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선택]

기회와 희망의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가능한 선택에서는 교육, 행사, 세미나 등의 내용들을 공유합니다.

 

 

선택 하나 :) 2018학년도 전기 신입생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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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은 삶의 현장이며, 삶은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박경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8학년도 전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저희 대학원의 석사과정과 생명교육전문가과정은 실천학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기당 등록금은 석사과정 350만원이며 재단 장학금이 60만원 지원되어 실납부등록금은 290만원입니다. 생명교육 전문가과정은 150만원입니다.

1120일까지 석사 추가모집이며,

1130일 생명교육 전문가가 마감됩니다.

사회의 밝은 빛이 될 훌륭한 인재를 기다립니다.

입학문의

052-255-8521, 010-4656-0180

 

선택 둘 :) 3회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 <교사들의 자기치유 명상법과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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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특수분야 교원직무연수 <교사들의 자기치유 명상법과 힐링>

2016년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교육기부 협약에 따라 진행되는 사회공헌사업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교원의 심신에너지 소진예방과 자기치유 및 회복능력을 계발하여 학교현장에서 교사의 심리적 안정과 긍정적 학생 생활지도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선택 셋 :) 46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 46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 신청 바로가기


교육생분들이 남겨주신 후기로 생사의 장 소개를 대신합니다.^^

 

제 자신을 성찰하며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지고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 39기 비구니 [정토마을소식지 2014 가을호]

 

"호스피스교육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치유, 사랑을 배웠고 이해와 용서, 사랑이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통해 진정한 자비의 원천이 이뤄짐을 배울 수 있었따. 자신을 성찰하고 성숙할 기회는 결코 흔하지 않기에 구도심으로 참 진리를 찾아 수행하시는 분들게 진정으로 이 호스피스 교육을 추천하고 싶다."

- 40기 김** [불교신문 2015.02.09. 기사]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부르짖고, 깊이깊이 내면의 바다로 빠지면서 그 끝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릴 수 있었다.”

-44기 이** [정토마을소식지 2017 봄호]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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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보슬보슬 여름비 시원히 내리던 광복절 연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오신 김수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수필 선생님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 함께 동행하실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교육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2015년도 여름 41기 교육을 받았고, 그 후에 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께서 대학원을 추천해 주셨고요.


사실 저는 대학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거든요. 굳이 대학원 공부까지 해야 하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능인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어떤 계기가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렇게 도전하게 되었던 거죠.


 

계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계기가 마련이 되신 경우네요, 입학하셨을때의 첫 마음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전에도 불교관련 공부를 했었는데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제가 모르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리고 보통 대학원은 금요일 수업이면 끝나는데 토요일에 와서 또 플러스된 교육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 량이 다른 대학원에 비해 많은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금요일에 집에 안가고 여기서 자고 토요일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호스피스교육 스탭, 병원봉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43기부터 스텝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스탭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45기 생사의장 교육 때에는 학생 곁에 선생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교육에 학생지원을 선생님이 맡으셨나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건교사이다 보니까 의약품관련해서는 담당을 하게 되었구요. 특별히 학생지원 소임을 살지는 않았어요. 누가 아프다고 약을 요구하시면 후에 지금은 상태가 어떠신지, 살피고 한번 물어봐도 주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렇게 보여지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이번 교육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건강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사실 우리 행정실은 교육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교육생들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교육을 마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그런 부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러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챙겨주신 선생님이 계셨으니까 안전하게 교육이 진행될 수 있었구나 싶어서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웃음)


 

그런 스탭으로서의 일이 선생님께 어떤 도움으로 다가오시는 거죠?


교육생의 마음을 살피는 것?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구요. 봉사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봉사는 세심함이 필요하잖아요. 환자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하는지, 손짓 몸짓 표정 그런 것들이 세심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자비심 보리심 그 마음들이 생겨나는 건가요?


