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머문 자리]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안인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고 잊을 만하면 크고 작은 태풍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곤 해서 가을학기가 더더욱이 기다려졌던 것 같습니다. 개강하자마자 추석연휴가 겹쳐서인지 아직 여름방학 중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던 평화로운 오후. 우리는 양산 통도사 가까이에 있는 갤러리카페 '스페이스나무' 로 바삐 달려갔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오시는 대학원생 안인옥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작은 미술관과 공연예술관을 겸한 그곳은 찻길에서 멀지 않은데도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늑했고 곳곳에 놓여진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힐링의 손길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였습니다. 정원에 가득 피어난 붉은 꽃무릇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마주 앉은 우리는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너무나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 반갑습니다. 벌써 4학기차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

 

기분이 너무 평온해서, 그냥 어제 가고 오늘 가는 것처럼 중간에 방학이 없이 쭉 흘러온 듯한 느낌이에요. 방학 때 바쁘긴 했죠. 내 방학이 아닌 느낌? 딸아이가 고3이라서 개학과 동시에 수시 대학입학원서를 써야 하거든요. 딸래미랑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요. 8월 한달은 거의 그 일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개강을 했으니 우선은 4학기를 잘 보내야죠. (웃음) 논문을 어떻게 쓸 건지는 이번 학기에 고민을 해보려구요. 지금처럼 수업에 참여하다가 어느 날 뭔가 직감적으로 떠오를 때!! 그런 걸,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아직은 안 떠올라서요.

 


[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

 

학교상담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니까 정말 공부가 많이 필요하고 내가 여유롭고 평온하고 굉장히 수용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더라구요. 표면적으로 좋게 보는 시선 때문에는 할 수가 없는 게 상담활동이거든요.

 

결혼할 때 나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은 자기 역할을 하면서 이렇게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어요. 남편도 나도 엄마 아빠들이 너무 바쁘셔서 우리는 좀 아이들 키울 때 신경을 써주자, 아이들이 학교 갔다 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원했죠. 정말 부모로서 엄마로서 그렇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게 제 바람이었고 남편이 웠했던 것도 있어요.

 

그래서 그냥 암묵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아이들 대학 보낼 때까지는 돌봐주자는 게 남편이 원한 거고 저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시댁도 제가 그렇게 살기를 원했구요. 그래서 가족을 놔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내 스스로도 아이들 대학 보내고 난 이후로 미루고 있었어요. 내 일을 가지거나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었죠. 내가 뭘 할 수 있겠노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것들이 아이 양육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어요. 학교 상담 자원봉사도 학교이기 때문에 하게 되었죠. 아이들 초,중,고등학교까지요. 아이 고등학교 2학년 되니까 나도 자원봉사 졸업. 이런 식으로 딱 7년 정도만 봉사활동을 하고, 이런 식으로 주로 아이와 관련된 일만 공부하고 봉사활동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지금은 큰애가 군인이고 둘째가 고3이니까 그 역할도 빠지게 되었죠.

 

저는 그냥 우리 아이들 키우는 데 도움이 되고 내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봉사활동이었는데,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참여했던 활동인데, 남들은 그 봉사활동을 좋게 바라봐 주시더라구요. 지금 다시 봉사를 하게 된다면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그 아이가 하는 말, 표정을 따듯하게 바라봐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유가 지금은 생겼어요. 이제는 하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그런 말은 안하고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어떠셨나요? ]

 

아이러니한 건,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때쯤 남편의 사업이 완전히 뒤집힌 상황이었어요. 그 동안 활동을 하든 안하든 경제적으로 구애받으며 살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제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더라구요. 힘이 된 거죠.

 

내가 남편의 상황을 반대로 뒤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남편을 탓하지 않고 내가 남편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역할은 할 수 있다는 것. 솔직히 이런 상황이 되면 가장 하기 쉬운 게 원망하고 탓하고 하는 건데, 내가 그런 말을 안하고 남편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것. 그럴 수 있었던 건 제가 계속 마음을 공부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남편이 가장 힘들 때 내가 남편을 더 힘들게 하지 않는 그런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었어요. 남편이 항상 고마워해요. 사실 갑자기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 만큼 감정적으로 소진이 된다고 할까, 그런 사건들이 많았죠. 상황이 완전히 안 좋지만 남편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나, 그래서 새롭게 보아주는 우리 아들, 새롭게 보아주는 딸. 그래서 이 일들이 여러 가지로 내게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어요.

