겠다는 남정의 말이 떠올랐다. 며느리는 화들짝 놀라며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하시오. 다른 집에 가서 알아보시오. 우리 집은 시어머님이 안 계시면 집안일이 돌아가지를 않아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게 된다. 미운 사람일지라도 사랑을 베풀면 사랑이 되돌아오게 된다.

 산다는 것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지만 만남을 통해 미움과 고통도 느낀다. 사랑이나 미운 감정을 타인이 나에게 주기도 하지만 나 역시 타인에게 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는 미움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서양의 정신치료에서도 분노가 정신병의 뿌리라고 하는데 그게 그 말이다. 동의보감에도 이도요병(以道療病)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을 다스려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만병의 근원인 미움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미움의 감정은 버리고 비워야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미워해선 안 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능력과 성품만큼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일지라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랑으로 미움을 극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경북도민일보-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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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 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정토마을>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수님의 <자애명상>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일곱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고맙거나 존경하거나 은혜를 베풀어준 대상

 

김재성 전 교학처장

 

 

한정된 대상에 대한 자애명상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마운 사람, 존경하는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이나 단체

사랑하는 사람(가족, 친지, 친구)

중립적인 사람

싫은 사람, 미워하는 사람

 

다음으로 대상을 한정시켜서 하는 자애명상은 마음의 집중을 이루게 해주며, 마음의 벽을 차례로 허물어줍니다. 주의할 점은 죽은 사람은 항상 제외하고(마음이 집중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초보자의 경우 이성異性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지 않습니다. 애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평소에 잊고 살던 고마운 분들 또는 존경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그 분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고맙거나 존경하는 분들에게는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자애의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일정한 기간 동안은 고맙거나 존경하는 분들을 향해 자애명상을 합니다. 고맙거나 존경하는 대상에게 자애의 느낌이 일어나면, 다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애잔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다음에는 중립적인 대상, 무관한 대상이며, 마지막으로는 싫거나 미운 대상, 까다로운 대상을 향해서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합니다.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

단계: 고마운 분, 존경하는 분, 은인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고마운 분, 존경하는 분, 은인, 계정혜의 삼학三學을 갖춘 사람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면, 존경하는 스승이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선택된 대상의 고마운 면, 존경하는 면을 깊이 숙고한 후에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자애명상의 문구를 그 의미를 깊이 음미하면서 마음으로 반복합니다.

 

스승님께서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앉아서 이 문구를 마음속으로 의미를 깊이 음미하면서 반복합니다. 자애명상의 대상을 일부러 형상화시키거나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만일 자연스럽게 대상이 떠오르면 그 대상 향해서 자애명상을 해도 좋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자애명상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자애명상을 하면, 마음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 그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해지며, 시원한 느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 대상을 향해서 5분에서 10분 정도 자애명상을 해도 마음에 사랑의 느낌이 생겨나서 향상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그 대상의 고마운 면, 존경하는 면을 깊이 숙고한 후에 다시 5-10분 시도해 봅니다. 그래도 별 느낌이 없다면 대상을 바꿉니다. 만일 사랑의 느낌이 향상되면 15분에서 30분 정도 한 대상을 향해 자애명상을 지속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30분이나 1시간 동안의 좌선을 하는 동안 대상을 너무 많이 바꾸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30분 동안 4-5명 이상 대상을 바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할 때, <청정도론>(대림스님역 2139쪽 이하)에 의하면 자애명상의 초보자에게 부적합한 다섯 대상이 있습니다. 처음 자애명상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다섯 대상을 향해서 자애명상 수행을 하면 명상이 잘 안 될 수 있으므로 삼갑니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그 대상이 어려운 상황에 있거나 아프거나,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명상하는 이의 마음도 불편해지고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느낌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애명상이 향상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한정된 대상으로 선택해도 좋습니다.