그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으면 좋죠. 근데 저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자비심 자애심 이런 것이 제 마음속에는 별로 존재하지를 않아요. 근데 봉사를 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들이 반드시 필요하죠. 모든 중생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봉사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에 이미 자비심이 자리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웃음)

 

 

병원봉사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2층에 계신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로 시작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 환자를 만날 때의 마음가짐, 대화법, 그런 것들을 관찰일기로 쓰라고 하셔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환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렇게 관찰일기를 쓰면 능인스님(영적돌봄연구실장)께서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시거든요. 이런 때에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죠. 그리고 나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의 느낌이 잘못 들어가면 환자가 거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을 교육 받으니까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작년부터 호스피스병동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한두번 정도 들어가고 있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생사의 장 교육을 마치신 분들도 계시고, 대학원생 분들 중에서도 아직 봉사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하나에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우선은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 다음이 시간이겠죠? 시간이 안 된다면 사실상 봉사를 하기가 어려워요. 안되는 시간을 억지로 내게 되면 봉사가 잘 될 수가 없거든요. 내가 편안한 상태로 환자를 만나야지만 환자도 편안해하는데, 내가 불편하고 힘든 기운으로 들어가게 되면 환자에게 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거든요. 시간이 되고 마음을 낼 수 있을 때 천천히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서두르지 말고요.


그 조건이 되어야 꾸준한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능인스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셔요. 굳이 많이 자주 오려고 하지 말아라. 지치게 하지 말고,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이라도 꾸준히 오면 된다. 그 말이 봉사를 시작하려는 분들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3학기를 마치고 4학기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들은 없으셨나요?


관심을 가진 분야의 수업은 쉽게 다가오는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아무래도 지루한감이 있어요. 그래도 배운다는 입장에서 참여는 하는데, 사실 저에겐 생명교육 분야가 좀 흥미에서 떨어지는 부분이예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자체가 보건교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생명윤리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고 좀 신선하지가 않은 부분이 있죠.(웃음) 그래도 1학기에서 이론을 마쳤으니까 2학기는 그런 점들이 좀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싶고, 바램이 있다면 남에게 쓰임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살다보니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산다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라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봉사하면서 나름대로 깨어있는 삶을 살다보면 제 삶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내 것인 것 같은데 결코 내 것이 아닌 것이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것을 찾아야하겠죠. 이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함께 하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도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반들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 들어오시는 후배들을 통해서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람관계에서 배워지는 것이 실은 수업을 통한 배움만큼 많거든요.

다른 사람의 질문들, 내가 생각하지 못 했던 사고방식들, 그런 것들이 참 좋아요.

그리고 어떤 공부일지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꾸준히 공부합시다.^^

 

나에겐 자비심이 없다는 김수필 선생님께 모르고 행하는 자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르고 행하는 선한의 공식 : 마음=Real 자비심=김수필 선생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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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장익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이 따끈한 오늘, 웹진 마음은 장익 교수님을 뵈러 경주 위덕대학교로 향합니다. 장익교수님의 마음을 만나러 가는 길, 함께 동행하실까요?

 

 

교수님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운명처럼 능행스님을 만난거지. 그게 아마 80년대 후반쯤 될까?


스님은 굉장히 학술적이고 공부에 진지한 분이셨어요. 그때 제가 조계사 불교대학하고 대원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그 두 군데를 다 와서 공부를 하셨어요. 그래서 인상 깊게 스님을 보고 있었고요. 결정적인 만남은 그 후 10년쯤 뒤였어요.


뭐랄까... 괴로운 일이 운명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때 저희 아버님이 진찰을 받았는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저는 그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부터 공부를 했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케어라든가, 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라든가 하는 그런 개념이 전무했고 일본에 서적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일본에 니시라는 교수가 있는데 니시요법이라고 야채즙, 녹즙, 붕어체조, 인삼요법, 버섯요법, 그 당시 내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강원도까지 가서 약초 캐고 하면서 효자 노릇 좀 했죠. 어쨌든 아버지께서 한 2년간을 무사히 건강히 계시다가 가셨죠그 기간에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부끄럽게도 내가 불교학자이면서도 아버지 죽음을 정신적으로 뛰어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런 기회에 말기 암환자에 대한 케어 실습을 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공부하는 데에도 전환점이 된 거 같아요. 학술적 공부가 내 임무라 생각했는데, ‘아 이 세상에 필요한 공부가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버지 49재를 마치고는 바로 인도 행 비행기를 탔어요. 무작정 갠지스에 가서 죽음을 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각오가 필요했죠.


