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불교 유식학(唯識學) 산책(9)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20. 7. 21. 13:13

[천천히 읽는 명상]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이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불교 유식학(唯識學) 산책(9)

- 사람과 강아지 -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강아지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성질을 지닌 것은 아니다. 아주 순해서 사람을 잘 따르는 시츄나 말티즈 같은 것도 있고, 양떼를 감시하는 데 적합한 콜리라는 강아지도 있고, 주인에게 유난히 충성심이 강하고 용맹한 진돗개도 있고, 사냥을 잘하는 세퍼드도 있다. 강아지라 하여도 타고나는 근본 성품에는 차이가 있다. 근본 성품은 훈련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이미 타고나는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사람이 타고나는 근본 성품을 본유종자(本有種子)라고 말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경험과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종자를 신훈종자(新勳種子)라고 한다. 훈련을 통해 강아지의 성품을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듯이 사람도 교육과 경험을 통해 근본 성품을 어느 정도는 바꿀 수가 있는데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들을 신훈종자라고 한다.

 

강아지를 성품의 유형에 따라 구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능력이나 성품에 따라. 천재, 수재, 범재, 둔재, 등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신중한 사람, 급한 사람, 명랑한 사람, 우울한 사람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심리검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MBTI라는 성격 검사는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융은 사람의 성품(심리적 기능)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이다. 태어날 때 이미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구분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근기(根機)라는 말은 불교에서 수행이나 공부를 할 때 사람의 성품의 정도를 나타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상근기(上根機),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라고도 하는데 선수행이나 화두수행은 상근기의 사람에게 더욱 적합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성품의 정도에 따라 알맞은 공부가 있고 행동에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초기 기독교의 그노시스 학파에는 사람의 그릇을 영적 단계, 정신적 단계, 육체적 단계 등 3단계로 구분하기도 했다.

을 믿는 자가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 단계에 이른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학파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 주장에 밀려 지금은 역사의 책갈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신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정 노력을 오히려 소홀하게 취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근기(종류)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른바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이 바로 그것이다. MBTI 검사의 16가지 성격유형은 좋다, 나쁘다라는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유형, 즉 종류의 구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유형에 대한 그노시스 학파의 3가지 구분과 유식학의 5가지 구분은 뚜렷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단계별 또는 성품의 수준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첫 번째가 보살종성(菩薩種姓)이다. 최상의 근기로서 장차 보살이나 부처가 될 성품을 말한다. 물론 씨앗이 그러하다는

것이지 수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보살에 이른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성품을 지닌 사람들은 타인을 돕는 것이 즐겁숙한 사람들이다. 보살의 이타행이 몸에 익어서 자신의 이익보다도 타인을 돕는 일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둘째가 독각종성(獨覺種姓)이다. 스승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수행을 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차별성을 극복하고 무아에 이를 수 있는 사람, 아라한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수준, 알아차림이 가능한 수준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가 성문종성(聲聞種姓)이다. 올바른 진리와 법을 배우고 들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성품이다.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배워야 가능한 사람들이다. 수준이 조금 낮지만 세상에는 배워도 안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면 이 단계도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가 부정종성(不定種姓)이다. 아직 성품이 정해져 있지 않는 상태이기에 노력하면 성문종성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노력하지 않고 염정심(번뇌의 마음)으로 살면 무성종성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좋은 인연을 만나야 한다. 좋은 스승, 좋은 도반을 만나면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없으면 불법의 진리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사람들이다.

 

 

다섯째가 무성종성(無性種姓)이다. 불성을 갖추지 못한 성품이다.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범죄를 일삼고 남을 롭히는 것을 즐기는 일종의 반인격적 성격장애자들이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은 불법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교의에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씨앗을 지니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무성종성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유식학의 가르침과는 모순처럼 보인다. 이러한 불일치를 학문적으로 따져서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부질없는 헛수고일 뿐이다. 양자를 모두 수용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각각의 가르침의 근본을 받아들이면 된다.

 

 

개유불성은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근본 종자 속에는 부처가 될 씨앗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타고난 근본종자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생을 통해 닦고 또 닦아야 가능한 일이다. 두 가지 이론의 모순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살피고 한 단계 위로 올라갈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들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