두 번째 대상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중립적인 사람입니다. 중립적인 사람에게는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피곤해집니다. 사랑의 느낌이 부족해서 피곤해지면 수행이 잘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한정된 대상으로 했을 때,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기 전에 미움이나 분노가 일어나게 되고 이 분노를 초보자는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명상에 힘이 생기면 미워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자애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대상은 이성異性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또는 이성의 파트너를 대상으로 했을 때, 자애의 느낌이 생기기 전에 감각적 욕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는 대상으로 해도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집중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업에 따라 천상에 태어날 수도 있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정확하게 어디에 태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향한 자애명상은 집중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의 다섯 대상을 제외하고, 처음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하는 초보자는 존경할 만한 스승, 특히 계정혜의 삼학三學을 갖춘 스승이나 고마운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게 행복과 평화와 평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애의 느낌이 커지면 마음은 잘 집중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자애명상

자신,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 다음에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의 대상으로 1단계의 고마운 사람, 존경하는 사람, 은인을 대상으로 자애명상이 만족할 정도로 향상되면 다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추가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란 가족, 친척, 가까운 친구들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애완동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보다 부담감이 없는 사랑하는 대상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여러 가지 정서적 역동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움뿐만 아니라, 과거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섭섭함, 미안함, 애잔함, 또는 분노의 감정까지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부정적인 정서와 연루되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좋았거나 서로 보살펴주고 아껴주던 좋은 관계를 생각한 후에 그 대상(한 사람이나 집단)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고,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자애의 문구를 통해서 일으켜나갑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 도중에 부정적 감정(슬픔, 분노, 미안함, 섭섭함)이 일어나면, 그런 정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소용하면서 자애명상을 계속 시도해봅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감정이 심해져서 힘들어진다면, 더 이상 무리하지 말고 일단 그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그만둡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내려놓기로 마음먹고 일단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서 다시 시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먼저 자신 또는 고맙거나 존경하는 대상을 먼저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애의 마음을 만족할 만큼 계속해서 길러나갑니다.

 

일단 명상을 할 때는 대상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단계와 같이 30분 정도의 좌선이나 걷기 명상 시간에 2-3 대상을 향해서 집중적으로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는 죽은 사람은 항상 제외하고, 초보자의 경우,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성(異性)을 선택하지 않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동성애자의 경우에는 욕망이 일어날 수 있는 동성을 선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애명상이 향상되면 이성을 향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문구를 예를 들겠습니다.

 

내 가족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가족 구성원의 범위를 정하고 이 문구를 반복하면서 그 구성원들을 향해 자애의 마음을 계속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대상 가운데 가장 자애가 잘 일어나는 대상을 향해 충분히 일으킨 후에 다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으로 확장해 갑니다.

처음의 고맙거나 존경하건, 은혜를 베풀어준 대상과 두 번째 사랑하는 대상은 자애의 마음이 잘 일어나는 대상입니다. 이 두 대상을 향한 자애심을 잘 길러야 다음의 중립적인 대상과 싫거나 미운 대상을 향한 자애심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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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여섯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정토마을>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수님의 <자애명상>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여섯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자신,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

 

김재성 전 교학처장

 

 

 

 

자애명상의 순서

자애명상은 나 자신이나 모든 존재, 또는 한정된 대상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명상입니다.

자애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단계로 용서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용서는 두 방향으로 일으키는데 먼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받은 마음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남에게 잘못한 일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타인의 잘못을 용서해줄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주는 태도는 마음의 분노와 원한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용서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애의 마음이 어느 정도 경험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싫거나 미운 사람을 떠올리면서 용서를 구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면 증오심에 빠지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그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는 용서합니다.’

 

간단하게는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잘못한 일은 용서를 구합니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일은 용서합니다.’

 

용서의 마음을 일으킨 후에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을 먼저 합니다. 자신을 향한 자애명상은 자신을 보살피고 돌보아 소진을 예방하고 자기 존중감과 자기 내면의 좋은 면을 확신하고 키우는 명상입니다.

먼저 자신의 좋은 점, 잘한 점, 열심히 살아온 면, 과거의 좋은 경험, 지금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점 등, 자신의 인생의 밝은 면을 깊이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하며, 사랑스럽다는 점을 숙고해 보고,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 자신이 행복해질 가치가 있음을 깊이 생각한 후에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을 2~5분 정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은 본보기로 하기 때문에 길게 하지 않지만, 자신을 향한 자애명상이 잘 되는 경우에는 자주 시도해도 좋습니다. 특히 일상이 따분하거나, 별다른 자극이 없어 밋밋하거나 힘들 때 자주 하면 좋습니다.

