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만남이 머문 자리] 정성스러운 만남을 가져 보려 합니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강민정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유난히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정토마을과의 인연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셨고 졸업 이후에도 그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가고 계신 대학원 졸업생 강민정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바깥에서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태양빛이 작렬하는데 강민정 선생님은 그보다 더 뜨거운 카푸치노 커피를 시키셨습니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신 강민정 선생님과의 데이트, 이제 시작해 봅니다.
반갑습니다. 올해 졸업하시고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요?
지금은 좀 쉬면서 짧은 시간 잠시 알바 정도 하면서 그 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을 조금씩 보충하면서 지냅니다.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입학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호스피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토마을을 알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생사의 장” 교육을 받았는데 대학원도 있고 여러 가지 교육도 하고 병원도 있고, 제가 평생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부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다경 스님께서도 대학원 전문가과정을 권하셨고요. 저한테 많은 친구를 알게끔 해주시고 싶으셨던가 봐요. 그래서 생명전문가과정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갈 때 대학원을 나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하나의 끈을 만들고 싶었어요. 부산에서 거리도 멀고 그냥은 잘 안 와질 것 같은데,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 사람들도 알게 되고 뭔가 할일이 생기지 않겠나 그런 마음으로 갔었죠. 그런데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되었어요. 수업 과정에서 점점 제가 배우고 싶은 것, 내게 부족한 것을 더 배워야 되겠다 이런 계획이 서더라고요. 중간에 생명교육 과정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임상전문가과정이든 생명교육전문가과정이든 저에겐 하나의 끈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대로 연결만 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힘든 일을 겪기도 하고 그러는데, 제가 자리를 잡지 못했었거든요. 제가 자꾸 방황하는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방황하지 않고 뜰을 하나 만들고 싶고 정착하고 싶은 그런 욕구, 정토마을에 정착을 하고 내 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저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제가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 강연도 해보고 싶고 그랬는데, 그 방법을 모르잖아요. 너무 막막했었는데 생명교육전문가과정을 하면서 수업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기초 발판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면 부족한 부분이 뭔지를 알고 조금씩 체계를 밟아가는 단계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간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항상 불만도 생기고 뭔가 어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산 너머 남촌이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다른 데를 동경하면서, 아 거기는 나을 것이다, 지금 나 있는 곳이 가장 힘들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생명교육전문가 수업을 하면서 조금씩 성숙해졌다고나 할까요. 생각이 달라지면서, 제가 동경하던 산 너머 남촌 그쪽에서는 제가 있는 이 자리가 또 동경하는 산 너머 남촌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제가 이 자리에 처해 있는 이 공간이 가장 소중하고,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뭐랄까, 살다가 굉장히 겪기 어려운 힘든 일을 겪었어요. 처음에는 아,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생길까 그랬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다 제가 너무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자꾸 갈망하고ㅡ 이상만 자꾸 바라보고 쫓아가려고 하고, 그러다가 주변 사람이나 가족이나 누구를 마음 아프게 했던 것도 있고요. 이제는 내 현재 주변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저쪽에서는 또 이쪽이 갈망하는 곳이 되는데 아무 소용없는 욕심을 제가 너무 많이 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요.
제가 또 말해주고 싶은 것은, 왜 누구나 펜도 독이 되고 말도 독이 된다고 하잖아요. 또 미운 대상도 있고 화나는 대상도 있을 적에 정말 울컥하기 전에 한번 잠시 멈추고 한번 더 생각을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사람을 대할 때 이 사람하고는 지금 이 대화는 마지막 대화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라고 하고 싶어요. 저도 가끔 안 될 때가 참 많은데, 정말로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이해되고, 아무리 밉고 화가 나더라도 지금 이 사람하고 안 좋은 말로 헤어졌구나, 마지막이 되었구나 이런 후회는 안 남게 해야죠. 항상 누구나 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현재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고 싶어요. 그게 산 너머 남촌하고 거의 같이 결부된다고 할까요.