그렇게 돌아왔는데 능행스님이 청주에서 정토마을을 시작하셨더라고요그때 내가 갔을 때 비닐천막치고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고 있었어요. 겨울에 눈은 오고 추운데 40~50명이 비닐천막에 빽빽이 모여 있었죠. 그 열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그곳에서 강의했던 기억이 나요. 인연의 시작은 뭐 그런 정도10년 전 불교대학에서의 인연이 스님은 호스피스 쪽 길을 걸었고, 나는 그런 쪽에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다시 연결되었던 거죠.

 


활동과 학문이 딱 결합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의 만남이요.


상당히 감동적이었어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인데, 모두의 정열은 정말 대단했거든.

 

 

그 인연이 대학원까지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제가 97년도에 이곳 경주 위덕대학교를 오게 되었어요. 그때 스님이 언양에 건물하고 땅을 구입하신다고 한번 왔으면 좋겠다하셔서 간 적이 있어요. 가서 보니까 공장폐허에 불모지인데 위치가 참 좋았어요아 스님이 이제 가까이 오시는구나.’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스님이 공부와 학업, 교육 쪽에 워낙 관심이 많으시니까 어느날 그 곳에서 마하보디상담대학을 시작하셨던 거예요. 그 대학을 하시면서 내게 연락이 왔는데, 이게 학위과정도 아니고, 전문가과정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학술적으로도 진척이 없고 학생들도 발심이 덜 하다고, 학위과정으로 어떻게 할 수 없겠나 하는 문의를 주셨죠.


당시 내 생각에는 학생들이 이론수업만 들어서는 안되고 적어도 하루쯤은 임상이라든가 실습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겸해서 그야말로 우수한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일을 추진해보려 하니까 조건이 안되는 거예요. 근데 스님과 연락을 하다보니까 스님 쪽에서는 그게 가능했던 거죠. 스님은 임상이 가능하고, 우리 대학원은 이론이 가능하니까, 그러면 합쳐보자 한 거예요. 그렇게만 한다면 이 분야의 최고의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다. 그렇게 스님도 나도 오케이 하고 2007년도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으로 승격을 하고 위덕대학교 불교대학원하고 MOU를 맺고 학위도 취득하고 임상과 실습도 겸하게 되었죠.


내가 볼 때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장이예요.

 


그렇게 저희 대학원에서 여러 학생들이 논문을 썼는데요, 그 중에 성과적인 논문이 있었나요?


불교 쪽에서는 참 쉽지 않은 논문을 많이 냈어요. 혁신적이라고 봐야지.


불교학에서 보면 불교학, 불교사, 지역불교 이렇게 연구하다가 응용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쪽이 있었는데 말이 응용이지 전문적이지 못했거든요. 대중적인 연구 정도밖에는 안되었는데 우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같은 경우에는 응용의 분야를 명상심리라고 하는 쪽에 한정을 시켰지만, 그쪽 분야에서는 정말 최초의 논문들이었죠. 임상까지 거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걸 다시 적용해서 임상적 효과를 입증하는 단계까지 간 논문이 그 당시에는 없었어요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이 아주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지요.


 

졸업생 분들도, 재학생 분들도, 또 입학을 고민하는 분들도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의 학문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쎄, 학문이라는 것은 원래 축적이 되어야 하고, 네트워크 형성으로 활용도가 펼쳐져 나가는 거예요지금까지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네트워크 연결망이 부족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졸업생들은 개인적인 공부에 그치고는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열렸다고 봐요. 우리가 임상을 통해 논문도 쓸 수 있고, 현장에서 바로 케어에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런 계기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할 거예요.


능행스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성공한다면 전국 어디에 가도 성공할 수 있다고요. 적어도 이런 자재요양병원 쌍둥이가 50개는 되어야 한다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전국을 누비면서 활동을 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해요. 분명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그냥 이렇게 사느라고 나 자신을 잘 못 돌아봤네. 이제부터 좀 돌아보려 해요. 조만간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 쪽으로 이 분야의 구체적 선진사례들과 학술적인 연구들을 살펴보고 싶고, 특히 그런 것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직접 다녀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 걸음을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한번 더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은 발목 잡힌 곳이 많아가지고 쉽게 움직여지질 않네요. (웃음)

 


교수님께서도 인생의 고비가 있으셨나요?