 

내 자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위와 같은 문구를 그 의미를 음미하면서 계속 자신을 위해서 마음속으로 반복합니다.

다음에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 또는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합니다. 이 두 대상이 자애명상의 주된 대상입니다. 지금은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은 자아의 한계를 확장해서 다른 존재들의 행복과 평화를 바라면서 상호 연결성을 회복하고 길러가는 명상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명상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초보자에게는 이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내 자신이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이므로, 내가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모든 생명들도 각자에게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이므로 각자 자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나를 본보기로 해서 깊게 숙고합니다. 그런 후,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이 진정으로 잘 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하게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만, 행복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연습을 반복하면, 점차 마음에서 따스함, 기쁨,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이 간단한 자애문구를 자주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연습하면 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수련할 수 있습니다. 이 자애의 마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마음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은 인간의 고귀함을 넘어 신의 영역에 속한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애를 범천의 경지, 범천의 마음가짐이라는 의미의 범주(滼住)라고 하는 것입니다.

범천이라는 천상은 색계 이상의 천상을 말합니다. 자애명상은 바로 범천의 마음이므로 자애명상은 범천이 되는 길로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다음 호부터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설명하겠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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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네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보디사트바>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학처장님의 <자애명상>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다섯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용서에 대해서

 

김재성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교학처장

 

 

 

자애명상의 준비과정인 용서

용서는 두 방향으로 일으키는데 먼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받은 마음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남에게 잘못한 일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타인의 잘못을 용서해줄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주는 태도는 마음의 분노와 원한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용서는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덕목의 하나입니다. 용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또 치유된 마음은 다른 사람들, 특히 상처를 준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낼 수 있게 해줍니다.

 

용서는 오래된 개념입니다. 용서의 본질적인 요소인 친절, 연민, 박애 등은 거의 모든 철학·종교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서 용서에 대한 가장 확고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용서에 대한 심리학적인 연구는 198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용서의 핵심적인 특성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관계회복(화해)과 같지 않으며, 용서는 부정적인 생각, 감정 및 행동을 중단하는 것이고, 또한 용서는 망각이나 변명이 아니며 깊은 상처나 악행으로부터 용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용서 연구 전문가인 심리학자 엔라이트(Enright)의 용서의 정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상처를 입었을 때, 분노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에게 연민과 자애, 사랑을 베풀고자 함으로써 그에 대한 원한을 극복하려는 것, 그것이 바로 용서다.

우리가 이렇게 용서할 때, 용서하는 우리는 그 가해자가 반드시 용서라는 선물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적대감을 버리고 오히려 가해자에게 동정과 자비,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복합적인 심리적 과정으로서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정서, 행동, 인지를 긍정적 정서, 행동, 인지로 대치하는 과정이다.

 

심리학자 딕 티비츠의 용서의 열 가지 법칙

 

(1)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의 다른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2)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을 때.

(3)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그리고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깨달을 때.

(4) 불쾌한 사건이나 아픔을 주는 사건으로 당신이 화나고 상처받았음을 인정할 때.

(5) 당신이 받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 억울한 사연을 현재의 관점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 살파볼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입힐 때.

(6)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않느냐를 오직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7)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살아온 처지에 공감함으로써 그를 보는 시각을 바꿀 때.

(8) 불만족이 아닌 만족에 가까워지고자 할 때.

(9) 용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채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때.

(10)당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려 할 때. 살아가고자 한다면 당신을 어느 순간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이해해도 용서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단 용서하는 마음은 분노에 빠져있는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선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원한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내부에서 독을 뿜어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4단계의 용서과정 모델은 다음과 같습니다.

 

4단계의 용서과정 모델

 

(1) 개방하기 : 부당한 대우와 그로 인한 상처가 있음을 인식하기

(2) 결정하기 :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용서하고자 인지적으로 결정하기(용서의 시작단계)

(3) 작업하기 : 상처를 준 사람이 그가 준 상처 이상이라고 이해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기

(4) 심화하기 : 나도 다른 사람의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지, 내가 용서를 받았다면 어떠했는지 생각해본다. 용서는 움직이는 표적이다. 용서는 실천할수록 점점 더 심화되어 간다.