저처럼 가족을 먼저 보낸다는 건, 특히나 자녀를 먼저 보낸다는 건 그게 뭐랄까, 다른 문제는 몰라도 치유가 백 프로는 안 되죠. 끝까지 영원히 안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걸 안고 제가 어떻게 생활하느냐 그것을 발판으로 또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원에 입학하셨을 때의 첫 마음 기억나시나요?
저는 처음에는 평범하게 시어머니 모시고 살림만 했고 그 다음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다가 처음으로 저한테 투자를 한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직장, 살림 이외의 다른 세계에 들어와 보니까 굉장히 설레이기도 했고요. 몇십 년 만에 제가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런 것도 있지만 또 수업 중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어요, 솔직히. 그런데, 그래도 포기를 안 하고 왔죠. 여기에서 좌절되면 이것은 완전히 실패다, 실패의 실패.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사실은 제가 걸어올 적에 울면서 내려온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동그라미 안에서 나와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한발 나와서 보니까 양쪽 다 보이는 거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상처의 찌꺼기가 있어서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차차 하나씩 알아 나가는 것, 성숙해져 간다는 게 아마 이런 것 같아요.
참, 그 말을 안 했네요. 처음 입학할 적에 제가 몸을 많이 혹사시켜서 많이 아팠었거든요. 처음에는 목디스크 때문에 목에 깁스하고 왔다가 다음 학기엔 손에 수술을 했고, 양쪽 다 했잖아요. 팔에도 깁스를 하고 오고. 그러니까 김경일 교수님께서 붕대 감은 위치를 헷갈려 하셔서 웃고 한 적도 있는데. 정말로 힘들게, 그렇게 힘들게, 그러면서도 걸어서도 오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겁니다. 지금은 붕대가 지금 없어요. (웃음)
돌이켜 생각해보시면 선배님께서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겐 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거든요. 좋은 점은 도반들과 같이 수업하고 질문하고 이런 거죠. 저도 몰랐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제가 그런 거를 참 좋아하는구나, 토론하고 이런 거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요. 같이 질문하고 그룹으로 하는 내용 있는 수업을 굉장히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너무 적극적으로 신이 나서 했죠. 그러니까 붕대를 감고도 걸어서도 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을 하면서 터특한 게 있는데, 여러 사람이 딱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질문에도 예의가 있어야 하잖아요. 시간 이런 것도 봐야 하고요. 옛날에 우리는 형제 간에 여럿이 있을 적에 다섯, 일곱 될 적에 생선 두 마리만 딱 올려놓으면 말 안 해도 자기 몫이 얼만지 알아서 먹었거든요. 그렇듯이 질문도 시간이 임박할 적에 제가 질문해야 될 몫이 얼마만큼인지, 그런데 정말 좋은 질문도 시간이 너무 늦었거나 다른 스케줄에 차질이 가는 질문을 하면 답변해 주는 분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 질문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거든요. 질문도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 교수님께 따로 개인적으로 해야 될 질문, 그런 것은 잘 판단을 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10년 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10년 후에는 제가 필요한 곳에서, 어디 조그만 단체 이런 데서 제가 겪었던 상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현재의 우리 세대 제 또래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문제를 겪고 있을 것 같거든요. 아주 곱게 늙어서 단아한 모습으로 강의를 하고 싶어요.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요?
아버지께서 굉장히 좀 긍정 마인드이세요. 가장 큰 선물이라 하면, 제가 아버지 긍정 마인드를 많이 물려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이렇게 웃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버지 긍정 마인드를, 그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 있지 않겠나. 생활에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웹진 이름이 ‘마음’이잖아요.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한마디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마음은 하얀 도화지인 것 같아요. 그 도화지에 내 생각을 어떻게 그려넣느냐. 제가 좀 힘들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살았으면 그 도화지에 마음을 아주 부정적으로 그려넣을 것 같고, 또 이렇게 밝게 행복하게 살면 행복하고 밝은 마인드로 도화지에 색칠했을 것 같고. 그런데 또 잘못 그려졌을 때는 우리가 살면서 고칠 수도 있으니까. 마음은 한마디로 하얀 도화지다.
사랑하는 후배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요즘 후배들이 워낙 똑똑하고 잘해요. 더 잘해요, 선배보다. 다들 알아서 잘 하니 특별히 제가 선배로서 말해줄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