... 글쎄요. 저에게는 불교학을 만난 것이죠. 아마 이 길이 아니었으면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는데.(웃음)

어린 나이에 좀 더 쉬운 길도 있었는데 왜 힘든 이 길을 선택했을까? 그게 항상 고민이었어요. 이게 내 운명임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죠. 지금은 오히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그 고비를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신 계기가 있으세요?


불교학 속에서 내 스스로가 이해되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수용이 되고, 내 삶에 대한 문제가 풀어지니까요. 불교학 쪽에서 나를 송두리째 재발견하는 계기를 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글쎄, 나는 두 갈림길 중에 가고 싶은 길을 가지는 못 했지만, 그 길보다 훨씬 더 잘 온 것 같아요. 지나온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교수님의 인생에 있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불교학을 만난 것이죠. 그게 내 인생에서 제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죠.

 


앞으로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별로 남길만한 그런 걸 갖고 있지 못한데...

 


교수님께서는 선물로 불교학을 받으셨는데, 선물을 안 주고 가신다구요?(웃음)


그런 선물이라면 뭐 좀 더 많은 사람이 불교학을 만나서 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화두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다듬고 가꾸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거죠. 마음은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요이 마음을 잘 성찰하고 가꾸어 가야하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이 2년 반 과정이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 안에 좀 더 올인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너무 빨리 보려고 하지 말고, 이 길에 한번 매진해서 몰두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미래에는 분명히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명교육전문가과정도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각자 깊이 있는 자기성찰, 그리고 학술과 실천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적극성을 가지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은 불교가 아직 개척해 놓지 않은 길을 처음 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길 없는 길을 가다보니 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좀 흔들리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해요.


보물은 역시 숨어있는 거니까요. 보물은 찾는 대상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을 보면 보물 만나기 직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죠.(웃음)


조금만 다른 안목으로 바라보면 길도 보이고 세상도 열리는데, 자꾸 자기의 좁은 안목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니까 눈앞에 보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아까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 자세도 중요하지만 자기 내면적인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예요그래서 스스로가 불교 생명과 윤리, 과연 이것이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해요그렇다면 분명 길도 보이고 적극성도 가지게 될 것이고, 멀지 않은 때 훌륭한 인물로 전문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학생들 각자가 자기만의 학문적 화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생명교육과정의 학생들에게도 부탁을 한다면, 불교 윤리는 상당히 다양해요. 그래서 어떤 가시적인 종교윤리가 아니고, 세속적 윤리도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지고지순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사회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안도 굉장히 넓다고 생각해요. 근데 현재까지 불교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 지나친 계율주의나 원칙주의에 빠져있어서 현대적인 해석을 못하고 있고, 그런 것이 오히려 본질적인 생명윤리에 접근을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볼 때는 불교라는 것은 진정한 인간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생명윤리에 있어서도 불교가 해야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곧 그것은 불법에 대한 긍지인데, 그 긍지가 자기에 체득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한 명상심리와 생명윤리는 한 뿌리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돌아보는 명상이나 심리나 이것 또한 생명윤리와 접점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불교라고 하는 엄청난 세계가 있고요. 이걸 뿌리로 해서 다양한 전공도 앞으로 가능하고,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아요.


학생들 스스로 불교적 철학 안에 내가 어떤 철학으로 생명윤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얻어야 해요. 그러면 흔들리지 않죠.


불교생명윤리라고 하는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학적인 부분에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사회적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한데, 이것이 주인의식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교수님께서는 불교 생명윤리에 대하여, 학생들에 관하여, 학교에 관하여, 애정이 담긴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교수님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웹진을 발행하는 오늘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애정어린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준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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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오후, 도우스님을 만났습니다. 카페에 앉아 논문을 쓰며 하루를 보내셨다는 도우스님, 졸업을 앞두고 계신 도우스님의 역사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마음가득 기대와 설렘이 차오릅니다.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 얘기 하려면 진짜 긴데? (웃음)


출가하기 전에 저는 9살 때부터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찾았어요. 처음엔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갔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해 봤는데 찾지를 못했어요. 다 아닌 거예요. 그런 시도를 계속 하다가 자포자기를 하게 돼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이었나보다.’ 그렇게 되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근데 “너처럼 밝은 애가 왠 우울증? 니가 왜? 뭐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면서 나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잘 살면 되잖아. 열심히 살면 되지” 그러는데 저는 “무엇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게 중요했던 거거든요. 그렇게 우울감에 방황하던 시기에 출가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알게 된 거죠. ‘아! 이거구나’하고요.


