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는 명상

불교 유식학(唯識學) 산책(5)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2019. 6. 1. 11:59

[천천히 읽는 명상]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김경일 교학처장님이 들려주시는 따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불교 유식학(唯識學) 산책(5)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중생들의 삶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이다.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생의 삶은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이익을 추구하는 삶은 항상 상대방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고 자신이 더 많은 이익을 가지려고 하면 타인은 그만큼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갈등과 다툼이라는 습에 깊게 물들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된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무료하게 느껴지는 황제라면 의도적으로 전쟁의 일으켜서 전쟁의 승리를 행복으로 여기게 된다. 승리자의 기쁨을 얻기 위해 적을 만들고 죄 없는 많은 생명들, 어린 아이들까지도 무참하게 해치기도 한다. 그러한 행동의 근원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유식학은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우주 전체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인식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설(三性說)이 그것이다. 인간의 인식단계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중생의 단계와 보살의 단계, 그리고 그 중간의 단계를 나누어 설명한다.

삼성설은 사람들이 대상을 인식하는 세 가지의 방식을 설명한 것으로 첫째가 변계소집성(偏計所執性)이요, 둘째가 의타기성(依他起性)이며, 셋째가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변계소집성에서 변계라 함은 주변계탁(周邊計度)의 뜻으로 일체의 모든 현상을 나와 대상으로 구분하고 계산하여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식방법은 자아와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알고 집착하여 그릇된 상을 인식하게 된다. 허망한 인식을 통해 얻는 상을 변계소집성이라 한다. 변계소집성이란 사물을 인식할 때에 범부의 미망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잘못 알아서 나타나는 일체의 사물 인식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대상을 분리하여 개별적인 존재로 봄으로써 상호관련성을 보지 못하며, 개별화된 것으로 인식하여 집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생들의 보편적인 인식방식이다.

의타기성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름은 구름대로, 비는 비대로, 강은 강대로 각기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관련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연기(緣起)를 의미하는데 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일어난 것이므로 인연이 사라지면 현상도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모든 것은 한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의타기성은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는 바탕이며 모든 인간관계도 상호 관련 속에 이루어짐을 밝히고 있다. 내 중심의 사고방식을 극복하여 전체의 관련성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고려하는 성숙된 사람들의 인식방식이라 할 수 있다.

원성실성은 둥근 원처럼 모든 현상을 하나의 유기체에게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본다. 마치 심장의 박동과 장기의 움직임, 그리고 손발의 놀림을 제각각의 작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하나의 유기체에서 일어나는 통일된 현상으로 보는 인식방식이다. 변계소집성이 낱낱의 현상을 독립된 것으로 보는 성질이라면, 의타기성은 낱낱의 독립된 현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며, 원성실성은 낱낱의 작용들은 결국은 하나의 유기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는 인식방식이다.

원성실성은 사물의 본질이 공임을 보는 것이고, 우주만상은 공에서 비롯된 다양한 현상임을 직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다는 근본적으로는 같은 모습이지만 바람이 불면 파도가 되어 일렁이고, 태풍이 몰아치면 집채만 한 해일을 일으키기도 한다. 파도가 높거나 낮거나 해일이 일거나 잠잠하거나 바다의 근원은 하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그러나 파도는 파도이고, 해일은 해일이며, 파도와 해일은 별개의 존재라고 인식한다면 그것은 변계소집성에 의한 인식이다.

 

변계소집성은 낱낱에 집착하는 왜곡된 인식이다. 의타기성은 모든 현상은 상호 관련 하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은 타당한 것이지만, 아직 근본이 하나라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원성실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변계소집성의 관점에서 의타기성을 보는 견해는 잘못된 견해이며, 왜곡과 혼란의 출발이다. 원성실성으로부터 의타기성을 보는 견해가 건강한 인식방식이며 곧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주의 근원은 공이며 인식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마음에 따라 인식하는 대상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세상의 모습은 내 마음의 모습이며 세상의 빛깔은 내 감정의 빛깔이 투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