 

자애명상을 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고, 타인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마음을 다음의 구절을 통해서 먼저 일으킵니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그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는 용서합니다.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용서의 방법과 자애명상에서의 용서실습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는 작업이라는 점, 용서도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명상의 준비과정에서 하는 용서의 문구를 읽거나 암송할 때, 명상의 초보자들은 용서를 구할 대상이나 용서를 해 줄 구체적인 대상을 무리하게 선택하지 말고 일반적인 용서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권합니다. 명상이 잘 진행되어 싫은 대상을 향해서도 되는 시점이 되어야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용서도 더 잘 될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씩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E-mail metta4u@empal.com 자애명상센터 http://cafe.daum.net/mett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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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네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보디사트바>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학처장님의 <자애명상>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네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불교명상을 이용한 분노조절의 원리

 

김재성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교학처장

 

 

분노를 다스리는 자애명상

용서하는 마음을 일으킨 후에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노의 반대 정서이자 좋은 의지인 자애의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붓다는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자애명상을 제시하셨습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이 잘 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이 자애명상입니다. 자애명상을 마음으로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는 자애명상의 문구가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이라는 문구를 깊은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마음속으로 반복합니다.

자기 자신, 고맙거나 존경하거나 은혜를 입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어하는 사람, 원수 같은 사람에게도 순차적으로 명상의 대상을 넓혀나갑니다. 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동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 자애명상이 완성됩니다.

자애명상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지 알 수 있는 비유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만일 산속이나 으슥한 곳을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살인강도가 나타나서 나에게 협박하기를 이 가운데 한 사람은 내가 꼭 죽여야 나머지 사람들을 살려 보내겠다. 죽일 사람 한 사람을 네가 선택하라고 나를 지정해서 말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애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싫어하는 이 사람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을 풀어주세요.“라고 말할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하지만, 자애명상으로 향상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나와 나머지 네 부류의 사람이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모두 행복하고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무도 선택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애명상은 이처럼 나와, 고맙거나 존경하는 사람과 중립적인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마음 수행으로 마음속의 적의나 악의를 다스립니다.

 

자애명상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 수행의 일부입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바라는 ’,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인 ’, 타인이 잘 되고 행복해진 것을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인 ’, 평정한 마음인 가 사무량심입니다. 이 가운데 자애명상이 분노를 다스리는 마음집중 수행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분노라는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방법은 인내와 자애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분노는 자신과 남을 동시에 파괴시킵니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자신의 행복을 일구어내기 위하여 자애라는 덕목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상윳따 니까야의 염처상응念處相應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할 때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많은 수행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남을 보호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인내와 해치려는 마음이 없음과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자애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연민을 통해서입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 인내와 자애심을 기른다면 그것은 곧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에서 우리는 나와 남의 상호관계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실천은 자신을 보호하고 유익하게 하는 자리의 원리와 남을 보호하고 유익하게 하는 이타의 원리를 본질로 삼습니다. 남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보호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잦아지고 자기를 추스르는 힘이 약해지면 소진이 일어납니다. 소진이 일어나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면, 이때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났던 좋은 경험이나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음미하거나 연민 또는 자기 연민을 통해서 어려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회복 탄력성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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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세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보디사트바>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학처장님의 <자애명상>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세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불교명상을 이용한 분노조절의 원리

 

김재성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교학처장

 

 

 

분노의 심각성

분노는 심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며, 육체에 미치는 나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싫어하는 대상(사람이거나 어떤 일)과 마주칠 때, 불쾌한 느낌과 함께 다양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납니다. 슬픔도 분노이며, 짜증, 싫증, 비탄, 우울도 싫어하는 대상이나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분노의 모습들입니다.

분노가 건강에 해롭다는 임상적인 연구는 많습니다. 듀크(Duke) 대학의 윌리암즈 박사는 단명으로 이끄는 듯이 간주되는 분노의 독특한 성질에 대해서 주의 깊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분노의 특이한 성질에는 3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분노의 3가지 특징이란 냉소주의적인 태도, 타인에 대한 의심, 부정적인 견해입니다. 분노가 있다면, 남들이 우리를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적대적인 태도 때문에 분노의 감정이 생겨나서 이 감정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분노가 폭발하면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참을성 없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심각한 심장 발작이 일어나기 2시간 전에, 가장 흔히 나타나는 감정의 하나는 바로 분노라는 사실을 하버드 대학의 연구자들이 발견했습니다.