출가를 해도 스님들이 나가는 방향(진로)이 각각 다르잖아요? 저는 공동체를 하고 싶었어요. 공동체 운영 계획이 있었어요. 강원을 졸업하고 한 일 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알아보고 하면서 공동체를 준비하려고 했었죠. 근데 뭔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예요. 


그런 복잡함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잠시 여기 정토마을에 봉사를 왔었죠. 제가 강원 4학년때 호스피스교육을 받았었거든요. 그때 이게 내가 찾던 길이 아닌가? 했어요. 그 인연으로 봉사까지 오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저것 일을 하게 되고 원주소임까지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CPE를 하게 되었는데, ‘아, 이건 정말 내가 찾던 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었어요. 해결책을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CPE를 하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해결방안도 제시할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도 입학하게 된 거죠. 정말 잘 시작 한 것 같아요. 또 특별히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도 인연이 참 잘 닿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시너지 효과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도 허물이 없어서 참 좋아요. 지금 생각나는데 첫 강의 들어갔을 때 ‘수업을 이렇게 해도 되나’ 했어요.(웃음) 너무 편안한 거예요. 숨통을 틔우게 하는 수업이었어요.

그 상태에 저는 소임살고 하면서 굉장히 팍팍했거든요? 대학원 수업이 저에겐 오히려 휴식처 같고 좋았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학생들을 만나 보니까, 정토마을 공동체 스님들의 대부분이 대학원 수업을 휴식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웃음)


그게 소임만 살다 보면 내가 여기 뭐 하러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면 나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내가 이걸 하려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거지?’ 하고요.

근데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자꾸 까먹어요.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아, 그래 이거지!’ 하고 균형감을 맞출 수가 있는 거죠.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에는 때가 늦었기 때문에 심리공부는 할 수 없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이 있었어요. 정말 원하던 것을 하게 되니까. 단기간으로 뭔가 배우는 것보다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심리공부를 정말 정식으로 배우는구나 하는 안도감, 편안함, 성취감, 기쁨 이런 것들이 있었죠.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는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좀 놀라웠어요. 거의 포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이 부분이 저의 꿈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 온 것은 저에게 호흡과 같은 의미가 있어요.

 


졸업을 앞두신 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배운게 참 많다.(웃음)


어제 미술치료를 하는 바람에 사기가 꺽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중한 경험들을 한 것 같아요. 소중한 얻음을 얻은 거죠. 알아차림을요. 어제 미술치료를 하면서 마지막에 몰랐던 나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게 오늘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본전을 챙기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어요. 알찬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실습이 바로바로 이루어 지잖아요. 그런 기회들도 너무 감사하고 그런게 되니까 학교공부도 튼실하게 잘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이 명상이나, 환우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부끄러운 거예요. 이런 단어들은 쓰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꾸 쓰고 있고,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가 있고 끝나고 나면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안타까움 부끄러움 그런게 많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알차다고 느껴요.

 

 

 

배우고 익히고 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스님 앞에 펼쳐져 있었네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요. 내가 복이 많은 거 같아요. 소임 살면서는 내가 뭐 하는거야. 땜방 하는 느낌만 들고 티도 안 나고 지금 끝나고 나서 보니까 아귀가 딱딱 맞으면서 아 내가 진짜 복이 있었구나 싶어요. 나름의 피흘림이 있었어요.(웃음)


 

공부를 하시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좋았던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소임 살면서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원주 살 때에는 앞치마 벗어놓고 뛰어올라가고 그랬거든요. 진짜 시간이 부족해서 숙제도 잘 못 해가고 그러면 교수님께도 죄송하고 동기들에게도 미안하고 그랬죠. 


제일 힘든 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거지 ‘난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난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는,
그래도 교수님들께서 이런 것들을 따뜻하게 이해해주시고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시는 모습에서 소임에 대한 귀함? ‘내가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했어요.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힘들었죠? 잘했어요. 어땠어요.” 하면서 피드백을 해 주니까 다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많이 감사해요.


저 학생은 맨날 빠지고 왜저래? 하는 시선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명상수업 지도법사로서 파랑지역 아동센터 아이들과 만나셨는데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예쁜 모습, 귀여운 모습만 좋아했던 것 같아요. 투정부리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일 때는 귀찮아하고 안 보고 마는 제가 있었던 거예요.


