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승혜신 선님을 만났습니다.

 

누굴 만나면 좋을까? 이번에 떠오른 얼굴은 대학원생 승혜신 선님이었습니다. 4학기를 마치고 이제 5학기 인턴이 되시는 선, 4학기를 등록하면서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셨던 선님께 오늘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장스님께서 권유를 해 주셨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 보라고요. 명상심리대학원이 있다는 건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불교와 명상까지는 관심이 가는데, ‘심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서 선뜻 선택이 되질 않았어요.


제가 이곳에 와서 불교를 처음 만났거든요. 스님들과 가깝게 생활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러면서 불교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권유를 해 주셔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불교와 명상에 대해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살아가면서 영성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 스님이나, 틱낫한 스님을 보면서 뭔가 온전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모습들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죠.


심리에 대해서는 제가 거부감이 좀 커요.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좀 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기쁨, 희망, 설렘 그런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과 맥락이 비슷한데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과정 자체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잖아요. 제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업이다 보니까 공부가 그런 부분들에 접목이 되면서 제 자신을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의 설렘? 그런 것들이 다 같이 있었어요.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동안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어느덧 임상상담전문가과정 5학기 인턴과정을 앞두고 계신데요. 인턴과정을 앞둔 선배님의 지금 마음은 어떠하신가요?


(웃음)성실하다고요?


사실 일을 하면서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이번 4학기 같은 경우에는 많이 힘들었고요. 처음 입학할 때에는 몰랐는데, 2~3학기 지나면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주말이면 산에도 다니고 하면서 나름 몸 관리 한다고 노력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그것도 잘 되어 지지가 않았어요.

이런 몸으로 4학기를 하게 되면 건강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휴학을 고민했던 거예요. 공부가 하기 싫거나, 기대가 안 채워지거나 했던 게 결코 아니었어요.


4학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충실한 학생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명상수업 시간에 뻔뻔하게 코골며 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요.(웃음) 너무 엉터리로 4학기를 하지 않았나, 했다기보다 버텨왔다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4학기 한 한기를 너무 엉망으로 해서 교수님들께도, 후배들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서 성실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에 웃으셨구나. 저희는 결석을 한 번도 안 하시기에(웃음)


다니기로 한 이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오긴 와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힘드니까 한편으론 수업시간에라도 휴식을 가져가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도 함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마음으로 4학기 수업을 했어요.(웃음)

 

 

5학기 인턴 수업은 주무실 수가 없는 수업일 텐데, 못 주무셔서 못 오시는 건 아니시겠죠?(웃음)


∙∙∙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욕심이 나는 학기예요. 이번 인턴과정에 함께 할 선배님들과도 좋은 도반이었거든요. 꼭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 과정 동안 과연 나 자신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제가 뭘 하면 대충하는 성격이 못 돼요.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는 성격인데, 이렇게 대충 흘러가는 시간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아깝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그래요.


 

학업을 하시면서 이번 4학기가 선배님께 가장 큰 고비였던 건가요?


그렇죠.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가 되더라고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못 가지고 계속 피로가 누적되니까∙∙∙.


 

그럼 그 고비가 아직 극복이 안 되신 건가요?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학기가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일과 생활 모든 것에서 소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도 몸 관리를 잘해서 마무리까지 잘해봐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5학기 과정을 마치고 쉬어야 극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그런 고비들 속에서도 대학원과 함께 4학기를 보내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기말 세미나 끝나고 재학생들끼리 같이 식사하고 차 한 잔 하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이 되잖아요? 그때 누구는 어떻게 변했고 누구는 이렇게 변했고 누구는 처음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는 그런 서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선후배 간의 교감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동기가 없잖아요. 처음 입학해서 후배로 있을 때에는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 저 선생님은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진짜 이렇게 변화하셨구나.’ 하는 느낌들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거구나. 마음공부들을 하니까 변화들이 생겨나는구나. 하면서 서로 신기해하고, 우리가 이렇게 자랐구나 하면서 확인해 주고, 그런 자리가 굉장히 좋았는데, 지금은 함께 공부했던 선배님들은 안 계시고, 후배들과는 함께 한 시간이 짧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되지 않고∙∙∙. 동기가 없는 저에게는 저의 변화를 발견해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쉬움으로 남아요.

 


이번 인턴과정에 선배님들과 함께 하시면서 본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헤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거니까 굉장히 새로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했던 선배님들이니까∙∙∙. 기대가 돼요.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인데∙∙∙. 저에게 10년 후는 없습니다.(웃음)

오늘 하루를 그저 살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섬진~ 제 첫 손주 섬진이가 최고의 선물이예요. 섬진아 기뻐해 줘라~^^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하늘이요. 늘 변화무쌍하고, 수시로 바뀌는 하늘.

마음도 항상 변화하고 흘러가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학업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적 성장에 있어서 공부를 통한 배움보다도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워가는 게 굉장히 많거든요. 그 속에서 자기 성장도 되고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운 선배예요. 제 위에 선배님들은 수업 분위기도 잘 이끌어 주시고 힘이 많이 되어주었는데 저는 달랑 혼자인 선배가 그런 역할을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이 있어요. 영향력 없는 선배라서.

 

자신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배움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후배들을 향한 승혜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진들도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인터뷰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질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신 승혜신 선, 진솔한 이야기로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 (이선영 - 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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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웹진 마음 열 번째 인터뷰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설립자이자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이신 능행스님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능행스님을 만났습니다.

 

 

 

여름의 더위가 짙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웹진 10호를 특집호로 준비하며 우리 마음 편집진들은 능행스님을 초대했습니다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런 거룩한 초대가 뭔가 부담스럽고 나를 긴장되게 하네∙∙∙하시며 웃으시는 스님께 마음이 묻습니다.

 


스님, 19883월 봉사활동으로 시작해서 2000년 독립형 호스피스시설 정토마을을 개원하고 운영하시다가 2004년 공식적으로 재단이 설립되어 현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설립 계기는 스님의 에세이와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08년 설립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스님께서 대학원을 설립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환자들을 계속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 걸릴까. 왜 이 불치의 병은 우리로 하여금 이 많은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게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을 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 마음이 병드니까 몸에 병이 드는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몸이 병이 들어서 마음이 병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마음이 병들어서 몸에 병이 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걸 알고 고민했어. ‘마음과 몸이 함께 아픈 이 사람들을 어떻게 케어 해 주어야 할까? 몸도 마음도 덜 고통스럽게 머물다 가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때 생각한 것이 병원을 먼저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간절했지. 그런 전문 인력 없이는 병원을 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마음에는 계속 , 교육사업을 먼저 시작해야해.’ 그런 생각을 했지.


그래서 처음 법인을 설립할 당시에도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하겠다고 명시해 놓았던 거야. 언양에 병원 지을 땅을 사고 내려왔을 때도 의료사업보다 교육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대학원 대학교를 지어야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지.


근데 땅을 산 2005년도 그 해에, <섭섭하게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책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2007년까지 책이 엄청난 수로 팔려나갔고, 그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걸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래 이 돈으로 교육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대학교를 짓기 이전에 교육원을 통해 충분히 임상경험을 해 보고 경험이 축적 되었을 때에 학교를 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추진을 시작했지.


그때 반대가 엄청 많았어요. 그 돈들이 병원 짓는 곳에 다 사용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교육원을 짓는다 하니까∙∙∙.

엄청나게 반대도 많았고 장애도 많았지만, 책 판매 된 돈으로 밀어 붙였고, 그렇게 2007년도에 교육원을 개원하고, 2008년에는 대학원 대학교를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계를 한번 잡아보자 하고 지금의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문을 열었지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특성은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의 실천적 성격일 텐데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정체성 안에서 보면 참선도 있고, 행선도 있고, 좌선도 있고, 명상도 있고, 염불선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임상상담전문가과정은 활선이야. 활선, 활동을 통해서 수행을 하는 거지.


사회의 역할로 본다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교육원을 통해서 배출된 여러 학생들이 질병과 죽음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하나의 빛, 등불이 되는 거예요. 어둡고 아픈 곳에서 치유의 등불이 될 것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되어야 해요.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가꾸어 가요. 아픈 곳에는 치유의 빛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는 밝은 햇빛으로, 돌봄의 빛으로, 회복의 빛으로, 용서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이렇게 다양한 빛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대학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까지처럼 위덕대학교와 협력해서 전문성을 높여가고, 때가 되면 학교로서의 구색을 갖추어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지금 우리나라에 대학원 대학이 굉장히 많다는데, 일반적인 대학원 대학교를 만드는 거라면 우리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세상의 고통에 접근해서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들어주고, 그 아픔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훈련하는 학교로서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스님 욕심인데, 우리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막판에 가면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믿어요.

 

 

스님, 모금을 위해 지구를 열 바퀴 돌고, 28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고비의 순간도 많으셨을 텐데요. 스님께서 정말 힘드셨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힘든 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순간이냐고 물으면 선별을 하기가 어려워(웃음) 종류를 얘기를 해야 해.(웃음)


 

인간적인 힘듦∙∙∙? 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모금만 할 때에도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한 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병원을 짓기 시작할 때 두려움이 무척 컸어요. 경험이 없는 가운데서도 병원을 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부담감, 이게 참 많이 스님에게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을 의논하거나 함께 고민할 멘토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 오직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 나가야 했던 그 5년의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차들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리고 그 가운데에 스님이 서 있는 듯 했어요. 인간들의 관계라든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겠지. 관계, 그 속에서의 갈등, 또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들과 시행착오들. 길이 있기는 한데 보이지 않는, 걸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 없던 그 5년 동안이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 두려우셨어요?