일단 심장병이 악화되면 분노는 치명적입니다. 첫 번째 심장발작이 일어나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 가운데, 쉽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20년 내에 심장발작으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는 확률이 다른 환자에 비해서 2-3배 더 높다는 사실이 스탠포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분노의 원인

불교에서 원한 또는 진노가 생기는 10가지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 원한이 생긴다는 것은 8세간법 가운데 2가지인 이익과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원한이 생겨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유 없이 생기는 화는 전생을 포함해서 과거의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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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두번째]

정토마을 계간지 <보디사트바>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학처장님의 <자애명상>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慈愛명상 두 번째 이야기-

  자 애 慈 愛 명 상

 

김재성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교학처장

 

이번호에서는 자세한 자애명상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과 기쁨을 길러주기 위해서 마음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방사하는 자애명상(Loving-kindness meditation)은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인 향상과 성숙을 위한 정신수행에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자애명상에는 11가지 유익함이 있습니다. 경전에 제시된 자애명상의 11가지 유익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 수면장애에 대한 치유 효과를 말합니다. -는 다른 사람과 생명과 관계 개선을 의미합니다. -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선한 천신들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은 삼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는 용모와 미용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은 웰다잉과 관계있고 은 죽은 후의 좋은 효과를 말합니다.

자애명상의 대상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정되지 않은 대상과, 한정된 대상입니다. 한정되지 않은 대상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말합니다. 한정된 대상이란 특정한 사람이나 사람의 집단, 혹은 특정한 존재나 존재의 집단을 말합니다. 먼저 한정되지 않은 대상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한정되지 않은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잘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것이 자애명상입니다. 자애명상을 마음으로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는 자애명상의 문구가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마음으로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라고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외웁니다. 말로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지하게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면서 외웁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앉아서 마음으로 이 자애명상의 문구를 외웁니다. 도중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이 떠오른 사실을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자애명상의 문구로 그 생각을 대체하여 마음속으로 반복합니다.

처음부터 자애명상의 대상을 일부러 형상화시키거나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자연스럽게 대상의 모습이 떠오르면 그 모습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마음을 자애명상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자애명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마음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해지며, 시원한 느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

 

먼저 존경받는 사람, 고마운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 고마웠거나 존경했던 스승이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선택된 대상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자애명상의 문구를 외웁니다.

 

스승님께서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어머님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아버님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이처럼 자애명상의 대상을 지정해서 자애명상의 문구를 마음으로 반복합니다.

한 대상을 향해서 5분에서 10분 정도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도 마음에 사랑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으면 다른 대상으로 바꿉니다. (이 때 왜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가 분석하거나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만일 사랑의 느낌이 향상되면 15분에서 30분 정도 한 대상을 향해 자애명상을 지속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30분이나 1시간 동안 좌선하는 동안 대상을 너무 많이 바꾸면 안 됩니다. 30분 동안 4-5명 이상 대상을 바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할 때, 명상의 초보자에게 부적합한 다섯 대상이 있습니다.

먼저 너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그 대상이 어려운 상황에 있거나 아프거나,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명상하는 이의 마음도 불편해지고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애의 느낌도 생기지 않고 슬퍼집니다. 하지만 자애명상이 익숙해지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정된 대상으로 선택해서 자애명상을 해도 좋습니다. 두 번째 대상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중립적인 사람입니다. 중립적인 사람에게는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피곤해집니다. 사랑의 느낌이 부족해서 피곤해지면 명상이 잘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한정된 대상으로 했을 때,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기 전에 미움이나 분노가 먼저 일어나게 되고, 이 분노를 초보자는 조절할 수 없게 됩니다. 네 번째 대상은 이성(異性)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또는 성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성의 파트너를 대상으로 했을 때, 자애의 느낌이 생기기 전에 감각적 욕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는 대상으로 해도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집중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위의 다섯 대상을 제외하고, 처음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하는 초보자의 경우는 존경할 만한 스승이나 고마운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게 행복과 평화와 평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애의 느낌이 커지면 마음은 잘 집중됩니다. <계속>

 

 

E-mail metta4u@empal.com 자애명상센터 http://cafe.daum.net/mettaa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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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첫번째]

첫 번째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정토마을 계간지 <보디사트바>에서 2013년 여름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김재성교학처장님의 <자애명상>을 그대로 옮겨 싣습니다.