 


[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나요? ]

 

러브 마이셀프(love yourself :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무 많이 슬펐으면 못살았을 것 같아요. 기억나는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우리 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보면 너무 평범해요. 엄마 아빠의 삶이란 것이 나한테만 특별히 더 힘들거나 가혹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어느 집에나 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나 우리 엄마, 언니, 동생 등 내 환경이 특별히 불우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안 들어요, 솔직히.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너무너무 없어서 그랬다기보다, 내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굉장히 상황을 좀 심각하게 보고,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느끼고,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그런 성향, 그런 경향, 그런 시선이 너무 당연하게 이어지다 보니 그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평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톤 낮은 느낌, 톤다운된 느낌으로 살아왔어요. 나는 별로 안 즐거운데 사람들은 왜 즐거울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 깔깔깔 웃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나는 덜 우습고, 나는 뭔가 덜 기쁘고, 그렇게 좋은 줄 모르겠고, 나만 걱정이 이렇게 많고, 나만 이렇게 불안한?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고 별로 안 그래 보인다는 생각.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중고등학교 때, 반항하는 사춘기가 아니라 굉장히 내 스스로 고립되고 내 스스로 우울해 하는 그런 것들이 내 성향이었다는 것을 아주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나에 대한 니즈가 없기 때문에 내 스스로 힘든 거지. 무엇 때문에 힘든 건지, 지나고 보니 딱히 왜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 마음밭이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알았을 때는 알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아, 이제 내 성향이 그랬구나를 알게 되니까 순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진작에 알았더라면 내가 나를 잘 케어하면서 살았을 텐데! 싶으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나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안다고 한들 삶이 바뀌진 않더라구요. 이제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노력을 진짜 많이 해야만 나의 그런 성향에도 불구하고 기쁠 수 있고, 덜 심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또 가려니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을 알고 벗어나려는 노력을 살아온 것만큼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어쨌든 40대 초반쯤에 아이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봤어요. 우리 때 부모교육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운이 좋게 상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맞딱뜨려진 거죠.

 

지금은 믿죠, 우연은 없다고. 어느 날 도서관 앞에서 딱 눈에 띈 상담자원봉사자 모집, 1기인가 2기인가 모집 광고가 내 눈에 띈 건 행운이고 우연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날 그 모집광고를 보고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전화를 하면서부터 마음공부라는 것을 세상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그 마음공부에 참여하면서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조금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 아쉬움은 없는지요? ]

 

더 열심히 공부할 걸!!! (웃음) 정말이지 마음공부가 내 안식처, 위로, 격려가 되었어요. 지금도 저는 대학원 수업도 받고 스님 법문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스님이 이런 말을 강조하세요. "일단 와서 앉아 있어라, 법이 너를 끌고갈 것이니. 90프로 못 알아들어도 나머지 10프로, 20프로가 끌고 가게 된다. 그냥 마음만 내서 계세요" 하고 늘 당부했던 스님이죠. 그래서 졸더라도 법당에 가서 졸고 있어요.

 


[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

 

지금 현재 해보고 싶은 것은 좀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내가 스스로 만든 틀에서 좀 벗어나서 여기든, 저기든, 거기든 가고 싶어요. 저 비행기 아주 좋아하거든요.그런데 (승무원 생활을) 오래는 못 했죠. 첫번째 떠오르는 것은 경이로운 자연이 있는 곳이에요. 저는 대도시만 다녔거든요. 그랜드캐니언이나 캐나다의 북극 가까운 데 가서 오로라도 보고 싶어요.

 


[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일단 제가 살아 있겠죠? 살아 있다는 거니까 진짜 축하해야 할 일이구요. 우리 엄마가 60에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60 넘어서의 삶을 엄마를 통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

 

앎.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선물 같아요. 몰랐는데 알게 되어서 좀더 편안해지거나 기쁨? 그런 순간들이 저에게는 매우 소중해요.

 

나만 이렇지 않아, 알고 보니 다 똑같다는 말을 그래서 쓰나?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불교. 나는 이제까지 마음작용이 마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늘 마음을 쓰고 살면서, 내 마음이 늘 그러면서도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마음이라는 것을 어떤 언어로 정의를 해놓고, 그걸 해석하고, 이런 이치로 이런 원리로 작용하는지 설명하고. 새 세상이 열린 것 같아요.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텍스트가 있다는 놀라웠고, 위로가 되는 동시에 위안이 되었죠.

 

마음공부는 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되고, 상대적으로 기쁜데도 나한테는 어렵다 그런 생각도 많이 들어요. 마음공부를 하면서 괴로움은 알아도 안 되는 것.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강의를 많이 들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길었어요. 그렇게 해도 안 되네? 그런 마음이 더 힘들었죠. 그래서 상담 자원봉사를 하면서 주변에는 그런 봉사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자신이 없어서요. 물어볼까봐 겁나서요. (웃음)

 

어쨌든 마음작용만 알아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만 알아도 기뻤던 공부하는 재미.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마음공부하는 자리에는 별로 빠져본 적이 없어요.

 


[ 우리 웹진 이름이 ‘마음’인데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

 

마음이 뭔지는 아직 잘 몰라요. 그래서 지금 마음이 뭐냐고 물으면 마음은 내가 아는 것, 모르는 것, 그 모든 걸 다 포함한 모든 것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같이 공부해서 고마워요. 나랑 같이 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으로 와줘서 고맙죠. 같이 수업하고 같이 나누는 즐거움? 그런 것들이 좋아요. 같이 얘기할 수 있고 차도 같이 마시고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항상 곁에 같이 있고 같이 공부하고 싶어요.

 

 

Posted by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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