 

두렵기도 하고, 책임감 때문에 압박감도 엄청 심하고∙∙∙. 완성을 해야 하는데 이걸 완성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제일 큰 것은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이 서지 않는 거였어요. 길을 만들어서 찾아가야 하는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지. 길은 분명 있는데, 어느 길로 가야 출입구가 나올지 모르는 거야. 출입구를 빨리 만나기 위해서 아주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지. 많이 힘들었어.


돈을 많이 가지고 병원을 지은 것도 아니었고... 18억 가지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다 짓고 나니 들어간 돈이 120억이었으니까.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어.(웃음)


건축 현장이란 곳은 다른 현장하고 또 많이 달라. 특별함이 있어. 아주 대단한 전쟁터와 같았어. 내가 전쟁이라도 경험을 해 봤으면 잘 헤쳐 나갔을 텐데 한 번도 경험이 없어가지고.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것이 나에게는 계속 이슈였고, 두려움이었어.


우리가 터널에 갇히면 어떻게 될까? 차들은 라이트도 켜지 않고 무작위로 질주를 하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서 차에 치여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가야 하는데 길은 안 보이고 이럴 때.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이 되어 있었네. 병원을 짓는 5년 동안.


그런 중에도 바깥에 다른 일들은 다 헤쳐 나가야 했다는 거야. 관계, , ,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 5년이 최고였어. 고통의 절정의 최고. 그런 시간이 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 참 길긴 하지.

 

 

극복이 되셨어요? 그 두려움이?

 

(웃음) 극복이 되었다가 다시 재발이 돼서 작년에 홍역을 앓았지.

올해 2월부터는 다시 떨쳐내고 그런 고통으로부터의 에너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고, 지금은 조금 색다른 에너지로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병원을 짓는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극복이 스님 스스로 된 것인지, 아니면 극복의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방법이 있었어.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방법이 무어냐 하면 내가 나를 돌아보는 거였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어떤 불안을 가지고 이 일을 했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나와 함께 부대끼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 조명해 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했지. 수용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어.


또 더 높은 차원에서는 이것이 이생이나 저생이나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내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받는 과보라고 생각했지. 과보. ‘마땅히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했구나.’ 하고 나의 경험들을 수용했어요. 그렇게 수용하고 나니까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예요. 누가 잘 하고 못하고 그런 건 다 없어지고 , 내가 경험할 것을 경험했구나. 문을 잘 찾아 나왔으니까 잘 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들이니 내가 다 품어 안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용하고 품어 안고 극복했지.

 


스님,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 뭐였을까?

최고의 선물은 나와 함께 호흡하고 발을 맞춘 동료들이 최고의 선물 같아. 그 이상의 선물은 없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남기고 싶은 선물? 모두가 협력하고 협동해서 이 지구의 모든 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런 중심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동력을 만들어 두고 가고 싶어.

 


스님, 우리 웹진 마음의 공통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에는 생각들이 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대학원의 졸업한 동문들, 재학생, 예비 신입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빛이 되어라. 이 세상에 빛이 되어라.(^^)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던 능행스님과의 인터뷰 시간이 저희 편집진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의 초대에 응해주신 능행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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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졸업생 현진 스님을 만났습니다.

 

올봄 석사 과정을 졸업하신 현진 스님을 만났습니다서둘러서 나선 길이었지만 현진 스님이 계신 대구까지는 2시간 남짓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3년이라는 시간동안 배움을 위해 쉽지 않은 이 길을 걸어오신 현진 스님의 마음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 첫 마음은 어떠셨나요?


진짜 오래됐는데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능행스님 책인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를 현대불교신문 광고를 보고 제가 구매를 했었어요. 그걸 읽는 순간에 , 이런 일을 하시는 분도 계셨나?’ 하고 너무 놀라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포교나 자비를 베풀고 싶다, 봉사를 하고 싶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던 찰나에 그러한 행을 하고 계신 분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이것이 실체일까?’, ‘책을 만들기 위해서 포장된 것은 아닐까?’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도 나고 그게 공감도 되면서 나도 이걸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걸 배워서 내가 우리 불자님들 또는 우리 신도들에게 베풀어줘도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위덕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호스피스교육을 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거기에 마하보디라고 적힌 걸 보게 됐어요. 이거 저번에 책에서 봤던 거기네 하고 있는데 담당 교수님이신 장익 교수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스님께서 하시는데 프로그램도 상당히 좋고 교수님도 한 번씩 강의를 가신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호스피스 32기로 등록을 해서 그 때 교육을 받았어요. 정말로 속된 표현으로 한 방 맞았죠. 이런 체험이 있구나 하고요. 프로그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체로 가다보니깐 고스란히 저한테로 온 거죠. 그 뒤로 봉사도 가고 꽃동네에도 가서 몸으로 체험을 했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을 할 시점이 왔고 위덕대에 대학원 신청을 했어요. 어느 날 능행스님께서 학교로 오셨는데 학교 성적 등을 보시더니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으로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지금에 와서 늦게 불교 공부만 해가지고 내가 교수가 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가고 베풀 수 있는 그런 쪽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님께서 권해줄 때 이것이 인연이 아닌가 싶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일선에서 쓸 수 있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결정을 하고는 마하보디와 인연이 맺게 된 거예요.


 

스님과의 인연이 32기 호스피스교육을 통해서인지 알았는데 신문광고를 통해서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스님께서 입학하셨을 때 활동과 접목하기 위해서 사실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대학원을 선택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깐 내가 가서 실존적인 것을 많이 배우겠구나 이런 기대가 많이 있었죠. 두려움, 막연함도 있었지만 성향이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새로운 분들을 알아간다는 기대감도 있었어요. 공부에 대해서도 학문적인 불교공부를 하면서 불교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부분을 마하보디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낯선 분야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환자들을 만날 때 어색함이라든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 대한 저의 마음자세가 벌써 내 마음속에서 이미 그분들을 판단하고 있는 마음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낯섦과 두려움에 주저주저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들이 많이 있구나를 느꼈죠.


그리고 모든 스케줄을 수업일정에 맞춰서 조율을 했는데 갑자기 하루나 이틀 전에 학과 일정이 변경된다거나 같은 과목의 수업이 연이어 있지 않고 격주제로 진행되면서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는 거예요. 외국인쉼터일도 해야 하고 운흥사 주지 소임도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간간히 공연을 가거나 다른 절에 행사를 가거나 스리랑카 국제 행사를 가거나 하다보니깐 사실은 마음은 공부에 대한 열망이 많이 있었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해소가 안 되는 거예요. 공부라는 것이 되씹고 곱씹어야 내 것이 되는데 학교에서 열심히 하다가 막상 운전대를 잡고 2시간이 걸려 절에 돌아가면 현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지금도 있어요. 뭘 배웠지,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주지 소임이라는 것을 다 벗어 놓고 앉아서 알아차림만 하고 공부만 하고 싶은데 왜 현실이 주지도 해야 하고,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주변에 이것저것도 신경 써야 하고, 왜 이런 데에 매달려서 살아야 할까 정말 공부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운적도 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이겨내는 것 또한 내 공부가 아니었나 싶어요.


 

마하보디 명상심리대학원에 오시는 스님들의 성향은 공부에 대한 기대감과 공부 양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 또한 학생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인데 스님의 주변에 벌어지는 환경들로 인해 기대했던 것만큼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업을 계속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이 있을까요?


1학기 때 한 방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1박을 했을 때인데 능인스님, 상진스님과 한 방에서 학교 기숙사같이 도란도란 수다도 떨다가 몰래 나가서 야식도 먹고 한 것이 여고시절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초반에 그런 재미가 쏠쏠하게 있었어요. 공부 외적인 것으로는 체계가 1박을 하면서 머물렀던 것이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거기서 정도 쌓이고 돈독해지면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고요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하다보면 공부에도 집중되지 않는데 그런 부분이 충족되다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학교라는 틀에 모여 있으니 내가 출가를 늦게 했든지 그 분이 빨리 했든지 이런 거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사실 그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호스피스 교육이 있었어요. 교육 때 이미 만났었고 그러한 끈이 연결되어 있어 편안할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저도 낯설어서 되게 어색했죠.


공부에는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도 중요해요. 탄호 스님 같은 경우에도 스님이 하면 나도 할게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해보자 그렇게 했던 부분들이 그 분도 나를 잘 의지했고 나도 그 분을 의지했고 서로 부둥켜 안아보기도 하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마하보디에서 만들어 준 거 같아요, 다른 데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마음대로 남을 안아볼 수 있는 것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 이예요. 호스피스, 임상, MBSR, 미술치료를 거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들도 정말 좋았어요. 박동길 선생님도 처음에는 너무 딱딱하고 경찰 같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 순간에 미소가 번지면서 허물없이 스님 참 예쁘십니다.” 라고 농담도 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을 흘렸던 탄호 스님도 지금은 웃으면서 농담도 하고 얼굴빛 자체가 달라졌어요. 이게 교육의 힘이고 우리 멤버의 힘이라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관계를 말씀하세요.

공부 전에 관계다. 관계가 좋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행정실에서 그 안에 투입되어 보지 못하는 내부적인 무언가 동기간에 끈끈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는 MT도 갔었고 졸업여행으로 스리랑카 10박이라는 기간의 추억도 있어요.

