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자리]행복합니다.
[마음이 머문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는 교육을 통한 생각들, 느낌들, 책이나 영화, 그 무엇에선가 문득 마음이 머무는 그 어느 구절들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 보세요.
행복합니다.
44기 생사의 장 불교호스피스 교육 그후...
이 수 복 (석사과정 5학기 재학생)
내 인생에 있어 2016년은 잊지 못 할 최악의 한해였다.
연초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다. 여름엔 몽골여행과 러시아 바이칼호수 탐방이 예정되어 있었고, 등 떠밀리듯 선택한 43기 호스피스교육도 기다리고 있었다. 야호!!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간이 빨리 미끄러져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의 초입에 어느 월요일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보험공단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우리센터에 한 요양보호사가 가족을 비가족으로 속이고 수당을 부당청구 했으니 센터에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자그만치 5년 동안이나 공단과 센터를 속인 것이었다. 헐...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이번엔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이라고 했다. 아...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다.
어째 이런일이...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은 25일 만에 돌아가셨다. 우리 부부는 많이 싸웠었고,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내가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도 남자심리에 대해 알고 남편에 대해 좀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에게 정말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공부거리를 주고 간 사람, 미운사람. 그리고 불쌍한 사람...
나는 방문요양센터를 운영하면서 요양보호사 교육 강사로도 일을 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교과목에는 호스피스와 임종요양보호라는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을 강의하기가 늘 꺼려졌다. 왠지 우울해지고 축 처지는 분위기가 싫었기에 일부러 그 과목을 다른 강사에게 맡기고는 했다.
그리고 아직 호스피스 교육을 받기에도, 하기에도 나는 젊다고 생각했었다. 해야 한다면 한 10년 쯤 후에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교육원 직원이 44기 생사의 장에 들어오시냐고 묻는다. 그 말에 나는 순간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갔다. 건강한사람이 하루 밤 사이 안녕이라고, 내가 나의 내일도 모르는데,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삶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마음 둘 곳 없는 나에겐 삶의 좌표가 필요했고, 사무실이전을 직원에게 맡겨 둔 채 44기 생사의 장에 조용히 나를 초대했다.
6박 7일 호스피스 교육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여태까지 받았던 교육은 그냥 주입되었다면 생사의 장은 느끼는 그 무엇이었다.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분위기는 뭐랄까? 엄숙하면서도 찬찬하고, 경건하면서도 평화롭고, 조용하면서도 따뜻하고, 깔끔하면서 정성이 깃들어 있고, 혼자이면서도 함께 있는 것 같고, 비워있는 듯 가득 차 있는 뭔가가 있었다.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부르짖고, 깊이깊이 내면의 바다로 빠지면서 그 끝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릴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친 지금은 임종요양보호와 호스피스 교육을 자진해서 강의하고 있다. 많은 요양보호사 교육생들에게 죽음의 인식의 전환에 대해 얘기한다. 능행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가 아닌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오늘이라도 내일이라도” 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자고 얘기하고 또 얘기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생을 완성해가는 것이고 죽음은 생의 완성이며, 또 다른 생의 준비라고...
생사의 장 인사 때마다 “행복합니다.” 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느껴보면서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써주신 여러 선배님들, 교수님들, 스탭진들, 스님들 그리고 원장스님과 모두에게 머리 숙여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