 근데 명상수업을 하고 보니까 뭔가 책임감? 아이들의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이런 거 겠구나?’ 하는 느낌? 


아이들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근데 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다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분리심 같은 것들을 좀 알게 된 거 같고요. 아이들이 처음보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열려있다는 것에 안도감, 기쁨 같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반면에는 아이들이 열어준 마음만큼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함께 생기는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가 돼요. 그리고 스님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서 아이들이 발표하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스님께서 따뜻하게 기다려 주시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좀 멍하고, 계면쩍을 수 있는 순간인데, 그 시간에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하면서 느껴진 게 아이들이 대답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할 말 없으면 패스해” 하고 정말 빠르게 진행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아이가 “할 얘기가 없으면 넘길까?”하고 제가 말하는 순간에 우물쭈물 얘기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해버리니까 “없어요.” 하고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다려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명상수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음... 아이들과 ‘쉼 명상’ 했던 거요. 사진에도 있는데 누워서 신체적 접촉을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장난치고 안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너무너무 잘 하는 거예요. 서로 등에 손을 얹어주거나 할 때 참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들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참 따뜻했어요.

 

 

이제 졸업도 하시고... 많은 것들이 마무리가 되어 가시는데요, 앞으로 그리고 계신 모습이 있으신가요?


CPE슈퍼바이저가 되어서 영적돌봄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영적돌봄이 필요했던 건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을 돌봄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슈퍼바이저가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하고 싶어요. 이번에 논문을 쓰다보니까 제가 불교 쪽 이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보강 해야겠다 생각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창이예요.나의 영성과 신체, 물질과 영혼을 이어주고 바라보게 해 주는 문인 것 같아요. 

닫혀 있을 때는 분리되어서 알 수 없는 세계이지만, 창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마음 같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자괴감에 빠질 때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 한 순간도 아무것도 아닌 건 없는 것 같아요. 다 그만큼의 자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에 대해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평가를 해야지 자기의 심리상태가 바닥인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옳은 결론이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하며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된 것 같다고 하시는 도우스님, 소중한 이야기로 함께 해 주신 도우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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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명상]

천천히 읽는 명상의 주인공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입니다.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듯이 마음의 병도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 어릴 때의 왜곡된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주로 정신분석적 견해이고,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배워서 즉 학습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행동주의적 견해이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은 주로 인지치료적 입장인데 모든 이론이 일정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 장애의 전반적인 면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어려우면 즉 부정적 사건이 자신에게 닥치면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사는 것이 한가롭고 여유가 생겨서 정신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살아 온 부부가 있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부부 다툼이 있었다. 금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폭행을 주고받아 진단서를 끊고 경찰서를 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삼키거나 참으면서 가정은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고 빚만 가득 지게 되더니 드디어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손으로 살던 곳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낯선 곳으로 가서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부부는 돈을 모으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왔다.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자녀들이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싶으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고 볼 일이었다.

부모의 힘든 생활을 함께 겪으며 자란 탓에 아이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첫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다가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여 또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부가 시작한 사업은 때맞춰 점점 번창해 나갔다. 드디어 빚도 모두 청산하였고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오뚝이 같이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인간승리의 사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숨죽이고 움츠려 있던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서럽고 한스러운 감정들이 꼼지락꼼지락 살아나고 있었다. 눌러 놓은 것이 많았던 부인에게서 먼저 감정이 요동쳤다. 혼자 있을 때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도 하더니, 드디어는 집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보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붙이면 악에 받친 사람처럼 달려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남편도 아내의 분노를 받아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편 역시 참고 억누르며 살아온 터여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해묵은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자녀들이 중재를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만큼 묵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자녀들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할 시기도 이미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은 한 번 뱉기 시작하면 점점 상대의 허물과 약점을 건드리게 된다. 아문 듯 했던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이성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인 이혼이었다. 애증을 나눈 지난 시간들 가운데 증오심만 눈앞을 가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증오심이 빠져나가게 되면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노력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양가감정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쌓이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미운정 고운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모순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감정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다. 간이라도 내 줄듯하다가 금방 원수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두 양가감정 탓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양가감정은 극복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엔 없다. 어느 한쪽이 모든 짐을 지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도인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은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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