수업을 통해 나눔을 많이 가졌었는데 일대일로 서로의 아픔을 애기하면서 마음을 꺼내다 보니 아주 밀접한 관계가 되었어요.


처음 시작도 나이고 지금도 나인데 바라보는 마음이 변해 있었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변해있고, 그러다 보니깐 지금은 왠지 모르게 자매 같고 오래전부터 알았던 친구 같아요.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솔직히 저는 출가를 할 때는 정말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 같은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내가 다 건지리라, 나라는 존재 자체는 없다, 오로지 부처님 말씀에 따라서 삼구보리 하화중생하리라 하는 거창한 마음을 갖고 시작을 했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은 늘 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병행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퇴색되어 가는 게 안타깝고, 자꾸만 현실에 맞추려고 하는 내 마음이 있더라고요. 나도 적당히 살면 안 될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보니 제가 센터를 열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안일하게 사는 거예요. 절이 있다 보니깐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게 충족이 되는 거예요. 어느 정도 유지가 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 나태해 지는 거예요. 나태해지는 게 뭐냐 하면요, 공부라든지 특별히 무엇을 안 쫓아도 뭔가 삶이 해결이 되는 거예요. 나의 복일 수도 있지만 뭔가 목이 타면서 내가 이러려고 출가를 했나하고 머리를 만지게 되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데 갈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십년은 복전이라든지 보시행이라든지 자비행을 해야겠다, 내가 복덕을 짓지 않으면 내가 다음에 정말 수행을 해서 한 단계 높게 올라가려고 해도 절대 올라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전 다 모아서 외국인 쉼터(뿐다리까)를 만들었어요. 편안한 삶은 두고 지금은 매달 달세걱정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에서 마음에 충만감이 오니깐 만족을 했는데 어느 날 그 부분도 내가 베풀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릇은 요만한데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내가 목표한 기간 동안 어떤 여파가 올 수도 있고 또 다른 일이 생길수도 있지만 내가 원을 세운 만큼은 해야 되겠구나 그러고 모든 걸 놓고 수행만을 하면서 말년은 그렇게 보내리라 이런 마음은 가지고 있어요. 계획했던 10년 중 3년이 흘렀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공부도 하고 임상도 배우면서 내가 쓰일 수 있는 부분에서 쓰이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채우면서 살다가 알아차림을 제대로 하면서 지금의 수행자의 길과는 또 다른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 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저는 마음을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아차림이 됐을 때는 마음도 다스림이 되지만 알아차려지지 못했을 때는 성난 파도와 같이 요동을 치게 됩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알아차리고 있을 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아차려지지 않았을 때는 마음이 아니라 습()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해요.

 


대학원 후배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물론 잘 하고 계시겠지만 공부라는 것이 항상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기회가 왔을 때 공부에 한번 빠져봤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보니 공부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저에게는 남아 있어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공부에 도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학업 분위기와도 연결돼요. 도반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면 지나고 봤을 때 그 시간들이 충만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에 응해 주신 현진 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재능기부 : 교정(이선영-부산 개금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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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경찰, 박동길 예비졸업생을 만났습니다.

 

 연일 계속되던 영하의 추위가 풀려 날씨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어스름한 저녁에 반가운 얼굴 박동길 예비졸업생을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있는 경찰 아저씨 박동길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사랑과 아픔, 치유가 드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박동길님이 들려주시는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아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 첫 마음은 어떠셨나요?


디지털심리대학교에서 상담공부를 하고 진로를 찾던 중에 어떤 분의 소개로 오게 되었어요. 소개받았던 그 해 겨울에 면접을 보러 갔죠. 대학원에 입학할 무렵에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어요. 상당히 힘들 때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서 얼굴표정도 굳고 어두웠어요. 마음공부를 하는 자리라서 기대를 했어요. 그런 것도 해소될 수 있고, 고쳐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환경에서 크다보니깐 특강이나 마음나누기를 할 때 감정이 올라오는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쑥스럽고 난감해서 감정을 억눌렀어요. 감정을 드러내면 폭발할 것 같고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좀 많이 힘들었어요.

 

 

공부하면서 감정이 폭발한 적이 있으신가요?


공부할 때 감정을 폭발해 본 일은 없는 것 같아요.

 


호스피스교육에서는 감정을 폭발시켜 보셨나요?


그 때도 못했어요.

 


감정을 풀어내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왜 감정표현이 안됐을까요?


그게 압력솥에 압이 너무 꽉 차버리면 터질까 무섭잖아요?

그 김을 살살 빼야지 폭발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내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고,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어요.

 


폭발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으신가요?


좀 아쉬워요. 그 감정을 일찍 드러냈으면 좀 더 빨리 정화가 됐을 텐데...

그래도 나누기를 하면서 내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는 훈련이랄까 그런 걸 하다보니 지금은 감정을 잘 표현해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가벼워요.

 


대학원과 함께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급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럴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사실은 최근에 재평가할 때쯤 그동안 아내와의 관계를 연을 이어오다가 완전히 정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서로의 갈 길을 잘 가게 보내주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먹었던 거였어요. 그리고 재평가 시간이 다가왔어요. 생각지도 않게 능행스님께서 질문을 던지시는데 주제하고 맞는 질문은 아니었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나도 모르게 그러면서 슬픔이 올라왔죠. 훈련이 되다보니깐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요.

 


감정을 표현하면 치유가 된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제가 졸업보고서를 감정의 발생과 해소방안을 가지고 보고서를 썼는데 감정은 표현해서 흘러가도록 해야 해소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감정을 다룬 것 같아요. 나의 이슈가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였거든요. 그래서 감정에 대한 보고서를 썼는데 주제가 적절했어요. 내 스스로의 감정을 다루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아요.

 

 

선배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공부를 해보니까 인식의 전환만 가지고는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 일상에서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가 심리치료를 몇 번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수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내 스스로도 바뀌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를 좀 잘 관찰해보고 싶어요. 그런 것을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요.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상담 쪽으로 마음을 먹고 있어요.

 


상담쪽에서도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나요?


부부상담을 해보고 싶기는 해요. 나는 부부간의 갈등을 잘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한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쪽으로 잘 알고 싶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 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자기의 표현이다.

마음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대학원 후배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같은 도반들하고 나눔을 했던 것이 영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되었어요. ‘도반들을 찾아가서 자기의 고민이라든지, 어려움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주 나눔으로서 자기 삶에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나눔의 시간이 가장 뜻 깊고 좋아서 그런 기회를 좀 자주 많이 가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면에 담지 못하였지만, 박동길 선생님님은 그의 추억을 여행하면서 그 시절의 정서와 감정,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솔직히 나누어주셨습니다. 치유의 과정에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잠시 회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현재는 취미로 춤(왈츠)을 배우고 있는데 1년 정도 된다고 하면서 사진 한 장 보여주었습니다. '어쩜~ 이리도 건강할 수 있을까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대한민국 경찰이란 말이 꼭 그에게 어울립니다 60세 정년을 몇 년 앞두고 구체적이진 않지만, 이후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지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의 노년이 더 기대되는 것은 왜 일까요? 기분 좋은 저녁시간을 보내고 아쉬움을 남긴 채 서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휴일의 달콤한 시간과 솔직한 마음을 나누어주신 예비졸업생 박동길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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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무진스님을 만났습니다.

 

첫 눈이 하얗게 내리던 날, 무진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의 마음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스님의 마음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 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곳 정토마을과의 첫 인연은, 20121월에 34기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 되었어요.

그 후 다시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하려면 어머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 하안거 기간에 선방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건강이 굉장히 안 좋아 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안거 해제 하자마자 어머니 병간호를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으니 퇴원하라고 했고, 화장실 가는 거, 식사하는 것 까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조카가 운영하는 가족식 요양시설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그곳에서 지내면서 정말 다행히도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지신 후에 봉사를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하다가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어요. 그렇게 봉사하려고 다시 왔어요.

그러니까 원래는 대학원을 다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거예요. 교육을 받을 때 대학원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곳에 왔을 때 저의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어머니가 좋아지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러 왔던 거니까요.

그런데 그때 도반스님 한 분이 대학원을 다녀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대학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게 되고, 그렇게 대학원과도 인연이 시작 되었던 거예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첫 마음... 오래 전부터 명상심리 자체에는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사찰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살님들이 무언가를 물어볼 때 이에 어떤 답을 해주는 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되고, 뭔가 답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상담으로서 만나는 것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상담공부에 뜻이 생겼고, 명상은 원래 스님들이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스님으로써 신도들과 어떻게 접근하고 만나고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어요.

 

 

 

 

2학기 동안 저희 대학원과 함께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아무래도 지금 파랑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하고 있는 명상수업이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저로 봐서는 나의 가장 가려운 데를 긁었다고 해야 할까요? 해보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서 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아이들이 반응하는 것에 맞춰서 명상수업을 하려고 하죠. 물론 내가 보는 눈높이와 아이들이 보는 눈높이가 다를 수 있겠지만요.(웃음)

명상수업에 잘 따라오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고맙고 보람도 느껴져요. 수업에 잘 못 따라오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에는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될 지라도, 명상에 대한 이 경험이 나중에 어떤 어려움들을 만났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면 그 또한 저에게 보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스님께서 아이들을 믿는 그 마음이 저희에게도 깊이 전해집니다. 처음 명상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 중에 과잉행동장애 아이가 있다고 했을 때, 스님께서는 그 아이도 빼놓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다 무경험자였잖아요. 저희도, 스님도요.