 

   

<사진 :그레고리 콜버트>

 

자애慈愛 명상

 김 재성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교학처장 

 

이번 호 부터 긍정적인 정서를 길러 행복을 경험하는데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자애명상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자애란 무엇이며, 어떻게 자애의 마음을 기르는지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자애란 무엇인가?

 자애(慈愛)란 자비(慈悲)에서 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친구와 나누는 우정과 같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애정이나 가족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이며 조건과 한계가 없는 수평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내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마음을 모든 존재에게 확장시켜 모든 생명 있는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유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애라고 합니다. 한편 자비의 비()는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해로움과 괴로움을 없애주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애는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를 대하라. 는 황금률(The Golden Rule)과 근본적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이가 행복하기를 원하라는 말입니다. 이제 자애의 마음을 어떻게 기르는지 실제적인 자애명상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한눈에 보는 자애명상법

 

자애명상은 자신의 삶이 소중하며, 스스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본보기로 하여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향했던 자애의 마음을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향해 일으킵니다. 다음에는 대상을 한정시켜, 특정한 대상(고맙거나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중립적인 사람,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을 향해서 체계적으로 길러나갑니다. 자애명상이 충분히 개발되면 자신,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은 사람, 미운 사람에게 똑같이 자애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마음에서 용서가 이루어지고, 분노와 맺힌 한을 비워버리게 되어, 행복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의 좋은 점, 잘한 점, 지금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점을 깊이 숙고한 후에 이러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며, 자신이 행복해질 가치가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자신에 대한 자애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존재를 향한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존재나 특정한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을 먼저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은 보통 2-3분에서 5분 정도합니다. 본보기로 하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하지는 않아도 되며, 다른 존재를 향한 자애명상에 자신은 항상 포함되게 됩니다. 자애를 일으키는 동안 가장 먼저 자애의 효과를 보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자신을 향한 자애 문구를 마음속으로 반복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계속 일으킵니다.

 

내 자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명상

 

다음에는 내 자신의 삶이 소중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의 삶도 각자 가장 소중하며, 모든 존재들도 행복하고 잘되고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모든 존재들이 잘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 마음을 모든 존재들에게 보냅니다 

마치 태양이 스스로 빛을 발하여 모든 존재들을 비추듯이 마음속에서 자애의 빛을 일으켜 모든 존재들에게 방사(放射)한다는 마음으로 자애명상을 합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며, 그 중심에서 한계 없이 조건 없이 빛을 보내는 태양같이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 보냅니다. 처음에는 위선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하고, 지루하거나 아무런 느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좋은 의지를 일으키게 되면, 점차 진심에서 자애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하면서 마음 속으로 반복합니다.

 

-한정된 대상에 대한 자애명상

 

다음으로 자애명상을 통해서 강한 집중력을 기르고, 체계적으로 마음속의 분노를 비워내기 위해서 자애의 느낌이 잘 일어나는 대상을 시작으로 하여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애명상을 합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고마운 사람, 존경하는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이나 단체 (처음 1주일간 연습)

②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지, 친구 (2주차 1주일간 연습)

③ 중립적인 사람, 무관한 사람 (3주차 1주일간 연습)

④ 싫은 사람, 미워하는 사람, 자신의 까다로운 측면 (4주차 1주일간 연습) 

(존경하는 스님)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처음 1주일 정도는 고마운 사람, 존경하는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이나 단체를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여 마음속에 자애의 느낌이 일어난 후에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은 사람에게로 순서에 따라 옮겨가야 합니다.

자애의 느낌은 가슴의 따스함, 전율, 행복감, 기쁨 등으로 경험됩니다.

 

주의사항

특정한 대상 가운데에는 죽은 사람을 포함시키지 않고, 초보자는 욕망이 일어날 수 있는 이성(異性)으로 여겨지는 대상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지 않습니다.

자애명상의 가까운 함정이 애욕에 빠지는 것이므로 사전에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E-mail metta4u@empal.com  자애명상센터 http://cafe.daum.net/mettaa

 

   [보디사트바 2013년 여름호]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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