그런 저희는 스님을 믿는 마음이 있었고, 스님은 아이를 믿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님께서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깊이 믿을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나신 걸까 궁금해요.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예요. 원래 그런 아이들을 갖다가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그게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거죠. 원래 그런 것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저 어렸을 때를 기억해보면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교장선생님께서 열심히 말씀하고 계실 때, 맨 뒤에서 혼자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어요. 딱딱 소리가 나니까 담임선생님이 와서 딱지를 빼앗아 호주머니에 넣으셨어요. 제가 그걸 쫓아가서 선생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딱지를 뺏는데 선생님 호주머니가 찢어졌어요.(웃음)

어릴 때를 떠올리면 저는 그것부터 기억이 나요. 아이들은 그냥 순수한 것 같아요. 지금이 어떤 분위기고, 이게 어떤 거고, 무엇을 해야 한다하는 생각들을 떠나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기준을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요?

오늘 저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했던 제 방식이 맞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어요.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처음에는 그냥 놔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시점이 와서 다른 친구에게 말 하면 안 돼요. 속으로 말 해주세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말해줬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도 서서히 분위기를 타더라고요.

우격다짐으로 안돼! 안돼! ‘하는 게 아니고 지금이 어떤 분위기,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살며시 알아차리게 해주면 그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어요.

 

스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수행이죠. 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첫 번째도 수행이고, 두 번째도 수행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스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제가 수행을 하고 뭘 하고 해봐도 이 마음을 알 수가 없더라고요.

알 수가 없는 게 마음인 거 같아요. 요 근래에 한번씩 이 마음이 뭐지? 이렇게 올라오는 이 마음이 뭘까? 하는 순간순간의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게 무엇이냐 하면서 이 뭐꼬?” 하고 생각이 이어져요. ‘이 뭐꼬가 제 화두는 아니었는데 그런 마음에 대해서 이게 무엇이냐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렇게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이게 뭐냐. 마음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일어났다가 사라질까? 생각하게 되요.

그런 마음을 한마디로 한다면 이 뭐꼬? 이게 무어냐?! 알 수가 없다! 라고 하겠어요.

 

함께 공부하고 계신 도반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서로가 좋은 도반이 되어서 마음공부를 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웃음)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무진스님께서는 요즘 한 달에 두 번, 아이들을 만나 명상지도를 하고 계십니다. 마음과 무진스님이 만난 그날도 파랑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의 두 번째 만남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마주하신 환하고 밝은 스님의 미소를 만날 때면, 우리의 마음에도 저절로 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무진스님께 다시한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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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임미혜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921,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맑은 날이었습니다. 4학기 모든 과정을 마치시고, 5학기 인턴과정을 기다리고 계시며, 또 뱃속의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신 임미혜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 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벌써 2년이 되었네요. 2011년도 3월이었을 거예요. 정토마을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법인 사무국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었죠.

그 후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건 법인 사무국을 그만 두고 나서예요. 상담, 사회복지 쪽엔 늘 관심이 있었고, 수업 내용들을 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20139월에 입학하게 되었었죠.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처음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법인 일을 하면서 현실적인 부분에서 부족함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안내하고, 자연스럽게 상담업무들을 하다 보니까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업무적 역량뿐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싶었어요.

그렇게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고, 이론과 실습, 임상을 함께 병행 할 수 있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공부과정에 끌렸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 명상심리, 임상상담 과정 공부를 하면서 내 스스로가 먼저 마음 수행이 되어야 하고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먼저 안정이 되고, 편안해지고 행복해 져야지만 주위 분들,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행복함과, 평안함과 지혜로움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년이라는 과정이 나에게는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서 어렵다기 보다는... 배울 수 있는 그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인연이 되어서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이 시간을 잡고 싶고, 이 시간에 충실하고 싶고, 이 순간에 집중해서 배우고 싶었어요. 다음은 없다는 생각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저는 학교 다닌다고 취직을 알 할 정도로, 공부를 할 때 확실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자신의 과정을 마치고 그대로 떠나버리지 않고, 임미혜 선배님처럼 다시 와서 후배들과 한 자리에서 공부하는 모습들이 참 좋아요. 후배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큰 의지가 되고 힘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처음 입학했을 때 선배님들이 계셔서 책을 살 때 함께 구입해 주신다든지, 모르는 것들을 알려 주신다든지 하는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굉장한 안정감을 줬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께 많이 고마웠어요.

그때는 처음이니까 그 고마움도 잘 모르고 그렇게 흘려보냈는데 후에 졸업하시고 선배님들이 안 계시니까 아쉽기도 하고...

이번 학기에는 수업 출석때 제가 제일 먼저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웃음) 전에는 선배님들이 당연하게 내 앞에 계셨고, 당연하게 그렇게 따라왔을 뿐인데 지금은 내가 후배님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나의 공부과정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내가 왔던 길을 그 분들께서 또 걷고 계시다 생각하니 새로워요. 인생은 돌고 도는 거구나... 선배님들이 많이 뵙고 싶고, 궁금도 하고 그렇네요. 선배님들 오시면 정말 반가워요.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어보고, 자주 오시라는 말을 자동으로 하게 되요. 인간관계 그 자체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수업 하면서도 많이 배우지만, 학생들끼리도 서로 이야기 나누고 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서로 나누고 토론하고, 그게 재미있어요. 그 맛에 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웃음)

저도 졸업을 하고 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각자의 삶이 있고, 또 새로운 일들, 새로운 환경들을 마주해야 하니까. 그 전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 때 까지는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 이예요. 그렇게 제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도 성장이 많이 된 것 같아서 그게 참 고마워요.

 

 

-어떤 부분의 성장을 느끼시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생각의 틀이 열리고,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닥쳐와도 단편적인 면으로 보이지 않고 넓게 이해가 되면서 제가 편안해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이해가 저를 참 편하게 해요. 화가 나거나, 싸워야 하는 일이 줄어들어요. 그게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고 화나고 싸우고 그래야 했던 일들이 지금은 그냥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고 해야 하나?

 

 

                      인터뷰 공간에 걸려있던 목판을 보며, 이 마음이 임미혜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그 마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학원과 함께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너무 많아요. 그래도 그 중에 한 순간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2014년도 1월에 미얀마 졸업여행을 다녀왔었는데요. 그때가 참 좋았어요. 많이 기억에 남고, 욕심내서 다녀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님께서 앞으로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 앞으로도 욕심으로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계획은 공부를 계속 하는 거고, 일로서는, 사회복지쪽으로 일들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상담공부가 그런 일에서 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요.

당분간... 3, 길다면 5년은 아이도 낳고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고요. 그 정도 시간 만큼은 아이에게 집중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취직은 그 뒤로 미뤄지겠네요.(웃음)

그래도 이런 부분들에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신랑이 있어서 참 고마워요. 공부하라고 안 보내줬으면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래도 흔쾌히 보내주고, 졸업하라고, 마무리 지으라고 얘기해줘서 힘이 되요. 임신했는데도, 학교 가서 태교하라고 보내는 거예요.(웃음)

일주일 일상에 묻혀서 막 살다가, 학교에 와서 다시 정신 차리고 힘을 얻어서 또 일주일을 살고, 공부가 해소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넓으려면 우주전체를 포함할 만큼 무한하고, 좁으려면 바늘구멍만큼 좁을 수도 있는 게 마음인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서 살 것인가. 바늘귀처럼 좁게 살 것인가? 우주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살 것인가? 그게 항상 숙제인 것 같아요.

일체 모든 만물이 다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

마음은 이거다. 저거다. 라고 하기보다는, 바라는 마음 그 자체가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도반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항상 함께 하기 때문에 의지가 되고, 서로 서로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박수자 선배님이 오셨을 때, 궁금해서 물어봤었어요. 졸업 하셨으니까. 어떤 말을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지 말씀 듣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선배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마치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고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그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까. 안심이 되고 참 좋더라구요.

저도 아직은 한 학기 더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경제적 상황도, 여건도, 나이도 모든 것이 공부를 선택하기에는 어려운 입장이었어요. 모두가 같을 거라고 봐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와 있는 거예요.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이 있고, 길은 있는 것 같아요. 뜻이 있다면, 미리 걱정하고 물러서지 말고, 한발 한발 가다보면 이루어지는 내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후배님들도 지치고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공부를 시작한 그 마음이 있으니까. 끝까지 이루어 가시기를 바래요. 자기의 뜻을 잃지 말고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신다면 분명 더 나은 나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포기하지 말라는 말, 함께 가자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꼭 전해주세요. “선배님들, 후배님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임미혜 선배님은 요즘 후배님들, 도반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참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공부하는 붐이 일어서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선생님들이 모두 같이 석사 수업 청강을 하신다면서,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요.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겨주셨어요.

저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그 모습에서 많이 느끼고 배우는 것 같아요. 교수님들의 표정, 행동, 말씀하시는 것, 표현하시는 것, 그 모습들에서 굉장히 많이 배워요. 강의를 해서 교수가 아니라, 그 분들이 살아오신 모든 인생을 나누어 주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임미혜 선배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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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윤정숙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수업을 마친 유월의 어느 오후, 임상상담전문가과정 윤정숙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4학기과정을 마치시고 이제는 후배들의 곁을 떠나 5학기 인턴을 준비하실 선배님, 이야기에 쫑긋 마음을 기울여 봅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퇴직하기 몇 년 전에 능행스님의 책 <섭섭하게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책을 보고서 충북 정토마을에 견학을 가든 봉사를 가든 꼭 한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결국 가보지는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던 중에 인터넷에서 능행스님께서 언양에 병원을 지으신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 거예요. 정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병원 지어지면 꼭 가봐야지 그랬고, 그렇게 20131월에 이곳에 와서 호스피스교육을 받게 되었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내 속에 이런 게 있었구나. 뭔가 좀 더 공부를 해 봐야 하겠다. 하는 그런 느낌?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은퇴하고 생활에 적응도 잘 안 되고 심적으로 많이 헤매기도 하던 시기에 그렇게 호스피스교육을 받게 되고, 이곳에 교육프로그램들을 관심 있게 보다보니까 대학원이 있더라구요. 20132월 초순경에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전화를 했었어요. 그때 제가 참 많이 애를 먹였을거예요.(웃음) 입학문의 하고 일주일 후 인도를 가야했거든요. 원서접수를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요. 그렇게 애를 잔뜩 먹여놓고는 아, 이번학기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가을학기에 입학을 하게 되었지요.

대학원 입학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거는 제가 20122월에 퇴직을 했어요. 다른 사람에 비해 퇴직을 조금 이르게 한 경우인데요. 저는 늘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찾고 싶다는 강박관념 같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살아오면서 늘 의문이 들었어요. ‘이게 다가 아닌데, 이게 진짜가 아닐건데...’ 교사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그런 부분에 갈증과 한계를 느끼고는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정말 내 공부를 해야 겠다는 마음을 굳혀갔고, 그 첫 시도가 밀양 산속에 농장을 마련하게 된 거예요.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수행하면서 살아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현실은 농장이 너무 크고 일이 많아서 수행할 시간이 나지 않더라구요.(웃음) 직장 다니면서는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 하루 동안 큰 평수의 농사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다보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또 그랬죠. 그런 저에게 대학원은 포기할 수 없는 배움의 기회였던 거예요.

 

자기공부에 대한 오랜 바램을 가지고 계셨다는 게 느껴져요. ‘나를 찾고 싶다는 바램이 공부를 통해 조금이라도 해결이 되시던가요?

 

사실 생각해 보면 상담은 예전에도 공부할 기회가 많았는데 제가 일부러 피해왔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 학생상담을 하는 일이 생기면 그 학생의 문제를 퇴근 후 집에 와서까지도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어서 아 나는 상담공부는 하면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상담공부의 기회들을 일부러 피한 거죠. 그랬는데 결국 이렇게 상담 쪽으로 왔네요. 공부를 하면서 상담에 대한 스스로의 두려움, 편견과 오해도 풀어지고, ‘, 이게 바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구나싶고 내가 찾던 어떤 길에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다른 측면은 이번 학기에 사마타수행을 하고 붓다선원에 수행을 다녀오면서 , 역시 공부는 자기공부를 해야 되겠구나.’ 싶었어요.(웃음) 결국 남을 상담하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 공부가 먼저, 내 문제가 먼저라는 생각이 아주 깊이 드네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에 들어오셨을 때의 첫 마음, 초심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원서 내고 인터뷰 할 때였는데요. 원장스님께서 자기 수행하기에는 참 좋은데...” 하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걸 들으면서 ! 그거면 되었다하면서 안심이 되었어요. 10년 넘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곳을 많이 찾아다녔으니까요.

건방진 생각이지만 혼자만 깨달으면 뭐하노? 봉사도 좀 하고 남에게 도움도 되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임상상담전문가과정에 들어왔거든요. 병원에서 봉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근데 그 초심이 지금 조금 변질이 된 거야. 봉사를 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다듬어야 하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내가 지금껏 봉사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그저 내 만족이었을지 모른다. 내 공부가 좀 더 깊이 있게 먼저 되어야 하겠다. 봉사는 그 후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 또 좋았던 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셨어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임미혜씨하고 교통사고가 났어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한 달 정도 수업을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이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수업을 오래 빠지니까 1학기 차에는 공부에 대한 깊은 맛도 못 느끼고 어려움도 많았었지요.

그 다음 2학기에 미술치료, MBSR, NVC1코스 특강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어요. MBSR 하면서는 너무 좋아서 현진스님하고 다음 과정도 하자고 막 그랬었어요. 근데 개인적으로 가려니까 서울에 매주 가야하고 돈도 돈이고 너무 힘들겠더라구요. 또 교수님께서 대학원수업으로 우리가 배운 것이 계속 반복되는 거라고도 하시고 해서 일단 마음을 접었구요. NVC비폭력대화는 나를 많이 반성하게 하더라구요. 애들 가르칠 때 그저 일방적인 말만 해 왔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하고 알았어요. 이제부터라도 배려하고 부드러운 말로 대화를 해야지 마음먹으면서 실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학기에는 사마타수행 하면서 숙제가 좀 많기는 해도(웃음) 참 좋았어요. 저는 늘 조금씩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왔었거든요. 조금 더 노력 하니까 명상이 되더라구요. 이상필샘이 도대체 언제 그렇게 명상을 하세요? 그러는 거야. 난 출근 안하잖아 아침시간에 한다면서... 일 그만두고 제일 좋은 게 아침시간이야 했지. 아침에 일어나면 숙제부터 하고 하루 일상을 시작하니까 참 좋아요.

힘들었던 점은... 처음에는 금요일 석사수업도 왔었거든요. 그러니까. 농장일은 많고, 남편은 늘 일을 하는데 나 혼자만 계속 시간을 빼서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주말이면 애들도 오고 가족모임도 있고 한데 토요일에 강의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다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아직도 안 끝났나?" 하고 물을 정도 였으니까요. 집안행사가 있을 때에도 웬만하면 공부를 선택하려 했어요. 저에게는 사람만나 먹고 떠들고 하는 것 보다는 공부가 우선이었으니까요. 어쨌든 배우러 왔으니까 그 것에 집중하려고 했지요. 사람들은 "한번쯤 빠지면 어떻노?" 하지만 그 한번을 빠지면 배움이 연결이 잘 안 되고... 그래서 4학기 동안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공부가 먼저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역시 공부하는 토요일을 지킨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주기원교수님 니까야 수업이 힘들었던 부분에서 생각이 나네요. 생각해 보니까 교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신 것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너무 엄숙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 와서는 좀 들어요.(웃음) 내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니까 전화하시지 그랬어요.” 그러시는거라.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는 거지 그걸 뭐 또 전화를 하겠노? 했는데 숙제가 많아서 힘은 들면서도 니까야 경전을 다 읽을 수 있던 것이 참 좋았어요. 평소에 경전을 읽으려면 참 안되는데 이렇게 수업을 통해서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전에도 경전을 보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앙굿따라 니까야 3권을 한 번에 빌려갔었거든요. 한권은 억지로 겨우 읽기는 읽었고, 이후 두 권은 펴보지도 않고 그대로 반납을 했잖아요.(웃음) 수업을 하면서 주기원교수님이 경전 읽는 요령을 알려주시더라구요. 그게 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요령이 뭔지 궁금한데요?

 

뭐냐 하면, 경전은 읽다보면 이와 같이 들었다와 같이 같은 말들이 계속 반복이 되거든요.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은 그냥 넘어가면서 새로운 단어들, 새로운 주제만 표시해서 읽는 거예요. 경전은 여러 번 읽어봐야 이해가 되던데 그걸 그렇게 꼼꼼히 읽어나가려면 못 봐요. 제가 청정도론 숙제 한다고 6번인가 읽었거든요.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겠고 내용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거를 계속 반복해서 읽고 나니까 그제 서야 내용이 들어오고 중요한 부분들을 알겠고 그랬어요. 경전 볼 때는 비슷한 말 빼고 틀린 것만 밑줄 그어가면서 술술 넘어가고 다음에 또 읽으면 그게 딱딱 들어오면서 알아진다는 거예요. 사실은 부처님 말씀이 한줄 다르고 한 페이지 똑같잖아요(웃음) 그 한 줄만 줄 그으면서 넘어가면 된다는 거야. 그 요령은 이번에 교수님께 확실하게 배웠다니까요.

 

 

공부를 실생활에서 잘 활용하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공부가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상담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는 나만 다 잘 하는 줄 알았거든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하고도 매일 부딪치고 하면서도 나는 잘 하고 있고, 저이가 늘 문제인줄 알았지(웃음) 그랬는데 공부를 하면서 , 내가 잘 한 게 아니라, 나는 그저 내 방법으로만 잘 하고 있었구나하고 알게 된 거예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 했구나' 공부하면서 늘 미안한 마음도 들고 반성하고 그렇게 되었어요. 저는 갈등관계가 되어버리면 입을 닫고 회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남편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조금 안 좋다 싶으면 끝까지 아무 말을 안 하는 거예요. 헌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말을 안 하는 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상대방은 전혀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말을 하려고 하죠. 전에 같으면 말 안하고 마음 표현도 안하고 그랬죠. 속으로만 자꾸 쟁여놓고 그러다 보면 분노가 커지고 한 번에 폭발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을 해요. 물어도 보고요. “이런 거예요? 저런 거예요?” 그렇게 활용을 잘 하고 있죠. 옆에 사람도 느끼는 줄은 몰라도 지금 저는 불쑥 화가 올라왔다가도 바로 돌아서서 빨리 후회하고 있어요. '아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어!' 그렇게 빠르게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대부분은 내 식대로만 배려해 왔던 거더라구요. 그게 아니구나하고 느끼면서 고치려고 노력을 하죠. 전에 같으면 불편할 상황들도 그럴 수 있어. 저럴 수 있지. 그래, 그러면 또 어때?’ 하는 조금은 지켜보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에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상대방 배려하는 것도 억지로 하려 하면 너무 힘들잖아요? 헌데 그게 억지스러운 배려가 아니고 내 속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맞아 그럴 수 있어, 사람은 다 다른 건데...’ 그렇게 내 기준대로 생각하거나 집착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예전에는 이론으로 사람은 다 다른 거야 누구나 다 다른 거야 하면서도 자기 집착을 했는데 지금은 좀 마음으로 편안해 진거죠.

가끔은 불쑥 올라오는 화 같은 것을 툭 뱉어내는 때가 있고 그럴 때는 아직 약간 억지로 이게 아니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하면서 노력하는 것은 있지만요(웃음)

올 초에는 신년을 맞으면서 NVC 대화법을 삶에 잘 적용해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역시나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감정카드를 매일 봤어요. 그렇게 한 4일을 하니까 또 지루해 지더라구. 사실 우리는 감정표현도 아주 단순하게 하잖아요. 따뜻하다 하면 그걸로 끝인데 감정카드를 보자면 따뜻한 것도 아주 여러 종류가 있어서 너무 어려운거야. 그래서 아, 이 표현들만이라도 내가 익숙해지게 해야 겠다 싶어서 카드 진짜 열심히 봤어요. 올해의 첫 목표는 그랬었는데 뭐 작심삼일은 완수했지(웃음)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을 바라보고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그 지점이 공부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예전에 나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감정을 누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 보다는 조직이 잘 흘러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요. 지금의 나는 내 현재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뀐 거예요. 그렇게 표현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전에는 내 감정은 표현 안하는 게 잘 하는 건 줄 알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표현이라는게 화난다.”, “짜증난다.” 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분이 어떻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더라구요.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좋아졌어요. 전에는 무조건 왜 이렇게 안 해?!” 그랬다면 지금은 니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이런 생각이 든다.”하고 표현하니까 말하는 나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하고 그게 참 좋아요. 인생에 많은 전환점이 되었어요.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윤정숙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마음...

바다가 떠오르네요. 깊이도 알 수 없고 늘 파도치고 거칠고... 그러나 그 속에는 늘 잔잔함이 있잖아요. 겉은 늘 물결치고 거칠지만 자기 내면에는 잔잔한 자신, 잔잔한 본성이 있을 것 같은...

 

 

4학기 과정을 지내시면서 힘들기도 하셨고, 고민들을 해야 했던 날들이 있으셨잖아요. 후배들도 그렇게 고민들을 해야 할 힘든 시기들이 있을 텐데요 그런 경우에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고민... 저는 일단은 처음에 특강을 할 때마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한번, 두번 해 나가다 보니까 특강들이 도움이 많이 되고 참 좋았어요. 그러면서 특강이 이렇게 알차고 좋은데, 이곳에 다른 과정들도 예사롭게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사람이 뭔가를 만들 때에 열 번 만에 해야지?’ 하는 마음하고 스무번만에 하면 되겠다.’ 하는 마음하고는 많이 다르잖아요. 공부도 그런 것 같아요. 5학기라는 학기중에 들어있는 모든 과정들이 공부하는 자신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과정들이니까 한번씩은 모두 접해 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꺼이 경험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요.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임상상담전문가과정 공부는 정말 자기 마음 찾는 데에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교육과정을 접해보고 자기에게 와 닿은 부분들이 다 다르단 말이예요. 나를 찾고자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강사진을 모시고 한자리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정말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랍니다.(웃음)

 

선배님을 만나며 행복했습니다. 길다면 긴 2년의 시간을 대학원에서 함께 했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선배님을 만나는 구나. 싶었습니다.

선배님에게 마음은 바다라고 하셨습니다. 파도와 같은 많은 고민들과 힘든 날들을 지내오신 선배님에게서 오늘 우리는 티 없이 맑고 잔잔한 바다의 너른 품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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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경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56,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갈 무렵, 김경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학교 안에서 매일 딱딱하게만 만나다가 이렇게 만나니 좋다하시며 소탈하게 웃으시는 교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교수님과의 깜짝 데이트, 그 날의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교수님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만났던 것은... 남산 밑에 우룡스님 계신 함월사 있죠. 그게 2007년인가 8년인가 그럴 거예요. 그때 제가 동대(동국대학교)에 강의를 할 때인데요, 수업을 듣던 스님 중에 한 분이 그 절에 계셨어요. 그 스님께서 절에 중학생 여자아이가 있는데 비행도 하고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스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절에 있는 아이이기도 하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떤 스님이 오셔서 내 옆에서 뭔가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절에 스님이 나를 소개 했고, 그러니까 그 스님이 아!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셨어요. 그게 능행스님과의 첫 만남 이예요. 그래서 저도 기회 되면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랬죠.

그리고 그 뒤에 만나게 된 것이 해를 넘기고 나서 학교를 만드신다 하시고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학교를 다른 사람하고 추진을 해 나가신 것으로 알아요. 그때 처음으로 교육과정도 짜고 강사, 교수들 섭외하고... 그러면서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거죠.

그렇게 함월사에서 학생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지만, 본격적인 만남이 된 것은 스님이 심리상담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고, 학교를 추진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 우리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계속 필요할 거예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그런 의도에서 출발되었고, 그런 의도에서 서로가 우연이지만, 그렇게 만난거지요.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잖아요? 교수님께 오월, 그리고 가족이란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가족, 가정이라는 것은 제일 중요하게는 우리 영혼의 안식처,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이고, 가장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잖아요. 가족을 떠나서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지요. 이야기에 한계가 있지요. 그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것은 소중한 인적 자원, 내지는 집단이죠.

가장 소중하니까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하고, 가장 배려해야 하고, 가장 아껴야 하는 것이 가족이지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도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오래된 제도이기도 해요.

가족이 안정됨으로 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 자기 성장 이런 것들이 가능한데, 만약 가족이 흔들리면 어쩌면 그 한 사람의 삶 전부가 흔들린다고 볼 수가 있죠. 가정에 불운이 있다든지, 걱정거리가 있다든지 하면 사람이 밖에 나와서도 표정이 밝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은 그렇게 소중하다. 결국 가족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가족 구성원이 지금 현대에서는 조금 달라져 가잖아요. 혈연으로 엮어진 예전에 가족하고 지금 현대에서 저희가 이루고 사는 가족구성원의 의미하고 같은 깊이 일까요?

 

-기본 틀은 같다고 봐야하는데요, 다만 과거의 가족은 대가족이고, 현대로 갈수록 핵가족이 되어 가잖아요. 또 요즘은 이혼, 재혼 가족들이 늘어가고요. 그런 가정이 과거에는 아주 소수였지만, 지금은 굉장히 늘어나고 있죠? 사회적인 지원과 사회가 배려해야 하는 그런 가족의 범위도 훨씬 넓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으로는 가부장제 중심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엄마 중심이 될 수도 있고 가족 모두가 중심이 되어가는 모습도 하나의 변화로 봐야죠.

그러나 근본은 과거나 지금이나 혈연중심의 가족이라는 것이고, 다만 시대환경에 따라서 조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거기에 또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겠죠. 근본은 같지만, 부분적으로 가족의 개념에 변화가 와있다고는 봅니다.

 

5월하면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란 이름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데요, 뉴스에 오르내리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접하다 보면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참 오월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다 싶기도 하고요... 가족상담을 하고 계신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전통적으로 가족이라는 것의 중요성과 소중함은 있는데 시대 상황에 변화가 오면서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가족 해체도 적은데 지금은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약화되어 있고, 또 우리 사회 전체도 자녀가 부모를 부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안 되고, 의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단 말이 예요.

돈이 없는 부모들은 대부분 혼자 살게 되고, 자식들이 잘 찾아오지도 않고. 이런 가족 해체 현상들이 점점 심화되어가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삶의 방식자체의 변화에 나이가 들어도 자식에게 경제를 의탁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러한 문제들이 심화되면 결국은 돈 문제로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생기고... 뉴스에서 처럼 돈 때문에 생기는 가족 간의 이야기는 사실 인간이 격을 수 있는 가장 최악에 비극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문제들을 막아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과제이지요. 그런 점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결속력 있는 가족이 될지... 그것은 참 대안이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앞으로도 거기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겠지요.

예전에는 부모가 건강이 안 좋으면 자식들이 집에서 모시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요양원, 요양병원으로 다 가잖아요. 이런 것들도 결국은 가족 해체의 한 모형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자꾸 이렇게 서로가 떨어진다고요. 집에 있으면 어쨌든 늘 얼굴을 보게 되지만 요양원 같은 곳으로 가게 되면 볼 시간이 없고, 멀어지게 된단 말이죠.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전체가 이렇게 가고 있어요.

여기서 또 개인차가 발생하는 부분은 노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과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이죠. 오늘 중앙일보를 보니까. 지금 50대 이상 사람들 중 90%가 연금이 25만원이라고 올라와 있거든요. 나머지 10%200만원이 넘어가고요. 이것은 빈부격차가 노후에 관해서는 굉장히 심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도 가족해체에 부채질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해체현상이 일어나다 보니까 패륜적인 문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는 없죠. 딱히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남에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슬프고, 대안조차 모색 되지 않는 다는 것이 더더군다나 서글프고...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이 오월이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늘이 있지요. 오히려 가정의 달이 더 쓸쓸한 사람들이 있지요. 어린이날이 가장 상처가 되는 어린이들도 있거든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는 날이 어린이날이라, 그 서러움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날인데요. 차라리 그런 경우라면 어린이날이 없는 게 더 좋을 수가 있죠.

가정의 달도 마찬가지죠.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버림받고 찾아오지도 않고 이런 부모, 자식들이 꾀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가정의 달 가정의 달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는 것 밖에는 안 되겠죠.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가 봤을 때 우리 마음은 자기 마음이면서도, 또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이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지만,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마음이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 현상이지만 자신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요. 이 마음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를 일으켜 내고 있어요.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문제원인이 거기에 있지요. 정신적 논리적 문제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고 봐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요.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기반도 되어야 하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행복 하고 싶다. 행복해 지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은 있지만 그렇게 안 된단 말이지요.

결국 이 마음이란 것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못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은 내가 아는 마음보다 모르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훨씬 크고 내가 모르는 그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이라는 것이죠. 평생을 살아도 내 마음 나도 몰라요.(웃음)

 

마지막으로 저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하는 자세는 겸손해야 한달까. 배우는 자세, 학문하는 태도란 받아드리고 수용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예요. 그리고 의문을 갖고 무엇을 더 알아보고자 하는 태도는 좋지만 너무 빨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이론으로 공부를 받아드리려 하면 받아드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공부할 때에는 늘 마음을 비우고 비워서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겠다는 자세, 배우겠다는 그 자세로 공부를 하면, 그 뒤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과 서로 상충되고 틀리더라도 조절해 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이 자기의 주관을 너무 강하게 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좋은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자꾸 걸리게 돼요. 특히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공부과정은 더더욱 그렇죠.

속을 텅 비우고 선입견 없이 공부를 해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만남을 허락해 주신 김경일 교수님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 인사드립니다.

 

 

 

 

 

 

 

 

PS. 인터뷰 뒷이야기

 

 

 

교수님은 요즘 주말이면 늘 농장으로 일하러 가십니다. 흙과 가까이 하는 그 시간들이 교수님에게는 삶의 활력이 되신다며 이런 말씀도 남겨주셨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거든. 정원생활 같은, 자연 같은 것들이요. 사람의 그런 욕구들을 채워줄 수 있으면 참 좋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째로 빠져 들어가 버리면 그건 또 안 돼요. 이 쪽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적당한 균형 감각이 중요해요.”

 

청년시절부터 시골에 청소년 수련원이나, 선방 같은 것을 하고 싶으셨다는 교수님은 조직을 만들게 되면 그곳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 한 삶을 살 것 같아서 대신 혼자만의 농장과 인연을 만드셨습니다.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으려 노력하신 교수님에게도 딱 하나 발목을 붙드는 것이 있습니다.

 

강아지가 나를 묶고 있지(웃음) 하나는 진돗개, 하나는 발발이가 있는데, 얘들이 나의 발을 굉장히 묶어두죠. 어디를 가려해도 일주일 이상은 갈 수가 없어요. 외국을 가도, 여행을 가도 일주일 내로 잡아야 해요. 지금 하고 있는 농사일은 쫒기지 않아요. 바쁘면 그냥 안 하면 되요. 적게 먹으면 되니까. 근데 강아지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미룰 수가 없잖아요.”

 

교수님의 농장에는 어떤 작물들이 자라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커집니다.

 

호두나무300그루, 도라지 400, 더덕도 한 300평 되지, 초석장도 있고.. 이제 고추 모종 사다가 심어야죠. 작년에는 한 300포기 심었더니 일이 좀 많았어요. 따는 것도 힘들지만, 나누어 주는 것도 힘들어요. 한번은 수박을 생각 없이 많이 심었더니 수박이 너무 많이 열어서 그거 따서 나눈다고 고생했지... 전 농장주인이 보니까 땅을 아주 잘 가꾸어 놨어요. 나는 그냥 들어가서 심는데도 워낙 잘 돼서 그거 나누어 준다고 골병들었지.. 따서 내어주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배추농사 지어도 누구 가져다 주는게 힘들어. 그러니까 몇 년씩 둬도 되는 더덕, 도라지 그런 걸 심게 되는 거죠. 도라지는 한 89년 되었고, 더덕도 이제 5년 되어서 캐야 되고...”

 

늘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히 학생들을 지적해 주시고 챙겨주시며 지도해 주시던 강의실에서 뵙던 부드럽지만, 조금은 어려운 교수님에게서 우리는 오늘 따뜻한 흙내음을 느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농부 김경일 교수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날의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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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7년이란 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작년 12월 불교호스피스 교육프로그램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논문을 마치시고 3, 모두의 축하 속에 졸업을 하신 능인스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스님의 지나온 걸음에 살며시 동행하여 봅니다.^^

 

 

 

석사 졸업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잖아요. 대학원과 함께 해온 소감? 여정에 대해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내가 대학원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승려로서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말들을 맘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정말 7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이제야 뒤돌아보니 아픈 만큼 기뻤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고... 살아있구나. 싶은 느낌?

가장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이정도로 할 줄은 몰랐는데, 하다 보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힘들지만 함께하고 싶은, 그런 여정이었어요.(웃음)

 

슬럼프라는게 있잖아요. 7년 동안 공부를 하셨으면 그 안에서 어느 때인가 어려운 고비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6년째 되던 해. 작년 이예요. 제 감정 중에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가장 힘이 들었어요. 승려생활을 하면서도 분노조율이 잘 안됐었고 그게 해결되지 않다보니까 내가 공부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좌절감이 들었고요. 정말 책상에 있는 책을 몽땅 내던져서 태워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임상(충남대학교병원 영적돌봄 활동)을 하게 되고 환자들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공부를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거기에서 나를 이해하게 되고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만나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너무 빨리 공부의 결실을 꺼내어 쓰려 했었나 봐요.

교학과 실천이 합일이 되는 순간 정말 큰 힘이 났던 것 같아요. 배움으로써의 갈증을 느끼고 답답하고 그러다가 임상을 통해서 환자들과 함께 숨 쉬면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그랬거든요. 그런 여정을 하다 보니까 고맙지 않은 일, 감사하지 않은 것들이 없더라구요. 그러면서 공부를 하던 여정에서 고통스럽던 순간들도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님께는 영적돌봄가로서의 활동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네요.

 

-엄청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충대(충남대학교병원)에 다니면서 내가 처음으로 내 화에 대해서 이해해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화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충대(충남대학교병원)에 있으면서 나의 화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화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받아주지 않아하는 마음으로 만났는데 그 에너지가 나에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에게도 이런 따뜻함이 있구나... 그게 너무 너무 좋았어요.

왜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 말하기 어려운 아주 좋은 에너지들이 있잖아요. 그 에너지들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또 다시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자애로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졌을 때, 그 순간에는 정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얼마 전이지만, 스님께서는 논문을 써야하는 시기였잖아요. 모든 것들이 결집되어 있는 힘든 시기셨을 텐데요. 그런 때에 그런 활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떤 힘이었을까? 궁금해져요. 어떤 것이 스님께 그런 힘을 주었던 걸까요?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죽어가는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항상 후회스러운 일이 각자 여러분야로 많은데 환자들에게는 그 순간에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굉장히 많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당장 몇 시간 후에 죽는 다면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좀 많았어요. 논문은 나의 공부의 결정체다 생각을 하며 열심히 했었고, 논문을 쓰면서 힘겨움도 많았지만, 환자를 보면서 오늘이 항상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을 생각했던 순간이 나에겐 있었으니까. 그때 그때 순간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졸업장 받았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 완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쫙 빠지면서.. (웃음) 기운 없는 힘이 빠진 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애썼던 힘이 빠지면서 이제는 정말 나의 모습으로 꽃 필 시간이 왔구나. 그랬어요.

예전에는 열등감, 불편한 마음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진짜 내가 원하는, 내가 나를 그리는 모습? 어디에도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가장 자연스러움으로 내 기량을 펼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스님에게 7년 동안 대학원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개인적으로 내 안에서 기억나는 것은 집에서 제사 있는 날은 새벽부터 나물하고 제사 준비하고 겨울이면 눈쓸고 하면서 되게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기차타고 열심히 학교에 와요. 와서는 하루 종일 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는 거에 굉장히 힘들어 하면서도 그래도 가고는 있구나. 하는 마음? 그게 기억에 제일 남아요. 졸았지만 다 듣고 있었다는 거(웃음)

그리고 과목에서의 여정은 싸이코 드라마 했던거요. 싸이코 드라마는 내가 가장 아팠던 부분을 현실적으로 잘 드러내고 객관화 시켜서 보는 작용을 했었고, 미술치료, 춤테라피 같은 역동적인 수업 들이 기억이 나네요. 내 마음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었던? 그런 기억들이 나요.

 

스님께서 앞으로의 꿈? 그리시는 모습이 있나요?

 

-나는 명상심리학을 전공을 했고 현대적으로 보면 상담가의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하잖아요?그런데 상담이라는 것이 직업적인 일로써의 상담이 아니라 수행면에 있어서의 상담을 하고 싶어요. 수행하는 사람들, 스님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수행을 하잖아요. 그 수행하는 자들의 고민들을 진정성 있게 잘 듣고 함께 나누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영화를 보면 교수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는 항상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내가 움직이는 한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로써 소통하지 못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에너지 자체로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막연하게 죽음은 이런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명료하게 깨어있으면서 정말 죽음의 느낌, 슬픔이 있다면 슬픔을 오롯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임상 상담가로서의 저를 꿈꾸어 봐요.

 

스님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요? 한 단어로, 마음을 표현 해 주세요.

 

-나에게 마음은 돌이예요. 늘 저는 항상 마음을 다질 때 꾸준히 천천히 끊임없이이 말을 참 좋아하거든요. 돌은요. 돌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있잖아요?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지는데 돌은 가만히 있는 듯 하지만 영향을 받잖아요. 거기에서 돌이 나는 딱딱해서 니가 아무리 떨어져도 나는 패이지 않아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도 포용하면서, 돌의 역할도 하면서... 깍여야 하는 부분은 바람에 또 깍이고 떨어져 나갈 것은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 또 붙어야 하는 것은 또 곁에 와서 붙고...

왜 연약한 나무들도 돌에 붙어서 살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어떤 것들이 와도 마음에 따라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돌이요.

 

후배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천히 꾸-준히 그러나 끊임없이. 단박에 끝내가지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겠다 하는 분명한 목표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다보면 목표지점에 닿아 있어요. 상담은 그래요. 영업이나 사업 같은 것들은 목표지점이 있어야 하지만, 상담은 목표지점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지금이 중요해요. 지금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과 대화도 많이 하고. 천천히 끊임없이 간다면 어느 순간에 자연스럽게 목표지점에 닿는 때가 있을 거예요.

 

 

 

요즘 환자를 만나고 돌아 온 스님을 뵐 때면 정말 밝은 빛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능인스님은 아침을 맞이하는 일 자체에서도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여정에 있는 환자를 만나면서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고요.

스님을 만나며 오늘 하루라는 선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이야기 나누어주신 스님께 다시 한번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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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412월 어느날, 따르릉 대학원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기부를 하려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묻는 그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송지환 선배님이셨습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첫 기부자 송지환 선배님을 만나봅니다.

 

 

 

 

 

 

마하보디 명상심리대학원과의 첫 만남?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셨나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불교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나서 능행스님과 인연이 되었고, 능행스님이 초대를 하셔서 만나게 되었죠. 너무 간단하죠?(웃음)

 

201412월 대학원 발전기금에 첫 번째 기부자가 되셨습니다. 기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 개인적으로 수입을 배분하는 방법이 있어요. 4/3/2/1이라 숫자로 수입을 배분하고 있는데요, 4는 생활을 위해서, 3은 노후자금을 위해서, 2는 저를 도와준 모든 분들을 위해서 쓰고, 1은 기부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어요.

통장을 4개를 만들어서 매달 기계적으로 나누어서 연말까지 모아두었다가 정산을 하는 그런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기존에는 불사를 한다든지 하는, 종교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었는데요, 요즘 들어 인재들이 참 부족하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재들을 기르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기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부라는 것의 비율을 4/3/2/1 이렇게 내신다 했잖아요? 처음 기부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지 않으셨을까요? 왜 기부를 생각하게 되셨어요?

 

-책을 읽으면서요. 어떤 책인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거기서 제시를 하더라구요. 4/3/2/1 방식을요. 그 책을 읽고 나서 아! 그렇게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실천 하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웃음)

 

 

 

 

 

 

 

 

생각을 해 보셨을 수도 있고 안 해 보셨을 수도 있는데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개인의 마음? 자신의 마음?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

 

개인의 마음이요. 모두 다 마음의 색깔이 다를 테니까요.

 

-..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생각하는 마음이라.......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겉은 상처로 포장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안을 열어보면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마음이란 소중한 보물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의 첫 번째 기부자이시고, 또 선배님이 시잖아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마음이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우리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은 아직까지는 규모도 작고 사회적인 입지나 이런 모든 것이 열악한 조건이지만, 우리가 배우고 있는 내용 면에서는 정말 어디서도 배우기 힘든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학생들 스스로들이 잘 자각해서, 전문적인 상담가로서 클 수 있는 기초로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다들 직장인에, 생업에 매여 있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까 수업을 결석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 그걸 보고 있으면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한번 두 번 빠지는 공백을 메우기가 힘들 것 같은데... 수업에 좀 더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들이 모여서 배움이 온전하게 결실을 맺었으면 참 좋겠어요.

 

선배님의 마음이 후배들에게 감동으로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섯 개의 모든 질문을 마쳤어요. 웹진 2호에 사실그대로 꾸미지 않고 싣도록 하겠습니다. 진솔한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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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이 머문 자리]

만남이 머문 자리에서는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5128, 온 세상 하얗게 눈 이불 덮어 포근했던 날. 눈 그치고 그 여느때보다 맑은 밤하늘에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웹진 마음을 만드는 사람들의 데이트가 있는 날입니다. 

마음을 말하고,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쓰고 싶은 그들. 세명의 마음에디터들은 마음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 무슨말을 하고 싶으세요?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 그렇지, 의도가 있지. 교육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항상 보여 지는 것은 포스터 안에 내용뿐이잖아. 그 속에 담을 수 없는 교육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 결국 홍보가 의도?

- 진짜 홍보가 뭘까? 겉만 번지르르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보면 그 안에...

-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 그렇지, 그렇지, 그게 핵심이지.

- 진정성을 이야기하니 생각나는 말이 있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밖에 없다는 그 말이 너무 와 닿아. 교육을 말하면 누구나 필요하다고 말하지. 필요로 하는데, 정작 그 교육이 무엇에 필요하냐고 할 때, 뭔가 정말 진심을 담은 교육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교육은 흔치 않아. ‘마음을 통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 교육원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 자체를 공개를 안 하잖아요. 내용에 관한 문의가 많이 오는데 그럴 때 그 것들에 대한 어떤 내용들이 웹진에 실려 있다면, 그 것을 한번 보세요. 할 수 있는 활용도를 생각해 봤어요. 공개가 안 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쯤은 해소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 그 교육 내용이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지는 경우에도 좀 더 가깝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도 줄 수 있을 것 같아.

- 교육을 소개할 때 실무자들에게는 이런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조현기자가 있는데 자신이 다녀오지 않은 곳의 기사는 쓰지 않고 직접 다녀온 곳의 기사만 쓰기로 유명해. 왜 그러냐 하니까. 본인이 그렇게 해야지만 기사에 진정성이 있다는 거야. 우리도 많은 실무자들이 다녀왔던 아주 소소한 교육이라도 다녀온 느낌을 적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다녀온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교육을 갔을때, 그 웹진에 실린 내용들, 그 느낌 그대로더라 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

 

 

-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원고, 분량에 집착하지 말고 질에 의존해서 하나씩 하나씩 질 좋은 정보들이 쌓이다 보면 좋은 웹진이 되고 자료가 축적되지 않을까 싶어. 웹진이지만 월 몇주차에 발행한다는 어떤 규칙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 느낌들이 왔을 때 보낼 수 있는 홍보성이 아닌, 실무자들이 교육의 진정한 마음들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웹진이고 싶어. 대상자도 많으면 좋겠지만, “웹진 보내주세요.” 하는 한 사람만 생긴데도 엄청 감동이 있을 것 같아. 소박하게 시작하는 거야.

- 사실은 홍보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웹진을 이야기 하게 되었지만, 처음 의도한 홍보시기를 지나치면서 어찌 보면 오히려 방향성이 뚜렸해 진 것 같아. 실무자들이 지치지 않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코너들을 넣어서 진정성 있게 그 이야기를 가져갔으면 하지.

- 항상 교육을 알리고 홍보를 하다보면 프로그램들을 개방할 수도 없으면서 그 교육내용으로만 알려야 하는데 그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이 웹진을 통해서는 내용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담아낼 수 있겠다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되요.

- 그 교육들에서 한 사람씩의 이야기라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게 사람의 이야기들로 기록이 되고 남겨지고, 결국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겠구나 싶어요.

- 그것을 정말 소중하게, 진정성 있게 남겨주고 싶어.

- 교육을 20년을 했는데 교육생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남겨두지 못했어. 보디사트바 소식지에 싣기도 했는데 보디사트바에 어느 한 면을 찾아봐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정성스럽게 담아서 나누고 싶어.

- 대학원을 보면 교수님들이 몇 번의 짧은 강의를 하고는 떠나잖아요. 교수님들께 글을 하나 부탁을 한다거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강의가 끝나면 교수님도, 학생들도 아쉬워 하잖아요. 그 아쉬움이거나, 교육을 정리한다거나 하는, 곁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다른 연결고리 소통거리가 생긴다는 것에 좀 들뜨기도 해요.

- 마음이란 웹진은 우리의 마음만 열려있으면 가능한 것이 정말 많을 것 같아. 예를 들어 학기말에 롤링페이퍼를 돌린다고 보면, 그 것을 하나 찍어서 올리는 거야. 마음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세심한, 예민함, 촉각이 필요하겠지. 모든 것에 소홀하지 않는... 마음이란 웹진이 없었다면 그 예민함을 굳이 생각하지 않았겠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뭘까? 마음이 머무는 자리, 시선이 머무는 자리, 그런 이야기들을 채운다 생각하니 마음을 쓰게 되는 거지.

- 마음을 잘 쓰다보면 마음을 잘 다루게도 되고 마음이 더 좋아지기도 하고 마음을 받는 사람도 좋지만 마음을 주는 사람도 더 좋잖아?

 

- 기대된다. 마음

 

 

마음은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마음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 마음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마음은 그대의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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